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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11화 (111/357)

111화

* * *

“축하해. 손이 이 모양 이 꼴이 되도록 고생한 보람이 있네.”

의무대 침상으로 다가온 수지가 이야기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용주의 왼손은 상태가 제법 심각해 보였다.

“스킬의 페널티. 꽤 심하네.”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미 한 번 놓쳤던 기회를 다시 놓칠 순 없잖아.”

“음. 그렇구나. 표정이 평소보다 안 좋은 건 상처 때문? 합격한 사람 표정이라기엔 영 어둡네. 꼭 나쁜 일 있는 사람 같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뭐, 그럼 다행이고.”

더 묻지 않은 수지는 용주의 왼손을 살폈다.

“그러는 너야말로 얼굴빛이 영 별로인 것 같은데. 잠은 제대로 자긴 한 거냐.”

고개를 돌린 용주가 물었다.

“필요한 만큼은 잤어. 부족한 것 같으면 이따가 몰아서 잘 예정. 누가 업어가도 안 일어날 만큼 깊이.”

“…그러냐.”

아무래도 시험 내내 제대로 못 잔 모양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시험이 장기전이 될 거란 힌트는 있었다.

바리바리 싸들고 왔던 수지의 봇짐 속에 말이다.

30명 중 25명 탈락.

기권한 1명을 제외하면, 아마 전부 신세를 지고 갔을 것이다.

책임감 있는 녀석이니,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겠지.

“특별한 소란 같은 건 없었던 거냐? 예를 들면 윤현이 왔을 때라든가.”

아물고 있는 상처를 바라본 용주가 물었다.

“특별한 소란은 없었어. 그래도 윤현이란 사람은 조금 기억에 남네.”

“왜 다른 의료 헌터들 중에 연예인이 왔다고 난리 친 사람이라도 있었나 보지?”

지난번 탈의실에서 들었던 대화를 떠올린 용주였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거든. 몸보다 정신이 더 많이 다친 것 같았어.”

“…그러냐.”

용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딱히 그 일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애초에 그럴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자업자득.

녀석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말도 없겠지.

* * *

“후~ 치료는 이걸로 끝. 이제 가봐도 돼.”

수지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고맙다. 다른 녀석들 때문에라도 지쳐 있었을 텐데.”

“당연한걸. 가족이잖아.”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수지가 먼저 자리를 떴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주는 하얀 커튼을 걷어냈다.

의료 헌터들 외에 다른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제일 마지막에 끝났나 보네.’

수지와 한 번 더 눈을 마주친 용주는 의무실을 빠져나왔다.

“용주 형!”

코너를 돌자마자 마주친 건 주원과 예나였다.

주원은 예나를 꼭 붙잡고 있었다.

“오빠도 잡혔네.”

예나가 이야기했다.

“잡혀?”

“용주 형도 그렇고, 예나도 그렇고, 지난번에 그렇게 가버렸잖아요! 이번엔 어림도 없다고요. 무조건, 반드시, 필수로 뒤풀이할 거라고요.”

“그렇다고 하더라고. 난 아까부터 잡혀 있었어.”

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피하거나 숨을 생각 같은 거.

이번엔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여기 저러고 있던 거였구만….’

상황을 파악한 용주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가족…이랬던가.’

어째서인지 수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든 싫든 어떻든 당분간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헌터들을 신뢰하냐고 물으면 대답은 여전히 NO였다.

하지만 녀석들을 신뢰하냐고 물으면 NO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녀석들이….

싫진 않았으니까.

“그래, 뭐… 근데 그 전에 화장실만 잠깐 갔다 와도 되겠지?”

“아! 물론이에요!”

주원이 곧장 길을 열어주었다.

“오빠, 이제 나도 놔줘도 되지 않을까? 불공평하다고.”

“아! 그래.”

주원이 예나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때.

“잠깐 실례!”

주원을 밀친 서윤이 두 사람을 뚫고 지나갔다.

서윤의 눈동자는 한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

화장실을 나서려던 용주는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바로 앞에 누군가 있었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럴 마음은 없었나 보네.”

용주를 올려다본 서윤이 까칠하게 이야기했다.

“창문으로 뛰어내려?”

용주가 물었다.

아직도 조금 어리둥절했다.

말하는 걸로 봐선 화장실을 잘못 찾은 건 아닌 모양인데.

“들었어. 네가 전에 약속을 어기고 가버렸었다고.”

‘약속?’

의문이 듦과 동시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주원.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은 없다만,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역시 그 녀석뿐이었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이번엔 못 그러게 하려고 쫓아온 거야. 맘만 먹으면 빠져나갈 구멍은 여기저기 있으니까.”

서윤이 팔짱을 끼었다.

“네가 가버리면 나도 곤란하단 말이야. 다른 녀석들이랑은 아직 말도 몇 마디 안 나눠 봤고, 내가 막 사회성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당돌하던 서윤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뭔가 쑥스러워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아, 아무튼 곤란해! 그러니까 같이 있어 줘야겠어! 좋든 싫든 우린 함께 움직여야 하는 팀이기도 하고, 파, 파트너잖아. 우리 관계는 아직 안 끝났다고.”

용주의 손목을 낚아챈 서윤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발소리보다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 * *

“하핫! 이제야들 오는구만. 안 그래도 밖에서 무슨 일이 난 건 아닌가 나가보려던 참이었는데.”

네 사람을 반긴 금화가 웃어 보였다.

서윤에 손에 이끌린 용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문 하나를 기준으론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문 안쪽에선 야자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멀리 바다가 넘실대는 게 보였다.

“우와~ 완전 휴양지가 따로 없는데요?”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온 주원이 신발을 벗었다.

“오빠, 멀쩡한 신발은 왜 벗는 거야.”

“예나 너도 벗고 들어와 봐. 완전 부들부들해! 기분 좋다니까?! 이런 모래사장에서 신발을 신는 건 모래사장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원이 신발을 흔들었다.

“하여튼 어린애 같다니까. 못 말려 진짜. 그치, 버티?”

고개를 저은 예나는 조심스레 신발을 벗었다.

신발을 버티에게 맡긴 예나는 주원을 따라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어린애 같은데.”

신나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서윤이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도 들어가자. 이안 그 사람이 조금 더 힘 써줄 모양인데.”

“그래. 알겠으니까 이 손 좀 이제 놔주지 그러냐. 어디 안 갈 테니까.”

“아…!”

서윤이 급하게 손에 힘을 풀었다.

잠깐만 잡아끈다고 생각했던 게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걸 전해달라고 했네.”

용주를 기다리던 금화가 검 한 자루를 건넸다.

골드록의 첨예검.

시험에서 사용하고 잃어버린 물건이었다.

“…그래. 전해줘서 고맙다.”

검을 받아든 용주는 감사를 표했다.

이안이 아닌, 금화에게 하는 감사의 인사였다.

“손에 상처는 좀 어떤가? 위력은 엄청나다만, 부작용이 꽤 심한 스킬인 것 같던데.”

용주는 대답 대신 왼손을 보였다.

“그렇구만. 하긴 의료 헌터가 괜히 의료 헌터가 아니긴 하지.”

금화가 한 템포를 쉬었다.

“다들 실력들이 굉장하더군. 강력한 스킬들도 가지고 있고. E급 헌터 중엔 정말 보기 드문데 말이야.”

“뭐,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자리를 잡고 앉은 용주가 어깨를 들썩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본 것 중엔 스킬이 아닌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말이다.

“허헛, 과찬이라네.”

시선을 옮긴 금화는 멀리 보이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뛰노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금화는 눈빛은 왠지 모르게 아련했다.

“자~ 그럼 모두 잔은 채웠소이까?”

막걸리 잔을 든 금화가 물었다.

“그럼요! 예나 거 오렌지 주스까지 완벽하다고요!”

주원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모래사장을 한참 뛰어놀다가 온 주원이었다.

“다들 어려운 시험 이겨내느라 고생했다네. 앞으로도 오늘만큼 힘든 일들이 많겠지만, 오늘처럼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네. 각자가 희망하는 소망과 청사진을 위하여!”

“위하여!”

가장 크게 외친 주원이 금화와 잔을 가장 먼저 부딪쳤다.

“이야~ 금화 형, 꼭 대본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씀하시네요. 멋진 건배사였어요.”

잔을 깔끔하게 비운 주원이 이야기했다.

이제야 조금 합격했다는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이런 게 연륜이란 거 아니겠나.”

건배사에 대해 처음 이야기했던 이는 금화였다.

하지만 금화는 건배사를 용주가 하길 희망했다.

실질적으로 팀을 이끈 이는 그였으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건 용주의 거부가 있었기 때문.

결과적으로 말을 꺼냈던 금화가 건배사까지 맡게 되었다.

“무리해서 마시지 마라. 술자리 같은 거 아니니까.”

잔을 내려놓은 용주가 이야기했다.

남들보다 오래 잔을 붙잡고 있는 서윤에게 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다들 잔 비웠잖아. 난 원샷 못 했는데.”

입을 잔에 묻은 서윤이 대답했다.

“아무도 그런 말 안 했다.”

“그래도 그게 암묵적인 룰 같은 거 아니야? 안 그러면 약속한 듯이 그렇진 않았겠지.”

이런 자리, 서윤에겐 낯설었다.

하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예나는 안 비웠는데.”

“걘 어린애잖아. 날 똑같이 취급하지 말라고.”

“술이 아닌 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말이지.”

“뭐?!”

“술 아니라고. 내가 마신 거.”

용주가 빈 잔을 가리켰다.

“뭐? 그거 소주 아니었어?!”

서윤이 음료를 채우러 갔을 때.

용주는 이미 잔을 채운 상태였다.

서윤이 봤던 건 용주의 잔 안에 담긴 투명한 액체.

서윤은 당연히 그걸 소주라고 생각했고, 용주와 같은 걸 마시겠다며 소주를 따라왔었다.

“물이었다. 내가 마신 건.”

“물?!”

놀란 서윤이 잔을 내려놓았다.

식도에 머무는 쓴맛이 조금 고통스러웠다.

“그래그래. 무리하지 말게. 입이 안 받고 몸이 안 받는 건 아무리 좋은 약재라도 독일뿐이라네.”

금화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쪽지와 볼펜을 집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서로 연락처라도 알고 지내는 게 어떻겠나? 팀 임무를 하려면 그편이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자기 연락처를 적은 금화가 용주 쪽으로 쪽지를 밀었다.

“아!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찬성찬성 대 찬성이에요!”

주원이 격한 공감을 표했다.

‘번호라….’

번호를 적은 용주는 서윤에게 쪽지를 건넸다.

핸드폰 액정을 두드린 서윤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용주의 핸드폰엔 등록되지 않은 번호 하나가 떠 있었다.

“호, 혹시나 다른 번호를 적어놨을까 봐 확인해 본 거야. 다른 의도가 있던 건 아니라고.”

급하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서윤이 자기 번호를 적었다.

“그게 내 번호니까 잘 저장해 둬! 아무한테나 쉽게 주는 번호 아니니까.”

마지막 번호를 휘갈긴 서윤이 급하게 쪽지를 넘겼다.

“저… 서윤 누나, 돌리는 방향이 잘못된 거 같은데요.”

주원이 이야기했다.

쪽지는 다시 용주에게 돌아가 있었다.

“아! 실수!”

주원 쪽으로 쪽지를 돌린 서윤은 뭔가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아니, 잠깐만! 내가 언제 누나가 된 거야?!”

서윤이 버럭 외쳤다.

“음… 그게요, 누나는 용주 형한테 편하게 말하잖아요. 그쵸?”

“뭐, 그렇지. 딱 봐도 또래잖아.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고.”

“그렇지만 제가 여기서 누나한테 말을 놓으면 서로 호칭이 이상해지잖아요. 그런 거 어렵다고요. 그러니까 그냥 누나라고 하기로 했어요.”

“아니, 그러니까 내가 왜….”

“그래도 돼죠, 누나?”

“…흥! 좋을 대로 해. 특별히 허락해줄 테니까.”

서윤이 고개를 돌렸다.

바보같이 순진한 얼굴에 차마 안 된다고 하기가 그랬다.

누나라는 말도….

딱히 싫진 않았고.

“그럼 건배도 했고, 번호 교환도 했고, 이제 양껏 맘껏 즐기는 일만 남은 거려나?”

모든 사람의 번호를 입력한 주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지, 오빠. 아직 하나 안 한 게 있잖아.”

주원을 붙잡은 예나가 이야기했다.

“안 한 거?”

“응. 다음 게이트 임무. 그러니까 C급 게이트 공략 일정. 그걸 정해야 한다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 있잖아.”

“아~! 그거 엄청 좋은 생각인데?”

“오빠랑 언니 생각은 어때? 고구마 아저씨 생각도.”

예나가 물었다.

“고구마 아저씨는 참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네, 곰 아가씨.”

미소를 머금은 금화가 조커가 사용하던 애칭으로 예나를 불렀다.

그 순간.

“아!!”

주원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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