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닉네임 좀비헌터-139화 (139/357)

139화

“이건 또 뭐야?”

서윤이 물었다.

윤현을 속박한 물건.

아무리 봐도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지 않은가.

“놈을 묶어둘 물건.”

윤현의 구속이 끝나자 용주의 팔에 감겨 있던 사슬이 사라져갔다.

방울방울 퍼지는 별빛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었다.

“아니! 그런 건 말 안 해도 알거든!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나는 건데?”

“다 나올 만한 구석이 있으니 가지고 있는 거 아니겠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그래.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긴 하지.”

서윤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출구는 알고 있는 거지?”

“아니.”

“뭐?! 장난하는 거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애초에 출구 같은 거 만들지도 않았으니까.”

가볍게 뛰어오른 용주는 미로의 벽을 디뎠다.

벽과 벽 사이를 번갈아 오간 용주는 벽 위에 올라가 있었다.

“뭐야. 그런 거면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지. 놀랐잖아.”

짧게 도약한 서윤이 벽을 디뎠다.

바로 그때.

쉬이이익!!

어디선가 불어온 날카로운 바람이 서윤의 귓가를 스쳤다.

‘뭐지?’

순간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서윤은 도약을 멈췄다.

그런 서윤의 눈앞에서 잘려 나가는 황금의 벽.

‘뭐야….’

비스듬하게 잘려 미끄러지는 벽은 앞에 있는 두 개가 전부가 아니었다.

미로 전체가 비스듬하게 잘려 쓰러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검은 검기에 의해.

사라지는 황금의 미궁.

반강제로 땅으로 끌려 내려 온 용주는 검기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윤현과 마찬가지로 역병 의사 가면을 쓰고 있는 한 사람이.

‘팬텀….’

피부가 저릿저릿 울렸다.

윤현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격이 달랐다.

이건 마치 A급 헌터인 형만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도 귀찮게 굴길래 한번 와 봤는데, 이거, 상황이 썩 재밌어 보이잖아?”

용주와 서윤.

그리고 윤현을 차례차례 바라본 사내가 이야기했다.

사내의 손에 들려 있던 칠흑의 검은 형태를 잃고 소멸하고 있었다.

“엔비가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는데, 완전 망가져 버린 것 같네. 키힛! 꽤 볼 만한 표정이 나올지도 모르겠어.”

윤현의 모습에 사내가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사냥꾼을 사냥감이 해치웠다라. 이건 사냥꾼이 한심한 걸까, 사냥감이 훌륭한 걸까? 키힛!”

삐딱하니 몸을 숙인 사내가 이야기했다.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사내에게선 위기감이나 긴장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까 그것도 그렇고, 저것도 그렇고, 꽤 신기한 짓을 하잖아?”

엄지손가락을 세운 사내가 윤현을 가리켰다.

윤현을 묶고 있는 사슬은 아직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팬텀. 역시 한 명이 아니었나 보네.”

적에게 검을 겨눈 서윤이 눈동자를 붉혔다.

적이 더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금방 만나게 될 줄이야.

‘안 좋은데….’

이쪽은 물론이고.

저 반대편까지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어떤지 보고만 오랬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하긴 그른 것 같은데? 손가락이 막 근질근질해.”

사내가 왼팔을 보였다.

사내의 팔엔 빛을 발하는 문신들이 있었다.

“트랜스 폼 - 모랄타크!”

사내가 영창을 외치자 한 자루의 검이 나타났다.

황금색과 붉은색이 적절하게 조화된 검이었다.

“검을 만들었어?!”

“제대로 발악하라고, 헌터들. 안 그러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거리를 좁힌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팡!!

울려 퍼지는 힘과 진동.

“큭…!”

사내와 검을 마주친 서윤의 발이 뒤로 밀려났다.

“블러디 러시!”

피어오르는 붉은 연기.

빠르고 난폭한 참격을 휘두른 서윤은 공격을 몰아쳤다.

“흠. 느낌은 있네. 근데 칼날 방향이 그게 맞아? 내가 조금만 밀치면 네 목이 도망갈 거 같은데.”

“네가 상관할 게 아니야.”

“아~ 그래?”

서윤의 모든 공격을 받아친 사내는 서윤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녀의 칼날은 사내를 목전에 두고 멈춰서 버렸다.

“그럼 좀 더 제대로 해 봐. 발악해 보라고! 날 흥분시켜 봐!”

“너 같은 놈 흥분시켜줄 맘 없거든?!”

“아~ 그래?”

서윤의 명치를 걷어찬 사내가 서윤을 퍼올렸다.

서윤보다 먼저 하늘을 밟은 사내.

서윤이 오길 기다리고 있던 사내는 그대로 서윤을 내리찍었다.

“큭!”

바닥에 내리꽂힌 서윤은 반동에 튕겼고, 사내는 그런 서윤의 위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펼쳐진 초록 가스 지대.

“키힛!”

일대를 부순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발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설 수 있겠냐?”

가스 지대의 경계선에 서윤을 내려놓은 용주가 물었다.

스팀팩을 사용해서야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당연하지. 너 근데 이거….”

“저 녀석, 윤현보다 훨씬 강하다. 조심….”

말을 중간에 끊은 용주는 칼날을 세웠다.

“너… 꽤 재밌어 보인다?”

순식간에 따라붙은 사내.

오른쪽으로 힘을 흘려보낸 용주는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사내의 힘을 역이용해 사내를 던지는 용주.

가스 지대로 사내를 던진 용주는 그대로 사내를 쫓았다.

“이 가스, 네가 만든 거지? 신기한데.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야.”

뒤로 반걸음을 물러난 사내가 가스를 스윽 훑었다.

“네 목적도 윤현과 같은 거냐?”

윤현의 목소리는 어렵지 않게 구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내는 아니었다.

이 사내의 목소리를 용주는 알고 있지 못했다.

“키힛! 글쎄. 잘 모르겠는걸”

“잘 모르겠다고?”

“녀석은 어떤지 내 알 바 아니지만, 난 그냥 지금 당장이 즐거우면 그만이거든. 너라면 날 즐겁게 해줄 거라는 예감이 들어. 지난번에 가지고 놀았던 녀석들은 영 심심했거든.”

“…….”

우측 허벅지를 노리는 액션을 취한 용주는 검 대신 손톱을 휘둘렀다.

놈의 왼쪽은 완전 무방비 상태.

확실한 찬스였다.

그런데.

“호오? 내 거랑은 다르면서도 약간 비슷하네.”

용주의 찬스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용주의 손톱이 멈춰선 곳은 사내가 불러낸 또 다른 무기 앞.

사내의 손엔 붉은 장창 한 자루가 쥐여 있었다.

“손톱을 무기로 삼는다라. 신박한데?”

용주의 자세를 역으로 무너뜨린 사내는 검을 휘둘렀다.

뒤로 물러난 용주의 팔등을 타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인스네어의 효과를 받고 있으면서 스팀팩의 속도를 따라왔다고?’

왼손으로 지면을 긁은 용주는 다시금 속도를 높였다.

인스네어의 효과가 분명 중첩되고 있을 텐데.

사내는 자신의 움직임을 정확히 따라오고 있었다.

팡!

바로 그때.

좌측에서 끼어든 또 한 자루의 검이 사내를 강타했다.

칼의 주인은 서윤.

용주의 피를 따라온 그녀는 적의 움직임도 예상하고 있었다.

“너는 뭐 더 없어? 숨겨둔 거 있으면 다 꺼내 보라고.”

서윤과 용주와 공격을 동시에 받아낸 사내가 두 사람을 튕겨 냈다.

동시에 땅을 디딘 두 사람.

가스 속에서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은 폭발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먼저 검을 휘두른 이는 용주.

적이 맞대응하는 순간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켜보던 용주는 두 검이 충돌하기 직전 점멸을 사용했다.

사내의 어깨를 꿰뚫은 용주의 검.

“킥!”

불의의 일격에 오히려 미소를 머금은 사내는 검을 고쳐 잡았다.

사내가 휘두른 검이 꽂힌 곳은 용주의 왼쪽 날갯죽지.

카운터 어택을 날린 사내는 몸을 살짝 좌측으로 틀었다.

‘칫!’

공격까지 딱 한 걸음만을 남겨두었던 서윤은 공격을 포기한 채 미끄러졌다.

그대로 검을 휘둘렀으면, 베이는 이는 용주였다.

“이렇게 나올 거란 건 몰랐나 보지?”

“너야말로.”

다섯 손가락을 쫙 펼친 용주는 사내를 올려 쳤다.

가슴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상처는 턱을 긁었고,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이 위로 날아갔다.

용주의 기습에 생긴 찰나의 틈.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서윤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맨손으로 칼등을 잡은 사내는 오히려 서윤을 던져 버렸다.

“끼햐~! 재밌네. 설마 여기서 이렇게 재미를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엔비한테 조금은 감사해야겠어.”

벗겨진 가면.

그 아래 감추고 있던 미소를 드러낸 사내가 백발을 쓸어 올렸다.

“답례로 나도 재밌는 것 하나 보여줄까?”

사내가 들고 있던 장창을 버렸다.

땅에 부딪힌 창은 그대로 자취를 감추었고, 용주의 어깨를 꿰뚫고 있던 검 역시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트랜스 폼 - 페일노트.”

사내의 손에 생겨나는 한 자루의 활.

붉은빛을 내뿜는 활은 불길한 기운을 쏟아내고 있었다.

활시위를 당긴 사내는 하늘을 향해 화살 한 발을 쏘아 올렸다.

평범한 화살이 아니었다.

조금 전 하늘로 쏘아 올려진 건 붉은 혜성이었다.

“머리 조심해. 좀 따끔할 테니까.”

폭죽처럼 터진 혜성.

초록빛 너머로 보이는 붉은빛을 올려다보던 용주는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슈웅~! 쾅!!

그와 동시에 떨어지기 시작한 수십, 수백의 별똥별.

긴 꼬리를 남기며 떨어진 폭격은 일대에 있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가스 지대.

발소리 없이 등 뒤로 파고든 서윤은 뒷목을 노렸다.

그리고.

“커흑…!”

그런 서윤의 목을 움켜쥐는 사내의 손.

한 손으로 서윤을 들어 올린 사내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갔다.

“뭐 더 새로운 거 없어?”

서윤의 공격을 막아선 사내가 고개를 기울였다.

허리를 비튼 서윤은 사내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서윤의 공격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사내의 얼굴엔 더 이상 미소가 남아있지 않았다.

“없나 보구나? 그럼 방해하지 말고 빠져. 흥 깨지 말고.”

사내가 서윤을 집어 던졌다.

톱날로 지면을 그으며 멈춰서는 서윤.

“빠지라면 좀 빠지라고.”

어떻게 해서든 다시 공격으로 전환하려던 서윤의 몸은 충격에 한 번 더 날아갔다.

“트랜스 폼 - 이페탐.”

벽에 부딪힌 서윤을 덮친 사내는 서윤의 가슴에 검 한 자루를 찔러 넣었다.

서윤은 어떻게 해서든 반격에 나서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검에 꿰뚫린 서윤의 눈빛은 급격하게 탁해졌고, 힘이 빠진 손은 더 이상 검을 쥐고 있지 못했다.

떨어지는 서윤의 검.

뒤로 돌아선 사내는 용주의 공격을 막아섰다.

“음~ 멋진 표정이네.”

용주와 눈이 마주친 사내가 씨익 웃어 보였다.

얼음같이 차갑고 냉정하던 용주의 눈빛에 타오르는 감정이 보였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이페탐은 사람을 먹는 검이거든.”

“사람을 먹어?”

“그렇게 안 보이지? 그렇지만 사실이야. 저 녀석, 조금씩 죽어 가고 있는 거라고.”

“…….”

“구할 생각이 있으면 빨리 구하는 게 좋을걸? 이페탐이 포식하기 전에 말이야.”

다시 한번 검과 창으로 무장한 사내는 거칠게 용주를 몰아붙였다.

그의 맹공에 용주는 오히려 서윤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전 실력을 끌어내! 동원할 수 있는 건 전부 동원하라고! 이 프라이드를! 최고로 하이하게 만들어 보란 말이야! 끼하하하핫!!”

광기를 뿜어내는 프라이드.

빈틈을 비집고 적중한 그의 발차기 한 방에 물수제비를 뜨며 날아간 용주는 이를 악물었다.

‘이 녀석… 역시 강해.’

힘에 차이란 게 느껴졌다.

정말 분하지만, 그게 팩트였다.

“끼~햐!!!”

용주를 내려찍는 프라이드의 일격.

점멸로 공수를 뒤바꾼 용주는 프라이드의 등에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로도 잘도 움직이네. 그래!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곧장 이어지는 프라이드의 반격.

창끝으로 용주의 종아리를 꿰뚫은 프라이드는 용주의 얼굴을 붙잡았다.

“더 해보라고! 더!”

용주를 찍어누른 프라이드는 그대로 지면에 용주의 뒤통수를 갈았다.

‘하는 수밖에 없어.’

부패하기 시작하는 용주의 입술.

최소한 인간을 상대로 사용하고 싶진 않았건만, 이제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 녀석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다.

“아야!”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프라이드가 용주를 내던졌다.

땅을 구르며 일어나는 용주.

프라이드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의 일부가 뜯겨나가 있었다.

“키햣! 하하하핫! 이게 뭐야? 설마 문 거야?! 물어서 이렇게 만든 거야?!”

폭소를 터트리는 프라이드.

‘동원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보는 수밖에.’

검을 왼손으로 넘긴 용주는 오른손으로 어깨의 상처를 짚었다.

용주의 손에는 ‘재앙의 씨앗’이 들려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