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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43화 (143/357)

143화

* * *

“정말이지. 사람 놀래키는 데 뭐 있다니까.”

팔짱을 낀 서윤이 까칠하게 이야기했다.

병원 한 켠에 마련된 휴게 공간엔 7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팀 H의 5명.

나머지 두 사람은 수지와 승우였다.

수지는 용주와 승우는 예나와 함께 있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야. 나 진짜 큰일 나는 줄 알고….”

예나가 마르지 않은 눈물을 닦아냈다.

용주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한 예나는 아직까지 울고 있었다.

“팔은 어때? 아프진 않아?”

예나의 물음에 용주는 왼팔을 움직여 보였다.

예나의 눈에선 또 한 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의 충격이 트라우마처럼 다시 떠올랐다.

선혈이 낭자한 게이트.

부서지고 찢긴 그곳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

한쪽 팔이 잘린 용주와 떨어져 있는 왼팔.

그 풍경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예나 아니었으면, 진짜 다 어떻게 됐을지도 몰라. 고마워 예나야.”

주원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폭발에 의식을 잃은 자신과 금화.

그리고 서윤과 용주를 모두 입구까지 옮긴 건 예나가 혼자 한 일이었다.

바깥과 연락을 취한 것도, 워커를 감시한 것도 모두 예나 혼자 한 일이었다.

물론, 잘린 용주의 팔을 주워 온 것도….

그 모든 걸 혼자 감당하는 게 정신적으로 결코 쉽진 않았을 것이다.

버티까지.

그렇게 되고 난 후였으니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난데 오빠가 왜 고마워해? 주원 오빠가 그렇게 해주지 않았으면 거기 휘말렸을 사람은 나였을 텐데.”

비정상적으로 팽창한 도준이 일으킨 폭발.

피와 살의 폭발 속에서 주원은 예나를 감쌌었다.

예나가 상대적으로 상처를 덜 입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아무쪼록 다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아가씨께 그 연락 받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었는데.”

커피를 내온 승우가 모두의 앞에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예나의 것만 율무차였다.

“덕분에 살았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네.”

금화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나가 가장 먼저 연락을 취한 사람은 집사인 승우였다.

승우는 곧장 길드에 연락을 취했고, 길드에선 수지를 중심으로 한 팀이 편성되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승우는 이미 게이트에 도착해 있었다고 한다.

“다 무사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싼 주원이 시선을 피했다.

사람 머릿수는 분명 다섯이 맞았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버티라면 괜찮을 거야.”

예나가 이야기했다.

주원을 의식한 듯 최대한 밝고 씩씩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예나였다.

“의료 헌터 언니한테 고쳐달라고 할 순 없지만, 집사한테 고쳐달라고 했거든.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래.”

“…그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승우와 눈을 마주친 주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묻고 싶은 게 정말 산더미라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네.”

서윤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떠오르는 것부터 막 던져 보자. 그쪽에 있던 놈은 어떤 놈이었어?”

서윤이 예나를 바라보았다.

“가면 아래에 있는 얼굴은 못 봤어. 덩치는 한 이만한 남자였는데, 악마 같은 모습으로 변해서 공격해 왔어.”

“그렇지만 그자가 헌터 시험에 참여했었던 자 중 한 명이었단 단서가 여럿 있었네. 박형만 헌터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지.”

금화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쪽도 그럼 결국 헌터였다는 이야기네.”

“그쪽도, 라는 건….”

“우리 쪽에 있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윤현이었어. 아이돌 헌터라고 불렸던 그 녀석.”

“윤현?! 그게 정말이에요?”

눈을 동그랗게 뜬 주원이 물었다.

주원만큼 격하게 반응하진 않았지만, 예나와 금화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물론, 승우도.

“그래. 그 자식, 미쳐서 우릴 죽이려고 했다니까?! 앙심을 품어도 정도가 있지!”

서윤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근데 그 자식, 우리가 알던 녀석이랑은 달랐어. 뭐랄까… 진각성을 한 것 같다고나 할까? 녀석이 부리는 힘은 우리가 알던 거랑은 차원이 달랐어. 단순히 이형 결정체로 스킬 한두 개 익힌 거랑은 다른 느낌이었는데.”

“진각성이라…. 다른 한쪽은 어땠소?”

금화가 서윤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백발의 남자였는데. 누군지는 몰라. 완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백발의 남자?’

급하게 핸드폰을 꺼낸 수지가 사진첩을 뒤졌다.

“그거 혹시 이 사람?”

화면을 보인 수지가 물었다.

이시우.

화면엔 A급 헌터인 그 남자의 명함 사진이 있었다.

“음… 아니, 묘하게 닮긴 했는데, 아니야.”

“그래?”

수지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왜? 그 사람이 누군데?”

“으응. 아니야. 하던 이야기 계속해.”

수지가 고개를 저었다.

“시시하긴. 아무튼 셋 중 둘은 확실히 우리랑 같이 시험 봤던 헌터였단 거네. 어땠어? 그쪽 녀석은 E급 같았어?”

“적어도 우리 셋이선 완벽하게 제압해 내기 벅찬 힘을 가지고 있었네.”

“역시 평범하진 않았단 거네. 그럼 어떻게 마무리된 거야?”

서윤의 물음에 주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때 그건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월영식 - 사.

그걸 사용한 자신의 모습을 포함해서.

“폭발해 버렸네.”

금화의 간결한 한마디.

“뭐?”

말을 이해하지 못한 서윤이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폭발해 버렸다니, 자폭하기라도 한 거야?”

서윤이 물었다.

그게 그나마 이해가 되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걸 자폭이라고 해야 할지….”

금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때 그 표정은 사람의 것이었다.

처절하게 울부짖는….

공포에 질린 사람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폭발한 건 사실이네. 하지만 그건 자의적으로 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네. 뭔가에 휘말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지.”

“뭔가에 휘말렸다라….”

“그러는 언니네 쪽은 어떻게 된 거예요?”

예나가 물었다.

“나도 그게 궁금하던 참이야. 윤현까지는 어찌어찌 제압해서 무력화시켜 놓긴 했는데, 그 뒤에 나도 당해 버렸거든. 그 백발 녀석한테. 칼에 찔리자마자 의식이 희미해졌다고.”

서윤의 시선이 용주를 향했다.

“그래서 그 뒤로 어떻게 된 거야? 빨리 말해 봐.”

“…프라이드와 교전을 이어 갔다. 최대한 빨리 구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지.”

“그렇겠지. 그 녀석, 인정하긴 싫지만 엄청나게 강했으니까. 그래서 녀석들은? 듣자하니 예나가 발견했을 땐 없었다는 것 같던데.”

도움을 요청하러 온 예나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거기 있던 건 둘뿐이었다고 한다.

윤현도 프라이드도 없다.

용주는 의식 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게 의미하는 건 둘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쪽도 저쪽과 마찬가지로 터져 버렸다든가.

아니면 이쪽이 패배했든가.

개인적으론 전자 쪽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주고 싶었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가져간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헌터로서의 힘은 지금도 유효했다.

신체 능력이나 회복력은 물론이고, 스킬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후자라고 하기엔 모순적이지 않은가.

딱히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게….”

“음?”

용주의 망설임에 서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원시원한 답변을 기대했는데, 반응이 영 기대와 달랐다.

“중간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끝났는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가 않아.”

“기억이…? 혹시 폭발 같은 거에 휘말려서 머리라도 다친 거야? 단기 기억 상실 뭐, 그런 거?”

“머리에 큰 외상은 없었어. 폭발은 수없이 있었지만 죽은 사람은 없다. 그게 현장을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이야.”

수지가 대신 대답했다.

‘삼켜지지 마라.’

용주의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곳에서 봤던, 점자에 적혀 있던 말들.

‘설마… 삼켜졌던 건가? 내가?’

끓어오르는 충동과 갈증.

그게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이자, 감정이었다.

세 번째 물어뜯기를 사용했을 때까진 그래도 기억이 있었다.

갈증에 집어삼켜질 것 같았지만, 이성의 끈을 놓진 않았었다.

끈을 놓친 건 네 번째 물어뜯기를 중첩한 직후.

기억은 그때부터 뚝 끊겨 있었다.

누가 가위로 싹둑 잘라 낸 것처럼.

‘담지 못할 물을 받은 그릇은 넘치고 깨질 뿐이라고 적혀 있었지.’

MP를 활용하는 물어뜯기도.

HP를 활용하는 할퀴기도.

그저 조건만 되면 끝없이 중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그건 헛것이 아니었던 건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거긴 어디었는지.

몸은 분명 여기 있었을 텐데, 거기 갔던 자신은 뭔지.

하지만 꿈이나 환상이라 치부해 버리기엔 점자의 메시지가 너무 명확했다.

게다가 그 부서진 세계.

게이트가 부딪치며 생겼던 그 교집합의 공간과 묘하게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도 아닌데, 기억이 없다고? 너 혹시 뭐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서윤이 용주를 쏘아붙였다.

용주의 평소 모습과는 뭔가 괴리감이 있었다.

“그런 거 없다. 난 사실만을 그대로 말했을 뿐.”

조금은 험악해진 분위기.

“혹시 그런 건 아닐까요?”

두 사람을 번갈아 본 승우가 목소리를 냈다.

“그런 거라니?”

“서윤 헌터의 의식이 날아간 것과 같은 이치인 거죠.”

“아!”

확실히 그거라면 기억에 단절이 있는 게 이해가 되긴 했다.

“그렇지만 그거라면 찔린 순간까지의 기억은 있어. 어디 뭐라도 말해 봐. 있어, 없어?”

“…널 관통했던 검에 찔린 기억은 없다.”

“그거 진짜지? 내 눈 똑바로 보고 다시 말해 봐.”

“그래. 없다.”

용주의 단호한 대답.

“아~ 정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신경질을 부린 서윤이 다리를 꼬았다.

“네 이야기만 들으면 대충 다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야? 다 빼고 나면 남은 건 우리가 졌다는 것 정도 아니야? 네 기억이 날아간 건 녀석의 다른 무기에 의해서라든가.”

서윤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이상하잖아! 정말로 우리가 졌으면, 녀석들이 왜 그냥 돌아가? 녀석들이 거기 온 건 목적이 있어서였잖아?!”

“워워~ 누나, 조금만 진정해요.”

주원이 분위기를 조금 누그러뜨려 보려 했다.

“혹시 두 사람의 목적이 달랐다든가?”

승우가 나지막이 한마디를 던졌다.

모두의 시선은 순간 승우에게 쏠렸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상황을 모르는 제삼자의 근거 없는 억측이죠.”

승우가 어깨를 들썩였다.

‘목적이 다르다?’

승우는 억측이라고 했지만, 용주에겐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면 억측이 아닐지도….”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주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프라이드 녀석이 처음 했던 말 기억하냐?”

“음? 아니, 하도 정신이 없었어서.”

“엔비가 귀찮게 굴어서 와봤다. 녀석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엔비? 그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윤현의 목적은 분명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어떤 방식인진 몰라도, 헌터의 힘을 뽑아낸다고도 했었지. 하지만 그건 녀석의 목적이었다. 프라이드의 목적 역시도 같았다면 굳이 시간차를 두고 나타날 이유는 없었을 거다.”

“음… 하긴 두 갈래 길밖에 없었으니까. 다른 곳으로 샌 거였다면 저쪽이랑 만났었겠지.”

게이트의 구조상 셋이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시간차를 두고 나타났다는 건 시간차를 두고 게이트에 도착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겠지.

“그럼 녀석의 목적은 뭐였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윤현의 회수. 그게 아니었을까 싶다. 윤현이 거기 없었다는 게 그 근거고.”

둘의 목적이 달랐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가 자신을 무력화하고, 고대의 재앙까지 쓰러뜨리고 난 뒤 그대로 물러난 게 설명이 됐다.

“음… 그나마 제일 그럴듯한 방향 같긴 하네. 근데 그럼 결국 우리가 졌단 거잖아.”

서윤이 종이컵을 구겼다.

지금을 스스로 쟁취한 게 아니라는 게 어쩐지 분했다.

“팔도 하나 잘렸다며. 젠장! 분해! 분하다고!”

구깃구깃 구긴 종이컵을 내던진 서윤이 목소리를 높였다.

화가 치밀었다.

프라이드 녀석에게도 화가 났지만, 자기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다.

그렇게 무력하게 당했다는 게 너무 분했다.

자신이 그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용주가 팔이 잘리는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았어도 됐을지 모르고.

‘팔은 잘린 게 아니긴 한데….’

엄밀히 따지면 팔은 잘린 게 아닌 자른 거였다.

뿌리내리는 고대의 재앙에 저항할 수단이 그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었으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그걸 굳이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으니까.

“잠깐만! 그 녀석이 윤현을 데려갔다면 윤현은 어딘가에 아직 있다는 뜻이잖아. 그럼 또 습격해 올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 녀석, 대놓고 널 노리고 있었잖아!”

불현듯 떠오른 불안감에 서윤이 외쳤다.

또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조사가 끝나면 길드에서 행동을 취할 거야.”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지가 목소리를 냈다.

“조사? 무슨 조사?”

서윤이 물었다.

“이번 사건의 경위와 팬텀에 대한 조사.”

“그런 게 나온대? 그럼 행동이란 건?”

“미끼로 쓸지도.”

거기에 돌아온 수지의 대답.

순간 흐른 적막감은 밤처럼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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