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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41화 (141/357)

141화

야수처럼 따라붙는 용주와 맞서는 프라이드.

그런 둘 사이를 갈라놓은 촉수는 손톱에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성가시구만.’

무기를 활로 바꾼 프라이드가 화살을 흩뿌렸다.

용주와의 전투는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을 정도의 쾌감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그런 쾌감의 맥을 끊는 저 촉수의 존재는.

하이하다기보다는 성가셨다.

“이봐, 수박 대가리. 그만 까불고 꺼지는 게 어떻겠냐? 죽여 버리기 전에.”

고대의 재앙을 겨눈 프라이드가 이야기했다.

“수박 대가리?”

“그래. 너 말이야. 이제 슬슬 귀찮거든. 뭐 새로운 것도 없고.”

바람을 가르는 붉은 혜성.

물결치며 일그러진 차원에 빨려 들어간 별똥별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

지면에 착지한 프라이드의 주변을 물결치기 시작한 차원.

좌우 하늘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나타나는 별똥별은 프라이드를 직격했다.

“크르르. 주제를 모르는 가여운 유희거리들은 벌써 수차례 만나 왔다. 암벽을 오르고 있는 주제에 자기 목숨이 자기한테 달렸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부류였지.”

뒤를 잇는 후속타.

“본인의 목숨은 그저 암벽의 유희거리에 불과하거늘.”

빗발치는 별똥별을 헤집고 나온 프라이드는 고대의 재앙에게 돌진했다.

“카각!”

그런 프라이드를 덮치는 용주.

등꼴이 오싹해지는 섬뜩함에 몸서리친 프라이드는 장창을 휘둘렀다.

끼이익!!

이빨과 창이 만들어 내는 기괴한 하모니.

창 하나를 사이에 놓고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다른 하나의 무기를 휘둘렀다.

흩뿌려지는 피.

‘아뿔싸.’

허벅지를 찢는 통증 속에 프라이드는 큰 실수를 했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미소가 굳어진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카운터 어택으로 들어간 칼날이 용주의 목 깊숙한 곳을 베며 지나가고 있었다.

다른 신경들은 물론이고, 이 깊이면 동맥도 무사할 리가 없었다.

‘내가 지금 쫀 거야? 이 프라이드 님이?!’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본능적으로 진심을 다해 휘둘렀다.

하지 않으면 죽을 거란 생각이 메아리쳤었다.

포식자를 눈앞에 둔 사냥감이 된 느낌이었다.

‘인정할 수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벌써 일어난 일에는 변함이 없었다.

상처 부위를 타고 나온 피는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뿜어져 나왔다.

길어봤자 수 분.

죽음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바로 그때.

“그것은 나의 유희이자, 나의 소유, 나의 양분이다.”

일렁거리며 차원을 뚫고 나온 고대의 재앙이 거대한 머리를 들이밀었다.

디디고 있던 바닥을 잃어버린 두 사람은 재앙이 만든 차원 아래로 추락했다.

“죽음을 허락하지 않겠다. 넌 내 것이다.”

재앙의 머리 위로 물결치는 차원.

아래로 떨어지던 두 사람은 그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입을 벌린 재앙은 순식간에 두 사람을 집어삼켜 버렸다.

“크르르. 즐겁구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유희는.”

잠잠해진 게이트 내부.

잠깐의 여유를 만끽한 고대의 재앙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공간과 생전 처음 맡아보는 공기.

이곳은 자신이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내가 세계라 생각했던 그곳 전부가 감옥이었단 생각마저 드는구나.”

극도의 만족감이 들었다.

더 큰 세상에서 느낄 더 큰 유희.

그 녀석을 찢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끝없는 분쟁과 갈등. 어느 세계, 어느 차원이든 그 절대 법칙은 유효한가 보군. 구원자도 영웅도 결국 다 똑같은 법이지.”

같은 공간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하나는 사슬에.

하나는 검에 붙들려 있는 상태였다.

두 사람의 존재는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꺼져가는 촛불 같은 녀석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기에 아예 배제해 두었었다.

“목표했던 것과 덤으로 유희로 삼은 것. 둘을 흡수하기까진 시간이 좀 있지. 이들 종에 대한 탐구를 하기엔 더없이 적합한 시간이겠어.”

같은 종이라 하기엔 개체 개개인이 가지는 특성이 상당히 또렷했다.

물고 찢는 것을 무기로 삼는 이가 있는 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도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네 사람의 모습 또한 전부 달랐다.

검은 털을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하얀 털을 가진 이도 있었고.

불에 탄 것처럼 까만 피부를 가진 자가 있는가 하면, 그완 정 반대되는 이도 있었다.

리자드맨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지점이었다.

“우선 거슬리는 것들부터 치워야겠지.”

윤현과 서윤.

두 사람에게 뻗은 촉수가 다리를 타고 올랐다.

고대의 재앙은 먼저 서윤을 꿰뚫은 검을 뽑아냈다.

약간의 저항은 있었지만, 뽑는 데 무리는 없었다.

“흥미롭군.”

뽑혀 나온 검은 스스로 소멸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날붙이에 관통당했다면, 그에 따른 상처가 남아 있는 게 보통이었다.

자신도, 리자드맨도, 먹어 치운 두 사람에게도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물리 법칙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상처가 관찰되지 않았다.

개인에 어떠한 것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검에 특수한 장치가 있던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임은 확실했다.

게다가 이자의 골격이나 신체구조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특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역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었다.

“이쪽은 좀 더 까다롭게 설계된 모양이군.”

서윤을 손쉽게 손에 넣은 고대의 재앙이었지만, 윤현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힘으로 끊어 내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 얇은 사슬 어디서 이런 강도가 나오는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팔다리와 머리를 모두 뽑아낸 뒤, 바깥에서 재결합하는 방법이 존재하긴 했지만, 딱히 선택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었다.

살아 있는 게 탐구에 더 유용하니 말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사슬을 휘감은 촉수에서 수백의 입이 나타났다.

잘근잘근 사슬을 씹기 시작하는 이빨들.

1초에 수십번씩 사슬을 씹은 이빨들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처음 이상이 생긴 건 그로부터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균열이 생긴 별의 사슬은 이내 어긋났고, 순식간에 풀어져 버렸다.

한 곳에서 시작된 이상은 전체에서 차례차례 일어났다.

두 사람의 속박을 무력화시킨 고대의 존재는 두 사람을 앞쪽으로 가져왔다.

막간의 유희를 즐길 시간이었다.

먼저 윤현을 들어 올린 고대의 재앙은 윤현의 손가락 발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렸다.

돌아온 건 완전한 무반응.

팔과 다리를 붙잡은 재앙은 이번엔 무릎과 팔목을 비틀었다.

인체구조상 굽어질 수 없는 방향으로의 꺾임이었다.

으드드득!

임계점에 달한 뼈에서 나선 안 되는 소리가 났다.

“윽…! 으아악!!!”

끔찍한 고통에 윤현은 비명을 내질렀고, 고대의 재앙은 그런 윤현의 모습을 담담하게 관찰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었나 보군.”

앞선 두 사람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이 종은 통증이란 걸 느끼지 못하는 건가? 라는 의문.

그도 그럴 게, 한 녀석은 자기 팔을 도려내고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움직였다.

다른 한쪽은 상처에 오히려 희열을 느끼며 미소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의식이 없던 상태에서 나온 이 반응이 오히려 무조건 반사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그렇다는 건 녀석도 고통을 느낀다는 거겠지.”

재앙이 윤현의 몸 곳곳에 날카로운 촉수를 쑤셔 넣었다.

비명을 내지르던 윤현의 의식은 다시 끊어졌다.

“위치에 따라 반응의 정도가 다르군. 급소라는 개념도 있다고 봐도 좋겠어.”

망가져 버린 윤현을 버린 재앙이 이번엔 서윤을 휘어 감았다.

“조금 더 음미해보도록 할까.”

서서히 서윤을 들어 올리는 재앙.

“뭐지?”

재앙의 움직임이 멈춘 건 바로 그때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자신의 안쪽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날카롭게 뻗어 나가는 검은 파동이 보였다.

시야가 삐딱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뒤틀림은 점점 더 커져 갔다.

불과 몇 초 만에 단층이 생긴 시야는 같은 상을 맺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아~ 완전 축축하고 끈적거리잖아. 이런 건 전혀 하이하지 않다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백발의 남성.

검붉은 빛을 내뿜는 바스타드소드 한 자루를 움켜쥔 프라이드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 피곤하게 만들고 있어. 이거 한 번 쓰려면 얼마나 기가 쪽쪽 빨리는지 알아?”

“어떻게….”

“어떻게는 뭔 어떻게야. 그보다 저거 네가 저렇게 만들었냐?”

프라이드가 윤현을 가리켰다.

널브러진 윤현의 모습은 뒤틀린 마리오네트 같았다.

“가만히 잘 놔두다가 왜 갑자기 건들고 지랄이야. 너 때문에 엔비한테 죽어라 까이게 생겼잖아. 그 아줌마 잔소리가 얼마나 심한지 네가 알기나 해?”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적인 프라이드는 재앙의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엄청난 양의 피가 화산처럼 솟구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거기엔.

“카각… 가가각!”

재앙을 찢고 나온 용주가 있었다.

“미친 듯이 뜯어먹더니만, 완전 괴물이 따로 없잖아.”

용주의 상처는 놀랍게도 거의 치유되어 있었다.

잘려 나간 왼팔이 재생되지 않았을 뿐, 그 외에 대부분의 상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용주의 팔과 다리.

손톱 외엔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팔과 다리가 붉게 변해 있었다.

단순히 피가 흐르거나 말라서 생긴 변화가 아니었다.

‘마나가 피를 기체화하고, 그걸 또 마나로 붙잡아 형태로 만든 건가?’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용주의 모습을 보자마자 든 이 생각이 확신처럼 다가왔다.

용주의 팔다리는 인간의 것이라기보단 사람을 먹는 포식자의 것처럼 보였다.

“카가칵!!”

재앙의 표피를 한 번 더 길게 찢어낸 용주는 힘껏 도약했다.

“크윽…! 크어억!”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는 고대의 재앙.

그의 모습이 사라져 갈수록 그가 뻗었던 촉수들도 하나씩 사라져 갔다.

빠르게 말라가는 빛의 호수.

찬란하게 빛나던 호수에 남은 건 한 뼘의 웅덩이와 촉수가 자라난 왼팔 하나뿐이었다.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입을 연 고대의 재앙이 악에 받쳐 외쳤다.

위압감 넘치던 그의 모습은 이제 넝쿨에 열린 호박처럼 초라했다.

“나는 재앙이다, 천 개의 입을 가진 포식자이자, 만 개의 유희를 즐긴 절대 질서다.”

지면에 착지한 용주는 서서히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기운 채 절뚝거리는 모습은 불편해 보이기는커녕 공포스러웠다.

“내 수는 전부 맞아떨어졌다. 모든 것은 나의 통제하에 있었으며, 나의 계략에 오점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재앙은 마지막 힘을 다해 촉수를 휘둘렀지만, 용주를 저지할 수는 없었다.

용주는 재앙의 마지막 한 조각을 먹어치웠다.

빛망울은 이제 없었다.

* * *

“너… 대체 정체가 뭐냐?”

재앙의 마지막을 지켜본 프라이드가 물었다.

“인간이긴 한 거냐?”

녀석과 상대하면 할수록 묻고 싶어졌던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헌터, 스킬, 마나.

보통의 인간은 할 수 없는 일도 이 세 가지 단어와 함께라면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묻고 싶었다.

눈앞에 있는 게 도저히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가가각.”

순식간에 달려든 용주는 프라이드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더 빨라졌잖아.’

재빠르게 반격에 나선 프라이드는 용주를 후려쳤다.

착지와 동시에 다시금 거리를 좁히는 용주.

지면을 긁으며 길게 미끄러지던 일순간 뛰어올랐고, 엄청난 거리를 도약하며 지면을 내리찍었다.

쿠와악!!

지면을 뚫고 폭발하는 엄청난 양의 피.

폭발에 말려든 프라이드는 저 멀리 내동댕이쳐졌다.

“위험한데.”

자리에서 일어난 프라이드가 얼굴을 짚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조금 전 한 방은 정타가 아니었음에도 피해가 상당했다.

하지만 프라이드가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진짜로 죽여 버리고 싶어졌어. 이 희열. 이 쾌락.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을 극한까지 느끼고 싶어져 버렸다고.”

그가 위험하다고 말한 건 바로 자기 자신.

미소 띤 프라이드의 얼굴에선 노골적인 광기와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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