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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34화 (134/357)

134화

* * *

“이 기세면 C급 게이트가 아니라 B급 게이트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언노운의 유해에 발을 올린 서윤이 자신감을 표했다.

C급 언노운들은 당연히 E급 게이트의 언노운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첫 임무에서 갔었던 C급 게이트가 상당히 특별했던 케이스라 그런지, 보통의 C급 게이트는 상대적으로 난이도 체감이 덜했다.

“자신감은 좋지만, 자만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네.”

금화가 이야기했다.

“고구마 아저씨 말이 맞아. 아까만 해도 크게 다칠 뻔했잖아.”

“그, 그건….”

예나의 한마디에 서윤이 용주의 눈치를 살폈다.

확실히 용주가 커버해 주지 않았다면, 그건 피할 수 없었을 거다.

“미안. 조심할게.”

서윤이 사과를 표했다.

무슨 핑계를 대도, 경솔했던 건 경솔했던 거였다.

“아무 일 없이 잘 해결됐으니 다 잘된 거 아니겠어요?”

주원이 싱긋 웃어 보였다.

주원의 입에선 새하얀 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빠. 추우면 이거 돌려줄게.”

주원에게 다가온 예나가 이야기했다.

몇 겹이나 소매를 접은 예나의 셔츠는 주원이 걸치고 있던 것이었다.

“하하! 춥긴 누가 춥다고! 걱정하지 말고, 걸치고 있어. 감기 걸린다.”

“응…. 그래도 추우면 말해. 바로 돌려줄 테니까.”

“근데,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긴 하네. 이렇게 얼어붙은 게이트는 처음 봐.”

주원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푸르고 투명하게 얼어붙어 있는 천장엔 고드름들이 맺혀 있었다.

“이런 거, 혹시 저만 처음 보는 거예요?”

“아니. 나도 얼음 게이트는 처음 보는데.”

서윤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저도요.”

“나도 그렇다네.”

“용주 형은요?”

예나와 금화의 대답을 차례대로 들은 주원이 마지막으로 용주를 바라보았다.

“이보다 더한 게 나타나도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다. 카오스 게이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으니까.”

용주 역시도 처음 겪어보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별로 놀라울 것도 아니었다.

비밀의 방이라 불리는 그곳에 비하면 그다지 특별하게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다만, 경계는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C급 게이트부턴 생각이 바뀌고, B급 게이트부턴 사람이 바뀐다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금화의 이야기에 예나가 물었다.

“생각이 바뀐다는 건 기존 상식의 틀이 깨지는 걸 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네. 지금 이 게이트처럼.”

“음…. 그럼 사람이 바뀌는 건요?”

“그거야. B급 게이트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 우린 아직 거기까진 발을 들여보지 못했으니 말일세.”

‘이따 만나면 집사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다.’

집사라면 무슨 말이라도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B급 게이트와 E급 게이트.

집사는 그 두 게이트를 모두 경험해 봤으니까.

“그건 그렇고, 여기서부턴 어떻게 할 거야?”

서윤이 뒤쪽을 가리켰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역시 하나하나 순서대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둘, 셋으로 인원을 쪼개는 방법도 있지. 안정성은 떨어지겠지만, 탐사 효율은 확실히 올라갈 거야.”

서로 다른 의견을 낸 예나와 서윤이 용주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의견 모두 나름 대로의 근거는 있었다.

하지만 용주는 전자 쪽에 조금 더 무게를 싣고 싶었다.

게이트의 안정화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게이트엔 지형적 변수가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서두를 필요는….

타박.

스으으윽!

생각을 정리하던 용주의 귀에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느리지만 분명한 발소리와 무언가가 얼음을 쓰는 소리.

소리는 두 갈래 길 모두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여기서 마주한 C급 언노운은 일명 ‘정령형’ 언노운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정령형 언노운의 특징은 불, 물, 땅, 바람과 같은 특정한 물질로 몸이 이루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하반신을 구성하는 것이 다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용돌이치는 녀석들의 하반신 때문에 팽이나 유령 등으로 부르는 헌터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소리는 더더욱 이상했다.

녀석들은 이런 발소리를 내지 않았으니까.

“응? 지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소리를 들은 이는 용주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들었어. 발소리 같았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라. 뭐가 나타날지 모르니.”

빠르진 않았지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윽고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소리의 주인.

“저건….”

“언노운? 그렇지만….”

두 마리 언노운의 모습을 확인한 용주는 눈썹을 기울였다.

기본적인 외관은 분명 상대해왔던 것들과 비슷했다.

하지만 달랐다.

녀석들의 다리는 소용돌이치고 있지 않았다.

타박!

녀석들은 한 손으로 땅을 기고 있었다.

발소리라고 생각했던 건 발이 아닌 손이 내는 소리였다.

게다가.

스으윽…!

녀석들은 무언가를 끌고 있었다.

어깨에 짊어진 얼음 사슬.

그 끝엔 커다란 공이 채워져 있었다.

“저 녀석들, 뭔가 끌고 오고 있는데요?”

“알 게 뭐야. 느려터져서 굼벵이처럼 기어 다니는 녀석들이잖아.”

칼끝으로 지면을 긁어낸 서윤이 가장 먼저 달려 나갔다.

바닥은 제법 미끄러웠다.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죽고 싶어 안 달이면, 죽여주는 게 상책이라고!”

붉게 물든 서윤의 눈동자.

언노운을 덮친 서윤은 녀석의 목덜미에 칼날을 선물해줬다.

사슴같이 커다란 뿔을 가지고 있던 언노운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하아- 하아아--.”

고통스러운 마지막 신음.

언노운의 손이 땅에 떨어졌다.

“하! 뭐야? 정말로 이걸로 끝? C급 녀석들 완전 꿀 달달하게 빨고 있었잖아?”

서윤이 콧방귀를 뀌었다.

완전 무저항 상태의 샌드백이라니.

이런 건 E급 게이트에서도 본 적 없었다.

‘음?’

그때.

깊은 오한이 서윤의 발목을 타고 올랐다.

갑작스러운 한기에 서윤의 시선이 아래쪽을 향했다.

놈이 떨어뜨린 공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잠했던 공이 순간 커다란 냉기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윽…!”

충격에 날아간 서윤이 바닥을 뒹굴었다.

폭발도 폭발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더 위협적으로 건 빗발치는 얼음 결정들이었다.

마치 수류탄의 파편처럼 사방으로 찢긴 얼음은 한 발 한 발이 칼날이나 다름없었다.

‘저런 걸 숨겨두고 있었나….’

표정을 구긴 용주가 다른 한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더 가까워지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무저항 상태의 언노운을 재빨리 정리한 용주는 점멸로 자리를 이탈했다.

2번째 폭발은 완전 불발로 끝나 버렸다.

“씨이~! 위험하잖아!”

“상처 좀 보세나.”

재빨리 달려온 금화가 이야기했다.

“별것 아니야. 살짝 긁힌 게 전부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 서윤이 뺨에 맺힌 핏방울을 닦아냈다.

사전에 눈치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대체 뭐야? 뭔데 이렇게 위험한 걸 끌고 다니고 있는 거야?”

녀석들의 상태는 물론이고, 그들이 끌고 다니던 공까지 의문투성이였다.

‘이거 혹시….’

두 번의 폭발을 지켜본 예나는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분명 집사에게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저, 살짝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한참을 고민하던 예나가 입을 열었다.

“마음에 걸리는 거? 뭔데?”

주원이 물었다.

“전에 집사한테 들은 적 있어. 죽기 위해 태어난 개체가 있다고.”

“죽으려고 태어난 언노운이 있다고?”

“응. 전투력도 없고, 느릿느릿한데다가 자길 지켜줄 동료도 없이 혼자 출구로 전진하는 개체. 그저 묵묵히 자신이 짊어진 걸 운반하는 개체. 그런 개체만을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다고 했는데 뭐랬더라…. 아! 워커! 워커랬어!”

“워커?”

주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들어보는 명칭이었다.

“아마 맞을 거야. 집사가 그랬어. 위험해 보이지 않아도 워커는 제거 대상 1순위라고.”

“음? 왜? 느리고 전투력도 없으면 안 위험한 거 아니야? 조금 전만 해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놔뒀으면 폭발하는 일도 없었을 것 같은데.”

“워커가 운반하는 폭발물은 출구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폭발한댔어. 그리고 출구에서 터진 폭탄은 게이트 2가지 악재를 불러온댔고.”

“2가지 악재?”

“응. 하나는 게이트 안정도 증가. 다른 하나는 게이트에 존재하는 모든 언노운들의 전투력 증가랬어. 이렇게 이해하면 쉽댔는데, 워커가 출구에 도착한 건 선봉대장이 점령지에 깃발을 꽂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게이트 안정도 증가에, 언노운들의 전투력 증가…. 뭐야? 그럼 안정화에 필요한 시간도 줄어드는데 클리어하는 건 더 어려워진단 거네?”

“응. 그래서 무조건 처리해야 한다고 들었어.”

‘그렇단 말이지?’

예나의 이야기에 용주가 생각에 잠겼다.

조커.

아니, 임승우라는 헌터의 이야기라면 분명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나에게 이유 없는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용주로선 접해본 적 없는 정보였다.

워커.

녀석들이 정말 거기 해당하는 개체라면 생각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 앞으론 갈라져서 움직여야 한단 뜻이겠군. 아니면 적어도 누구 하나가 여길 지키고 있던가.”

용주가 이야기했다.

워커가 저게 전부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렇다면 모두가 한곳으로 몰려가는 게 오히려 더 리스크가 있는 선택이었다.

지금보다 언노운이 더 강해지면, 이쪽엔 좋을 게 없었다.

“그런 거면 둘 셋 찢어지는 게 좋지 않을까? 손가락만 빨고 여기 지키고 있는 역할은 사양하고 싶은데.”

“그렇지만 전력을 많이 분산하는 건 위험도가 높은 선택지라네. 여긴 C급 게이트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네.”

서윤과 금화가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음… 용주 형 생각은 어때요?”

주원이 물었다.

“개인적으론 둘, 셋으로 나누는데 조금 더 무게를 주고 싶은데. 혼자 남은 쪽이 급습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으니까.”

“일리 있네. 한 명이 당해 버리면 앞뒤로 싸 먹힐 가능성도 있고. 그럼 팀은 어떻게 나눌 거야?”

“아! 이건 어때요?”

주원이 동전 하나를 꺼냈다.

“앞뒤로 해서 한 곳에 3명이 차면 끝내는 걸로!”

“너치곤 괜찮은 아이디어네.”

“헤헷! 그럼요. 근데 그거 칭찬인 거 맞죠?”

“그래그래. 그러니 어서 던져보라고. 앞이 왼쪽, 뒤가 오른쪽이야.”

“네네! 그럼 갑니다!”

* * *

“안 보이니까 또 그거 나름대로 신경 쓰이네. 녀석들 괜찮겠지?”

서윤이 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곁엔 용주밖에 없었다.

“괜찮을 거다. 적어도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 중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니까.”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동전치곤 제법 눈치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지금이랑 똑같이 팀을 나눴을 테니 말이다.

자신을 제외한 네 사람 중 전체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피라미터를 가지고 있는 이는 금화.

공격력에 강점이 있지만, 다른 쪽의 약점이 확실한 건 주원과 서윤이었다.

두 사람의 단점을 커버해 줄 수 있으면서 동시에 합을 맞춰본 사이.

3 : 2의 구도에선 역시 지금이 최선이겠지.

‘그러고 보니 녀석이랑 이렇게 단둘인 거, 그때 이후로 처음이네.’

뒤따라가던 서윤이 용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파트너’라는 세 글자가 떠올랐다.

그동안 몇 번이나 용주의 연락처를 만지작거렸었다.

쓰고 지운 문자만 열 통은 넘었을 거다.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었다.

그렇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런 거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아니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무슨 데이트라도 나온 줄 알아?! 여긴 카오스 게이트라고! 집중해! 집중!!’

스스로를 다그친 서윤이 양 뺨을 찰싹 때렸다.

“아까 상처는 괜찮은 거냐?”

앞서가던 용주가 무심하게 물었다.

“아…! 응! 살짝 스치기만 했어.”

“미안하다. 먼저 눈치챘어야 했는데.”

“네가 왜 사과해? 네가 뭘 잘못했다고.”

“…….”

걸음을 계속하던 용주가 조용히 자리에 멈춰 섰다.

용주의 눈은 서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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