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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35화 (135/357)

135화

“왜, 왜 갑자기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흠칫 놀란 서윤이 반걸음 물러섰다.

검지를 세운 용주는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쉿?’

용주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한 서윤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도 그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소리가 무엇인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그때.

‘이건….’

아주 작고 희미했지만, 조금 전에 분명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그렇게 들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소리의 진원지는 뒤쪽.

자신들이 걸어온 방향이었다.

‘왜 저쪽에서 발소리가….’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했다.

저 방향에서 아까 봤던 워커가 온다는 것도.

헤어졌던 다른 세 사람의 발소리란 것도.

여기 자신들 외에 다른 헌터가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뭐지? 거기 누구야?”

서윤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가능성 중엔 그나마 세 사람 중 누군가일 거란 추측이 가장 그럴듯했다.

하지만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검을 고쳐잡은 용주는 서윤과 나란히 섰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발소리의 주인이 마침내 두 사람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건…… 사람?”

서윤이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형태로 봐서는 분명 사람처럼 보였다.

세 사람은 아니었다.

저 앞에 있는 사람은 역병 의사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멈춰! 너 누구야? 그 가면은 뭐고? 여기 우리 말고 다른 헌터가 온단 말은 들은 적 없는데?”

서윤이 외쳤다.

언노운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조금은 안심이 되긴 했지만, 이상한 건 이상한 거였다.

“행운의 여신까지도 내게 미소를 지어주는군.”

차분한 발걸음을 계속한 사내가 이야기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렇게 최고의 선택지를 골라주다니 말이야.”

사내에게서 피어오른 검은 화염이 거대한 화륜을 그렸다.

‘스킬?’

회전하면 회전할수록 커져 가는 화륜.

최대 크기로 커진 화륜은 찢어지며 강렬한 화염을 흩뿌렸다.

쏟아지는 회염을 피해 물러난 두 사람.

‘이 목소리는….’

사내의 목소리를 들은 용주는 미간을 좁혔다.

가면에 한 번 가로막혀 소리에 왜곡이 있었지만, 이 목소리 분명 들은 적 있는 목소리였다.

‘착각이 아니라면 이건 그 녀석의….’

그렇지만 이상했다.

녀석은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녀석이 C급 게이트에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면 녀석은….

“뭐야? 지금 뭐 하자는 건데, 너?!”

일자로 손을 뻗은 서윤이 강하게 항의했다.

피하지 않았다면, 분명 화염에 휘말렸을 것이다.

“뭐긴? 가벼운 인사였지. 둘 다 얼굴색이 좋은 걸 보니 아주 잘 먹고, 잘 지냈나 보네.”

삐딱하게 선 사내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내가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안에 말이야.”

“뭐?!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해 불가거든?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래도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 내가 손쓰기도 전에 언노운들한테 갈기갈기 찢겼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한 보람이 없잖아!”

검을 뽑아 든 사내가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사내의 살기에 반응한 용주는 곧장 검을 맞받아쳤다.

이 녀석.

진심이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변했군. 무슨 생각인 거냐… 윤현?”

‘윤현이라고?!’

용주의 한마디에 서윤의 눈동자가 반응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체격도, 목소리도 그 녀석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보였다.

그렇지만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녀석이 왜 여기에.

게다가 저 스킬은.

무엇보다 헌터인 그가 카오스 게이트에서 헌터인 자신들을 공격하다니.

말이 안 되지 않은가.

“흐음~ 바로 알아맞히다니. 과연 이용주. 눈썰미가 좋군.”

서너 번의 참격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거리가 조금 벌어졌다.

거리를 벌린 윤현은 가면에 손을 가져갔다.

윤현의 손이 닿은 가면은.

절단면을 따라 비스듬히 흘러내렸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반쪽의 가면을 벗어 던진 윤현이 머리를 털었다.

그의 눈빛에선 살기가 느껴졌다.

“윤현!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아는 거야?!”

윤현의 얼굴을 확인한 서윤이 외쳤다.

“뭐가 말이지? C급 게이트에 진입한 거? 아니면 헌터가 헌터를 공격한 거?”

“…자각은 있는 모양이네.”

“물론.”

“어떤 구멍을 만들어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 그냥 넘어갈 순 없을 거야. 그렇게 두진 않을 거라고.”

“크흐흐. 빠져나갈 구멍? 그딴 게 왜 필요하지?”

이마를 짚은 윤현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뭐?!”

“헌터? 길드의 규칙? 그런 건 지금의 나랑 아무 상관 없어. 지금의 난 팬텀이니까.”

윤현의 칼날을 타고 검은 불길이 타올랐다.

“팬텀? 그건 또 뭐야?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 못 하겠거든?!”

“이해한다. 그 부족한 머리로 백날 생각해 봤자 당연히 알 수 없겠지.”

“뭐라고?!”

“팬텀은 너희의 이해를 아득히 초월한 곳. 그곳에서 난 새롭게 태어났다. 너희들에게 한심하게 당했던 윤현은 이제 없어. 내 앞에서 너희의 힘 따위 작고 하찮은 것에 불과해.”

윤현의 칼날에서 흩뿌려진 화염이 형태를 갖추었다.

그의 곁에 나타난 건 세 마리의 검은 뱀.

이빨을 드러낸 뱀들은 소리 없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날 받았던 굴욕과 모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겠다.”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칼날을 훑은 윤현이 칼끝으로 용주를 겨눴다.

“집어삼켜라. 츠치노코!”

검은 불길과 함께 튀어 오른 세 마리의 뱀이 이빨을 드러냈다.

노리고 있는 건 용주.

왼편에서 덮치는 뱀의 머리를 베어 낸 용주는 다른 두 마리를 곁눈질했다.

순식간에 용주를 에워싼 두 마리의 뱀은 서로 뒤엉키며 솟아올랐다.

천장을 때리는 강한 불길.

“이용주!”

생생하게 느껴지는 열기에 서윤이 외쳤다.

화염에 녹아내린 고드름은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진짜로 죽일 생각이었어.’

공간 균열의 반지를 사용한 용주는 화염을 뚫고 나왔다.

그을린 피부의 효과로 피해를 최소화하긴 했지만, 이 열기는 진짜였다.

‘검은 화염인가….’

형만이 사용하던 불과는 달랐다.

하지만 이 불길.

우습게 볼만한 물건은 결코 아니었다.

‘사람을 상대로 검을 겨눠야 한다라….’

중력에 몸을 실은 용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은 아니었다.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진실에 다가가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되니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자신은 지금 언노운이 아닌 사람을 베려 하고 있었다.

‘하는 수밖에 없어!’

검을 고쳐잡은 용주가 그대로 윤현을 내리찍었다.

녀석의 힘도.

녀석의 의지도 진짜였다.

그간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팬텀이 뭔지도.

놈이 원하는 복수의 끝이 어딘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하지 않으면 당한다.

“검을 겨눴다는 건, 베일 준비도 돼 있다는 거겠지?”

“흥! 너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이 몸이 아니야!”

위아래에서 서로 마주 본 두 사람이 전투를 이어갔다.

서로를 향해 휘두르는 칼날은 진짜로 상대를 베려고 하고 있었다.

* * *

“응?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길을 걷던 예나가 뒤를 돌아봤다.

“소리?”

“응. 뭔가 터지는 소리 같았는데.”

“뭐… 용주 형 있는데 워커가 나타난 거 아니겠어? 잘 해결했다는 증거일 거야.”

“음…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인 예나가 다시 가던 곳을 바라보았다.

주원의 추측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예나네 집사님한테 감사해야겠네.”

“감사? 왜?”

“그렇잖아. 집사님이 예나한테 그 워커라는 언노운에 대해 말 안 해줬으면,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당황했을 거 아니야.”

“음… 그것도 그렇네. 집사한테 전해줄게.”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 중 가장 앞서 걷고 있던 금화는 갑작스럽게 방향을 꺾었다.

“고구마 아저씨?!”

예나와 주원을 향해 달려드는 금화.

두 사람을 밀친 금화는 대검을 휘둘렀다.

그의 대검을 긁어내고 있는 건 인간의 팔이 아니었다.

“언노운은… 아니군.”

금화의 앞에 있는 건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검푸른 근육질의 팔과 짐승처럼 날카로운 손톱.

그의 한쪽 팔은 도무지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실수도 아니고.”

팽팽하게 이어진 두 사람의 힘 싸움.

검면으로 공격을 받아낸 금화가 상대방을 날려 버렸다.

“까마귀 가면?”

주원과 예나가 금화에게 붙었다.

지금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인 거죠? 스킬? 그럼 헌터라는 건데.”

“다른 헌터가 더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아니, 그보다 저 사람, 조금 전에 우릴 공격했잖아? 우릴 언노운이랑 착각했을 리는 없고.”

버티를 끌어안은 예나가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굉장히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이런이런. 절대 눈치 못 챌 거라고 확신했는데, 이게 어떻게 들킨 거지? 실수는 없던 거 같은데 이상하네.”

손을 앞으로 내민 도준이 고개를 저었다.

셋 중 하나는 무조건 아웃시키고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시작부터 착오가 생겨 버렸다.

“형씨, 힘깨나 쓰네? 이 팔을 막아 내다니 말이야.”

도준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저지하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을 거라네.”

“그야 당연하지. 그럴 생각으로 했던 거니까.”

“게이트에 무단 침입한 것도 모자라. 헌터가 헌터를 공격하겠다는 말이오이까?”

“아니, 형씨. 틀렸어.”

도준이 왼쪽 손등을 보였다.

“헌터가 헌터를 공격하는 게 아니야. 팬텀이 헌터를 사냥하는 거라고.”

손톱을 세운 도준이 손등을 긁어내렸다.

“더 비스트(The Beast).”

크고 기괴하게 뒤틀리는 도준의 몸.

‘저게 뭐야….’

눈앞에서 일어나는 그의 변화에 예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눈앞에 있는 건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두 사람 다 날 믿고 잠시 뒤로 물러나 있게나.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으니.”

두 사람을 곁눈질한 금화가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았다.

“팬텀이 헌터를 사냥한다. 그럼 묻겠소이다. 팬텀이란 무엇이오? 왜 헌터를 사냥하려는 것이오이까?”

금화가 물었다.

상대방의 모습은 이야기가 통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 변화가 헌터의 스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의사소통이 가능할 여지는 있었다.

“궁금한가? 하긴 그렇겠지. 팬텀은 헌터를 알아도, 헌터는 팬텀을 모르니까.”

“…….”

“워워워~ 너희가 멍청한 게 아니야. 당연한 거라고. 그러니 자책하지 마. 원래 저승사자가 명부를 알지, 죽을 사람이 저승사자를 아는 건 아니잖아? 음! 내가 생각해도 참 기가 막힌 비유야!”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도준이 꼬리를 살랑거렸다.

“팬텀은 말이야, 음! 굉장한 곳이야. 그리고 내가 너흴 사냥하는 건 엔비 님께 임무를 받았기 때문이고.”

“엔비? 임무?”

“그래그래. 내가 이번에 받은 건 두 가지였지. 하나는 너희가 가진 이형 결정체를 몽땅 회수해 오는 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준이 가슴에 손을 올렸다.

괴물로 변한 그의 가슴엔 이형 리액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스킬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의 힘 그 자체를 회수해 오는 것.”

지면을 부수며 뛰어오른 도준이 속도를 높였다.

그의 발걸음 발걸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고드름들.

‘헌터들의 힘을 회수해?’

“수라강림!”

스킬에 스킬로 대응한 금화는 대검을 휘둘렀다.

맞부딪치는 힘과 힘.

두 사람의 충돌이 일으킨 바람이 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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