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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23화 (123/357)

123화

‘이걸로 마지막.’

11.

지금까지 용주가 숫자를 그린 횟수였다.

한 마리는 숫자를 새기지 못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표식이 없는 것 자체가 놈을 가리키는 표식이었으니까.

‘방금 뒤를 잡은 건 8, 오른쪽에 있는 녀석이 3, 그리고 지금 맹렬히 돌진해 오는 녀석이….’

왼손으로 늑대의 이빨을 막아선 용주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1.’

아래부터 잘려 나간 늑대의 머리.

절단면을 따라선 얼음이 깨지면서 만들어진 하얀 균열들이 생겨 있었다.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차례대로 늑대들을 격파해 나가기 시작하는 용주.

시작하기가 무섭게 벌써 세 마리를 처리한 용주는 아까 표시해두었던 네 번째 타깃을 노렸다.

‘속전속결로 끝낸다.’

칼날을 비틀어 늑대의 이빨을 막아선 용주는 왼손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팔등에는 처음 잡았던 늑대의 머리가 아직도 있었다.

쨍그랑!

강한 힘이 실린 일격에 같은 강도를 가졌던 두 얼음이 동시에 깨졌다.

정확한 일격이었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없던 건 아니었다.

이빨이 들어갔던 자국은 두 줄로 찢겨 있었다.

부상을 감안하면서까지 속도를 내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두 스킬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고 싶었다.

하나하나 늑대를 개별로 놓고 보면 그렇게 까다로운 적은 아니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육체도 그렇게 강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고.

놈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건 녀석들의 협동력 때문.

몰아치는 녀석들의 연계 공격은 상당히 날카롭고 조직적이었다.

‘이걸로 11!’

왼손을 움켜쥔 용주가 점멸을 사용했다.

앞뒤에서 동시에 몰아치는 협동공격은 순식간에 타깃을 잃어버리며 서로를 할퀴었다.

공중에서 몸을 비튼 용주는 놈의 목덜미를 날카롭게 도려냈다.

남은 건 하나.

아무런 숫자도 적혀 있지 않은 늑대를 마지막으로 모든 늑대의 움직임이 멈췄다.

▷ 모든 얼음 늑대를 쓰러뜨렸습니다. 두 번째 시련을 이겨내셨습니다.

- 2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사이드 퀘스트 - 얼어붙은 별의 길을 완료했습니다.

- 모든 늑대를 자리 역순으로 제거했습니다.

- ‘황도의 나침반’을 획득했습니다.

- 대항력이 1 상승했습니다.

▷‘인스네어’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1 → Lv.2)

▷‘스팀팩’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1 → Lv.2)

“후.”

퀘스트 종료 메시지를 확인한 용주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늑대가 쓰러지며 사이드 퀘스트까지 클리어됐다.

다행히 그 추론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기대했던 대항력 역시 확실하게 손에 넣었다.

게다가 추가적인 아이템까지.

▷ 황도의 나침반.

- 밤하늘을 관리한다는 황도 12궁의 힘이 응축되어 있는 특수한 나침반.

‘황도 12궁?’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황도란 ‘천구 상에 태양이 지나가는 길’.

황도 12궁은 그 길 위에 있는 별자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 기호들이 황도 12궁을 상징하는 것이었던 건가?’

각 별자리를 상징하는 기호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모양이나 의미까지는 알고 있지 못했었다.

‘그런데 황도 12궁이면 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깊게 딴지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이었다.

별자리랑 지금 상황이 어떤 연관성을 지닌 건지도 의문이 들었고 말이다.

‘뭐, 이유가 있다면 차차 알게 되겠지.’

모든 늑대가 쓰러지자 한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늑대들의 몸을 구성하던 얼음이 기체가 되어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기체는 드라이아이스처럼 하얀색을 띠었기에 눈으로 좇기에 무리가 없었다.

걸음을 옮기는 용주.

처음 보았던 얼음 석판 앞에 선 용주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기체에 둘러싸인 보석 하나가 석판 앞에 놓여 있었다.

▷ 설녀의 눈물.

- 설녀가 흘린 눈물이 결정이 되어 생겼다고 전해지는 보석.

- 설녀의 기억 일부를 볼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설녀?’

보석을 주운 용주는 또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별자리가 나오나 싶더니, 다시 눈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럼 이것들이 다 설녀의 작품이란 건가?’

눈보라와 늑대 조각.

만약 설녀가 있다면, 두 가지 모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아이템의 이름은 눈물.

그 녀석이 뭔가를 주도적으로 일으키고 있다기엔 뭔가 이야기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 세 번째 시련.

- 설녀의 눈물을 설녀의 제단으로 가져가십시오.

눈앞에 나타난 세 번째 메시지.

앞선 두 번과 마찬가지로 용주는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

순간, 시야가 핑 돌더니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비틀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난 용주는 오른 무릎을 꿇었다.

‘뭐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빈혈을 일으킨 게 아닐까 하는 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뭔가 그런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은…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어.’

왼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용주는 전에 만들었던 굴 쪽으로 걸어갔다.

굴의 입구는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안쪽 공간은 다행히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다.

몸 하나 간신히 들어갈 만큼 눈을 치운 용주는 다시 굴속으로 몸을 옮겼다.

‘방금 그건 뭐였지?’

시간이 흐르자 두통이 차차 가라앉았다.

딱 그 타이밍에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낀 이유가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 번째 시련을 알려주던 메시지 때문은 아닐 테고.’

인벤토리를 연 용주는 MP 회복 포션 5개를 꺼냈다.

이번 전투에서 사용한 인스네어는 총 2번.

소모된 MP 값은 총 30이었다.

통과한 시험은 이제 고작 2개.

앞으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MP를 채워두는 게 맞는 선택이리라.

여기서 6개가 아닌 5개를 꺼낸 건 용주의 작은 욕심.

시간에 따라 자연 회복되는 양이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었다.

‘빈혈이랑은 뭔가 달랐는데….’

한 병 한 병, 병을 비워가는 용주의 손.

그런 용주의 손이 멈춘 건 네 번째 병을 비우던 중이었다.

‘잠깐만… 스킬?’

용주가 기억을 더듬었다.

두통이 일었을 때 나타난 변화는 메시지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한 거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 때문에 다른 변화를 완전히 놓치고 있었다.

두통이 일기 바로 직전.

발동했던 스팀팩의 효과가 끝났었다.

‘스팀팩의 부작용…. HP를 그만큼 지불하는데 페널티까지 있는 거냐.’

물증은 없었지만, 강한 심증이 들었다.

한 번 더 발동해보면 아마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여기서 한 번 더 발동하긴 부담이 되었다.

현재 회복된 상처와 HP는 재생에 의한 것.

이번 전투에서 용주는 물어뜯기도, 시체 뜯어먹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않은 것도 맞지만, 못한 것도 맞았다.

물어뜯기는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정확한 순서대로 적들을 쓰러뜨려야 하는 상황에서, 필요하다고 느껴졌던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체 뜯어먹기는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닌 못한 거였다.

늑대들은 시체를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아무 때나 막 쓰기엔 무리가 있겠어.’

이쪽은 가속되고, 적들은 감속되는 스킬의 조화.

새롭게 얻은 두 가지 스킬의 시너지가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팀팩 쪽은 조금 더 사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전투가 끝나고 효과가 만료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전투가 한창일 때 이런 페널티가 작용했다면, 분명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지.

‘두통도 가라앉았고, 유력한 용의자를 찾았으니, 다음은 시련 차례인가.’

다섯 번째 병을 비운 용주는 다음 시련에 집중했다.

시련의 내용은 설녀의 제단으로 이 눈물을 안전하게 옮기는 것.

눈물을 지키는 쪽보단 제단을 찾는 쪽이 훨씬 문제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불친절하기 그지없군.’

불친절한 거야 뭐, 이젠 대수롭지도 않았다.

‘제단이라.’

어디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 상당히 막연했다.

‘그러고 보니 얻은 게 설녀의 눈물뿐이 아니었잖아.’

생각에 잠겼던 용주가 황도의 나침반을 집었다.

나침반은 로켓 펜던트처럼 안쪽을 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음?’

나침반의 안쪽을 확인한 용주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나침반, 보통의 나침반과는 조금 달랐다.

동서남북이 표시되어 있지도 않았고, N극과 S극의 두 방향을 가리키는 침도 없었다.

침이 가리키는 방향은 오직 하나.

어딜 가리키고 있는진 몰라도, 침은 계속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단 여기 걸어보는 걸로 할까?’

이게 뭘 가리키고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을 가리키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건 두 번째 시련과 동시에 나타난 사이드 퀘스트에서 나온 아이템.

시련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 * *

‘뭔가 있긴 있을 건가 본데.’

눈밭을 뚫고 가던 용주의 앞에 새로운 지형이 나타났다.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숲.

숲은 산기슭을 따라 계속되고 있었다.

숲의 모습은 분명 신비로웠다.

하지만 숲의 상태는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숲 전체가 마구잡이로 파괴되어 있었다.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가장 외곽을 구성하는 나무들 정도뿐.

남아 있는 나무들엔 빛으로 짜인 것 같은 신비로운 줄들이 묶여 있었다.

마치 사건 현장에 쳐진 폴리스 라인처럼.

걸음을 옮긴 용주는 숲에 좀 더 다가갔다.

‘음?’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줄이라고 생각했던 빛은 빛으로 쓰인 글자의 나열이었다.

글자가 일렬로 정렬되어 있어 멀리서 봤을 때 그렇게 보였던 거였다.

빛의 퍼짐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보였고 말이다.

문자를 해석할 순 없었다.

알고 있는 문자도 아니었고, 지능 스탯을 필요로 하는 번역도 작동하지 않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그다지 건드리고 싶지 않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숲 전체를 두르고 있다는 건 둘 중 하나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걸 막으려는 거든가.

아니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가려는 걸 막으려는 거든가.

‘통과할 수는 있는 건가?’

눈으로 보기에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뛰어넘어도 되고, 밑으로 기어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1차원적으로 행동하기엔 어딘가 꺼림칙했다.

만약 이것의 목적이 생각했던 것과 같다면, 그런 식으로 통과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알림, 혹은 방범 장치 같은 게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피할 수 있다면 굳이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겠지.

‘어디 이것도 막을 수 있나 한번 봐볼까?’

왼손을 움켜쥔 용주는 짧은 거리를 뛰어넘었다.

순간적으로 뒤바뀐 주변의 풍경.

용주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빛으로 쓴 문자는 이제 앞이 아닌 뒤쪽에 있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최종 목적지는 저기인가.’

산 정상에 선 용주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상은 움푹 파인 분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안쪽에 호수는 없었다.

다만 다른 게 분지 안쪽을 채우고 있었다.

‘꼭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같네.’

푸른 밤하늘과 빛나는 별들.

분지 안을 보며 가장 먼저 생각난 단어들이었다.

이질적이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별들의 중심부엔 별자리로 만들어진 원형의 신전이 있었다.

‘잘 찾아왔다는 느낌이 드는데.’

신전 같은 구조물이 있다는 건 용주에게 긍정적인 신호였다.

제단이 있을 곳에 더없이 어울리는 장소이니 말이다.

‘그리고 저게 여기서 만날 수 있는 녀석들이란 건가.’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이 감도는 장소였지만, 여기 있는 건 용주 혼자만이 아니었다.

신전 주위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더부룩한 수염에 땅딸막한 키.

근육질의 몸매에 중무장한 갑옷과 망토.

아무리 좋게 봐도 설녀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저자들은 남자였으니 말이다.

그들의 기본 베이스는 뱀파이어와 마찬가지로 인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인간과 달랐다.

녀석들의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건 살이 아닌 돌.

조각상이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근데 저 녀석들 뭐 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는 머리를 한 대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쾅!!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신전의 기둥 하나가 송두리째 박살 나 있었다.

‘설마…!’

정신이 번쩍 든 용주는 전속력으로 달라기 시작했다.

설마가 아니었다.

저 녀석들, 진심으로 저걸 파괴하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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