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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21화 (121/357)

121화

* * *

“기분은 좀 어때? 표정은 아주 좋아 보이는데.”

어두운 방, 조명 아래로 들어온 도준이 물었다.

윤현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멋져. 아니, 멋지다 못해 환상적이야.”

“그렇다고 했잖아. 힘은 좀 써봤고?”

“아~ 그렇고 말고. 이렇게 멋진 걸 손에 넣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윤현이 손을 움켜쥐었다.

“엔비 님께서 찾으시더라. 내려가 보자고.”

“아, 그래.”

함께 움직인 두 사람은 아래층으로 이동했다.

엔틱풍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실내에는 카운터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엔 한 여인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고생하더니, 컨디션은 이제 완전히 돌아왔나 보네.”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리죠.”

윤현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머, 누구랑 달리 아주 신사네.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그거 혹시 제 이야깁니까?”

도준이 자신을 가리켰다.

“찔리면 네 이야기인가 보지. 괜찮아. 여기 있는 대부분 그런 표현 잘 안하거든.”

“대부분? 누가 더 있는 겁니까?”

윤현이 물었다.

“그럼~ 조직이 보스랑 나 두 사람만으로 돌아갈 리가 없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카운터에 기댄 엔비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자신을 부르는 손짓에 윤현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디, 이형 리액터 상태 좀 볼까?”

“그러시죠.”

윤현이 웃옷을 걷었다.

그의 가슴엔 인공적인 코어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응, 자리 잘 잡았네. 역시 적합자일 줄 알았다니까.”

“적합자가 아니면 어떻게 됐던 겁니까?”

“흐흥, 왜? 끝나고 나니까 이제 궁금해졌어?”

“단순한 호기심이었습니다. 대답해 주고 싶지 않으시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어쩔까나….”

“역시 그만두겠습니다. 호기심은 독이 될 거라고 분명 그러셨었죠.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윤현이 옷을 내렸다.

그녀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이거, 기특한걸?”

카운터를 나온 엔비가 어딘가를 향했다.

“따라와. 상으로 궁금증을 해결해 줄 테니까. 이번만 특별히다?”

몇 개의 방을 지난 엔비는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을 열었다.

그 뒤를 도준과 윤현이 따르고 있었다.

안쪽에선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

“이거…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요.”

“동물적인 감각이 생긴 너라면 더 그렇게 느낄지도. 지금이라도 돌아가도 돼. 딱히 봐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섭한 말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야 없죠. 실은 저도 궁금하던 참이었거든요.”

도준이 의지를 다졌다.

“조금 더 들어가야 해. 바닥이 조금 끈적거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최하층까지 내려가자 기다란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의 양쪽엔 쇠창살이 처져 있었는데, 안쪽에 무언가가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게 뭐죠?”

도준이 바깥으로 나온 무언가를 콕 찔렀다.

첫 느낌을 표현하자면 뭐랄까.

익사해 퉁퉁 부은 동물의 유해를 만지는 기분이었다.

“곧 알게 될 거야. 들어가자.”

복도를 쭉 따라간 엔비는 복도 끝 문을 열었다.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 넓은 홀.

홀의 안쪽엔 상당한 덩치를 가진,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람이 여기에?”

“…….”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윤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사람.

지금 무언가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창살 밖으로 삐져나와 있던 바로 그거였다.

“글러트니. 사고 안 치고 잘 있었어?”

“이거 맛있어. 엔비. 이거 맛있어.”

뒤를 돌아본 사내가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 윤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그 이야기, 맥락에 전혀 맞지 않지 않았나?

“그래? 입맛에 맞는다니 다행이네. 한 한 달은 가줬으면 좋겠는데.”

“저… 제가 정말 멍청해서 그러는데, 아까 분명 부적합자를 보여준다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혹시 저분이…?”

“어머,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 귀여운 글러트니한테. 글러트니도 나랑 마찬가지로 팬텀의 간부라고.”

“저, 저분이?!!”

도준이 화들짝 놀랐다.

“엔비, 먹어도 돼?”

“아니, 글러트니. 이건 먹으면 안 돼.”

“알았어. 글러트니, 엔비 말 들어. 맛있는 냄새 나는데도 참아.”

“옳지. 착하네.”

글러트니에게 다가간 엔비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저분은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보면 알잖아. 맛있는 거 먹는 중이지.”

“맛있는 거라면….”

도준이 마른침을 삼켰다.

꿀렁거리는 살점을 집은 글러트니는 한입에 그걸 뜯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이빨에 뜯긴 살점에선 흥건하게 피가 흘러내렸다.

“저게… 부적합자의 모습이란 겁니까?”

윤현이 물었다.

“그래. 저게 부적합자의 모습이야. 살아는 있지만, 더 이상 인간이라곤 볼 수 없지.”

“원하는 걸 손에 넣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냐고 물어봤던 건 단지 의지를 확인하기 위함만은 아니었군요.”

윤현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저게 바로 부적합자의 마지막.

자신의 모습이 됐을지도 모르는 괴물의 모습이었다.

“웁…! 우웨에엑!”

눈앞에 있는 살점의 정체를 들은 도준이 속에 있던 것을 게워냈다.

도저히 역류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아까 봤던 것도, 지금 여기 있는 것도 전부 살아 있는 사람이란 소리 아닌가.

글러트니란 저 사람은 그걸.

그러니까 인육을 먹고 있는 거고.

“컥, 죄송, 죄송합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거친 숨을 몰아쉰 도준이 입가를 닦아냈다.

“괜찮아. 너희를 여기 데려오면서부터 그 정돈 예상했으니까.”

엔비가 어깨를 들썩였다.

“어때? 궁금증은 좀 해결됐어?”

윤현을 바라본 엔비가 물었다.

도준과 달리 이쪽은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럼.”

“팬텀의 간부는 다섯이 더 있다. 그렇게 이해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도준이 눈망울을 깜빡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반응에 윤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머리는 무슨 장식인가 보지? 하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내가 바보지. 바보한테 뭘 바래.”

“이봐이봐이봐, 이래 봬도 내가 너보다 선임이야. 내가 먼저 들어왔고, 내가 먼저 적합자가 됐다고!”

“하아~ 그러셔? 그럼 설명해 줄 테니까 잘 들어. 너라도 인간의 7대 죄악은 들어봤겠지?”

윤현이 한심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7대 죄악? 당연히 알지! 살인하지 말라. 뭐 그런 거 아니야?”

“그건 십계명이고…. 뭐, 됐다. 인간의 7대 죄악이란 건 죄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죄인 7가지 죄악을 규명해 놓은 것으로 분노, 색욕, 식탐, 질투, 탐욕, 나태, 교만 보통은 이렇게 7가지를 뽑지.”

“분노, 색욕…. 그다음 뭐?”

“하아, 됐으니까 그냥 듣기만 해. 그리고 각 죄악을 영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되지. 질투는 엔비. 식탐은 글러트니.”

“엔비? 글러트니? 음? 이 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눈앞에 있잖아. 멍청아.”

“눈앞에? 아!!”

엔비와 눈이 마주친 도준이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의 이름은 엔비와 글러트니.

방금 윤현이 말한 그 죄악의 이름과 똑같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우연이 있나?”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그 뇌 구조가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가명인 게 당연하잖아.”

윤현이 고개를 저었다.

바보 중에도 이런 상바보가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더니 머리까지 핸썸하네. 우리 팬텀에도 드디어 쓸 만한 인재가 들어온 건가?”

엔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맞아. 팬텀의 간부는 나까지 총 7명. 지금은 다들 밖에 나가 있어. 간부도 간부 나름대로 엄청 바쁘거든.”

걸음을 옮긴 엔비가 출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그렇지만 하나는 정정해야겠네. 엔비는 가명이 아닌 내 이름이야. 과거에 뭐라고 불렸건 그건 이제 상관없어. 그게 내 이름이고, 그 이름이 곧 나야.”

“그렇습니까.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후훗, 그럼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고, 슬슬 너희를 부른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네, 좋습니다.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슬슬 첫 임무를 맡아줬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임무 말씀입니까?”

“그래. 보스한테 대강 이야기는 들었지? 우리 일에 대해서.”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팬텀의 주요 임무는 헌터의 습격과 약탈.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

임무엔 그저 무조건 복종할 뿐.

그게 보스에게 들은 조건이었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 임무는 내가 임의로 정해주는 게 보통이지만, 보스한테서 특별히 지시가 하나 내려왔거든.”

“지시 말씀이십니까?”

도준이 물었다.

“그래. 어디 사는 누구 씨가 대담하게도 보스랑 딜을 했다고 하더라고.”

한쪽 눈을 감은 엔비가 윤현을 바라보았다.

“습격의 1순위는 이미 정해두었습니다. 이용주. 그 녀석이 있는 게이트면 어디라도 좋습니다.”

주먹을 움켜쥔 윤현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받은 걸 배로 돌려줄 시간이었다.

* * *

강원도 홍천.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용주가 기지개를 켰다.

해는 아직 중천에 걸려 있었다.

게이트의 입장 가능 시간은 밤 10시~12시 사이였다.

그렇기에 이렇게 일찍 나와 봤자 입장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용주가 이 시간에 움직인 건 혹한의 산지가 표시된 위치 때문.

도로에서 벗어난 위치는 산속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거길 찾겠다는 건 어디 하나 부러질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고 봐도 좋겠지.

“여기 이쯤에서 내려주시면 좋겠는데요.”

택시 한 대를 잡은 용주가 핸드폰을 보였다.

“어디 보자. 응? 여긴 그냥 도로 한복판인데?”

핸드폰을 확인한 택시 기사가 의문을 표했다.

지도상에도 그렇고.

머릿속에 들어 있는 길에도 그렇고, 그 주변엔 숲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거참 신기한 손님도 다 받아보네. 심마니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혹시 심마니야?”

호텔이나 휴양림.

혹은 각종 레저시설을 이용하려는 관광객들은 많이 받아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뭐, 그 비슷한 겁니다.”

용주가 대충 둘러댔다.

“하핫! 젊은 친구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아직 있나 보구만. 하긴, 코인이니 뭐니 하면서 앉아서 생돈 박을 바엔 그쪽도 괜찮은 선택이지. 적어도 날릴 일은 없잖아. 겸사겸사 건강에도 좋고. 근데 여기 뱀 나올 텐데….”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가는 기사 아저씨.

적당히 추임새 정도만 넣은 용주는 퀘스트에 대해 생각했다.

자기장의 땅에서의 자기장.

붉은 사막에서의 더위.

지금까지 경우로 미루어 짐작건대 이번엔 추위가 기본 베이스로 깔리는 시험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넘어야 할 시련은 12개.

뭔진 몰라도 하루 안쪽으로 끝낼 수 있는 분량은 아닐 것이다.

‘기본적인 대비라면 해오긴 했는데 말이지.’

인벤토리를 연 용주는 몇 가지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오래된 패딩과 언젠가 사은품으로 받았던 손난로.

그 외에 기본적인 방한용품 몇 가지.

이런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으리라.

어둠이 내린 산골짜기.

가지고 온 패딩을 돗자리 삼고 있던 용주가 핸드폰 시간을 확인했다.

9시 20분.

10시에 맞춰놓은 알람보다 한참이나 먼저 깨버렸다.

퀘스트가 시작되면 적어도 오늘 밤은 잠을 청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볼 생각이었는데.

선잠이라도 잘 수 있었던 건 고작 30분 남짓한 시간 정도뿐이었다.

딱히 긴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뭔가 조용한 곳에 혼자 있으니 생각이 많았다.

‘C급 게이트에서의 전투도 가능한 수준이었어.’

지난 전투를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되새겨 보았다.

C급 게이트라니.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퀘스트 게이트…. 여길 지날수록 확실히 강해지고 있어.’

강해지고 있음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잡아도 도달해야 할 곳은 높아도 너무 높았다.

이안.

S급 헌터의 강함은 피부로 느끼기 전까지 전혀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놈이 나타난 순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의 강함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고 고요한 바다를.

그런 바다에 파도가 치기 시작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해일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젠장.’

녀석의 그 평온한 얼굴과 목소리가 또 떠올랐다.

S급 헌터도, 길드도, 자신도.

분명 같은 사람들을 잃어버렸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이토록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이쪽은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그 사건에 대해 분명 녀석은 알고 있을 거야. 반드시 추궁해서 밝혀내고야 말겠어. 그날의 진실을.’

하루하루 살기도 급급한 현실이었다.

발악하고 발악해도, 발악하는 게 고작이었다.

지켜야 할 게 남아 있기에 오늘을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게이트에 들어갔을 다른 헌터들.

헌터 기록을 조작한 길드 최고 책임자들.

녀석들에게 품었던 그때의 분노를.

모든 헌터들에게 화살을 돌렸던 그때의 증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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