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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07화 (107/357)

107화

“어… 미리 말해두는데,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땅도 여기가 제일 평평하고, 뭔가 느낌이 좋을 뿐이라고. 불도 가까울 예정이고.”

서윤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아… 그러냐.”

돌아온 건 무미건조한 목소리.

불만 있는 얼굴이 되었던 서윤은 재빨리 표정을 감추었다.

까맣던 밤엔 한 줄기 불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이 야밤에 여기까진 왜 온 거냐?”

밤하늘을 올려다본 용주가 물었다.

“아… 그게….”

“혼자 녀석을 쓰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이라도 했던 거냐.”

“으응. 아니.”

“그럼 뭐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었던 거냐?”

“아니! 그런 건 절대 아니야!”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한 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비즈니스….”

서윤이 소심하게 대답했다.

“비즈니스?”

“그래. 우리 그런 관계였잖아. 이젠 그것도 아니지만….”

서윤이 옆머리를 배배 꼬았다.

“비즈니스 파트너를 계속하려면 카드로 쓸 무언가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전에 내가 쥐고 있던 건 지형과 몬스터, 그리고 사람에 대한 정보. 사람에 대한 건 이번엔 구할 수 없겠지만, 다른 두 개라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야기를 마친 서윤은 눈치를 살폈다.

용주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뭐야? 실컷 물어봐 놓고 자는 거야?! 사람이 기껏 대답해 줬더니.”

“아니.”

“그럼 뭐 하고 있는 건데?”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고민…?”

“그래.”

상체를 일으킨 용주는 가까이 와보라는 손짓을 보냈다.

영문도 모른 채 다가간 서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딱!

가벼운 딱밤이었다.

“아야! 뭐 하는 거야?!”

“유감스럽게도 바보를 대하는 건 영 서툴러서 말이야.”

서윤의 이마를 꾹 밀은 용주가 다시 나무에 누웠다.

“뭐?! 바보?!”

서윤이 즉각 반발했다.

“말 다 했어?! 내가 왜 바보야?!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난 인정 못 해! 난…!”

“원래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 줄 모르더군.”

“뭐?!”

“안타깝게도 내 주변에도 하나 있거든. 너랑은 전혀 다른 유형의 바보가.”

“다른… 유형?”

“무슨 말을 해도 자기 맘대로. 남들 눈치 같은 건 어디에 가져다 버렸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아무 이유도 없이 찰싹 달라붙어서는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지.”

“찰싹 달라붙어?!”

서윤이 특정 단어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다.

“넌 그 반대. 이해관계가 없으면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형. 둘이 적당히 섞였으면 둘 다 그럭저럭 평범한 사람이 됐을 것 같은데 말이야.”

“…….”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랬었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일종의 비즈니스라고.”

“아… 그랬었지.”

“비즈니스 관계라면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우린 아직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용주의 이야기에 서윤은 멍하니 굳어졌다.

“그렇지만 역시 우리 비즈니스는 윤현한테 한 방 먹여주는 데에서….”

“힘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있다면, 모을 수 있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커가 물었었지. 그런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있는 전력을 분산시키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용주가 깊은 날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제 카드도 가지고 있잖아. 다른 녀석들이 오면 이야기해달라고. 그 고생해서 얻은 정보인데.”

서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속에서 순간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럼 내가 묻고 싶던 건 끝. 아까 네가 하려던 말은?”

“아… 딱히 묻고 싶었던 게 있던 건 아니야. 그냥 고맙다고 하려고 했어.”

서윤이 저렸던 다리를 어루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은 자연스럽게 완화되었다.

그때 용주가 그렇게 나타나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솔직히 말해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어라…? 잠깐만.’

서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용주가 오늘 밤 여기서 묵기로 결정한 이유.

다른 이유를 들긴 했지만, 거긴 어쩌면 그 이유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냐?”

“저기! 혹시….”

서윤이 급하게 외쳤다.

“복귀를 포기한 거. 혹시 나 때문이야? 내 다리 때문에?”

“…자라. 늦었다.”

대답을 회피한 용주는 눈을 감아 버렸다.

서윤은 또 한 번 다리를 쓸어내렸다.

뭔가 조금 전보다 따뜻해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 * *

“아… 음…?”

어느새 밝아온 아침.

아침 햇살에 눈을 뜬 서윤은 어깨를 덮은 무언가를 걷어냈다.

뭔가를 덮고 잤던 기억은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뭐지?’

한 손으로 눈을 비빈 서윤은 덮고 있던 물건의 정체를 확인했다.

여기저기 찢기고 너덜거리는 게 딱 봐도 깨끗하단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어디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이걸 어디서 봤더라?’

서윤이 고개를 기울였다.

몽롱한 상태에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일어났냐?”

그런 서윤의 귓가에 들려온 남성의 목소리.

고개를 돌린 서윤은 또 한 번 눈을 비볐다.

눈앞엔 용주가 있었다.

서윤은 그제야 자신이 덮고 있던 물건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건 전날 밤 용주가 걸치고 있던 집업이었다.

“와서 앉아. 푸짐하진 않아도 허기를 달랠 정도는 될 테니까.”

서윤의 시선은 그제야 모닥불로 향했다.

모닥불 주변엔 꼬챙이에 끼워진 생선 몇 마리가 노릇노릇 익어 있었다.

“뭐야? 설마 네가 다 잡은 거야?”

“잠자리가 안 좋았던지 눈이 좀 빨리 떠졌거든.”

“한숨도 안 잔 건 아니고?”

용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서윤이 물었다.

용주의 얼굴엔 전날 없던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와서 먹기나 해. 타겠다.”

꼬치 하나를 집어 든 용주는 먼저 한 입 베어 물었다.

“응. 저… 고마워.”

집업을 돌려준 서윤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꼬치를 집어 드는 서윤.

소금기 없는 생선 맛은 허당이었지만, 세상 어떤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한 끼였다.

* * *

“아! 저기 있다!”

두 사람을 가장 먼저 발견한 예나가 외쳤다.

예나를 포함한 다른 일행들은 모두 함께 있었다.

“일어나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알아? 주원 오빠 핸드폰이 울렸었단 거 아무도 못 들었으면 어쩔 뻔했어? 이걸로 벌써 2번째라고, 오빠.”

용주를 마주한 예나가 잔소리를 퍼부었다.

‘핸드폰?’

서윤은 그제야 용주가 어젯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일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때 연락을 취해놓았었던 모양이다.

물을 꽤 거하게 먹었을 텐데, 운이 좋은 건지, 기술이 좋은 건지 원….

“그 점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그게 최선이었어서 말이야. 적어도 누구 한 사람은 들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

용주가 조커를 곁눈질했다.

“어째 한숨도 못 잤단 얼굴이네. 고통 분담이라도 해준 거야, 소년?”

조커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커의 화장엔 보란 듯이 다크서클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야밤에 왜 둘이 여기까지 온 거야? 이유 정도는 들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예나가 따지듯 물었다.

“그건….”

“미안! 나 때문이야!”

서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언니 때문?”

“그래. 내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 얘는… 아니, 용주는 아무 잘못 없어.”

“흐음, 그래요? 그래서 그 제멋대로란 게 뭐였는데요.”

예나가 어깨를 들썩였다.

어젯밤에도 같이 있긴 했었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이안에 대한 정보를 모으러 갔었어. 녀석과 싸워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을.”

“정보? 그게 그렇게 몰래몰래 할 일이었던 거예요?”

“미안!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난 외부인이니까. 너희한테 안 좋은 말도 했었으니까. 함께 있으려면….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려면 뭐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

“음, 그래서 어제 그렇게 뚝 떨어져 있었던 거예요?”

“아… 응.”

예나는 서윤에게 좀 더 다가갔다.

이 사람 뭔가 엄청 예민하고, 성격 나빠 보인다는 첫인상이 강했는데.

생각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비겁하게 뒤로 숨지도 않고.

뭐랄까….

그래. 바보 같았다.

용주나 주원.

두 사람과는 또 다른 느낌의 바보.

“언니, 친구 없죠?”

까치발을 든 예나가 물었다.

“뭐?!”

“버티가 그럴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그치, 버티?”

“고… 곰 인형한테 말하는 애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

얼굴이 빨개진 서윤이 외쳤다.

“그렇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거 혼자 신경 쓰고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친구가 없다고 들었거든요. 아니에요?”

“그… 그건….”

“여기 외부인이니, 내부인이니 할 게 뭐 있어요? 경쟁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건….”

“그리고 언니, 이미 용주 오빠랑 둘이 신드라 쓰러뜨렸잖아요.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에요?”

“아….”

서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예나는 버티를 서윤의 얼굴 가까운 곳까지 들어 올렸다.

“버티가 언니랑 친구하고 싶대요. 손 잡아주면 좋겠다는데요.”

“뭐? 손? 아니! 그러니까! 내가 왜 곰 인형이랑…!”

“그러지 말고, 빨리요. 버티 힘들데요.”

버티를 움직인 예나는 서윤의 손등을 찔렀다.

부끄럼 반, 당황스러움 반을 머금은 서윤은 소심하게 버티의 손끝을 잡았다 놓았다.

“뭐야, 뭐야? 나도 끼워줘! 나도 버티랑 친구 하고 싶다고!”

눈치 없이 끼어든 주원은 버티의 손을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아무튼 둘 다 별일 없다니 다행이구려. 근데 한 마리 쪽이 안 보이는데.”

용주에게 다가온 금화가 물었다.

“등가 교환이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

“이안이 가져갔나 보구만.”

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이 간다는 눈치였다.

“뭐, 충분히 가치 있는 교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면 오히려 싸지.”

용주가 서윤을 바라보았다.

용주가 말하고 싶은 것을 인지한 서윤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보고 경험한 것들을 말해줄게.”

서윤의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우선 지형. 중앙 나무 근처는 숲과 황야, 그리고 산호초 지대가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어. 다른 몬스터나 동물들은 발견하지 못했어. 아마 이안만을 위한 공간인 것 같아.”

서윤이 한마디를 쉬어갔다.

“그다음은 이안. 내 생각엔 이안에게는 예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예열 시간?”

주원이 물었다.

“그래. 처음 얼마간은 녀석은 특별할 것 없는 체술 위주의 공격을 해왔어. 할퀴고, 물고, 차고 뭐, 그런 것들. 변화가 생기는 건 놈의 뿔에 전류가 흐른 다음부터야.”

서윤은 다른 사람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내가 처음 마주한 변화는 비. 먹구름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비?”

“그리고 붉은 번개가 떨어지기 시작했지. 그게 녀석의 공격이란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내상을 입은 뒤였어. 마비된 다리는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지. 참고로 번개가 치기 전엔 잠깐의 딜레이가 있어. 번개가 떨어질 지점에 붉은 점이 깜빡거린다고.”

“다리에 번개가…? 지금은? 지금은 괜찮은 거예요?”

놀란 주원이 물었다.

“그래. 가볍게 스친 정도라 특별한 외상은 없었어. 하룻밤 지나니까 마비 증상도 사라졌고,”

“한쪽이든 두 쪽이든 최대한 빨리 뿔을 부러뜨리는 게 놈을 약화시킬 방법일 수도 있다는 소리구려.”

“맞아.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특이점이 하나 더 있었어.”

“하나 더?”

“내가 처음 녀석을 마주한 건 숲 지대였어. 그리고 황야 지대로 옮겨가게 되었지. 이안은 곧장 날 따라왔어. 황야 지대로 넘어온 녀석은… 더 이상 비를 뿌리지 않았지. 다시 체술 위주의 공격을 해왔어.”

“다시 처음 상태로 돌아갔다는 말인가요? 그건?”

예나가 물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어. 그게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또 한 번 예열을 끝낸 녀석은 번개 대신 불을 사용해 공격해오기 시작했어. 비늘이 빨갛게 변한다는 특이점이 있었지.”

다시금 시선을 옮긴 서윤이 용주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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