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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14화 (114/357)

114화

* * *

“이거, 놀이기구 하나 타려다가 지치겠는데요.”

긴 대기 줄 사이에 멈춰 서 있던 은정이 이야기했다.

못해도 30분은 기다린 것 같은데, 아직도 입장 줄이었다.

“줄 길어도 이것부터 타고 싶다며.”

“그야 지금 못 타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할 테니까요.”

고개를 든 은정의 눈에 인공 터널을 빠져나온 롤러코스터가 보였다.

호수 위로 떨어진 롤러코스터는 급회전하며 다시 사라져 버렸다.

비명만 남긴 채 말이다.

“우리 아까 찍은 사진들이나 볼래요?”

고양이 머리띠를 한 은정이 스마트폰 화면을 넘겼다.

입구와 캐릭터 샵.

성이 보이는 다리와 솜사탕 가게.

분명 다른 사진들이었건만, 용주의 사진은 전체적으로 다 비슷한 느낌이었다.

“용주 씨 진짜 한결같네요. 마네킹이랑 찍은 것도 아니고.”

레일을 따라 기쁨의 비명이 또 한 번 들려왔다.

“꺄아아악!!”

그리고 그 비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일그러졌다.

‘뭐지?’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선 자연스럽게 비명이 사라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동굴 안쪽에선 누군가의 비명이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다급하게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용주 씨, 방금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뭔가 싸한 기분이 든 은정이 물었다.

“안내 방송 드립니다. ‘제트’ 놀이기구에 이슈가 발생해 일시적으로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원활한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흘러나오는 안내문.

생각이 확신이 된 용주는 은정의 팔을 붙잡았다.

“용주 씨?”

“미안하지만, 같이 뭐 좀 확인해줘야겠다. 내 예감이 맞는다면, 나보단 네가 더 적임자일 테니까.”

“적임자….”

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정의 의사를 확인한 용주는 단번에 은정을 안아 들었다.

“꺅!”

깜짝 놀란 은정이 본능적으로 용주의 목을 껴안았다.

“꽉 잡아라.”

펜스를 밟은 용주는 단번에 레일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저 사람 왜 저래?!”

“세상에! 미친 거 아니야?!”

용주의 돌발 행동에 비명에 가까운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물에 젖은 레일을 달리던 용주는 반대편 레일로 도약했다.

저 앞에 보였다.

레일의 시작임과 동시에 끝인 지점이.

그리고 그곳엔.

우왕좌왕하는 직원들과 울고 있는 한 사람.

그리고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다급하게 어딘가로 끌고 가려는 직원들이 있었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레일을 타고 나타난 용주에게 직원이 호통을 쳤다.

“의사입니다. 물러서세요!”

사람을 질질 끌고 가던 직원들을 막아선 은정이 단호하게 외쳤다.

곧장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은정은 심폐소생을 시도하고 있었다.

“구급차는 불렀나요?!”

은정이 다급하게 물었다.

“의료팀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구급차는 불렀냐고 물었습니다!!”

은정이 언성을 높였다.

“의료팀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의료팀의 상의를 거쳐, 상부에 보고되고, 상부의 허가가 떨어지면 그 후에….”

“그럼 너무 늦는다고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용주는 핸드폰을 꺼냈다.

“아! 지금 그러시면 안 됩니다!”

용주가 핸드폰을 꺼내자마자 직원들이 달려들었다.

“매뉴얼대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혼선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을 시 손해 배상이 청구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 다른 이용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대응했던 모양이다.

“뭐, 그러시든가.”

협박에 가까운 직원들의 만류에서 콧방귀 하나 끼지 않은 용주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말이 통하지 않자 몇몇 직원들은 힘으로 핸드폰을 빼앗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빼앗을 수 없었다.

힘, 속도, 기술.

모든 면에서 용주는 그들을 웃돌고 있었다.

* * *

“정말 잊지 못할 하루네요. 여러 의미로요.”

벤치에 앉은 은정이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은 호수엔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뭐, 그렇겠지. 설마 여기까지 와서 응급 환자랑 마주칠 줄은 몰랐을 테니까.”

나란히 앉은 용주가 마찬가지로 코코아를 마셨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심장 박동은 돌아와 있었다고 한다.

은정이 아니었다면, AED가 도착하는 것도 훨씬 뒤로 밀려났었겠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응급 환자를 눈앞에 두고 덮기에만 바빠선…!”

은정이 발을 굴렀다.

적어도 놀 때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또 떠오르고 말았다.

진짜 의사 맞냐느니 그런 추궁이나 받고 말이다.

“용주 씨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설마 그런 식으로 가실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요.”

분노를 가라앉힌 은정이 히죽 웃어 보였다.

레일을 그렇게 달려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뭐, 그편이 제일 빠를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정작 없었으면 큰일 났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잖아.”

코코아를 한 모금 더 마신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형형색색의 불이 들어온 호수에서 분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슬슬 돌아갈까?”

“그럴까요?”

놀이기구도 조금 아쉬운 정도로는 탔고.

퍼레이드도 봤고, 같이 밥도 먹었고.

하려고 계획했던 건 그래도 이 정도면 다 하지 않았나 싶었다.

‘아!’

자리에서 일어난 은정이 자리에 멈춰 섰다.

한 가지.

아직 한 가지 하지 않은 게 있었다.

“용주 씨,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들르지 않을래요?”

“한 군데?”

“네! 아침에 들렀던 곳이긴 한데 밤에는 또 다르거든요.”

뒷짐을 진 은정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그러시든가.”

“힛! 그럼 가요.”

용주의 손을 붙잡은 은정이 앞장섰다.

단둘이 놀러 온 남녀라면 누구라도 찍는 포토존이 하나 있었다.

거기라면.

이 일정의 마무리로 가장 잘 어울리겠지.

“여기예요! 여기서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어요.”

은정의 손에 이끌린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환하게 불이 들어온 성의 모습이 보였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그런 풍경이었다.

“용주 씨, 조금만 앞으로 나와 봐요. 치사하게. 저만 얼굴 크게 나오잖아요.”

화면을 보던 은정이 이야기했다.

은정의 이야기에 걸음을 옮긴 용주는 은정의 어깨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럼 된 거냐.”

“네. 그럼….”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을 돌아보았던 은정이 화들짝 놀랐다.

하마터면 입술이 닿을 뻔했다.

화면상으론 이 정도로 가깝게 보이지 않았었는데….

“아! 저, 저기요!”

두 사람의 거리가 잠시 벌어진 그때.

근처에 있던 한 커플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핸드폰을 보며 한참을 꽁냥거리던 두 사람이었다.

“아… 사진 찍어드릴까요?”

그들이 할 말을 예측한 은정이 먼저 물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혹시 견냥 커플 맞나 싶어서요.”

“견냥 커플?”

은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점심 때쯤 제트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거기 구급차 왔을 때쯤에요.”

“아… 그때쯤이면 있긴 했는데….”

“봐봐! 내가 맞을 거라고 그랬잖아.”

여자친구 쪽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저… 거기 있긴 했는데요, 아무래도 딴 사람이랑 착각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견냥 커플이란 거, 저흰 지금 처음 들어봤거든요.”

용주의 눈치를 살핀 은정이 뺨을 긁적였다.

“그거야 뭐, 태그 만든 누군가 만든 이름일 테니까요.”

히죽 웃어 보인 여자가 핸드폰을 보였다.

“……!”

핸드폰 속 사진을 확인한 은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롤러코스터 트랙을 가로지르는 두 사람.

사진 속 인물들은 분명 자신들이었다.

“이런 게 대체 언제….”

“견냥! 강아지 머리띠를 남자랑 고양이 머리띠를 한 여자. 그렇게 해서 붙인 이름인 것 같아요. 보면서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의감도 넘치는데 능력도 되고. 잘생기고 예쁘기까지. 너무 잘 어울리세요.”

“아니… 저흰 그런 관계가….”

당황한 은정이 말을 더듬었다.

저런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었다.

그것도 저런 이름을 달고.

“사진 찍으려고 하셨죠? 괜찮다면 제가 찍어드려도 될까요? 이래 봬도 저 사진작가거든요.”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아… 그럼 몇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잠시 망설이던 은정이 핸드폰을 건넸다.

“물론이에요! 오히려 두 분 같은 모델을 렌즈 안에 담을 수 있어 영광인 걸요.”

“자~ 그럼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좋아요. 다음~!”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은 여자가 손을 내렸다.

“됐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요. 조금 다른 포즈로 찍어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계속 똑같은 자세잖아요. 남자친구분은 전혀 웃지도 않으시고.”

“아하하. 사진 찍을 때 원래 좀 굳거든요. 표정은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으니까.”

“그런가요? 그럼 하트 만들어볼까요? 하트?”

여자의 제안에 은정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이런 거요.”

한 손을 머리 위로 든 여자가 반쪽짜리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아….”

곤란함을 머금은 은정이 용주의 눈치를 살폈다.

포커페이스의 용주는 딱히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저 용주 씨, 어떻게 할래요? 딱히 안 하셔도 상관없는데, 저희 그런 사이도 아니고….”

“사진이야 네가 정하는 거지. 계속 그래 왔잖아.”

“…….”

용주의 대답에 은정은 결심을 굳혔다.

“저 찍고 싶은 다른 구도가 생각났는데, 그걸로 한 장만 찍어주시겠어요?”

“네. 그럼요.”

“용주 씨, 제 쪽 보고 가만히 계셔 보실래요? 가만히 있으셔야 해요?”

은정이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용주와 마주한 은정은 한 걸음 더 그에게 다가갔다.

까치발을 들어 올린 두 사람의 입술은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쉬웅~ 펑!!

그와 동시에 쏘아 올려진 폭죽.

핸드폰에 담긴 그림 같은 풍경에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

폭죽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은정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당황하고 긴장한 용주의 얼굴.

그걸 애써 부정하고 있는 저 얼굴을 본 것만으로 지금은 족했다.

* * *

“오빠, 어땠어?”

현관이 열리자마자 뛰어나온 예은이 물었다.

호기심 가득한 그녀의 눈망울이었다.

“어땠냐니?”

“놀이공원 말이야! 누구랑 갔다 왔어?”

“안 갔다 왔다는 선택지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신발을 정리한 용주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응? 아니야. 그런 선택지는 없다고.”

“엄청 자신만만하네.”

“그거야….”

핸드폰을 꺼낸 예은이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확인한 용주는 머리 위를 더듬었다.

강아지 머리띠가 아직도 거기 있었다.

‘완전 잊고 있었군….’

“에에~ 왜 조금만 더 쓰고 있지. 귀여웠는데.”

머리띠를 벗는 용주에게 예은이 아쉬움을 표했다.

오빠의 그런 모습,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저녁은?”

“알아서 잘 해결했지롱. 설거지까지 완벽.”

“잘했네.”

예은의 머리에 손을 올린 용주가 예은을 지나치려 했다.

“어헛! 어디서 밑장을 빼려고! 누구랑 갔다 왔냐니까~?”

“…….”

자연스럽게 넘어가려던 용주의 계획은 실패였다.

지이잉!

그때 울린 핸드폰 진동.

용주는 기다려보라는 손짓을 보냈다.

“전화 받았다.”

“이용주 헌터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긴급하게 전달할 사항이 있어 연락을 드렸습니다.”

연락을 걸어온 이는 나영이었다.

“무슨 일이지?”

“그 전에 헌터 시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말은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영 언니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더군요.”

“뭐, 그래. 고맙게 받지. 그래서 전달사항이란 건?”

“팀 H의 이름으로 받은 C급 게이트 임무. 거기에 관한 것입니다.”

“…….”

용주가 눈썹을 기울였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해당 게이트와 교집합을 이룬 또 다른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뭐라고?”

“매우 희소한 게이트 형태입니다. 지금까지 관측된 게이트들로 미루어보면 위험도는 C급 이상. 게이트의 교집합 부분에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 구축되며, 그곳에 게이트 보스와 언노운이 집중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이트 보스도 그럼 한 마리가 아니란 소린가?”

“네. 게이트를 닫기 위해 처리해야 하는 보스는 총 2마리. 두 게이트가 합쳐진 만큼 언노운의 종류도 훨씬 다양할 겁니다.”

“다른 녀석들에게도 간 정보인 거냐?”

“각 지부에서 전달하기로 했으니, 지금쯤 연락이 닿았을 겁니다.”

“…그러냐.”

“전달 사항은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 더?”

“게이트의 위험도가 증가한 만큼 다른 C급 헌터들과의 공동 전선으로 토벌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러냐?”

“네. 임무 시작 시각은 팀 H와 같은 시각으로 공지되었으니, 게이트 앞에서 만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인원은 총 7명. 리더는 ‘차병규’ 헌터이십니다.”

“그런가. 일단은 알겠다. 전해줘서 고맙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 참! 일전에 관측되었던 게이트의 언노운은 ‘부유형’ 개체라고 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겠습니다.”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그럼 좋은 밤 되십시오. 건투를 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용주는 액정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팀 단위로 받은 첫 임무에서부터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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