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휘우~ 이거 놀라운데. 이것도 막아 냈단 말이야?”
도준이 휘파람을 불었다.
“헌터들의 힘을 회수한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금화가 미간을 좁혔다.
“이해해, 형씨. 이해할 수 없겠지. 그게 바로 팬텀이거든.”
도준의 오른손이 금화의 옆구리를 노렸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은 금화는 힘으로 공격을 저지했다.
“걱정하지 마. 별로 아프진 않댔으니까. 엔비 님의 말씀이니 믿어도 돼.”
허리를 비튼 도준이 금화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일그러지는 철 미늘 소리와 함께 지면에서 떨어진 금화의 두 다리.
왼손에 힘을 준 금화는 역으로 도준을 잡아당겼다.
공중으로 강제로 끌어 올려진 도준.
금화의 완벽한 카운터 어택에 도준의 자세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빠드득!
금화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이라면 완벽하게 벨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언노운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건 살아 있는 인간.
이자를 죽인다는 건 곧 살인을 한다는 거였다.
콰앙!
두 사람이 일으킨 충격이 다시 한번 지면을 강타했다.
흩날리는 얼음 결정들 사이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
왼손으로 도준의 목을 잡은 금화는 무릎으로 명치를 짓눌렀다.
“힘이란 걸 빼앗기면… 어떻게 되지?”
“완벽한 찬스지 않았어, 형씨?”
이를 드러낸 도준이 씨익 웃어 보였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게. 힘을 빼앗긴 자는 어떻게 되나?”
“엔비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속에 장기를 뽑는 거나 마찬가지랬지.”
“장기?”
“그렇다니까. 펄떡펄떡 뛰는 장기를 그대로…. 그게 어느 장기인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지 않겠어?”
“…….”
굳은 표정의 금화가 무릎을 내리찍었다.
명치에서 난 소리는 사람에게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자네에 대한 추궁과 처분은 길드에 위임할 거네.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투항하게.”
“투항? 흠… 그건 좀 곤란한데. 그런 명령은 못 받아서 말이야.”
“그 엔비란 사람에게서?”
“빙고.”
순식간에 금화의 목을 휘감는 도준의 꼬리.
목이 졸린 금화는 바닥에 내쳐지고, 또 내쳐졌다.
쿠웅!!
지면을 때리는 거대한 충격.
두 발로 땅을 디딘 금화는 허릿심만으로 모든 힘에 저항했다.
중심을 다시 세운 금화.
산 낙지의 빨판을 떼어내듯, 도준의 꼬리를 떼어낸 금화는 그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작렬하는 자이언트 스윙.
도준이 처박힌 얼음벽엔 그와 똑같은 모습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흠… 아프잖아. 역시 그 시험을 통과한 녀석은 다르단 건가.”
얼음벽을 짚고 나온 도준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렇지만 그 정도론 부족해, 형씨. 그 정도론 날 막을 수 없다고.”
“…….”
“내가 보고 있는 건 훨씬 더 위쪽. 내게 굴욕을 안겨줬던 샐러맨더가 내 목표거든. 그런 내가 E급 출신인 형씨에게 당할 리가 없지.”
도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오로라.
“스핀커터!”
그의 척추를 뚫고 나온 날카로운 가시들은 그의 모습을 한층 기괴하게 만들었다.
‘샐러맨더라고?’
몸을 동그랗게 마는 도준.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그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금화가 눈썹을 기울였다.
샐러맨더.
그건 A급 헌터인 박형만 헌터를 상징하는 이명이었다.
쿠콰과광!!
갈려 나가는 대지.
회전하는 도준의 돌진은 일직선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갈아엎기 시작했다.
가로로 대검을 누인 금화는 검면에 왼손을 올려놓았다.
한 손으론 그의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흐아압!!”
바로 그때.
우렁찬 기합이 울려 퍼졌다.
긴 침묵을 깬 주원은 도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단번에 검을 휘둘렀다.
주원의 난입에 생긴 찰나의 틈.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금화는 힘의 방향을 뒤틀었다.
천장으로 발사된 도준은 네발로 천장에 붙어 있었다.
“그래. 그런 거였군.”
주원의 검을 살피던 도준이 미소 지었다.
베이는 순간 의아함이 들었었다.
그건 베이는 감촉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의아함에 대한 정답이 저기 있었다.
역날검.
주원의 칼날은 안쪽을 향해 있었다.
“주원 오빠?!”
놀란 예나가 주원에게 다가오려 했다.
“오지 마. 예나까지 나설 필요 없어.”
손을 뻗은 주원이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금화 형 말대로 제압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주원이 왼손을 가슴에 올렸다.
머리는 그렇게 이해했지만, 가슴은 그렇지 않았다.
호흡과 심장박동이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월영식은 사용할 수 없었다.
“괜찮겠나?”
“금화 형만 짐을 지게 할 순 없죠. 거들게요.”
금화와 나란히 선 주원이 각오를 다졌다.
“듣자 하니, 팀 H의 전원은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헌터들이라지.”
거꾸로 뒤집힌 채 세 사람을 내려다보던 도준이 이야기했다.
“그럼 내가 가져갈 힘은 3개. 콧대 높은 후임님께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보다 아래란 소리네. 나쁘지 않은걸?”
천장 깊이 손톱을 찔러 넣은 도준이 그대로 천장을 뜯어냈다.
드리워진 얼음을 조각낸 주원과 금화.
뒤엉켜진 세 사람의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떡해야….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세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던 예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예나의 검은 멈춰선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도와야 한다고 머리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화도, 주원도 오지 말라고 했다.
게다가 두 사람을 상대로 손톱을 휘두르고 있는 저 괴물은 사람.
사람에게 검을 겨눠야 한다니….
그런 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승우 오빠….’
버티를 끌어안은 예나의 팔이 바르르 떨렸다.
이럴 때 집사가 옆에 있었으면….
뚜벅.
스으으윽…!
입술을 깨문 예나의 눈동자가 어떤 소리에 반응했다.
게이트에 안쪽에서 뭔가 기어오고 있었다.
‘워커?!’
한 손으로 땅을 기는 언노운.
저건 분명 아까 봤던 것과 같은 종류의 녀석이었다.
‘역시 아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단 거네?’
콰앙!!
워커를 향했던 예나의 시선이 다시 급하게 뒤쪽을 향했다.
뒤로 굴러 공격을 피해 낸 주원은 곧장 반격을 이어 가고 있었다.
‘어떡해야….’
앞뒤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긴박한 상황들.
정처 없이 떠도는 예나의 눈동자.
‘아니야….’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예나가 자신의 뺨을 때렸다.
‘헌터잖아. 나도. 헌터잖아.’
“버티!”
예나의 부름에 버티의 모습이 변화했다.
“워커는 제가 처리할게요! 저쪽은 신경 쓰지 마세요! 가자!”
마른침을 삼킨 예나가 두 사람을 등졌다.
지금 해야 할 건 여기 서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
* * *
‘워커는 일단 처리했어.’
폭발 범위를 빠져나온 서윤이 길게 미끄러졌다.
얼음 때문에 거리 계산에 약간의 착오가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다.
용주와 윤현의 전투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아직도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언노운에 의해 어떤 환각에 빠지기라도 한 건지까지도 의심했었지만, 그것 역시도 모든 걸 설명할 순 없었다.
“희생해라! 카마이타치!”
용주의 검을 막아선 검은 불꽃.
족제비의 모습을 한 불꽃은 이윽고 용주를 날려 버렸다.
“찢어 뭉개라. 쿠단!”
몰아치는 윤현의 스킬.
용주를 덮친 인간 얼굴의 소는 성난 파도처럼 날뛰었다.
‘진각성이라도 한 거야?’
윤현의 실력이라면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다.
저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몰랐을 리가 없었다.
윤현은 헌터이기 이전에 톱을 달리는 연예인이었다.
부라면 차고 넘칠 정도로 있었을 터이니, 스킬을 얻는 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단순히 스킬이 생기고 말고의 영역을 떠나서 윤현의 전투력 자체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화염을 뚫고 나온 용주의 손에서 초록빛의 구체가 떨어졌다.
동그랗게 펼쳐지는 인스네어.
“이건 또 뭐야?”
갑작스러운 변화에 윤현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는 사이 시야의 틈을 비집은 용주는 윤현의 뒤를 잡았다.
윤현의 시야는 전혀 용주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돌발적으로 만들어 낸 완벽한 기회.
용주는 윤현의 날갯죽지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그래. 비겁한 너에겐 딱 어울리는 수긴 하네.”
용주의 손톱을 막아서는 검은 불꽃.
족제비의 모습을 갖춘 불꽃이 용주를 보며 키득거렸다.
“스킬인지, 도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이건 몰랐을걸?”
족제비와 똑같은 얼굴로 키득거린 윤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카마이타치가 아직 발동 중이라는 거.”
넝쿨처럼 손톱을 타고 오른 불꽃이 용주의 왼손을 불살랐다.
“피차 마찬가지지.”
그때.
불길에 타들어 가던 용주의 왼손에 한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용주의 손목에 나타난 붉은 성흔.
성흔에서 피어오른 붉은 불길은 순식간에 윤현의 불길을 몰아냈다.
‘불꽃?!’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윤현은 몸을 움직였다.
아슬아슬하겠지만, 그래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뭐야?!’
뭔가 이상했다.
생각과 움직임 사이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뭐랄까.
몸이 느려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고통의 낙인!’
타오르는 붉은 손톱.
카마이타치의 가드를 무너뜨린 용주는 그대로 윤현을 할퀴었다.
윤현에게 흘러들어 간 용주의 불길은 성흔이 되었다.
“너 이 자식!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폭발과 함께 인스네어의 범위를 빠져나간 윤현이 외쳤다.
녀석에게 찢긴 상처가 타들어 가는 듯 고통스러웠다.
“글쎄…. 이쪽의 수를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지.”
용주가 자신의 손등을 힐끔 바라보았다.
성흔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불길은 더 이상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또… 또. 또. 또!! 감히 내 몸에 또 손을 댔겠다!”
상처 부위를 짚은 윤현이 악에 받쳐 외쳤다.
“그 정도로 불탔잖아. 그런데도 어떻게 아직 그렇게 움직일 수 있지?!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어! 너 대체 정체가 뭐냐?!”
“…좀비 헌터. 너도 알고 있잖아?”
“너 이 자식!”
비웃는 듯한 그의 말투에 윤현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의 가슴 정중앙에서부터 뻗어 나간 불길은 그의 칼날에 집중되었다.
“재워주마! 네 그 잘난 힘도, 너도!!”
왼손을 앞으로 뻗은 윤현이 검지와 중지 손가락 사이에 용주를 두었다.
아지랑이 피는 화염 사이론 오로지 용주의 모습만이 보였다.
“무로 되돌려라! 야마타노 오로치!”
내지르는 윤현의 칼날.
그의 칼날에서 치솟은 거대한 불길은 머리가 여덟 달린 뱀의 형상이 되었다.
탈출구는 없었다.
“이용주….”
서윤의 팔이 스르르 내려갔다.
조금 전 윤현이 사용한 스킬은 방파제를 덮치는 해일과 같았다.
윤현이 지금껏 사용했던 어떤 스킬과도 격이 달랐다.
순간, 무력감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뭐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니야. 녀석이 당했을 리가 없잖아.’
마른침을 삼킨 서윤이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크아악!! 끄아아악!!!”
순간, 울려 퍼진 끔찍한 비명이 서윤의 다리를 붙잡았다.
놀란 서윤의 눈동자가 소리를 좇았다.
용주의 비명이 아니었다.
이건….
윤현의 비명이었다.
“X발! 뭔데?! 아파! 아프다고! 끄아악!”
앞으로 꼬꾸라진 윤현은 바닥을 굴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고통만은 진짜였다.
아프다는 말만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생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고통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맷집은 이쪽이 좀 더 우위에 있는 모양이네. 안 그래?”
검은 불길의 잔해를 뚜벅뚜벅 걸어 나온 용주가 이야기했다.
이쪽이라고 타격을 입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약간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용주도 윤현과 같은 고통을 공유했다.
하지만 용주의 포커페이스는 무너지지 않았다.
꼭 베고 찔러야만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심리적으로 적을 몰아세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검.
이건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용주의 또 하나의 무기였다.
“너 이 자식…!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간신히 몸을 일으킨 윤현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글쎄. 내가 기억하는 헌터 윤현이라면 그 정돈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은데.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었으니까.”
“뭐라고?! 너 이 자식…!”
분노를 표하던 윤현의 눈동자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뭔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