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 네 번째 시련
- 석조 드워프들을 제거하십시오.
- 제단이 파괴되면 퀘스트는 실패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은하수를 달리는 용주의 앞에 네 번째 메시지가 나타났다.
동시에 겹친 세 번째, 네 번째 시련.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 사내들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 번역에 필요한 지능 : 65
- 조건이 충족되어 해당 언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됩니다.
“자! 이제 마지막이다. 저주받을 마녀의 집 같은 거 빨리빨리 부숴 버리자고!”
“근데 마녀도 잡았고, 마녀의 하수인들도 다 없앴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벌써 거의 다 부숴놓고 무슨 소리야?”
“대주교님의 명령이다. 쓸데없는 소리는 삼가라. 종교재판관님께서 들으셨다면, 심히 노하셨을 거다.”
막아야 할 적은 총 4명.
그들은 벌써 기둥을 세 개나 파괴한 상태였다.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철퇴와 메이스.
일반적인 철로 만들어진 무기는 아니었다.
무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빛과 불.
그들의 무기에 별들은 처참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인스네어!’
공간 균열의 반지를 활용해 단번에 신전 중심부로 파고든 용주는 가스 지대를 만들어냈다.
신전의 중심부엔 작은 웅덩이가 하나 파여 있었는데.
은하수가 흐르는 웅덩이의 중심부엔 한 사람이 기도를 올릴 만한 제단이 있었다.
이게 파괴되면 게임 오버.
퀘스트도 목숨도 안녕이었다.
“뭐, 뭐야?!”
“마녀가 남겨둔 함정인가?!”
“다들 정신 바짝 차려라!”
당황한 드워프들의 행동이 잠시 주춤거렸다.
때를 놓치지 않은 용주는 곧장 빈틈을 파고들었다.
“아니!”
가장 먼저 노린 건 제단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드워프.
뒤늦게 용주를 발견한 드워프는 높게 치켜든 두 개의 메이스를 내리찍었다.
“대주교께서 명하신 우리 4기사단과 맞서려 하다니. 생긴 건 다르지만, 너도 마녀의 하수인이 분명하구나. 마녀의 하수인이여! 박멸해 주마!”
제단 바닥을 부순 드워프는 우측으로 몸을 틀었다.
공격은 불발.
어째선지 움직임이 느려진 기분이었다.
‘대주교? 마녀?’
스쳐 지나간 유의미한 단어들을 머릿속에 새긴 용주는 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벨 수 있을까?
검을 휘두르는 순간 든 의문이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돌처럼 단단하게 생긴 녀석의 피부.
다른 하나는 빛을 발하기 시작한 녀석의 갑옷 때문이었다.
▷ 라의 4기사단 ‘담보’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선 8 이상의 대항력이 필요합니다.
“끄아악!!”
하지만 그 의문이 풀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요구 대항력을 초월한 용주의 검은 놈을 그대로 베고 지나갔다.
“아니!”
“대주교님의 가호가 서린 갑옷이…!”
“베였다고?!”
첫 일격이 작렬하는 순간.
드워프들은 놀라움과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이 입고 있는 장구들은 모두 대주교님의 가호가 서린 것들.
마녀의 곁을 지키던 황도 12궁의 공격에서도 자신들을 보호해주던 신물이었다.
“담보를 도와야 한다!”
위기를 직감한 드워프들이 용주를 노리며 움직였다.
‘뭐지?’
‘뭔가 잘못됐어.’
‘이 거리가 이렇게 멀었던가?’
세 사람이 이상을 감지한 건 그 직후.
그들의 속도는 그들이 생각한 것만큼 나와주지 않았다.
다리에 힘을 주고,
더 세게 지면을 차도 결과는 마찬가지.
빨라져야 마땅한 속도는 오히려 더 느려지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으아아압!!!”
초록 지대를 뚫고 달려온 드워프가 철퇴를 휘둘렀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은 불발.
허리를 뒤로 젖힌 용주는 땅을 짚으며 뒤로 물러섰다.
“담보! 정신 차려라! 담보!”
뒤따라온 드워프가 쓰러진 드워프의 상태를 살폈다.
용주의 첫 타깃이 된 드워프는 이미 치명상을 입어 전투 불능이 된 뒤였다.
“너 이 자식!!”
“정화해주마! 마녀의 하수인!”
메이스와 방패.
같은 무기의 조합을 하고 있는 두 드워프가 용주를 몰아붙였다.
두 사람이 들고 있는 무기는 같았지만, 두 사람이 들고 있는 무기의 방향은 정반대였다.
한 사람은 메이스를 오른손에.
다른 한 사람은 메이스를 왼손에 들고 있었다.
‘일단은 제단에서 멀어져야 해.’
녀석들의 시선이 온전히 자신에게 향했음을 확인한 용주는 빠르게 뒤쪽으로 거리를 벌렸다.
“어딜 도망가려고!”
“다른 녀석들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해주마!”
용주를 뒤쫓아 오는 두 사람
서로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은 동시에 방패를 집어 던졌다.
“……!”
용주를 중심으로 교차하는 두 개의 방패.
왼손을 움켜쥔 용주는 두 방패가 포개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손을 움켜쥐었다.
점멸로 이동한 거리는 불과 몇 cm.
그냥 보기엔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나타나는 수준의 점멸이었다.
하지만 결과만큼은 확실히 달랐다.
X자를 그리며 교차한 두 방패는 신전 바깥에 꽂혀 있었다.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리니!”
“불로 얼음을 녹일지니!”
그러는 사이 거리를 좁힌 두 드워프의 메이스에서 빛이 폭발했다.
‘큭!’
충격에 날아간 용주는 신전 기둥에 부딪혔다.
칼날을 타고 전해졌던 충격은 지금도 오른손을 괴롭히고 있었다.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두 사람의 협공.
또다시 교차하며 들어오는 동시 공격에 용주는 이를 악물었다.
‘점멸을 활용하면, 회피와 반격 모두 가능해. 하지만….’
완벽한 구도.
완벽한 타이밍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됐다.
여기서 자신이 공격을 피한다면, 뒤에 있는 신전의 기둥은 100% 부서질 게 분명했다.
‘사후 강직!’
스킬을 발동한 용주의 몸에 메이스가 직격했다.
충격 부위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진동.
피해가 상당히 감소한 상태일 텐데도 충격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하! 어떠냐?! 이것이 바로…!”
‘물어뜯기!’
충격을 온전히 받아낸 용주의 반격.
“으아아악!!”
완전히 허를 찔린 드워프는 격하게 저항했지만, 용주를 쉽게 떼어낼 수는 없었다.
이빨이 들어간 위치는 가슴과 귀를 잇는 흉쇄유돌근.
“너 이 자식!!”
동료를 돕기 위해 드워프는 메이스를 휘둘렀다.
작은 빛의 폭발과 함께 날아간 용주.
으드득…!
신전 바깥으로 날아간 용주는 입안에 남아 있는 돌조각을 씹었다.
동료를 반듯하게 눕힌 두 드워프는 가스 지대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남은 건 둘.’
다른 두 쪽도 완전히 숨통을 끊어내진 못했다.
하지만 그 상처로 더 이상 전투를 이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맹독과 할퀴기.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발동한 용주는 마지막 전투를 맞이했다.
몰아치는 두 사람의 공격 속에서 용주는 야금야금 틈을 만들었다.
계속되는 공방 속에서 세 사람 모두 치명상이라 할 만한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누적된 타격은 적지 않았다.
두 드워프들의 몸 여기저기엔 크고 작은 절상들이 가득했고.
용주 역시도 철퇴와 메이스에 수차례 가격당한 상태였다.
“하악…. 으윽…!”
가장 먼저 무릎을 꿇은 건 메이스를 휘두르던 드워프.
다른 한쪽의 상태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마라스. 아무래도 난 여기까지인 것 같다. 저 녀석 다른 놈들과는 달라.”
“들어본 적 있다. 황도엔 13번째 자리가 있다고. 헛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군.”
“13번째?”
“그래. 녀석이 필히 그 존재일 거다. 그리고….”
심호흡을 삼킨 드워프가 손에 힘을 풀었다.
땅에 떨어진 철퇴는 한 줌 빛이 되어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우린 4기사단의 이름을 걸고 놈을 처리해야 한다! 이게 우리의 성전의 마지막 불꽃이 될지라도!”
드워프의 몸 전체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빛.
다른 세 드워프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은 모두 그에게 모여들었다.
“신성한 희생!”
이윽고 작렬하는 빛과 불꽃의 폭풍.
▷ ‘신성한 희생’ 효과가 느껴집니다.
- 강렬한 빛과 화염의 폭풍이 몰아닥칩니다.
▷ 4기사단의 ‘신성한 희생’ 스킬에 저항하기 위해선 최소 15 이상의 대항력을 필요로 합니다.
- 필요 이상의 대항력을 충족하고 있지 못해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빛에 잠식되어 가는 시야 속에서 용주는 두 개의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큭…!’
온몸을 덮친 끔찍한 고통.
화염에 휩싸인 용주의 HP는 뭉텅이로 잘려 나가고 있었다.
* * *
일대를 하얗게 물들였던 빛이 사라지자, 열기 또한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간신히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있던 용주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불에 타 넝마가 된 옷은 더 이상 보온의 기능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 ‘그을린 피부’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1 → Lv.3)
단 일격에 날아간 HP는 약 50%.
그을린 피부의 효과로 피해가 감소한 게 이 정도였다.
‘젠장….’
온몸이 타오르는 고통에 당장이라도 정신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대항력이… 부족했다고?’
지금까지 대항력이 필요치에 미달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고, 충분히 대비해 왔었다.
그런데 부족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다.
‘녀석들은…?’
용주의 시선이 네 드워프를 찾았다.
네 사람 모두 있던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있는 거라곤 까맣게 그을린 재뿐.
▷ 석조 드워프들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네 번째 시련을 이겨내셨습니다.
- 4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자폭 공격이었던 건가?’
드워프가 마지막에 외친 말엔 ‘희생’이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게 그 결과물.
네 번째 시련은 끝나 있었다.
‘어떻게든 지켜내긴 했는데.’
다리에 힘을 주었던 용주가 다시금 주저앉았다.
끔찍한 통증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베이고 찢긴 것과는 그 결이 다른 통증이었다.
‘시체 뜯어먹기는 이번에도 글렀고.’
이전 늑대 때도 그렇고, 영 상성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을 의존할 수 있는 건 ‘재생’ 정도뿐.
잃어버린 HP가 워낙 많고, 상처가 심하기에 회복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일단은 움직여야 해.’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킨 용주가 걸음을 옮겼다.
세 번째 시련에 제한 시간 같은 건 적혀 있지 않았다.
조금 늦어져도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여기 도착하는 게 지금보다 더 늦어졌다면?
퀘스트의 진행과 결과가 달라져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그런 의문 말이다.
앞으로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태평하게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곧장 전투가 이어진다고 해도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그러면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어.’
신전 중앙으로 이동한 용주가 제단 앞에 섰다.
▷설녀의 눈물을 안전하게 제단에 가져왔습니다. 세 번째 시련을 이겨내셨습니다.
제단 위에 올라간 설녀의 눈물.
빛 한 점 없이 얼어붙어 있던 보석의 안쪽에선 빛 한 점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제단을 지켜보던 용주의 시선은 보다 먼 곳을 향했다.
풍경이 변화하고 있었다.
무너졌던 신전의 기둥들이 다시 세워졌고, 폐허가 됐던 잔해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별자리가 제자리를 찾아가며 만들어진 것은 건물뿐만이 아니었다.
양과 황소.
게와 사자.
심지어는 켄타우로스와 사람의 모습까지도 갖추어갔다.
신전에 나타난 별자리는 총 12개.
그들은 모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최악의 상황까지 와버렸군요. 그들이 제 결계를 무력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한 사람.
순백의 머리에 순백의 옷.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인은 유일하게 별자리로 이루어지지 않은 존재였다.
여인은 제단 앞.
그러니까 용주의 바로 옆에 있었다.
“이걸로 피한다는 선택지도 무력화됐군요. 그들은 곧 여기 당도할 겁니다. 아마 우리를 멸할 생각이겠죠.”
꿇고 있던 무릎을 편 여인은 제단을 등졌다.
여인이 걷는 걸음걸이마다 하얀 서리가 내려앉고 있었다.
▷ 다섯 번째 시련
- 설녀의 눈물에 기억된 과거의 사건을 목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