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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09화 (109/357)

109화

‘이거 안 좋은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충분히 고려할 수 있었던 경우의 수였다.

이런 수까지 고려해 둘이 인접한 지형이 아니라, 셋이 인접한 지형을 골랐어야 했다.

“크앙!”

천지를 찢는 포효를 내지른 순식간에 강하했다.

노리는 건 가장 위협적이었던 조커.

폭발 속에 유일하게 넘어지지 않은 조커는 녀석을 마주 보고 있었다.

“거, 타이밍 한 번 놓치니 끼어들기가 영 힘들구만 그래.”

이안의 발톱이 멈춰 선 곳은 한 자루의 대검 앞.

지면에 깊고 기다란 상처를 남긴 대검을 타곤 철 미늘 흔들리는 소리가 흩날렸다.

조커와 이안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금화.

금화의 근육은 몇 배로 팽창해 있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금화의 얼굴엔 눈가를 세로로 관통하는 붉은 문양이 떠올라 있었는데, 보기에 마치 도깨비를 연상케 했다.

“이거 놀랐는데요? 그런 괴력의 소유자인 줄이야.”

같은 속도로 물러났던 조커가 여유를 뽐냈다.

“역시 스킬인가요?”

“이름은 ‘수라강림’.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네. 그렇게 자랑할 만한 능력도 아니고.”

“마나를 이용해 자신의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스킬…. 화려하진 않지만, 강력한 스킬이죠. 이거 부러운데요?”

“그렇게 날다람쥐처럼 날아다니는 사람이 그런 말 하면 놀리는 것밖에 더 되나.”

단번에 힘을 폭발시킨 금화는 이안의 팔을 쳐냈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이안.

당황한 이안의 가슴팍까지 뛰어오른 금화는 그대로 대검을 욱여넣었다.

큰 상처를 입은 이안은 또 한 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이안의 뿔 사이에선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어째 상황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은데.”

어깨를 짚은 서윤이 이야기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초기화가 안 되는 것도 모자라 패턴이 중첩되는 거냐….”

용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 번의 판단 미스가 불러온 스노우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생각해. 분명 봤었잖아.’

용주는 어둠 속에서 봤던 하늘에서의 전경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인접한 산호초 타일이 분명 하나라도 있을 것이다.

‘젠장….’

하지만 마음처럼 생각이 따라가 주질 않았다.

“…….”

고뇌에 찬 용주의 얼굴을 바라보던 서윤은 빗속을 뚫고 나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그건 여기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었다.

쾅! 콰지직!!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지는 이안의 공격.

폭발에 더해진 붉은 번개는 헌터들을 맹렬하게 공격해 왔다.

“오빠, 발밑에!”

예나의 다급한 외침에 주원은 몸을 던졌다.

“이거, 접근하는 것조차 장난 아닌데?”

“월영식 한 방 더 어떻게 안 돼?”

“그러고 싶은데 심장이 막 뛰어서. 진정이 안 된다고.”

쉬지 않고 움직인 주원은 이안의 왼편으로 크게 돌았다.

주원을 따라온 폭발은 점점 더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아압!!”

주원에게 시선이 쏠린 사이 반대편에서 접근한 금화는 서윤이 만든 상처를 이어받았다.

가로로 뒤튼 상처는 뼈가 보일 정도로 깊었다.

파악!

그와 동시에 금화를 후려갈기는 이안의 꼬리.

좌우로 흔드는 이안의 머리를 따라 지면엔 선명한 가로줄이 그려졌고, 붉은 번개가 뒤를 수놓았다.

‘끌어낼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야.’

이안의 꼬리를 밟고 오른 서윤이 반동을 타고 날개 쪽으로 튀어 올랐다.

주원이 남긴 상처에 칼을 박아 넣는 서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뿔을 부러뜨린다!’

고통에 반응한 날갯짓을 따라 움직이던 서윤은 놈의 머리 위로 뛰어내렸다.

“아가씨.”

혼란을 틈타 예나에게 접근한 조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조커가 아닌 승우의 원래 목소리였다.

“왜? 혹시 전력으로 싸워도 되냐고 물어보려고? 안 돼. 그럼 의미가 없잖아.”

요리조리 검을 움직이고 있는 예나가 대답했다.

“아니요, 아가씨.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입을 가린 승우는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뭐?!”

놀란 예나는 반박했지만,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간 후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싱긋 웃어 보인 조커는 폭발을 가로지르며 달려 나갔다.

“크윽…!”

이안의 발버둥에 날아간 서윤이 지면에 부딪혔다.

놈의 뿔은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블러디 아이는 피를 보고, 피에 강해지는 능력.

낼 수 있는 거의 최대의 효율을 받은 상태임에도 뿔을 두 동강 내지 못했다.

‘놈이 피를 저렇게 많이 흘리고 있는데도, 부족한 거야?’

왼쪽 어깨의 통증이 극심했다.

상처도 덧나고, 떨어지면서 뼈도 살짝 어긋난 모양이다.

“잠시 실례.”

그런 서윤의 귀에 조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서 잡아끄는 힘에 내던져지다시피 한 서윤의 눈앞으론 붉은 번개가 스쳐 갔다.

서윤을 구해준 조커는 그대로 거리를 좁혔다.

“이거, 갑자기 자존심 상하네. 관심을 뺏긴 마술사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번개와 번개 사이.

그 좁은 틈을 뚫고 나간 조커가 오른쪽 두 번째 발톱 아래에 지팡이를 찔러 넣었다.

“그 관심, 조금만 되찾아 볼까? 더 질투 나기 전에 말이야.”

주먹을 움켜쥔 조커는 그대로 지팡이 끝을 내리찍었다.

뿌리째 뽑힌 이안의 발톱은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다.

“카흐응!”

이안의 시선은 조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 이제 좀 그럴 마음이 생긴 모양이지? 그럼 잘 따라오라고, 젠틀맨.”

이안의 급강하 내려찍기를 피해 뒤로 물러난 조커는 황야를 향해 내달렸다.

번개와 불꽃을 사방으로 흩뿌린 이안은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황야를 달리던 주원이 이야기했다.

앞서간 둘과의 거리는 좁혀지긴커녕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산호초 지대로 데려갈 거야. 그럼 루틴이 초기화될 것 같대.”

예나가 대답했다.

“뭐? 산호초? 어딘지 아신대?”

주원의 물음에 용주의 시선이 반응했다.

“아니. 모른대.”

“그러면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니야?”

“아까 그러더라. 나올 때까지 달리면 확률은 100%라고.”

예나가 용주를 곁눈질했다.

용주는 저 멀리 보이는 크고 평평한 바위산.

호주의 에어즈록을 닮은 지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주 오빠. 저기 뭐라도 있어?”

“저 바위… 봤던 기억이 있는 것 같다.”

어둠 속이라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런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그때 분명히….’

안개같이 흐릿한 시야.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전경을 더듬던 용주의 머릿속에 한 가지 풍경이 떠올랐다.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들이 있었다.

그게 숲의 나무인지, 황야의 나무인지, 산호초 지대의 나무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바위산을 끼고 10시 방향에 나무가 밀집한 지형이 있었다.”

“나무?”

“그래. 어쩌면 산호초 지대일지도 모른다. 확신할 순 없지만….”

“10시 방향이면 조커가 가는 방향이랑은 영 다르네.”

예나가 목소리를 높인 예나가 조커를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거리도 거리였고, 이안이 만들고 있는 소음은 재앙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안 들리나 봐.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을까?”

“조커 형!! 저기 보이는 바위산 끼고 돌아요!”

주원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주원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단 듯 쩌렁쩌렁했지만, 마찬가지로 닿진 못했다.

“괜찮다면, 내 말을 한 번 들어주겠나?”

앞서가던 금화가 속도를 줄였다.

“예냐 양의 검, 저기 정도 거리까지 조종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은데.”

“음… 아슬아슬하게 될 것도 같은데요. 근데 무리예요. 아저씨 생각은 알겠는데, 제가 움직이는 속도로는 제 시간 안에 못 따라잡을 거예요.”

금화의 의도는 대강 파악이 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거라면 걱정 말게. 내게 생각이 있으니.”

예나와의 합의를 마친 금화는 예나의 검을 움켜쥐었다.

“수라강림.”

마나의 흐름 속에 금화의 근육이 또 한 번 활성화 되었다.

“그럼 먼저 가겠네!”

자신의 검을 집어넣은 금화는 오로지 달리는 데 온 힘을 집중했다.

한 마리의 코뿔소처럼 질주한 금화는 빠르게 거리를 좁혀 나갔다.

그리고.

앞서 보이는 바위를 딛고 최대한 높이 뛰어올랐다.

손에서 떠난 예나의 검은 무서운 속도로 황야를 가로질렀다.

‘음?’

갑작스럽게 나타난 검 한 자루에 조커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고장 난 나침반처럼 빙글빙글 돌던 검은 특정 한 방향을 가리키며 멈춰 섰다.

‘후훗, 이런 식으로 사용하시다니, 응용력이 느셨네요, 아가씨.’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조커는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바위산을 끼고 10시 방향.

정확히 용주가 생각했던 그 방향이었다.

* * *

‘빙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린 조커가 드디어 멈춰 섰다.

‘엄청 고민하는 표정이더니, 잘 맞췄네, 소년.’

황야 지대를 지나고 나타난 곳은 산호초 지대.

하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자, 그럼….’

두 지대의 경계면에 선 조커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안의 그림자는 코앞에 있었다.

다이어리를 꺼낸 조커는 그대로 손에서 떨어뜨렸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네요. 말씀드린 대로 먼저 차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가씨. 진짜 헌터인 아가씨라면 진짜 동료들과 함께 현명하게 헤쳐나가시리라 믿습니다.’

번개와 화염이 조커를 동시에 덮쳤다.

하늘로 치솟은 불과 번개의 기둥은 일대를 재로 뒤덮어 버렸다.

* * *

“조커 형!!”

멀리서 현장을 목격한 주원이 외쳤다.

같은 곳을 향해 몇 번이고 공격을 퍼부은 이안은 타깃을 잃어버린 듯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빠. 무조건 산호초 지대로 뛰어들어. 절대 멈추지 마.”

한숨을 들이켠 예나가 이야기했다.

“뭐? 그렇지만 조커 형이…!”

“그 사람은 이제 없어. 저런 걸 몇 번이나 맞았는데 무사할 리 없잖아.”

“그…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조커 형이라고! 분명 깜짝 마술의 일부였을 거야. 분명 어디선가 짠하고…!”

“그런 마술은 없어, 오빠. 적어도 지금은.”

“…….”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용주는 선두로 치고 나갔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용주는 정확히 이안의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달라진 예나의 태도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마나와 실력을 숨기고 있지만 조커는 본래 B급의 헌터.

이안을 C급 [email protected]의 강함을 가진 몬스터라 가정해도 쉽게 당할 리가 없었다.

그건 예나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예나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한다는 건 그사이 뭔가가 오갔다는 소리.

그리고 그건 아마.

사고처럼 위장된 조커의 기권.

그런 거겠지.

쾅! 콰르릉!!

작렬하는 화염과 번개를 점멸로 흡수한 용주는 이안의 그림자를 통과했다.

낮은 둔덕을 뛰어내린 용주를 따라온 이안의 모습은 다시금 검게 변화하고 있었다.

“예열 초기화. 이번에 무조건 부러뜨려주마.”

용주가 이안에게 달려듦과 동시에 다른 헌터들도 공격을 개시했다.

“내가 길을 만들겠네!”

괴력을 발휘한 금화가 먼저 이안의 꼬리 움직임을 막아섰고.

“하아압!!”

틈을 놓치지 않고 오른 서윤은 이안의 왼쪽 날개를 도륙했다.

“조커 형을 잘도…!”

버티의 도움을 받아 추진력을 얻은 주원은 이안의 오른쪽 날개를 가로질렀다.

검을 잡는 주원의 파지법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오른쪽 어깨높이까지 오른팔을 당긴 주원은 왼손을 손잡이 끝에 올려놓았다.

“월영식 -자(紫)!”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앞으로 내지른 칼날.

일점을 향해 휘감기는 세 개의 보랏빛 물결은 회전하는 칼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안의 오른 날개는 동시에 세 방향으로 찢겨 나가며 엄청난 양의 피를 흩뿌리고 있었다.

‘진짜 헌터는 진짜 동료들과 함께….’

멀리서 검을 움직인 예나는 조커가 만들어 뒀던 상처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발톱이 빠진 상처에선 고름이 흘러나왔고, 통증 때문인지 이안은 앞다리 하나를 제대로 내려놓지 못했다.

휘익!

그러는 사이 버티는 또 한 명의 사람을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날아오는 용주를 발견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아까 마주했던 풍경의 데자뷔.

놈의 신체를 관통한 용주의 왼손은 찢기고 터져 넝마가 되어 있었다.

잠깐 사이에 생긴 큰 변화.

HP의 35%를 지불한 용주는 야수의 손톱을 휘둘렀다.

노리는 곳은 오로지 놈의 뿔.

“크아아앙!!”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앞다리를 들어 올린 이안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잘려 나간 이안의 뿔은 산호초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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