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닉네임 좀비헌터-119화 (119/357)

119화

“다들 무사해요?!”

주원이 외쳤다.

온난화로 부서지는 빙하에 올라탄 그런 기분이었다.

“응! 일단은 그런 것 같아!”

예나의 목소리를 확인한 주원은 다른 이들의 상태도 살펴보았다.

5명 모두 뿔뿔이 흩어지긴 했지만, 모두 무사했다.

“숨어 봤자 내 손바닥 안이라고! 이 자식아!”

불규칙하게 형성된 부유석을 타고 오른 서윤이 초록 지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서윤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정비를 하려는 듯한 녀석의 모습이.

푸슈웅!

착지한 지 채 1분도 되지 않은 언노운은 급하게 튀어 올랐다.

“어라?!”

“저건….”

그리고 그 모습에 네 헌터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분명 들어갔을 때 하나였던 녀석의 모습이 셋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놓칠 줄 알고?!”

가스 지대 중심에 선 서윤은 곧장 추격에 나섰다.

하지만 확실히 몸이 둔해졌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곧장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의 속도였다.

노출되는 시간에 비례해 점점 더 느려지는 기분이었다.

모래주머니 같은 걸 차거나 두꺼운 옷을 입어 둔해진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나란 사람 자체가 느려진 그런 느낌이었다.

“이용주! 거기로 가는 놈이 진짜야!!”

생각한 것보다 늦게 가스 지대를 빠져나온 서윤이 외쳤다.

셋 다 진짜인지 어떤지는 솔직히 잘 몰랐다.

하지만 아까 만들었던 상처는 저놈이 지금껏 싸워 왔던 녀석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정면에서 녀석을 맞이한 용주는 점멸을 활용해 순식간에 뒤를 잡았다.

용주의 검은 이미 녀석의 몸속에 반쯤 들어가 있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맹독.’

이윽고 이어지는 용주의 스킬.

‘할퀴기.’

연이어 두 개의 스킬을 사용한 용주의 눈동자가 반응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결괏값과 실제 결괏값이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처음 생각했던 건 상처에서 나온 피를 이용해 녀석에게 꾸준한 데미지를 주면서, 동시에 할퀴기를 사용해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거였다.

하지만 실제 결괏값은 달랐다.

독성을 가지게 된 피가 모여 손톱의 형태를 이루었다.

‘이 두 개의 스킬이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스킬을 중첩해서 사용하면 위력이 올라간다.

이건 그것과는 가닥을 달리하는 방향이었다.

‘아니, 오히려 잘 됐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용주는 언노운을 잡아 찢었다.

상처는 평범하게 할퀸 것과는 달랐다.

상처를 중심으로 주변 세포가 검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출혈이 과도하게 일어났다.

검게 물든 영역은 상처를 따라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푸슝!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언노운은 대량의 가스를 분사하며 간신히 용주를 떼어 냈다.

급하게 위쪽으로 날아가는 게이트 보스.

“어딜 가려고!”

예나의 검이 몇 개의 상처를 추가로 남겼지만, 놈의 도주를 막을 순 없었다.

모두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녀석은 위쪽으로 도주해 버렸다.

‘다른 두 녀석은 어떻게 됐지?’

가스 지대를 벗어난 용주가 다른 두 녀석의 행방을 쫓았다.

금화와 주원을 향해 날아간 두 녀석은 가스 지대만을 남긴 채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젠장! 쫓아가자! 아직 멀리 못 갔어!”

용주가 있는 곳으로 건너온 서윤이 인상을 찌푸렸다.

끝장을 볼 생각이었는데, 이래서야 시간이 더 끌리지 않는가.

눈에 보이는 마지막 부유석을 오른 용주는 사주를 경계했다.

더 이상 위로 올라갈 만한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가 최상층인 모양이었다.

언노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지반 여기저기에는 녀석이 만들어 놓은 가스 지대가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우측에서 또 옵니다! 대비하세요!”

용주의 귓가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있던 네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이건 훨씬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용주의 시선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좌측으로 떨어져 있는 부유석 위에선 전투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태영을 포함한 C급 헌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또 하나의 게이트 보스.

저쪽은 안드로이드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저 녀석들도 아직 처리하진 못한 모양이네. 잘만 하면 먼저 잡을 수 있겠어.”

서윤이 의욕을 불태웠다.

“근데 저 사람들 분명 더 왼쪽 루트로 가지 않았어요? 아무리 봐도 저긴 중앙 루트 같은데.”

주원이 이야기했다.

전투가 한창인 저곳은 아무리 다시 봐도 딱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아마 저쪽을 타고 넘어온 거겠지. 게이트 보스를 쫓아서.”

용주가 한 곳을 가리켰다.

세 루트의 최상부에는 중앙과 이어지는 지형이 형성되어 있었다.

왼쪽에서 중앙으로 가는 것도.

이곳에서 저쪽으로 가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였다.

“근데 아무래도 저쪽은 지원 병력까지 상대하고 있는 모양이구려.”

금화가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아래쪽에서 올라온 언노운 무리가 전투에 난입하고 있었다.

다른 두 루트와 달리 중앙은 언노운들이 클리어되지 않은 상태.

아무래도 그쪽 병력이 몰려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경 꺼! 녀석들이 알아서 하겠지! 잘 나고 잘나신 C급 헌터님들이시잖아?!”

서윤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러나저러나 그건 저쪽 일.

이쪽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녀석은?”

“저기! 저 안에 있어!”

거침없이 돌진한 서윤이 가스 지대 하나로 파고들었다.

서윤을 발견한 언노운은 두 팔을 휘저으며 선공에 나섰지만, 서윤의 움직임은 그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몇 개의 상처를 추가로 선물 받은 언노운은 가스 지대 밖으로 도주했다.

“이상하다. 서윤 언니는 저 안에서도 별반 차이 없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예나가 의아함을 표했다.

“아마 녀석의 스킬 때문일 거다.”

용주가 대답했다.

“스킬?”

“그래. 적이 상처를 입으면 입을수록, 더 많은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녀석은 강해지는 걸 거다. 이안과의 전투에서도 그랬었으니까.”

“그 말인즉슨 적이 약해질수록 강해진다는 거네?”

“그런 셈이지.”

“음… 뭔가 서윤 언니 이미지랑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은 뭔가 서윤의 이미지와 잘 부합됐다.

상처 입은 적을 내려다보며 매도하는 모습이 상당히 잘 어울리는 그녀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100%라고 말하기엔 고개가 갸웃해졌다.

왜냐면 서윤은 강자한테도 강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런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콜록! 야! 거기서!”

매서운 기세로 언노운을 몰아붙이던 서윤이 외쳤다.

정면에서 서윤을 향해 가스를 분사한 언노운은 하늘길을 따라 중앙 루트 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마치 먹물을 뿌리며 도망가는 오징어처럼.

* * *

“쓰읍! 저놈 생각보다 더 팔팔하잖아?!”

병규가 성질을 부렸다.

갑자기 허겁지겁 도망치길래 죽을 때가 다 됐나 싶어 추격해 왔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곤 놈의 상태가 너무 멀쩡했다.

생각한 것 이상의 장기전이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리더! 우측에서 뭔가 옵니다!”

“저건… 게이트 보스인 거 같은데요?!”

“뭐라고?!”

전투를 이어가던 병규의 시선이 우측을 향했다.

확실히 지금껏 상대해 왔던 녀석들과는 다른 녀석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분홍 머리를 찰랑거리는 서윤을 필두로 E급 헌터들이 부유석을 건너오는 게 보였다.

조금 잘 싸우나 싶더라니.

정작 중요한 보스를 놓친 모양이다.

“제가 한번 저지해 보죠. 빈자리 좀 커버해 주시겠습니까?”

대열을 이탈한 태영이 부유형 게이트 보스에게 달려갔다.

촤라락!

하얀 거미줄을 뿜어내는 태영의 기계 장치.

놈의 가슴 쪽에 거미줄을 부착한 태영은 단번에 길이를 줄였다.

발사되듯 튕겨 나간 몸은 거미줄이 끊김과 동시에 정말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죠.’

더 높은 곳에서 녀석을 내려다본 태영은 다시 한번 거미줄을 뿜어냈다.

놈의 등에 부착된 거미줄.

다시 한번 거리를 좁힌 태영은 놈의 옆구리를 베어 냈다.

놈과 교차하는 짧은 순간.

태영의 눈에 한 가지가 들어왔다.

놈의 등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처.

세포가 괴사한 듯한 상처는 녀석이 쫓기듯 이곳으로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키이잉!

태영을 따돌린 게이트 보스는 C급 헌터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으악!”

그리고 그중 한 발의 섬광이 헌터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측면으로 들어온 관통상은 불행하게도 헌터의 양다리 모두를 관통해버렸다.

“이런!”

서둘러 뒤따라온 태영은 강철 케이스를 꺼냈다.

“조금만 참으세요!”

곧장 지혈제와 진통제를 주사한 태영은 그를 업으려 했다.

적어도 여기보단 안전한 곳을 알고 있었다.

“태영 헌터라고 했던가요? 이쪽은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게이트 보스 처리에 집중해주세요.”

태영이 하려던 일을 대신한 한 헌터가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제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을지 모르지만, 당신의 실력을 믿기에 하는 말입니다. 공략에 집중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죠.”

고개를 끄덕인 태영이 케이스를 덮었다.

부상자를 업은 헌터는 최대한 좌측으로 빠지고 있었다.

푸슈웅!

“젠장 이건 또 뭐야?!”

정체 모를 초록 가스에 병규가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부유형 게이트 보스가 다른 한쪽의 등에 올라타 있었다.

“짝짓기라도 하는 거야 뭐야? 기분 나쁘게시리.”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안드로이드형 보스의 돌진 드리프트.

벌써 몇 번이나 본 패턴이기에 병규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런데.

“아니?!”

같은 공격에 같은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가스 방울은 세 개의 가스 지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이드를 파고든 태영은 다시 한번 부유형 보스를 노렸다.

촤락!

빠르고 날카로운 태영의 입체 기동.

하지만 태영의 공격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뒤를 잡은 태영의 공격을 막아선 건 안드로이드형 개체의 꼬리.

“큭!”

힘에 찍어 눌린 태영은 거대한 충돌음과 함께 땅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둘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모양인걸.’

옆으로 굴러 후속타를 피해낸 태영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연속해서 사용한 돌진 드리프트에 헌터들은 혼비백산 흩어지고 있었다.

“연계가 꽤 까다롭잖아, 이거? 그리고 이 기분 나쁜 연기는 대체 뭐야?”

빈틈을 노렸던 병규가 위쪽으로 내던져졌다.

노렸던 곳은 상처 입은 놈의 앞다리였지만, 불규칙한 놈의 움직임 때문에 머리 쪽이 겨눠졌다.

놈의 머리는 집게에 보호를 받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집게의 강도는 가지고 있는 검 이상.

부딪칠 때마다 날이 상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크윽!”

“이거, 갑자기 배로 상대하기 힘들어진 것 같은데?”

전투의 판도는 이쪽이 점점 더 불리해지고 있었다.

두 마리의 게이트 보스는 1+1=2가 아니라 그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뭐야? 그렇게 잘난척하더니, 저거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있던 거야?!”

간신히 착지에 성공한 병규의 귀에 날이 잔뜩 선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C급도 뭐 별거 없네.”

목소리의 주인은 서윤.

가장 먼저 중앙으로 건너온 그녀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다 너희가 자기 일도 못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우린 녀석을 거의 다 끝장내 놨었다고.”

“뭐?! 누가 일을 못 했다는 거야! 애초에 너네가 저 끝에서 정리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잖아?! 이쪽은 날아다닌다고?!”

서윤이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큼! 거, 엄청 땍땍거리네.”

“뭐라고?!”

“둘 다 거기까지만 하게. 전투 중이라네.”

뒤따라온 금화가 두 사람을 제지하고 나섰다.

두 사람이 투덕거리는 잠깐 사이에 뛰쳐나간 용주는 태영과 함께 놈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놈의 약점은 머리입니다. 다만, 머리를 보호하는 집게의 강도가 상당합니다. 저희가 가진 검으론 부러뜨릴 수 없을 겁니다.”

“그러냐?”

가스 지대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진 두 사람이 협공에 나섰다.

게이트 보스의 돌진 드리프트.

정면에서 달려오는 놈을 마주한 용주는 점멸로 짧은 거리를 뛰어넘었다.

뛰어넘은 공간 너머로 보이는 건 놈의 얼굴.

집게를 가볍게 통과한 용주는 놈의 미간에 선명한 상처를 남겼다.

용주의 손톱이 남긴 상처는 괴사하며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었다.

‘아까 봤던 등의 상처는 좀비 헌터 작품이었군요.’

공중에 떠다니는 작은 부유석을 향해 손을 뻗은 태영은 단번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조금 전 용주가 보인 움직임을 태영은 눈으로 좇지 못했다.

‘볼 때마다 이렇게 큰 폭으로 발전하다니.’

아래쪽 보스의 눈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조금은 질투 나는걸요.’

속도에 힘을 실은 태영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오랜만이라곤 믿기지 않는 두 사람의 완벽한 콤비플레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