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뭐야? 오빠, 갑자기 왜 그래?”
“조커 형한테 안부 연락 한다는 게 깜빡하고 있었어! 예나야, 미안한데 조커 형한테 전화 좀 걸어줄 수 있을까?”
“조커…한테?”
“응! 우릴 그렇게나 도와주고 챙겨줬는데, 결국 마지막에 혼자만 불합격당해 버렸잖아.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예의잖아.”
“아… 응! 잠깐만!”
핸드폰을 연 예나는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단순히 전화를 거는 거라기엔 좀 길고 바쁜 동작이었다.
“아! 여보세요?! 조커… 오빠? 아니 다른 게 아니고, 꼭 통화해야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응. 응. 맞아. 그럼 바꿔줄게.”
예나가 핸드폰을 건넸다.
화면엔 ‘조커’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조커 형! 형, 어디 크게 다치진 않으셨어요?”
“그럼. 아주 멀쩡해.”
“아, 그거 다행이에요. 형 덕분에 저희 합격했어요. 미안하고 고맙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생각해주니 고맙네. 합격 축하해. 너희라면 할 줄 알았어.”
“길드에 한번 건의라도 해볼까요? 계속 같이 있었는데 형만 탈락한 건 좀….”
“아니야, 소년. 그럴 필요 없어. 탈락한 건 탈락한 거. 그간 뭘 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렇지만….”
“마술사는 말이야, 소년. 언젠가 무대를 떠나게 되어 있어. 박수 속에 떠날 수 있는 건 마술사에게 있어 최고의 행복이지. 그러니 괜찮아.”
“…….”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내가 마법을 하나 걸어 볼까? 마음이 편해지는 마법.”
“마법이요? 마술이 아니라?”
“그래. 마법이야. 더 높은 곳을 향해 날갯짓을 해봐 소년. 너의 하늘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면 분명 내가 건 마법을 볼 수 있을 거야.”
“더 높은 곳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린 주원은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통화는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 * *
햇빛이 들지 않는 외진 골목길.
“응. 이번주 일정은 다 취소야. 응. 파티고 뭐고 다 취소해. 그럴 기분 아니니까.”
통화를 종료한 윤현이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철제 쓰레기통은 쓰레기를 뿌리며 뒹굴고 있었다.
화가 또 치밀어 올랐다.
그때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이용주…. 서윤…. 잘도 날 그렇게 만들었겠다.”
녀석들의 합격 소식은 들었다.
예상대로 그 그룹에 속해 있던 사람들만이 최종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
거기서 그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명단엔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냥 이렇게 당하고만은 못 넘어가. 후회하게 해주겠어. 반드시! 반드시 말이야!”
윤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탈락 직후에 날아온 발신인 불명의 메시지.
그게 윤현이 여기 있는 이유였다.
“역시 나와 있을 줄 알았어, 아이돌 양반.”
뚜벅거리는 발소리에 윤현은 고개를 돌렸다.
코너를 돌아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까마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사내는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가면 아래에 있는 얼굴은.
윤현이 아는 얼굴이었다.
“김도준…. 설마 당신이 보낸 메시지였을 줄은 몰랐는데.”
김도준.
이 사람은 이전에 있었던 헌터 시험에서 A급 헌터인 박형만에게 항의하다 호되게 당한 이력이 있는 헌터였다.
1차 시험에서 계속 선두를 달리던, 체력 하나는 끝내주던 헌터였지.
생각이라곤 없는 바보기도 했고.
“여기 나왔다는 건 제안에 혹했다는 이야기. 맞지?”
“이야기만 한번 들어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모든 결정은 이쪽에서 합니다.”
“그래. 합리적인 너라면 그렇게 말할 거라고 하더라.”
“하더라? 누군가 더 있다는 말투군요.”
“흐흐, 그건 차차 알게 될 거야. 너무 급하게 굴지 말라고.”
도준이 대답을 얼버무렸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 가면은 또 뭡니까? 그 메시지 내용은 또 뭐고요.”
“워워…. 진정한 아이돌 양반. 보다시피 내 입은 하나뿐이라고.”
도준이 히죽 웃어 보였다.
“그 문자, 실은 내가 보낸 게 아니야.”
“아니라고?”
“그래. 나도 명령을 받아서 온 거거든. 그 메시지 역시도 나보다 높은 사람에 의한 거. 축하해. 넌 선택받은 거야.”
“선택?”
윤현이 눈썹을 기울였다.
대화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가면이 뭐냐고 물어봤지? 단순한 장난은 아니야. 이거, 우리의 상징 같은 거라고.”
“정말이지. 말 하나 끝내주게 못하시는군요. 그딴 식으로밖에 설명 못 하는 겁니까?”
“이봐이봐이봐, 격식 차릴 필요 없어, 아이돌 양반. 탈락한 사람끼리 왜 이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편하게 하라고. 그편이 나도 편하니까. 여기 우리 말곤 아무도 없어.”
핸드폰을 꺼낸 도준이 보란 듯이 전원을 꺼 보였다.
“몸수색해 보고 싶으면 해봐도 돼. 도청 같은 거 전혀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뭐 저도 좀 더 편하게 하겠습니다.”
도준의 도발에 윤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빼먹지 말고 말 제대로 해, 이 빡대가리야. 안 그래도 지금 기분 개 더러우니까.”
눈을 내리깐 윤현이 필터링을 걷어 냈다.
180도 변한 윤현의 태도에 도준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후하하핫! 말 잘하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묻는 말에나 대답해.”
“이건 우리 ‘팬텀’의 상징이야. 넌 우리 팬텀에게 선택받은 거고. 나처럼!”
“팬텀?”
“헌터 길드에선 우릴 ‘까마귀’라고 부른다던데, 까마귀가 뭐야, 까마귀가.”
도준이 가면을 머리 위에 이었다.
“어느 쪽이든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당연하지. 우리 같은… 아니, 너희 같은 허섭스레기 헌터들이 들어도 될 만한 정보가 아니니까.”
“뭐라고?!”
윤현이 격하게 반응했다.
“다른 설명 전에 우선 이것 좀 볼래? 분명 대화에 도움이 될 거야.”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도준이 왼쪽 손등을 보였다.
손톱을 세운 도준은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손등을 긁어 내렸다.
“더 비스트(The Beast)”
이윽고 시작된 그의 변화.
회색빛으로 변한 그의 얼굴은 기괴하게 뒤틀렸고, 몸집은 점점 부풀었다.
손톱은 크고 날카롭게 자라났고, 머리엔 한 쌍의 뿔이 자라났다.
“…….”
놀란 윤현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칼집에 손을 올렸다.
눈앞에 있는 건 괴수.
도준은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진정해, 아이돌 양반. 모습은 이래도 정신은 평소보다 더 멀쩡하니까.”
“그 모습은 뭐냐….”
경계심을 풀지 않은 윤현이 물었다.
“스킬. 그렇게 말하면 단번에 알아듣겠지.”
“스킬이라고?! 너 그런 것도 가지고 있던 거냐?!”
“아니야. 난 스킬의 시옷 자도 모르던 사람이었다고. 아, 영어니까 S인가? 아무튼.”
“그럼 뭐냐? 그사이에 상위 등급의 이형 결정체라도 손에 넣었단 거냐?”
“이런이런이런, 아이돌 양반. 그렇게 똑똑하게 굴더니만 이런 쪽에선 머리가 영 안 돌아가나 보네.”
“뭐라고?!”
“네가 받았던 문자. 잘 생각해 보라고. 힘, 원했었잖아. 원하잖아?”
“문자….”
윤현이 그때 받았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이형 결정체 한두 개로 스킬 익혀 봤자야. 너의 그릇은 정해져 있어. 아무리 좋은 걸 담아도 넘칠 뿐이라고.”
도준이 윤현을 끼고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우리 보스와 함께라면 너도 달라질 수 있어. 더 강하게, 더 새롭게 태어나는 거야.”
“…….”
“진 각성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지. 평생이 지나도 안 올 수도 있고. 하지만 팬텀은 달라. 힘은 눈앞에 있어. 잡기만 하면 된다고. 이 힘이면 널 바보 취급 한 녀석들에게 한 방 먹여주고도 남지 않겠어?”
싱!
망설이던 윤현이 갑작스럽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칼끝은 도준의 목을 향해 있었다.
“네 말을 다 신뢰하진 않는다.”
“그거 유감이군그래.”
“하지만 너희 보스란 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안내해라. 결정은 그 뒤에 하겠다.”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도준이 작은 결정을 던지자 차원이 일그러졌다.
“이형 워프 장치. 그렇게 부르는 물건이라더군.”
놀란 윤현에게 도준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
일렁거리는 포탈을 잠시 바라보던 윤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을 집어삼킨 포탈의 모습은 종적을 감추었다.
* * *
“후우.”
침대에 누워 있던 용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적된 피로감이 상당했다.
‘어찌어찌 급한 불은 껐네, 그래도.’
용주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몇 개 등록되어 있지 않았던 연락처의 번호 수가 거의 2배가 되어 있었다.
‘C급 게이트 임무는 앞으로 이틀 뒤…. 내일 하루 정도는 쉴 수 있겠군.’
메뉴창을 띄운 용주는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다.
‘혹한의 산지’ 퀘스트.
잠시 미뤄뒀었던 퀘스트와 이젠 마주해야 할 때였다.
지도가 가리키는 퀘스트 지역은 강원도 홍천.
춥기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지역이었다.
교통편으로 이용할 만한 수단은 버스 정도.
12일이란 시간이 주어졌었기에 시간이라면 아직 있었다.
‘12개의 시련이라니, 무슨 헤라클레스도 아니고.’
안에서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쉽게 예측이 안 되었다.
다만 시련이 12개나 된다는 건 단기간에 끝나진 않을 거라는 소리겠지.
뭐가 됐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퀘스트….’
머릿속에 이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S급 헌터.
그를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묻지 못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고 싶다.
그렇기 위해선 하나라도 더 많은 퀘스트를 진행해야 했다.
똑똑!
“오빠!”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용주의 귀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 들어와도 돼.”
용주가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고 들어온 예은은 발을 동동 굴렀다.
“있잖아! 큰일 났어! 큰일!”
“큰일? 왜? 무슨 일인데?”
덩달아 놀란 용주가 물었다.
“아까 외식한 다음에 장 보면서 쿠폰 받았었잖아.”
“어… 어. 그랬지.”
“생각해 보니까 저번에 받은 쿠폰이 있어서 오늘 긁어봤거든?!”
“어. 응.”
“근데 무려 3등 상이 당첨됐어! 놀이동산 무료이용권 커플권!”
“3등? 그런 날도 있네. 나중에 친구랑 갔다 와. 스트레스도 풀 겸. 공부도 좋지만, 노는 것도 중요하다.”
용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라길래 뭔가 했더니만, 생각만큼 큰일은 아니었다.
“아니! 그게 있잖아! 여기 구석에 쪼그맣게 적혀 있더라고. ‘해당 상품은 이벤트 상품으로 기간이 지나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예은이 쿠폰을 보였다.
“교환 기간은 내일까지야! 사용 기간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오빠. 혹시 누구 같이 갈 사람 없어?”
“어? 나?!”
당황한 용주가 물었다.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면, 분명 뿜었을 것이다.
“응! 난 내일 학교 가야 하잖아. 그렇다고 모처럼 당첨된 걸 그냥 버리기도 아깝고. 오빠 고생했는데 아무 생각 말고 놀다 와. 응? 내일 바로 일정 있는 거 아니랬잖아.”
“아니, 그렇게 말해도….”
“이거 여기 두고 갈게! 꼭 갔다 오는 거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예은은 방문을 닫아 버렸다.
예은이 두고 간 쿠폰을 확인한 용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어떻게든 거절할 걸 알기에 아예 기회 자체를 주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이걸 어쩐다….’
놀이공원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딱히 가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도 당연히 없었고.
그냥 안 가는 게 제일 속 편한 방법이기는 한데….
‘꼭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누구 필요한 사람한테 주면 되는 거 아닐까. 그거면 아깝진 않을 테니까.’
그럴듯한 생각이긴 했지만, 문제점은 동일했다.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용주는 알지 못했다.
‘일단 연락처에서라도 후보를 추려볼까?’
전화번호부를 연 용주는 몇 안 되는 리스트를 확인했다.
‘놀이공원 같은 데 관심이 있을 만한 사람이라.’
유력한 후보로 생각되는 이는 역시 예나였다.
나이가 역시 선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집사가 있으니 같이 갈 사람도 확실하고.
‘그게 아니라면….’
다음 순위 정도를 뽑으라면, 수지 정도가 떠올랐다.
가만히만 있어도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꼬이는 타입이니 놀이동산 갈 사람 구하는 거야 일도 아니겠지.
며칠 고생하기도 했고.
지이잉!
용주가 생각에 잠긴 그때.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문자?’
용주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발신인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이름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