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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38화 (138/357)

138화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도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팔다리는 분명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베인 상처도 없었고, 통증도 없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팔다리를 움직일 모든 신경과 근육을 잘라냈다. 네 몸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

등을 보이고 있던 주원이 이야기했다.

어딘가 얼빠져 보이던 주원은 거기 없었다.

“뭐라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걱정하지 마라. 머리와 몸통의 신경은 남겨놨으니까. 고통과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죽음 같은 거, 너 같은 놈한텐 사치니까.”

주원이 천천히 다가왔다.

“죽여주마. 아주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넌 그렇게 죽어야 해.”

검을 뽑아 드는 주원.

그런 주원을 덮친 그림자는 주원을 뒤로 넘어뜨렸다.

“놔! 이거 놓으라고!”

“이성을 잡게. 자신을 잃지 말게.”

힘으로 주원을 억누르고 있는 금화가 이야기했다.

살의에 지배된 주원은 전혀 딴사람 같았다.

“죽여 버릴 거야! 절대 용서 못 해! 용서 못 한다고!”

격정적인 주원의 발버둥.

금화의 콧등을 들이받은 주원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금화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방해하지 마!”

“날 보게! 내 눈을 똑바로 보게나!”

“방해하지 말라고!”

“자넨 정말 이게 예나가 원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겐가?!!”

“……!”

주원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자네 속은 시원해질지 모르네. 하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네. 팬텀은 귀신처럼 우리 손을 빠져나가 다른 슬픔을 만들어낼 거라네. 자넨 정말 그걸 바라는가?”

“…금화 형”

분노의 색이 옅어진 주원의 눈동자가 예나를 향했다.

주원을 말리기 위해 달려오는 예나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이제 내 목소리가 닿는가 보구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금화가 주원을 놓아주었다.

“주원 오빠!”

미끄러지듯 달려온 예나가 주원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예나야. 정말 미안해.”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오빤 최선을 다했어. 이렇게 상처투성이인걸.”

“…….”

왼손을 얼굴로 가져간 주원이 두 눈을 가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예나는 주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려던 주원은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빠?”

“아… 괜찮아!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주원이 손을 저었다.

손가락이 자기들 멋대로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힘이 다했는지 제대로 힘이 전달되지도 않았다.

“뭘 한 건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주원의 몸 상태를 본 금화가 물었다.

주원이 한 일과 주원에게 일어난 일.

두 가지를 동시에 묻는 물음이었다.

“월영식 사…. 너무 위험하고, 잔인해서, 금지된 검술이에요. 사용해 본 적도 없고, 사용할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주원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 현상 역시도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존재 이외엔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사용할 수 있었느냔 말이다.

그때.

“크흐흣, 이런이런이런. 보자보자하니까 아예 투명인간 취급이잖아. 이거, 불쾌한걸?”

땅을 짚은 도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놀란 주원의 목소리.

“아~ 이거 말이야?”

입을 귀까지 찢으며 웃은 도준은 자신의 팔등을 보였다.

그의 척추를 뚫고 나왔던 가시들은 팔과 다리 전체에도 돋아나 있었다.

“움직이지 않길래 억지로 움직이고 있지. 감각이 없다는 감각은 참 적응하기 힘들지만 말이야.”

“그런 게 가능할 리가….”

“크흐흣! 그거 내가 했던 대사인 거 같은데? 컨닝하지 말라고, 형씨.”

기괴하게 꺾인 관절을 움직인 도준이 세 사람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가슴을 뚫고 칼날이 튀어나왔다.

“크윽!!”

칼날을 붙잡은 도준은 앞쪽으로 검을 뽑아냈다.

부서진 바닥을 구르고 있는 건 예나의 검이었다.

“마지막까지 아주 발버둥이구만. 쓰레기가. 그것도 이제 끝이야. 끝이라고.”

마지막을 위해 도준이 남은 힘을 끌어냈다.

그런데.

“으악! 으아아아!!!”

도준의 온몸을 덮고 있던 갑피 전체에 순식간에 균열이 생겼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왜 이러냐고!!”

순식간에 부풀기 시작한 도준의 몸.

갑피를 깨며 튀어나오는 살들은 점점 더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이게 뭐야! 뭐냐고!”

울려 퍼지는 도준의 절규.

“고, 고구마 아저씨?!”

“금화 형!!”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을 지켜보던 금화가 튀어 나갔다.

동그랗게 덩어리진 살점을 타고 오른 금화는 유일하게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도준의 얼굴을 마주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어떻게 하면 자넬 구할 수 있지?”

“몰라! 그딴 거 나도 모른다고! 뭔가 이상해! 잘못됐다고!”

“침착하게. 분명 원인이 있을 걸세. 생각하게나!”

“난 선택받았어! 그런 내가 왜 그딴 실패작 놈들처럼 되는 건데?!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살려줘! 살려줘!!!”

무한정 퍼져 나가던 살점의 흐름이 순식간에 역방향으로 빨려들었다.

이형 리액터로 빨려드는 살점들.

임계점을 넘어선 리액터는 흡수한 모든 것을 단번에 폭발시켰다.

흩뿌려지는 피와 살은 마치 해일처럼 공간 전체를 집어삼켰다.

* * *

“표정들이 아주 보기 좋네. 두렵겠지. 내가. 나의 이 힘이!”

윤현이 들어 올린 양손을 번갈아 보았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힘이 느껴졌다.

지금까지보다도 한층 더 강해진 자신의 힘이.

“한꺼번에 재워주마.”

윤현의 발밑에서 시작된 불길.

가닥가닥 갈라진 불길은 두 사람이 서 있던 대지를 휩쓸고 나갔다.

서로 다른 두 방향으로 흩어진 용주와 서윤은 동시에 거리를 좁혔다.

“폭발해라! 시라누이!”

서윤의 곁에 피어오르기 시작한 도깨비불.

폭발을 뚫고 나온 서윤이 검을 휘둘렀다.

연기처럼 나타난 카마이타치에 가로막힌 서윤의 칼날은 그녀를 향해 있었다.

“제대로 휘둘러도 모자랄 판에. 장난하는 거냐?”

“200% 진심이거든!”

붉게 물들어 있는 서윤의 눈동자.

“블러디 러시!”

서윤에게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붉은 연기는 곡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3차 시험 당시 홀로 이안에게 맞서면서도 사용했던 스킬.

위력이라면 자신 있었다.

“어디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고!”

다시 한번 화염을 내리찍은 서윤이 좌우로 검을 휘저었다.

난폭하고 과격한 참격에 찢겨 나가는 카마이타치.

서윤의 칼날을 따라온 검붉은 기운은 불길을 한 번 더 흩트렸다.

완전히 부서진 카마이타치.

검을 뒤로 길게 뺀 서윤은 그대로 앞으로 내질렀다.

“막아 버렸는걸?”

손바닥 앞에서 멈춰선 칼날.

서윤의 공격을 막아선 윤현은 면전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충격에 날아간 서윤은 바닥을 굴렀고, 그사이에 반대편에서 거리를 좁힌 용주는 검을 휘둘렀다.

맞부딪치는 칼날과 칼날.

좌우로 솟구쳐 오른 불길은 팽팽하게 이어지는 힘의 구도를 무너뜨리려 했다.

하지만.

용주의 수가 한발 빨랐다.

팽팽하던 칼날은 균형을 잃었고, 윤현의 시야에서 용주의 모습이 깜빡였다.

1초.

아니, 그 이하의 시간 동안 사라졌었던 용주는 윤현의 칼날을 지나쳐 있었다.

“아니?!”

놀란 윤현을 할퀴는 용주의 손톱.

가슴을 할퀴던 용주의 손톱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의도적으로 멈춘 게 아니었다.

뭔가에 걸린 듯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거였다.

“너 지금 그걸 공격이라고 한 거냐? 크핫! 크하하핫!”

상처를 타고 나오는 붉은 화염.

불길에 잠식된 손톱을 끊어 낸 용주는 검을 휘둘렀다.

아지랑이 피던 화염은 가시가 되어 용주의 몸을 꿰뚫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감이 오지 않냐? 아무리 기이한 짓이 벌이고 발버둥 쳐도 날 이길 수 없다는 게.”

서서히 용주를 들어 올리는 윤현의 화염.

“글쎄. 잘 모르겠는걸.”

인벤토리에서 꺼낸 병 하나를 꺼내 움켜쥔 용주는 윤현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산산이 부서지는 유리병.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강한 산성을 띠고 있는 모래 벌레의 타액이었다.

“으악!!”

외마디 괴성을 내지른 윤현이 용주를 패대기쳤다.

“뭐야?! 뭐냐고 이건?!”

고통에 몸서리치는 윤현.

통제를 잃어버린 불길은 마구잡이로 날뛰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긴 한가 보군.’

허리 반동을 이용해 몸을 일으킨 용주는 또 다른 아이템을 움켜쥐었다.

은하수가 흐르는 검은 칼날의 단검.

별의 비수였다.

손잡이를 잡은 용주의 손은 비수에서 흘러나온 검은 물질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이형 리액터를 향해 휘두른 용주의 공격은 그대로 리액터에 적중했다.

일그러지는 차원과 한 점으로 뒤틀리는 이형 리액터.

강렬한 스파크와 함께 일어난 폭발은 용주를 집어삼켰다.

“…….”

피부로 느껴지는 열기.

폭발의 진원지를 바라보던 서윤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폭발이라면 지금까지 몇 번이고 있었지만 저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열기의 중심에 있는 건 블랙홀 같은 검은 구체.

구체의 표면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플레어는 윤현이 만들었던 여덟 머리의 뱀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 * *

▷ ‘설녀의 수호부’가 소멸했습니다.

- 해당 피해를 무효로 합니다.

잦아드는 불길.

용주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가슴에 손을 올린 윤현은 고통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하나처럼 보이는 폭발은 실은 2가지가 동시에 일어난 결과물이었다.

하나는 별의 비수가 만들어낸 폭발.

다른 하나는 윤현의 몸에서 일어난 폭발.

그을린 피부와 사후 강직을 이용해 데미지를 줄여보려 했지만, 그것만 가지곤 온전하게 버텨낼 수 없었다.

‘덕분에 살았다.’

설녀가 준 수호부가 효과를 발동해준 덕분에 가장 치명적이었을 피해를 무효로 할 수 있었다.

앞뒤로 이어진 지속적인 피해까진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고통의 낙인은 이제 막 사라지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조금 전 그 막강했던 피해까지 모두 윤현에게도 되돌아갔다는 소리.

만약 그 불꽃이 윤현 본인까지 태운다고 가정하면, 그는 원래 입을 피해에 2배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셈이 된다.

“끄악! 끄아아아!!”

사방으로 화염을 뿜어내던 윤현은 동력을 잃은 듯 추락했다.

쓰러진 그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화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쓰러뜨린 거야?”

용주와 나란히 선 서윤이 물었다.

“일단은 그런 것 같은데.”

“죽은 건 아니겠지?”

물음을 던진 서윤은 곧장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윤현의 어깨가 호흡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뚜벅.

윤현에게 다가가려는 용주.

“야!”

용주의 어깨를 짚은 서윤이 그를 불렀다.

그녀의 눈동자는 그녀가 하려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문제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는 했으니.”

발걸음을 옮긴 용주는 윤현을 똑바로 눕혔다.

대자로 뻗은 윤현은 숨을 껄떡이고 있었다.

“생각 못 하고 있었는데, 혹시 반대편에 있는 녀석들도 위험에 빠진 거 아닐까? 게이트를 습격한 팬텀이 이놈 하나뿐이라곤 단정 지을 수 없잖아.”

“확실히….”

용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아니, 그편이 오히려 더 합리적인 추론 같았다.

“저쪽이랑 합류한다.”

빠르게 결단을 내린 용주가 이야기했다.

“합류하는 거까진 좋아. 근데 이 녀석은? 워커는?”

“일단은 이렇게 해볼 생각이다.”

더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통로를 바라본 용주는 황금률을 사용했다.

통로를 따라 생겨나는 십여 개의 황금 장벽.

더욱더 많은 골드를 투자한 용주는 검게 그을린 이곳 전체에 하나의 그림을 그렸다.

밑그림에 채워지는 황금.

두 사람이 있던 곳은 하나의 미로가 되어 있었다.

“이건….”

“워커가 공격 능력이 전무하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다. 설령 벽을 통과해도 이 미로라면 조금 더 시간을 벌 수 있겠지.”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전에도 본 적 있는 스킬이었는데, 또 놀라고 말았다.

“그럼 이 녀석은? 혼자 두는 건 극히 위험해 보이는데, 그렇다고 데려가는 건 더 위험해 보이고, 게이트 입구에 버려두는 것도 영 께름칙하고.”

선택지는 여러 개 있었지만 정답이라 할 만한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녀석은….”

인벤토리를 연 용주는 하나의 아이템을 활성화했다.

하늘의 사슬.

용주의 손목을 감싼 별의 사슬은 다섯 가닥으로 뻗어 나가며 용주의 손가락을 감쌌다.

사슬을 따라 흐르는 다섯 개의 은하수.

왼손을 뻗은 용주는 윤현을 가리켰다.

별의 사슬은 윤현의 팔과 다리.

목과 허리, 가슴 등을 완벽하게 결박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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