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빠악!!
면상을 정통으로 가격당한 윤현의 몸이 뒤쪽으로 날아갔다.
“크으윽!! 넌 뭔데 갑자기 발광하고 지랄이야?! 먼저 뒤지고 싶어?!”
분노에 일그러진 윤현의 목소리.
그 끝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서윤이었다.
“한 방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 맷집은 있나 보네?”
서윤이 휘둘렀던 오른 다리를 내려놓았다.
“뭐라고?!”
“너무 오래 망설이고 있었어. 너무 오래 고민했고, 너무 오래 방관했어. 그러니 이제 그만할래.”
허리춤을 짚은 서윤이 용주를 바라보았다.
“죽일 생각이었지?”
“…….”
“죽일 필요 없어. 녀석이랑 똑같은 쓰레기가 될 필요는 없다고.”
서윤이 쏘아붙였다.
“제압하는 거야. 녀석에 대한 것도, 팬텀에 대한 것도, 힘의 흡수에 대한 것도 다 그 후에 하나씩 알아내면 되는 거라고.”
칼날을 옆으로 뻗은 서윤이 용주의 앞을 가로막았다.
“널 살인자로 만들진 않을 거야. 너 혼자 다 감당하게 두진 않을 거라고. 파트너니까.”
서윤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파트너? 키힛! 아주 지랄들 나셨구만.”
비틀거린 윤현이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날 제압해? 헛소리 마. 이 세상에 날 제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난 무적이야! 난 최강이라고! 너희 따위가 감히 손댈 수 있는 몸이 아니란 말이다!”
가슴을 움켜쥔 윤현이 윗도리를 잡아 뜯었다.
“…….”
“저게 뭐야.”
서윤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윤현의 가슴 중앙에 뭔가 있었다.
동그란 코어처럼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이하고 이상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코어 주변에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사람의 힘줄처럼도 보였지만.
그것보단 코어에서부터 피부 아래로 뻗어 나간 촉수 같다고 보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았다.
“내겐 힘이 있어. 이 이형 리액터야말로 나의 힘! 나의 분노! 나의 갈망!”
리액터에 올린 윤현의 손에 검은 불길이 일렁거렸다.
“힘…! 더 큰 힘이 필요해!! 모든 걸 잃어도 좋아! 모든 걸 희생해도 좋아! 힘을 내놔! 녀석들을 짓밟을 힘을!!”
순식간에 몸 전체로 뻗어 나가는 꿈틀거림.
피어오른 검은 화염은 윤현의 몸 전체를 집어삼켰다.
“크하하핫! 그래.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기괴하게 뒤틀린 윤현의 목소리.
불길 밖으로 걸어 나오는 윤현의 모습에 용주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의 몸 전체가 검게 불타 있었다.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은 몸 전체로 뻗어 나갔고, 그 사이로 붉은 화염이 용암처럼 흐르고 있었다.
두 눈에선 불꽃 같은 안광이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 느낌은 대체….’
피부로 느껴지는 녀석의 기운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 * *
“이블 스트라이커!”
작렬하는 도준의 손톱.
손톱을 뒤따라온 붉은 파동은 두 사람을 날려 버렸다.
“이봐이봐이봐. 좀 더 열심히들 해보라고. 그래서야 날 제압할 수 있겠어?”
주원의 뒷덜미를 잡은 도준은 그대로 주원을 내다 꽂았다.
“큭!”
충격의 순간 두 다리를 뻗은 주원은 도준의 눈을 올려 찼다.
그 순간 도준의 뒤를 덮친 날카로운 그림자.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한 도준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뒤로 물러났다.
도준을 노렸던 건 다름 아닌 예나의 검.
워커를 정리한 예나는 도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꼬마 아가씨가 오히려 제일 날카로운걸?”
예나을 본 도준이 피식 웃어 보였다.
방금 그 칼날.
확실하게 찔러 넣을 생각이었다.
“신기한 검이네. 그것도 스킬이야?”
“어린애라고 얕봤다가는 큰코다칠 거예요. 나도 헌터니까.”
“아이고, 이거 무서워서 어쩌나? 오늘 밤엔 엄마랑 같이 자야겠네.”
“아니요. 그렇겐 못 할 거예요.”
“응?”
“오늘 밤에 아저씨가 있을 곳은 집이 아닐 테니까요!”
죽은 듯 멈춰 있던 예나의 검이 순식간에 도준을 덮쳤다.
“킥!”
날카로운 이빨로 칼날을 씹은 도준.
그런 도준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떨어졌다.
충돌하는 금화와 도준의 힘.
균열이 가며 깨진 땅은 움푹 내려앉았다.
‘무슨 치악력이 이렇게 세?’
예나는 몇 번이고 검을 빼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도무지 검을 빼낼 수가 없었다.
스으윽!
그런 예나의 귀를 스치는 불길한 소리.
“버티!”
또 하나의 워커를 발견한 예나는 곧장 명령을 내렸다.
낚아챈 워커를 좀 더 먼 곳으로 데려가는 버티.
검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여기서 워커를 처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버티, 잠깐만!”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졌던 예나가 급하게 버티를 멈춰 세웠다.
‘만약 저 폭발을 적중시킬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폭발이라면 분명 치명적인 한 방이 되어줄 것 같았다.
문제는 폭발이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
엄청난 힘과 반응 속도를 자랑하는 적에게 이걸 적중시키려면 그만큼 가까운 곳에서 터트려야 했다.
확실하게 맞추기 위해선 터트린 사람 역시도 폭발에 휘말리게 될 테지.
수를 들키지 않고 그걸 실행할 수 있는 방법.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긴 했다.
“있잖아, 버티….”
버티의 이름을 부른 예나가 입을 앙다물었다.
5초간 이어지는 침묵.
두 손을 움켜쥔 예나의 눈동자에 힘이 실렸다.
“괜찮은가?”
“아야야얏…. 네 덕분에 살았어요.”
주원이 왼쪽 어깨를 짚었다.
흘러내린 피가 손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금화 형은요? 방금 그거….”
주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금화의 머리를 지켜주던 투구는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네.”
금화의 이마를 타고 흐른 핏줄기가 오른 눈을 타고 내렸다.
“흐음~ 멋진 반응 속도들이었어, 형씨들. 결과가 어찌 됐든 박수를 보내준다고.”
여전히 예나의 검을 물고 있는 도준이 박수를 쳤다.
“인정할게. 형씨들은 강해. 이 정도 멤버만이 살아남았다면, 거기서 내가 탈락하지 않았어도, 끝까지 가진 못했을 거야.”
도준의 머릿속에 헌터 시험 당일이 떠올랐다.
그 많던 사람 중 살아남은 이가 여기 있는 다섯.
그 당시의 자신을 기준으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들에게 한참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형씨들이 약한 게 아니야. 내가 너무 강한 거지. 이 힘! A급 헌터를 잡으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지!”
그런 그들조차 지금의 자신에게 미치지 못했다.
자신은.
강했다.
“나도 충분히 즐겼으니. 그럼 슬슬 하나씩 정리해 보실까나? 우리 후임님보다 늦게 끝내면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말이야.”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도준의 피부 갑피가 더 날카로운 모습으로 자라났다.
“걱정하지 마. 꼭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네 발로 땅을 짚은 도준은 마지막을 준비했다.
가장 먼저 처리할 건 금화.
가장 위협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두 사람을 실질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자였다.
‘엔비 님께서 그렇게 하면 된다고 하셨었지.’
헌터의 힘을 흡수하는 것.
그를 위해선 우선 헌터를 약화시켜 둘 필요가 있었다.
체력적으로도, MP적으로도 말이다.
조건은 충분히 만족되었다.
이제 남은 건 놈들을 꿰뚫는 것.
그리고.
이 이형 리액터의 힘으로 녀석들의 힘을 결정화시켜 뽑아내는 것.
“그 전에….”
갑작스럽게 튀어 오른 도준이 무언가를 찍어 눌렀다.
도준의 발톱에 찢기고 있는 건 거대한 곰 인형.
버티의 팔다리를 완벽하게 제압한 도준은 예나의 검으로 버티의 목을 꿰뚫었다.
“내가 얻은 힘이 이딴 허접한 게 아니라 참 다행이야. 참 애들 장난도 아니고.”
도준의 키득거림에 주원이 이를 갈았다.
버티를 저렇게 만든 것도 모자라 예나를 비웃다니.
“허접한 거?! 웃기지 마! 버티는…!”
“주원 오빠!”
분노로 뛰쳐나가던 주원의 귀에 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마주친 두 사람의 시선.
이를 앙다문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스으윽!
미끄러지며 멈춰서는 주원.
“버티!”
예나의 부름에 버티는 입안에 넣어둔 무언가를 아그작 씹었다.
버티의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하얀 연기.
“음?”
의문을 표한 도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콰아앙!!!
삽시간에 폭발한 냉기가 도준을 집어삼켰다.
찢긴 버티의 몸 사이론.
워커의 모습 일부가 보였다.
“이게 대체….”
주원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금 그 폭발은….
“그래…. 그랬었군.”
주원에게 다가온 금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니요? 대체 뭐가.”
“버티의 몸속에 워커를 숨겨뒀던 걸세. 놈이 만드는 폭발을 이용하기 위해서.”
“몸속에 워커를…. 잠깐만요! 그랬다간 버티가…!”
“제일 고민하고 괴로웠을 이는 곰 아가씨 본인이었을 거라네. 그리고 이게 헌터로서 곰 아가씨가 내린 결정인 거지.”
“…….”
주원이 예나를 바라보았다.
예나의 눈은 굳건했지만, 그녀의 뺨을 타곤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예나야….”
주원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월영식만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거다.
‘내가 조금만 더 제대로 된 녀석이었다면….’
스스로가 미웠다.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들이 모든 걸 내던지는 동안에.
자신은.
아니, 자신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의 자신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서서히 걷혀 가는 하얀 연기.
굳은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던 예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실루엣이 보였다.
너무나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서 있는 괴물의 실루엣이.
“으아아~ 이건 놀랐어. 아주. 아주아주 아팠다고.”
두 다리로 땅을 짚은 도준이 비틀거렸다.
도준의 발밑에는 갈기갈기 찢긴 곰 인형이 있었다.
“칭찬은 해줄게. 쓰레기 같은 스킬로 이 몸에 이 정도 상처를 입히다니 말이야.”
바스러지며 떨어지는 도준의 갑피.
“그래 봤자 쓰레기는 쓰레기. 네가 버린 쓰레기니 책임지고 쓰레기통에 잘 버리라고.”
폭발에 정통으로 직격당한 도준은 곰 인형의 머리를 걷어찼다.
예나의 앞에 떨어진 곰인형의 머리.
예나의 죽은 눈동자는 버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으아아! 으아아아!!!”
주원의 괴성이 공간 전체를 채웠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든 주원.
“역날검은 그만두기로 한 거야, 형씨?”
참격을 팔등으로 받아낸 도준이 물었다.
주원의 칼날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사과해!”
“응? 뭐라고?”
“사과하라고! 예나한테, 버티한테 당장 사과해!!”
분노로 물들 주원의 칼날이 반짝였다.
몰아치는 주원의 공격에선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사과? 흠.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주원의 손목을 낚아챈 도준이 그대로 주원을 할퀴었다.
흩뿌려지는 피.
고통 따위는 잊은 주원의 살기는 계속해서 도준을 쫓았다.
“쓰레기한테 사과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말이야.”
노골적인 도준의 비웃음.
으드득!
분노로 가득 찬 주원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핑 하고 끊어졌다.
“죽여 버리겠어.”
차갑게 중얼거리는 주원의 한마디.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금화는 주원을 제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주원이 한 발 더 빨랐다.
“월영식 - 사(死) : 참월.”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주원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서로 다른 여덟 방향에 동시에 모습을 보였던 주원의 실루엣은 하나 빼고 전부 사라지고 있었다.
두 눈으로 주원을 찾던 도준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반응했다.
“뭐 엄청난 게 나오나 싶더니만, 뭐야? 지금 뭐 하긴 한 거야?”
주원의 모습을 확인한 도준이 콧방귀를 뀌었다.
칼은 칼집에 있었고, 베인 것 같은 느낌도, 흔적도 없었다.
“그럼 이번엔 내 차례지?”
네 발로 땅을 짚은 도준이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어?!”
출발과 동시에 도준의 얼굴에 지면에 쓸렸다.
‘뭐지?’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뭔가에 걸리거나 삐끗한 것도 아니었다.
‘힘을 너무 많이 쓴 건가? 하긴 이 정도로 본격적으로 날뛰어본 적은 없으니. 어쩌면 몸에 무리가 간 걸지도 몰라.’
가장 그럴듯한 추론을 떠올린 도준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걸 넘어 어떤 감각도 전해지지 않았다.
마치 붙어 있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