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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20화 (120/357)

120화

“칫…!”

지상에 착지한 태영이 혀끝을 찼다.

공격의 타이밍과 각도는 분명 완벽했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부유형 게이트 보스 때문이었다.

태영의 움직임을 정확히 쫓은 녀석은 자기보다 2~3배는 거대한 놈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부유형 보스의 회피 기동은 태영의 공격을 무위로 만들었다.

키이잉!

회피와 동시에 날아오는 세 갈래의 섬광.

“월영식 - 적(赤)!”

가로날을 가른 붉은 검기는 언노운의 공격을 상쇄했다.

휘리릭!

시야의 사각을 노린 예나의 검은 두 언노운의 연결 부위를 파고들었다.

회전하는 칼날에 놀란 부유형 보스는 다른 한쪽을 놓쳐 버렸다.

“내가 잡는다!”

“무슨 소리! 녀석은 우리가 침 발라 놨다고! 손댈 생각 하지도 마!”

같은 기회를 잡은 서윤과 병규가 서로 부딪쳤다.

모처럼 생겨났던 절호의 찬스는 그렇게 무산되어 버렸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방해하지 말라고!”

“그러는 너야말로 방해하지 말라고! 호박!”

전장 한복판에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

둘 사이로 파고든 금화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제발, 그만하게! 카오스 게이트에서 뭐 하는 건가!”

“…….”

금화의 목소리에 서윤이 흠칫 놀랐다.

온화하고,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리더! 11시 방향! 적의 지원입니다!”

“5시 방향에도 추가 언노운 발견! 수는 열! 종류는 안드로이드형입니다!”

전투가 한창인 그때.

적의 추가 원군이 도착했다.

‘하는 수 없지.’

“야!”

서윤은 단번에 병규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뭐?! 왜 그러는데? 할 말 있으면 이거 놓고 이야기해!”

놀라면서 동시에 쫀 것 같은 병규의 목소리였다.

“너랑 나 둘 다 게이트 보스는 포기하는 거야.”

“뭐?! 그게 갑자기 무슨…!”

“저 규모의 언노운들이 보스에 더해지면 전투는 엉망이 될 거야. 그 정돈 알고 있겠지?”

“당연하지! 날 뭘로 보고! 난 리더 역할까지 맡을 정도의 실력자라고!”

“난 이제부터 저쪽을 상대하러 갈 거야. 근데 난 네가 나보다 먼저 게이트 보스 쓰러뜨리는 꼴은 못 보겠거든? 그러니 깔끔하게 둘 다 포기하자고. 내가 11시 네가 5시. 오케이?”

“오케이는 무슨! 난 이 팀의 리더라고!”

“그게 뭐? 리더가 꼭 보스를 상대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어?”

“그건… 아니지만, 그게 통상적으로 당연한 거잖아!”

“당연한 거든 뭐든 내 알 바 아니야! 내가 그러기로 했으니까 넌 그냥 따르면 된다고!”

서윤의 기세에 병규가 한발 물러났다.

이런 억지가 세상에 어디 있냐 싶으면서도 뭔가 박력에 압도당해 버렸다.

“E급 주제에 나한테 명령하겠단 거야?! 황당해서 웃음도 안 나온다 야!”

“웃지 마! 웃으라고 한 이야기 아니니까!”

서윤이 멱살을 놓아주었다.

“왜? 쫄려? 너 하나 없으면 게이트 보스 못 잡을까 봐? 그렇게 잘난척하던 C급 헌터들은 그거밖에 안 되는 오합지졸들인가 보지?”

“뭐라고?! 감히 E급 주제에 C급을 무시해? 좋아! 그럼 너랑 나 빠지고, 나머지 중에 누가 게이트 보스를 쓰러뜨리는지로 내기하는 거야! 지는 쪽이 땅에 머리라도 박자고!”

“그래! 바라던 바라고!”

서윤과 병규가 동시에 찢어졌다.

두 사람에겐 각각 한 사람씩의 원군이 추가로 붙었다.

모두 자발적으로 나선 이들이었다.

“멋대로 굴어서 미안.”

“마음에 두었다면, 그걸로 됐네. 지금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세나.”

한숨을 삼킨 금화가 전방을 주시했다.

언노운들이 쏘아대는 원거리 투사체는 자신들을 사정권 안에 두고 있었다.

“모두 눈 감아요!!”

태영의 한마디에 보스를 상대하던 모든 이들이 반응했다.

삐이!!

그와 동시에 터지는 이형 섬광탄.

갑작스러운 섬광에 두 개체는 또 한 번 분리되었다.

“버티! 잡아!”

섬광을 뚫고 달린 버티는 부유형 언노운을 뒤에서 붙잡았다.

보스는 가스를 분출하려고 시도했지만, 더 이상 가스가 나오지 않았다.

나오는 건 그저 바람 빠지는 소리뿐.

완전히 시각을 잃은 듯한 안드로이드형 개체는 도움은커녕 허공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역시, 저 녀석들도 이제 한계인 모양이야!”

녀석들이 지쳤다는 건 놈을 상대하던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다.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고, 서로의 빈틈을 봐주던 협동 플레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느슨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무리 부탁드려도 되겠죠?”

태영과 나란히 달리던 주원이 물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죠.”

미소를 지어 보인 주원은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섬광을 흘려보낸 주원은 양쪽에서 휘어 감기는 날카로운 칼날들을 받아냈다.

힘으로 받아낸 건 아니었다.

이건 녀석의 힘을 유려하게 흘려보낸 결과.

검에 익숙한 자가 아니라면 흉내 낼 수 없는 동작이었다.

주르륵…!

그와 동시에 흘러내리는 언노운의 피.

바닥에 착지한 태영은 안경테에 손을 올렸다.

정수리부터 미간까지 길게 잘린 언노운은 코어의 빛을 잃어버렸다.

“이쪽으로 오잖아?!”

“피, 피해!”

눈먼 돌진에 놀란 두 C급 헌터가 허겁지겁 자리를 이탈했다.

미끄러지듯 놈의 다리 사이를 통과한 용주는 놈의 꼬리 아래를 길게 그어냈다.

게이트 보스를 상대하는 내내 야금야금 크고 작은 상처를 만들어 내던 용주였다.

하나의 상처에서 누적되는 독의 데미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수 개가 되고 수십 개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랑비에 젖다 보면, 결국 흠뻑 젖게 되기 마련이었다.

‘사후 강직!’

휘두르는 꼬리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낸 용주는 왼손을 잡아끌었다.

사라졌다 나타나는 용주의 실루엣.

놈의 머리 위로 수직으로 내리꽂힌 용주는 좀 더 깊숙이 손톱을 찔러 넣었다.

비틀거리며 사방으로 섬광을 쏘아대던 게이트 보스는 이내 주저앉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 인스네어 (Lv.1)

- MP 소모량 15

-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특수한 가스 지대를 일정 시간 동안 형성합니다.

- 가스에 노출되는 시간에 비례에 효과가 증가합니다.

▶ 스팀팩 (Lv.1)

- HP 소모량 15

-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킵니다.

- 속도가 50%만큼 상승합니다.

- 고통에 대해 둔해집니다.

▷ ‘재생’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9 →Lv.10)

▷ ‘물어뜯기’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5 → Lv.6)

▷ ‘할퀴기’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6 → Lv.7)

▷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맹독’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1 → Lv.2)

게이트 보스가 쓰러지자 용주의 앞에 새로운 알림들이 나타났다.

새롭게 발현된 스킬이 2가지나 있었다.

그리고.

쿠구구궁!

두 게이트 보스가 쓰러지자 게이트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승리를 만끽할 새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뭐, 뭐야?”

당황한 헌터들의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저, 저기!!”

가장 먼저 이상을 발견한 예나가 외쳤다.

떠다니던 작은 부유석들이 동력을 잃어버린 듯 추락하고 있었다.

이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헌터들이 딛고 있던 부유석이 입구에서 먼 쪽부터 조각조각 나기 시작했다.

“무… 무너지잖아?!”

“모두 게이트에서 이탈해! 서둘러!”

상황 파악을 끝낸 병규가 지체 없이 외쳤다.

먼저 물러서는 C급 헌터들.

붕괴를 피해 달려가던 주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용주와 태영 두 사람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용주 형?! 어디 가는 거예요?!”

“먼저 가라! 저쪽에 잠시 볼 일이 있으니!”

뒤도 돌아보지 않은 용주는 왼쪽으로 이어진 루트에 올라섰다.

“같은 생각 하실 줄 알았어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그 말도 하실 줄 알았고요.”

입체 기동 장치와 공간 균열의 반지.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으로 무너져 내린 공간을 넘어선 두 사람은 왼쪽 정상에 도착했다.

저 앞에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쪽은 제대로 걷지도 못해 업혀 있었고, 다른 한쪽의 기동력 역시 형편없이 줄어들어 있었다.

저 속도라면 붕괴시간 안에 탈출하지 못할 거란 건 기정사실.

‘황금률.’

두 사람을 따라잡은 용주는 골드를 소모해 들것을 만들어 냈다.

말이 들것이지, 그것보단 관에 더 가까운 생김새였다.

“이건… 스킬 인가요?”

“딴소리 할 시간 있으면 어서 눕히기나 해. 어디 하나 부러져도 여기서 죽는 것보단 나을 테니.”

놀란 헌터를 쏘아본 용주가 이야기했다.

“잠시만요.”

들것에 누운 헌터의 모습을 확인한 태영이 장치를 작동시켰다.

뿜어져 나온 하얀 거미줄은 마치 안전벨트처럼 헌터를 고정했다.

“됐습니다! 갑시다!”

태영의 오케이 사인에 세 헌터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붕괴는 제법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있었다.

* * *

“용주 오빠!!”

포탈을 빠져나온 용주의 귀에 가장 먼저 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그룹으로 나뉜 헌터들은 모두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진짜! 사람 걱정시키고!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로라도 좀 해주란 말이야!”

한 걸음이 달려온 서윤이 용주를 쏘아붙였다.

“살아 계세요?”

들것을 내려놓은 태영이 물었다.

무사하냐거나 괜찮냐고 묻지 않은 건 일부러 그런 거였다.

딱히 무사하거나 괜찮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어떻게든 숨은 붙어 있는 거 같은데, 이집트 파라오들 사후세계에서 등 좀 배기겠어.”

“그런가요.”

핸드폰을 꺼낸 태영이 구급차를 불렀다.

“이야~ 그나저나 그쪽 엄청 잘 싸우던데요? 놀랐다고요.”

먼저 게이트 밖으로 대피했던 한 C급 헌터가 주원에게 다가왔다.

“아까 그 커다란 곰 인형이 이거였어? 굉장한데?”

“대검으로 언노운을 한 번에 두 동강 내는 거 봤어요! 진짜 조선 시대 장군님이 헌터면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니까요?”

물꼬가 트이자 다른 헌터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을 표했다.

“잠깐!”

병규가 외쳤다.

“C급 헌터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지키라고!”

흥분된 분위기를 진정시킨 병규는 마른기침을 했다.

“우리 내기 잊은 건 아니겠지? 어떻게 됐어? 당연히 들어보나 마나 우리가 이겼겠지만.”

“뭐야? 너 그것도 못 본 거야?”

서윤이 대답했다.

“당연하잖아. 그런 난리통이었다고.”

“일대일. 한 마리씩 나눠 잡았어. 내기는 무승부라고,”

“뭐? 무승부?! 거짓말하지 마! 어디서 눈앞에서 밑장을 빼려고?!”

놀란 병규가 다른 두 헌터를 바라보았다.

“딱 말해봐! 당연히 거짓말이지?!”

“아니… 그게….”

“솔직히 무승부라기도 하기도 좀 그렇지 않나 싶다고나 할까.”

헌터들이 눈치를 살폈다.

“당연히 그렇겠지! 다 잡아놓은 거 막타만 톡 치고 무승부라고…!”

“그게 우리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헌터 하나가 겸연쩍게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중에 제대로 활약한 사람은 태영 헌터 정도뿐이었다고요.”

“게다가 막타를 칠 수 있었던 것도 저쪽의 서포팅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고. 결과는 일대일이었지만 기여도로 따지면….”

“…….”

두 사람의 침묵에 병규는 마른침을 삼켰다.

둘의 반응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말도 안 돼. 우린 C급 헌터야! C급 헌터! 어떻게 E급 출신 따위에게!”

가로로 팔을 휘두른 병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그게 사실인걸요.”

“게다가 팀원을 두 명이나 버리고 도망간 리더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애초에 분란을 처음 조장한 사람은 그쪽이었잖아요. 협력했으면 분명 더 쉽게 공략할 수 있었을 텐데.”

“윽…!”

헌터들의 말이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같이 동조했던 이들까지도 화살을 이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상황이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났기에 다른 두 헌터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던 병규였다.

자신의 실수를 인지한 건 카오스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온 직후.

다시 돌아갈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안쪽에서 어떤 위협이 일어날지 몰라 실행에 옮기지 않았었다.

“내기는 무승부로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 특.별.히 그렇게 해줄 테니까.”

팔짱을 낀 서윤이 통쾌한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입장 때와는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두 사람이었다.

뒷걸음질을 치던 병규는 모두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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