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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30화 (130/357)

130화

‘뭐야, 이 상처는…?’

용주의 성흔에 손을 올렸던 설녀가 깜짝 놀라 손을 뗐다.

뜨거웠다.

손을 대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없애야 해. 내가… 내가 해야 한다고.’

성흔 주위를 얼음으로 덮은 설녀는 성흔 쪽으로 힘을 집중시켰다.

성흔을 향해 뻗어 나가던 얼음은….

기체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몇 번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내 힘으론 안 되는 거야?’

울상이 된 설녀의 표정.

그녀의 분투에 몸을 맡겼던 용주는 조용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막았다고, 이겨 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대주교가 손을 활짝 펼쳤다.

그의 가슴에서부터 뿌리 뻗기 시작한 빛의 넝쿨들은 그의 팔을 휘감았다.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그분의 불꽃이 당신을 태울 것입니다.”

넝쿨이 손가락 끝을 감싸자 강렬한 화염이 피어올랐다.

‘태운다고?’

불타오르는 대주교의 모습에 설녀는 괴리감을 느꼈다

태울 거라는 그의 말과 달리 정작 타고 있는 건 자기 자신이지 않은가.

대주교를 향했던 설녀의 시선이 다시 용주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용주에게 조금 전만 해도 없던 상처가 생겨 있었다.

쇄골을 타고 양쪽 손등까지 이어진 긴 상처.

그의 몸에 생긴 상처는 대주교를 휘감은 가시들이 지나는 길과 정확히 일치했다.

▷ ‘라의 성흔’이 느껴집니다.

- 시전자가 입은 피해가 고스란히 상대에게도 전이됩니다.

- 전이 피해 배율 150%

‘자기가 입는 피해를 적에게도 입히는, 일종의 저주인가.’

이를 악문 용주가 자신의 HP 바를 바라보았다.

체력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녀석은 자가 치유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어. 즉발력으로 친다면, 내 재생이랑은 비교가 안 되는 속도야.’

소모전이라면 이쪽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간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설녀의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쪽에서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맹독, 할퀴기.’

두 가지 스킬을 사용한 용주는 거리를 좁혔다.

대주교는 저지하려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주가 입히는 피해가 곧 용주 자신을 쓰러뜨릴 칼날인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모를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건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물어뜯기!’

놈의 명치를 꿰뚫은 용주는 그대로 놈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복부에서 찢긴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독이 퍼지면서 일으키는 통증 또한 고스란히 전해졌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통증은 당장이라도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시작한 이상 뒤는 없어.’

물어뜯기를 중첩해서 사용한 용주는 더욱 깊게 이빨을 박아 넣었다.

HP 바가 요동치고 있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었다.

어떤 통증이 느껴져도.

어떤 충동이 일어나도 절대 그만둘 수 없었다.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진.

‘이자는… 쓰러지지 않는 건가?’

두 사람을 돌던 13개의 화염의 창이 동시에 두 사람을 꿰뚫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 피가 흘렀고, 두 사람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하지만 용주는 쓰러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몸이 버틴다고 할지라도, 정신이 날아가도 몇 번을 날아갔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살기, 광기, 그리고 의지.’

그의 눈동자에서 보았던 세 가지 단어를 되새긴 대주교는 거대한 불길을 일으켰다.

빛의 폭발과 함께 사라진 주교는 용주와 거리를 벌린 채 다시 나타났다.

“그분께서 별빛으로 속삭이셨습니다. 당신을 쓰러뜨릴 하나의 방법을.”

불길로 그린 서클이 빛을 발하자 화염의 장벽들이 사방에서 솟구쳐 올랐다.

용주의 시야에 대주교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미로같이 솟아오른 불의 장벽들뿐.

그리고.

“쿨럭!”

온몸을 관통한 극심한 통증과 함께 용주가 피를 토해 냈다.

보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 녀석.

저 화염 너머에서 또 스스로를 고문하고 있었다.

녀석이 주는 피해와 더불어 자신이 만든 피해까지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이 통증이 있다는 건 녀석이 아직 스스로를 치료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빨리 따라붙어야 해.’

녀석은 스스로의 의지로 회복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쪽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재생의 효과만으론 이 피해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녀석을 사정권 안에 둬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까드드득!

성난 불길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열기는 사라졌지만, 얼어붙은 화염은 아직도 미로를 그리고 있었다.

설녀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 얼음을 깨뜨리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깨뜨리지 않는 게 아니라, 깨뜨리지 못하는 건가?’

얼음 안쪽에서도 화염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요동치고 있었다.

‘불길이 완전히 제압되기까지 기다렸다간 이쪽이 먼저 쓰러질 거야.’

화염이 솟구침과 동시에 고통이 일었으니, 녀석은 아마 마지막에 있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방향이라면 알고 있었다.

직선거리라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다.

‘얼음이든 불이든 뚫고 나갈 수밖에 없어.’

속도를 높이던 용주의 시야에 자신의 왼손이 들어왔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스킬이 만든 시너지.

어쩌면 이런 활용 방법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 두 개라면 어쩌면…. 한번 시험해 볼까?’

순간적으로 떠오른 발상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 용주는 두 가지 스킬을 차례대로 사용했다.

먼저 사용한 건 사후 강직

몸 전체가 굳어 가는 감각이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였다.

언제나 같은 사후 강직의 페널티.

관절의 움직임이 굳어 가며 용주의 속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그리고.

‘스팀팩!’

이어서 사용된 두 번째 스킬.

경직되었던 근육이 다시 활성화되는 게 느껴졌다.

뻣뻣하게 굳어가던 관절도 윤활유가 들어간 듯 부드럽게 굽어졌다.

‘이 정도라면….’

벽으로 돌진한 용주는 그대로 몸을 부딪쳤다.

산산이 깨지는 불과 얼음의 장벽.

특별한 도구는 필요 없었다.

단단하게 굳은 피부가 곧 갑옷이자 둔기.

불과 얼음에 대한 저항을 올려주는 두 가지 패시브는 피해를 한 번 더 경감시켜주었다.

일직선에 있는 모든 것을 밀어 버리는 용주의 모습은 마치 불도저 같았다.

“!”

마지막 장벽을 박살 낸 용주는 다시금 대주교와 마주했다.

피투성이의 대주교는 어디 하나 회복되어 있지 않았다.

‘더 큰 피해를 주기 위해 일부러 회복하지 않은 모양인데, 그게 네 실책이야.’

스팀팩은 어디까지나 리스크가 큰 기술이었다.

이번에 끝장을 봐야 한다.

‘녀석이 내게 전이시키는 피해도 같이 줄었어. 지금이라면….’

사후 강직을 발동하고 받는 피해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성흔을 지우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타를 날릴 거라면 지금밖에 없었다.

“끄윽!”

성흔을 꿰뚫린 대주교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오른 어깨에 칼을 박아 넣은 용주는 목덜미의 상처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 숱한 고문에도 눈 하나 깜짝 않던 대주교는 이내 무너져 내렸다.

대주교가 쓰러지자 불과 얼음의 미로가 산산이 부서졌다.

* * *

“무너졌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던 설녀의 눈동자에 용주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건 힘없이 늘어진 대주교의 모습이었다.

“해내셨군요!”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쓰러지면 안 되십니다.”

대주교의 모습이 화염과 함께 사라졌다.

그의 모습이 다시 그려진 건 종교재판관 앞.

쓰러졌던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의 생명을 그대에게 나누나니. 그대여. 삶을 누리소서.”

대주교와 입을 맞추는 종교재판관.

그녀에게서 피어오른 빛의 오로라는 대주교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아무는 대주교의 상처.

눈을 뜬 대주교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종교재판관은 더 이상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경험치가 안 올랐을 때 눈치채야 했는데….’

종교재판관이 살아 있었단 단서는 있었다.

하지만 다른 데 집중하느라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이 상황은….

마무리를 짓지 않은 스노우볼이 커도 너무 컸다.

‘설마 자기 생명을 바쳐 남을 치유할 줄이야.’

놈이 새겨 놓은 성흔은 사라졌다.

하지만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근데… 뭔가 이상한데.’

대주교의 상처는 분명 다 아물었다.

하지만 딱 하나.

성흔을 꿰뚫었던 상처만큼은 아물지 않은 모습이었다.

“의식을 잃었나. 내가 그린 그림과는 다르지만… 뭐, 상관없지.”

대주교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에 용주는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목소리.

지금까지 들어 왔던 녀석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시 만날 날엔 최고의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건만….”

대주교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검은 오로라가 대주교의 몸 전체를 잠식해 갔다.

텅 빈 우주 같은 녀석의 모습은 황도 12궁과 닮은 듯 달랐다.

“넌… 누구냐?”

용주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이자는 적어도 ‘대주교 라’라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인데. 넌 뭔데 린 옆에 붙어 있는 거지?”

“린?”

그의 이름에서 나온 누군가의 이름.

그게 향할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설녀.

그게 그녀의 이름인 모양이다.

‘설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라….’

드워프들이 말했던 설녀의 호칭은 마녀였다.

이름으로 불렀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 녀석 설마…?’

딱 한 사람.

그럴 만한 인물이 떠오르긴 했다.

실체도 알 수 없었기에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아까 봤던 문구도.

설녀의 존재와 위치에 대한 것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13번째 별의 잔해.

만약 이 녀석이 황도의 13번째 별자리라면….

“오랜만이야, 린. 너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설녀를 바라본 사내가 이야기했다.

그의 목소리에선 오래된 아련함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그 이름을?”

놀란 설녀가 물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은 황도의 별자리들뿐일 텐데….

“모를 리가 없잖아. 잊어버렸을 리가 없잖아. 설령 네가 날 잊어버렸다고 할지라도.”

“…잊어버려?”

“너무 외로웠어. 린, 나 너무 무서웠다고.”

“…….”

설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생각을 더듬고 더듬어 봐도 이 자에 대해 도통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왜 그런 표정 짓는 거야? 나라고. 네 친구…. 반갑게 활짝 웃어줘야지.”

그의 말에 딱 한 군데 공백이 있었다.

친구라는 단어 뒤에.

이름이 와야 할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저… 미안해요. 저 정말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정말로 날 잊어버린 거야?”

사내가 가슴을 짚었다.

“미안해요. 혹시 이름이라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럼 기억이 날지도 몰라요.”

“이름….”

머뭇거린 사내는 말 대신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하늘을 수놓는 불과 빛.

마지막 획을 그은 사내는 손을 내려놓았다.

그가 쇄골에 새긴 기호는 사견궁.

뱀주인자리의 기호였다.

“이제 알겠어? 내가 누군지.”

“저… 죄송해요. 역시 기억이 안 나요.”

설녀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에 대해 짚이는 게 없었다.

“…괜찮아. 그럴 거라곤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사견궁의 손가락을 타고 검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울어주지 않은 거지? 기억해 주지 않은 거지? 다른 녀석들이 빛을 잃었을 때처럼 슬퍼해 주지 않은 거지?”

일렁거리며 퍼져 나간 어둠은 순식간에 주변을 물들였다.

이윽고 나타난 빛.

하늘에는 12개의 별자리가 빛나고 있었다.

“다 이해해. 난 소심하고 말도 없었으니까. 다른 친구들처럼 빛나지도 않았고, 늘 어둠 속에 잠겨 있었으니까.”

천천히 움직인 황도 12궁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고개를 든 용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도 12궁의 움직임에 묻혀 시선이 가진 않았지만, 희미한 빛 하나가 다른 곳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옅은 화염에 휩싸인 채로.

“그날, 난 모두와 함께 내려오지 못했어. 혼자 깊고 차갑고 어두운 곳에 떨어졌지. 무섭고 힘들었지만, 참고 기다렸어. 네가… 모두가 날 찾아줄 거라고 믿었었으니까.”

“…….”

설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방금 벌어진 그 일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날 지상으로 내려온 별이….

아니, 지상으로 추락한 별이 하나 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지. 타서 재가 되어 버린 몸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어.”

사견궁이 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에서 타오른 불길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전부 없애 버리기로 했어. 나만 아프고, 나만 슬프고, 나만 불행한 건 이제 싫어. 낙원으로 갈 거야. 아픔도, 기쁨도 없는 죽음 속으로.”

설녀의 발밑에 뱀주인자리의 별자리가 그려졌다.

삽시간에 일어난 불길은 폭발적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너와 친구들을…. 소중했던 것들을 전부 지운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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