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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18화 (118/357)

118화

“리더 저쪽 좀 봐봐요!”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던 태영의 귀에 다른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계선 끝에 선 헌터들이 먼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병규와 함께 움직인 태영은 그들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 아래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인원은 총 5명.

낙오자는 한 명도 없는 모양이었다.

“흐음, 뭐야? 벌써 꽁무니 빼고 도망갔을 줄 알았는데, 제법이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멀어서 판단하기 애매하긴 한데, 움직임들도 괜찮아 보이는데요.”

병규의 한마디에 헌터들이 공감을 표했다.

‘아니, 근데 움직이고 있는 게 다섯이 아니라 여섯처럼 보이는데? 내가 잘못 보는 건가?’

‘방금 레이저 사이를 뛰어간 녀석 누구야? 저걸 돌파할 생각을 한다고? 미쳤는데?’

‘제법인 게 아니라. 굉장하잖아. 나보다도 더 잘 싸우는 것 같은데?’

E급 헌터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헌터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느샌가 저쪽 전투에 몰입하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움직임도 움직이었고, 팀플레이 역시 수준급.

자기들이 했던 말과 행동이 있었기에 말로 표현하진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팀 H 멤버들의 활약에 감탄하고 있었다.

투둑!

‘뭐지?’

바로 그때.

조그마한 바위 알갱이가 땅으로 떨어졌다.

뭔가 불길한 기척을 감지한 태영의 시선은 위쪽을 향했다.

그런 태영의 눈에 보이는 건….

“다들 피해요!! 위쪽입니다!”

활짝 열려 있는 두 개의 사출구와.

지금껏 만났던 녀석들과는 격이 다른 크기를 가진 안드로이드형 언노운이었다.

* * *

“뭐야? 방금 엄청 큰 소리 못 들었어?”

놀란 서윤이 물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또렷했던 소리가 하나 있었다.

“아! 저도 들었어요! 뭔가 펑! 하고 터지는 소리였는데?”

주원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아마 게이트 보스와 맞닥뜨린 걸 거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육안으론 확인이 안 되지만.”

“뭐야? 그럼 우리가 역시 한발 늦은 거네? 아으으! 짜증 나!”

용주의 대답에 서윤이 발을 굴렀다.

“아까 거기서 시간만 안 끌렸어도 추월했을 텐데!”

“면목 없습니다요.”

주원의 어깨가 축 처졌다.

“뭐, 됐어! 딱히 추궁하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으니까. 빨리 올라가자! 우리도 꼭대기에 거의 다 왔으니까! 먼저 발견하는 게 아니라 먼저 목 따는 쪽이 이기는 거라고!”

“저희 그런 내기를 했던가요.”

“했는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해! 저놈들 분명 콧대 이렇게 높아져서 우릴 깔볼 거라고! 내가 그 꼴을 두고만 볼 것 같아?!”

앞장선 서윤이 부리나케 계단을 향해 나아갔다.

“저 언니, 지치지도 않나 보네.”

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는 C급 언노운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템포는 보통 카오스 게이트를 공략해 왔을 때보다 배는 빠른 것 같았다.

평소에도 저런 속도로 공략해 나가는 거려나?

“뚜껑 열리면 힘든 것도 잊는 타입이 있지. 서윤 양도 딱 그런 부류일 걸세.”

금화가 대검을 걸쳐 멨다.

“그러는 고구마 아저씨는 괜찮아요? 갑옷에 대검에. 무게로만 쳐도 체력 소모가 장난 아닐 거 같은데.”

“허헛, 나야 체력 빼면 시체인 사람이니 말일세. 게다가 상대법도 알아내지 않았나.”

이곳의 존재하는 언노운은 크게 2종류였다.

그중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언노운을 꼽자면, 그건 부유형 개체.

처음 녀석들을 상대할 때는 예나나 주원이 원거리에서 요격하는 것이 주된 수단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전투를 거치며 녀석들의 비행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놈들이 비행할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한정적.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땅으로 내려와 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걸 알아차린 후에 용주는 하나의 전략을 제안했다.

그건 바로 두 발을 위한 한 발의 후퇴.

부유형 언노운들이 나타나면, 전투를 이어가기보다는 이미 클리어 한 구역으로 물러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

전략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추격 해오던 언노운들은 자리로 돌아가거나, 끝까지 추격하다 추락하듯 착지했다.

돌아간 녀석들도, 착지한 녀석들도, 한동안 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는 마찬가지.

가만히 멈춰 선 표적이 된 녀석들을 이 멤버로 쓰러뜨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뭘 그렇게 꾸물거려? 빨리 안 오면 두고 간다?”

뒤처진 두 사람에게 핀잔을 준 서윤이 다음 부유석으로 폴짝 뛰었다.

‘응?’

그와 동시에 발끝을 타고 전해지는 이질적인 감각.

순간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서윤이었지만, 그걸 눈치챘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어?!”

서윤이 밟고 있던 지축은 급속도로 기울었고.

무게 중심을 잃고 미끄러진 서윤의 몸은 그대로 나락을 향해 추락했다.

“누나!”

놀란 주원이 손을 뻗었지만, 두 사람의 손은 닿지 못했다.

서윤이 발판이라 생각하고 건너갔던 부유석은 부유석이 아니었다.

부유석의 정체는 위장하고 있던 언노운.

크기나 형태가 지금껏 상대해 왔던 부유형 개체와는 완전히 다른 녀석이었다.

“칫!”

혀를 찬 용주는 곧장 아래로 뛰어내렸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닿아라!’

공간 균열의 반지로 거리를 좁힌 용주는 서윤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야! 너?!”

놀란 서윤을 무시한 용주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첨예검을 움켜쥐었다.

남은 골드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만들 수 있을 거다.

‘황금률.’

황금률을 발동한 용주는 금으로 만든 밧줄을 손에 감았다.

다른 한쪽의 끝은 첨예검에 감겨 있었다.

용주의 손을 떠난 첨예검은 직선으로 날아갔고, 어느 언노운의 유해를 꿰뚫었다.

줄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꽉 잡아라.”

하강하던 두 사람의 몸이 포물선을 그렸다.

검이 꽂힌 블록보다 한 블록 아래쪽으로 날아가는 두 사람.

마치 타잔처럼 날아간 용주는 잡고 있던 줄을 놓았다.

힘의 방향을 따라 조금 더 사선으로 날아간 두 사람은 다시금 땅을 맞이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을 지탱해주던 언노운의 유해는 나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경로에 있던 몇 개의 유해를 추가로 길동무 삼아 말이다.

“야! 너…! 괜찮아?!”

토끼 눈이 된 서윤이 물었다.

다행히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꽤 많은 거리를 미끄러진 두 사람이었다.

거친 마찰은 필연적.

그 모든 것들을 지나고서도 서윤은 상처 하나 없었다.

기적이라든가 스킬이라든가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서윤이 다치지 않은 이유는 용주 덕분.

서윤을 꼭 끌어안은 용주는 자신의 등과 어깨로 모든 충격을 받아냈다.

“뭐, 그런 것 같은데.”

팔에 힘을 푼 용주가 이야기했다.

쓸린 부위의 옷은 완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서윤이 언성을 높였다.

팔과 어깨는 물론이거니와 줄을 잡았던 용주의 손까지도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무게가 쏠리면서 줄이 살을 파고 들어갔던 모양이다.

그 고통은 아마 끔찍했었겠지….

“무모하잖아! 너까지 큰일 났으면 어쩌려고?!”

“둘 다 무사하니, 그걸로 된 거 아니겠냐.”

“그건… 그렇지만.”

“그럼 슬슬 비켜주지 그러냐.”

“아…!”

서윤이 그제야 벌떡 일어났다.

자기도 모르게 용주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하고 있었다.

“저… 고마워.”

“감사 인사라면 됐다. 그보다 빨리 돌아가자. 지금쯤 전투가 한창일 거다.”

“응! 그래야지! 아주 박살을 내버리자고!”

마음을 정비한 서윤이 용주의 뒤를 쫓았다.

위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 * *

“그 두 사람이라면 괜찮을 거라네. 믿고 집중하게!”

금화가 힘껏 외쳤다.

공격을 개시한 게이트 보스는 저공비행을 펼치며 위협적으로 공격해오고 있었다.

‘그래. 괜찮을 거야. 진정하자. 집중하는 거야.’

검을 집어넣은 주원이 발도술을 준비했다.

하지만 호흡도 맥박도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머리도 마음도 전혀 말을 따라 주지 않았다.

‘이런…!’

월영식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한 주원이 우측으로 몸을 던졌다.

사선을 그린 푸른 섬광은 지면에 기다란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버티!”

검을 움직여 놈의 동선을 차단한 예나가 외쳤다.

힘껏 뛰어오른 버티는 언노운의 뒤통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후웅!

버티의 손톱이 닿기 바로 직전.

초록색의 가스가 사방으로 분출되었다.

시야를 잃어버린 버티의 공격은 불발.

하늘로 날아오른 가스를 계속 분출하고 있었다.

“저게 뭐야? 방귀?”

“그런 태평한 소리나 할 때야? 온다고!”

허공에 떠 있는 부유석을 들이받은 언노운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프로의 손에 맡겨진 당구공처럼 움직인 언노운은 금화를 향해 내리꽂혔다.

“수라강림!”

스킬을 발동한 금화는 정면에서 언노운을 받아냈다.

금화의 두 다리는 사정없이 뒤로 밀려났지만, 결국 돌진을 완전히 제어해 냈다.

반쯤 구겨진 언노운을 노리는 금화의 대검.

금화의 공격은 예리했고,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결정타를 날리지 못했다.

숨겨두었던 팔을 꺼낸 언노운은 칼날 같은 팔로 대검을 막아섰고, 그 충격에 다시 한번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건…!’

초록 가스에 둘러싸였던 금화가 서둘러 자리를 이탈했다.

“다들 이 가스에 다가가지 말게!”

참고 있던 숨을 내쉰 금화가 외쳤다.

가스의 모습은 보통의 기체와 달랐다.

공기의 흐름에 따라 퍼지지도 않았고, 형태가 흐트러지지도 않았다.

그저 방출됐던 그 모습대로 원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독인 거예요?”

예나가 물었다.

초록 가스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역시 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음… 아니, 보통 생각하는 자연계의 독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네.”

금화가 손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 느꼈던 이질적인 감각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자연계의 독이랑은 다르다니요?”

예나가 또 한 번 물었다.

“신경, 혈액, 세포, 부식, 형태, 마비 독의 형태는 이것보다도 더 다양하지만, 이런 식으로 작용하진 않네.”

“뭔가 설명이 더 어려워진 것 같은데요, 고구마 아저씨.”

“음… 그럼 저길 보게나. 아마 단번에 와닿을 거라네.”

금화가 주원을 가리켰다.

언노운의 공격을 회피한 주원은 곧장 반격을 이어 갔다.

‘어?!’

예나가 이상을 감지한 건 그때였다.

빠르고 날카롭던 주원의 참격이 순간 느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팔이 저 초록 가스를 지나는 순간이었다.

주원의 공격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봤지? 저걸 독이라 규명하는 게 맞는지조차 의심스럽네.”

“움직임이 느려지는 가스라니. 확실히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독이랑은 좀 다른 것 같네요.”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녀석이 기존에 만나 왔던 부유형 개체와 같은 특성을 공유한다면, 무한정 날 수는 없을 거예요. 저 가스도 유한하지 않을까요? 조금씩 후퇴하면서 소모전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용주 오빠랑 서윤 언니랑 합류하는 겸 해서요.”

“같은 생각이라네.”

“그럼 결정 났네요. 주원 오빠!!”

주원을 부른 예나가 손짓을 보냈다.

후퇴 사인을 확인한 주원은 반격보단 회피에 집중했다.

빠르게 움직이던 주원이 힐끔 뒤쪽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처음 만들었던 가스 지대는 빠르게 소멸하고 있었다.

“용주 오빠! 서윤 언니!”

두 블록을 움직인 일행들은 다시 합류할 수 있었다.

푸슈웅!

곧장 따라붙은 언노운은 또 하나의 가스 지대를 만들어 냈다.

“저게 뭐야? 왠지 기분 나쁜데?!”

미간을 좁힌 서윤이 이야기했다.

“움직임을 느리게 만드는 특별한 가스라네. 저 영역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무해하다네.”

“움직임을 느리게? 막 끈적거리거나 하는 거야?”

“아니, 그거랑은 또 다르다네. 아무튼 신경 쓰며 싸우는 게 좋을걸세.”

“오케이. 일단 알았어.”

옆으로 크게 돌아 달려 나간 서윤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감히 나한테 그딴 잔재주를 부렸겠다!”

단번에 뛰어오른 서윤은 놈에게 커다란 상처를 만들었다.

톱날처럼 생긴 서윤의 검은 적을 베는 게 아니라 찢어 냈다.

키잉!

상처를 입은 언노운은 사방으로 섬광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헌터들을 노리는 공격은 아니었다.

놈이 노리는 건 부유석 그 자체.

균열이 생긴 부유석은 여러 크기를 가진 수십 개의 부유석으로 쪼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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