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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15화 (115/357)

115화

* * *

군인들이 지키는 바리케이드를 지난 용주는 카오스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나영의 말대로 두 게이트가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게이트 앞에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서윤이 낯선 사내들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니까! 당장 사과하라고!”

서윤이 언성을 높였다.

“하여튼 귀여워 죽겠구만. 그렇겐 못하겠는데? 우리가 뭐,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크롭컷의 사내가 콧방귀를 뀌었다.

“아, 그러셔? 그럼 한판 뜨든가?”

서윤이 소매를 걷었다.

“아니, 그러니까 누나, 조금만 진정을…!”

서윤의 양어깨를 붙잡은 주원은 서둘러 그녀를 말리고 있었다.

“생긴 건 꼭 호박같이 생겨선, 성격도 완전 호박이네.”

“뭐?! 호박?! 그래 나 호박이다! 그래서 뭐?! 네가 보태준 거라도 있어?!”

“하늘같은 C급 헌터님 앞에서 어디서 고함이야, 고함은? 정말이지 품격 떨어진다. 이래서 E급 헌터는 안 된다니까. 저런 녀석들이 어떻게 C급 임무를 맡았는지, 원.”

“뭐?! 야! 우리 정식으로 받은 거거든?! 우리가 먼저 받은 임무에 끼어든 게 누군데?!”

“누나, 그러니까! 진정…!”

주원이 필사적으로 서윤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만 하시죠. 이미 선을 많이 넘었습니다.”

상황을 보다 못한 한 헌터가 반대쪽을 제지하러 나섰다.

무리로 다가온 용주는 그자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는 다름 아닌 태영이었다.

“아, 생각할수록 열받네, 진짜.”

서윤이 식지 않은 분을 토해냈다.

간신히 두 사람을 떼어낸 주원은 식은땀을 닦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싸우고 있었던 거냐?”

용주가 물었다.

이쪽에서 아직 오지 않은 인원은 금화뿐.

저쪽도 아직 2명 정도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저 병규인지, 법규인지 하는 놈이 자꾸 열 받게 하잖아.”

“우리보고 방해되지나 말라고 그랬어, 오빠. 시험이니 뭐니 잘 모르겠고, 한 번 E급은 영원한 E급이라고. E급 헌터들은 뒤에서 잘 따라오기만 하라고.”

예나가 부연 설명을 했다.

“예나보고 집에서 장난감이나 더 가지고 놀라고 한 녀석도 있었다고. 저 녀석들, 대체 무슨 자격으로 우릴 무시하는 거야?”

아예 등을 돌리고 있던 서윤이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팀 H에 다가온 태영은 안경을 고쳐 쓰고 있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더 빨리 말렸어야 하는 건데. 무례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태영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왜 네가 사과해? 사과해야 할 놈들은 따로 있는데.”

서윤이 날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방관한 것도 명백한 잘못입니다. 그러니 사과드리겠습니다.”

“…칫. 그래도 한 놈 정도는 목 위에 머리를 달고 있었네.”

서윤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네요. 좀비 헌터. 꽤 오랜만이죠?”

용주에게 다가온 태영이 악수를 건넸다.

“그래. 설마 C급 게이트 임무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사정?”

“네. 요 며칠 사이에 D급 게이트가 씨가 말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예비 명단에 이름만 올려달라고 했는데….”

“긴급 소집 팀에 멤버로 끼게 되었다?”

“뭐, 그렇게 됐더라고요. 솔직히 저도 당황스러워요. 뭔가 전산에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D급 헌터인 태영에게 들어온 C급 게이트 공략의 기회.

태영은 당연히 길드에 말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생각이 바뀐 건 용주의 모습이 떠오른 직후.

그의 분전과 그의 성장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더 강해질 수 있을까?

그렇기에 시험해보고 싶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진 모를 이 기회에.

자신의 한계를.

자신의 분투를.

“…그러냐.”

용주가 별다른 감흥 없이 대답했다.

D급 게이트가 씨가 마른 이유.

용주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이형 워프 장치를 사용하는 녀석이라면, 거리와 시간의 제약조차 받지 않겠지.

“그러는 좀비 헌터야말로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시험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어렴풋이 듣긴 했었는데, C급 게이트에 관한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고요.”

“뭐, 이쪽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다고 해두지.”

“훗, 그런가요. 저희 둘, 어쩐지 기묘하게 엮이는 부분이 있네요.”

태영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증상은 좀 괜찮아진 거냐?”

목소리를 낮춘 용주가 물었다.

이전에 그에게 감돌던 불안과 떨림은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네. 덕분에 많이 호전됐어요. 그 후로 게이트도 몇 개 더 클리어했고요.”

태영이 왼쪽 손등을 짚었다.

그의 손에는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장치 하나가 있었다.

직사각형을 베이스로 한 장치의 중심부엔 레코드 같은 원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건?”

“특별히 의뢰해서 만든 물건이에요. 안쪽에 이형 결정체를 가공해 만든 특별한 물건이 들어 있어요.”

“특별한 물건?”

“한번 봐보실래요?”

태영이 바닥에 버려져 있던 빈 캔을 겨눴다.

장치에서 발사된 하얀 거미줄은 낚싯대처럼 캔을 낚아 올렸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요? 실은 이거 좀비 헌터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물건이에요.”

“내 아이디어?”

“지난번 게이트에서 천장을 올랐던 거 기억하시죠?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어요. 사람 하나 정도 무게는 거뜬히 지탱할 수 있죠.”

헌터의 주 무기는 언노운들에게서 나오는 무기였다.

하지만 헌터에 따라선 그것 이외의 장치들을 더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전투를 보조하기 위한 보조 장치.

태영의 이 입체기동 장치도 그런 종류였다.

“뭐야? 두 사람 아는 사이야?”

두 사람을 관찰하던 서윤이 물었다.

“좀비 헌터랑은 전에 몇 번이나 같이 임무를 했었거든요.”

“그래? 너 그럼 이쪽으로 붙어라. 난 저 녀석들이랑 죽어도 같이 움직일 생각 없으니까.”

“아…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은데요.”

태영이 뺨을 긁적였다.

이거, 시작도 하기 전부터 심하게 삐걱대고 있지 않은가.

“저쪽에서 나온 이야기는 어땠지?”

용주가 물었다.

“리더를 포함한 주류 의견은 우리끼리… 그러니까 C급 헌터끼리 일을 처리하잔 거였어요. 여러분을 전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했죠. 아마 저도 포함일 거고요.”

“내 그럴 줄 알았어. 잘됐네. 서로 따로 움직이자고. 누가 먼저 게이트 보스 목 따는지 내기라도 할까? 진 쪽이 신발이라도 핥아주는 걸로.”

서윤이 도발하듯 이야기했다.

“언니 진짜 제대로 열 받았나 보네. 그치, 버티야?”

예나가 버티를 끌어안았다.

서윤의 성질이야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당황스러움의 정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

S급 헌터한테도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자신 없는걸요. 적어도 이쪽에 한 사람의 전력은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요. 질 내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죠.”

포켓에 넣어두었던 강철 케이스를 꺼낸 태영은 안에 있는 약품들을 확인했다.

“그러는 여러분의 주류 의견은 어떤가요? 역시 합동 전선은 그른 걸까요?”

“강한 반대가 있다면,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쪽에서 우릴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렇게 될 테고.”

용주가 대답했다.

“그거 아쉽네요. 아무리 급조된 공동 전선이라도 경쟁하기보단 함께함이 유익할 텐데.”

C급 헌터들을 바라보던 태영이 케이스를 집어넣었다.

C급과 E급.

이렇게 출신 성분이 다른 두 팀이 같은 게이트에 배정된 경우는 태영으로서도 겪어본 적 없는 케이스였다.

두 팀의 의견이 일치하거나, 두 팀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황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테지만, 지금으로선 양쪽 모두 무리가 있어 보였다.

잘못이라면 100% 이쪽에 있었다.

저렇게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무시하고 폄훼하는데 섞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 번 더 설득은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긍정적으로 다시 검토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네요.”

“그랬다간 너 또 개무시당할 걸.”

서윤이 대답했다.

“어쩔 수 없죠. 괜찮습니다. 제 걱정이라면 안 해주셔도 됩니다.”

“거, 걱정은 누가 걱정했다고! 아무튼! 저놈들이 엎드려서 싹싹 비는 거 아니면 어림도 없어.”

서윤이 고개를 돌렸다.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인 태영은 무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 * *

“꼬맹이에, 호박에, 코스플레이어. 거기에 양아치 2명까지. 아주 환장의 파티 납셨네. 아~주 신기한 구성이야.”

자리에 모인 팀 H의 멤버를 보던 병규가 코웃음을 쳤다.

그의 노골적인 무시에 절반 정도의 헌터들은 호응했고, 나머지는 살살 눈치를 보다 그쪽으로 붙는 분위기였다.

태영 정도만 제외하고 말이다.

“저 자식이 또….”

“우리 쪽 인원은 다 모였다. 보아하니 그쪽도 그런 것 같은데.”

서윤의 앞을 가로막은 용주가 이야기했다.

“뭐야? 네가 그 팀의 리더인가 보지?”

“아니. 난 그냥 목소리를 내러 나왔을 뿐이다. 여기 리더는 없어.”

“후후, 뭐야? 그 팀은 무슨 고대 그리스라도 되나 보지? 광장에서 토론이라도 하게?”

“뭐라고?!”

서윤이 즉각 반발했다.

병규에게 동조한 헌터들은 비웃음을 더하고 있었다.

“E급 출신 헌터들은 잘 모르나 본데, 카오스 게이트 공략이란 건 말이야, 리더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어때? 두 손 모으고 ‘잘못했어요’라고 하면 내가 너희까지 안고 가 줄 수도 있긴 한데.”

“베~ 죽어도 사절이거든.”

애교살에 손을 올린 서윤이 혓바닥을 내밀었다.

“그만하시죠. 같은 카오스 게이트를 공략할 헌터끼리 분란을 만드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태영이 병규를 제지하기 위해 나섰다.

“또 그 소리. 가만 보니까 저쪽이랑 친분이 좀 있는가 보던데, 왜? 아예 저쪽으로 넘어가 버리지 그래? 오히려 저쪽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병규가 비웃음을 날렸다.

“이미 배정된 팀입니다. 바꾸고 싶다고 현장에서 임의로 막 바꿔도 된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속으론 E급 냄새 나는 곳이 싫어서 그런 거지? D급의 자존심은 있나 봐?”

“…그만하죠. 더 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뿐입니다.”

태영이 말을 아꼈다.

“그래도 말은 똑바로 하자고. 함께 공략하는 게 아니지. 저쪽이 얹혀 있는 거라고.”

“뭐?! 야, 너희 여기 가만히 있어! 우리끼리 해결할 거니까!”

“음~ 어디서 호박 냄새가 나는 것 같네. 그것도 썩은 호박. 기분 탓인가? 음하하핫!”

병규가 약간은 느끼한 웃음을 선보였다.

이빨까지 드러낸 서윤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거기 호박이랑 그리스 시민들, 토론하면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고. C급 헌터님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아! 왠지 모를 D급도 하나 껴있지만 신경 쓰지 마! 음하핫!”

손을 휘휘 저은 병규가 카오스 게이트에 가장 먼저 진입했다.

한숨을 내쉰 태영은 용주 일행을 향해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태영마저 사라진 게이트 입구엔 팀 H의 다섯 명뿐이었다.

“아아~! 저 자식을 어떻게 하지?!”

서윤이 머리를 박박 긁었다.

도무지 화가 진정되지 않았다.

자신들에 더해서 저기 저쪽의 유일한 정상인까지 싸잡아 비웃고 있지 않은가.

“정식으로 받은 임무고, 우리가 먼저 받은 임무인데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건데?! 지들이 뭐라도 돼? 지들이 뭐라도 되냐고!!”

“마음은 이해하네만, 아예 상종을 하지 말게.”

금화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니! 저쪽이 계속 먼저 시비를 걸잖아!”

“서윤 양의 그 반응 때문에라도 더 그러는 걸 걸세. 딱 어린 애들 수준의 장난이지.”

“그래그래, 누나. 조금만 릴렉스. 그러다 머리에서 김 나오겠어요.”

대화에 가세한 주원이 서윤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첫 임무부터 아주 신고식이 거하네. 안 그래, 오빠?”

용주를 올려다본 예나가 이야기했다.

무시야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패거리로 싸잡혀서 당하는 무시는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일단은 들어가자. 여기서 이러고 있어 봤자 해결되는 것도 없으니.”

앞장선 용주는 카오스 게이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익숙할 터인 카오스 게이트 내부의 모습은.

용주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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