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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06화 (106/357)

106화

* * *

‘바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디 있는 거지?’

우거진 밀림 사이로 들어온 서윤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멀리서 보았을 땐 거대한 나무 한 그루처럼 보였었는데, 나무 주변은 하나의 작은 생태계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게 있다면, 산호초 지대와 황야, 그리고 밀림지대가 옹기종기 섞여 있다는 것.

절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은 신비로우면서 이질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동물들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것뿐인가?’

이질적인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이곳에 진입하면서부터는 동물이나 다른 몬스터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다가가선 안 되는 금단의 영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큰 소란이라도 일으키면 나타나려나?’

큰 소란이라고 해봤자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특별한 도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이안!!”

목소리를 높인 서윤이 힘껏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다이어리가 알려주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보다 직접적인 전투데이터를 위해선 놈과 싸워보는 수밖에 없다는 건 신드라와의 전투에서 이미 확인한 바.

도움이 되기 위해선 꼭 놈과 부딪쳐 봐야 했다.

걸음을 계속한 서윤은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나타난 것은 또 다른 평야.

평야엔 무언가가 난동을 부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뭔가 있었어….’

지면엔 날카로운 발톱 자국과 함께 무언가가 내려꽂힌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깊게 파인 상처로 다가간 서윤은 모래를 훑었다.

손가락 끝에 묻어나는 건 그을음이었다.

‘잠깐만, 저건…!’

흔적들을 살피던 서윤은 급히 자리를 옮겼다.

서윤이 발견한 건 누군가의 다이어리.

다이어리를 집어 든 서윤은 조금 더 시야를 넓혔다.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다이어리는 3개.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는 모양새였다.

‘윤현, 그 자식을 중심으로 모였던 사람이 나까지 7명이었지.’

나머지 인원 중 여기까지 도달한 파티가 있었던 모양이다.

“블러디 아이.”

그리고 그들은 아마….

휘이익!!

다이어리를 살피려던 서윤의 귓가에 날카로운 바람이 스쳤다.

서윤의 시선은 자동적으로 창공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온 건 수직으로 급강하하는 한 마리의 드래곤.

머리를 꼿꼿이 세운 녀석은 서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 이안….’

가까이서 마주한 녀석의 첫 느낌은 다른 놈들과는 달랐다.

뭐랄까.

위압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자신을 한참 아래에 있는 존재로 보는 것 같은 여유로움이 녀석에게서 느껴졌다.

“부르면 재깍재깍 나와야 할 거 아니야. 너 때문에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고.”

녀석을 당당하게 마주한 서윤이 어깨에 검을 걸쳤다.

기 싸움에서 지면 지고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탐색전이라지만 기 싸움에서 져주고 싶진 않았다.

* * *

산호초 지대를 지난 용주는 세 가지 지형이 뒤섞인 이질적인 땅에 도착했다.

저공비행을 계속했던 용주는 단숨에 고도를 높였다.

서윤이 여기로 향했다면, 놈의 목적은 무조건 이안이었다.

이 넓은 곳에서 서윤을 찾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이안을 찾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어디 있는 거냐?’

최대한 시야를 넓게 가진 용주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이안이 서윤에게 반응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신호가 올 게 분명했다.

이 어둠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저긴가?’

특이점이 발견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저 멀리 비가 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먹구름은 없었다.

하지만 비는 분명하게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콰광!

빗속에서 떨어진 붉은 번개가 일렬로 선을 그리며 지나갔다.

* * *

‘적당히 탐색전만 벌이다가 빠지려고 했는데, 이거 곤란하게 됐는데….’

땅을 구른 서윤이 다리에 힘을 주었다.

서윤의 몸은 순간 왼쪽으로 비틀거렸다.

다리가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설마 그런 걸 꽂아댈 줄이야.’

다리에 마비 증상이 나타난 건 놈의 번개가 스치고 나서였다.

처음 녀석은 이런 공격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체술 위주의 근접전을 펼치던 녀석이 변화한 건 두 개의 뿔 사이에 전류가 흐르고 난 다음부터.

비가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놈의 공격은 체술보다 몇 배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공격들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데.’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던 서윤은 크게 휘청거렸다.

‘이런!’

무게 중심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진 그녀는 비탈길을 따라 황야지대로 굴러떨어졌다.

곧장 따라붙은 이안은 서윤의 앞에 착지했다.

뿔 사이를 오가던 스파크는 더 이상 지직거리지 않았다.

‘뭐지?’

이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리던 비가 서서히 그쳐 가고 있었다.

“콰아앙!”

포효와 함께 날아드는 이안.

회피와 동시에 녀석의 앞다리에 상처를 만든 서윤은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의 공격패턴이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가 있었다.

‘설마… 그런 건가?’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린 서윤은 도망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한 가지만.

딱 한 가지만 더 확인해보고 싶었다.

* * *

‘뭐지?’

거리를 좁히던 용주는 또 다른 이상을 감지했다.

비가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고도를 낮춘 용주는 빠르게 숲속을 가로질렀다.

축축하게 젖은 바닥에 두 종류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저쪽인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용주는 기수를 돌렸다.

숲이 지워지고 나타난 건 메마른 황야.

용주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하반신은 붉은색, 상반신은 검은색을 띤 용의 모습.

둘째는 폭발에 터져 나가는 지면.

마지막으로 셋째는 그 폭발에 날아가고 있는 서윤.

슬로우 모션처럼 동시에 일어난 일들에 용주는 곧장 한 곳으로 향했다.

세로로 기운 독수리는 날개가 지면에 닿을 정도로 낮게 비행하고 있었다.

“손!”

손을 뻗은 용주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용주와 눈이 마주친 서윤은 곧장 손을 뻗었다.

서로의 손이 마주치는 한순간.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은 용주는 그대로 서윤을 낚아챘다.

“너 여긴 어떻게…. 아니! 그보다 손이라니! 내가 무슨 강아지야?!”

놀란 서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용무인진 몰라도 마실을 너무 멀리까지 나온 거 아니냐. 나 다음은 너라고.”

“뭐? 너 다음이 나? 그거 혹시 보초 서는 이야기?”

“그거 말고 뭐가 더 있겠냐.”

뒤를 힐끔 돌아본 용주는 급속도로 방향을 틀었다.

뒤에서 날아온 세 발의 화염탄은 1초의 간격을 두고 펑펑 터져 나가고 있었다.

“……!”

“꽉 잡아라.”

소리 없이 떨어질 뻔한 서윤의 팔을 붙잡은 용주가 이야기했다.

서윤의 손은 용주의 허리춤에 올라가 있었다.

몇 번을 망설이던 서윤은 그대로 용주를 꼭 끌어안았다.

“뭐야? 설마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내가 여기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으면서?!”

황당한 듯 서윤이 물었다.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였나 보지?”

“아니…. 그런 건 아니긴 한데…. 너무 무모하잖아! 내가 그냥 발목이라도 삐어서 못 움직이고 있었을 수도 있는 거고!”

“설마 네가 그러고 있으려고.”

“…….”

황야 지대를 통과한 용주는 밀림 지대로 들어섰다.

훨씬 높은 고도에서 강하한 이안은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삐이익!!

천지를 찢는 날카로운 굉음을 또 한 번 폭발시켰다.

“윽…!”

갑작스러운 굉음에 서윤이 고통을 표했다.

귀를 틀어막고 싶은 충동이 머리끝까지 들었지만, 손을 놓을 순 없었다.

그랬다간 추락하는 도중에 튕겨 나갈 게 분명했으니까.

‘또 그거냐?’

기수를 잡아당긴 용주는 조종을 시도했다.

저번과 달리 이번엔 돌아오는 반응이 있었다.

‘움직이긴 하는데….’

하지만 그게 문제없음을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추락은 간신히 면했지만, 비행은 심하게 흔들렸다.

벌크헤드와 수직꼬리날개가 동시에 날아간 비행기처럼 밸런스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속도 조절은 됐지만, 방향 조절은 전혀 되지 않았다.

‘이대로면 얼마 못 가 떨어질 거야.’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이안의 공격이 직격하든 말든, 조만간 추락할 게 불 보듯 뻔했다.

‘하는 수 없지.’

“저 앞에 보이는 숲에서 뛰어내릴 거다.”

“으… 뭐라고?”

“내가 신호하면 뛰어내려. 지금 여기 있어 봤자 움직이는 표적밖에 안 되니까.”

“뭐? 뛰어내려? 그렇지만….”

이의를 제기하려던 서윤은 말을 삼켰다.

귀가 먹먹하고 아팠다.

급격하게 낮아진 고도를 나는 두 사람은 키 큰 밀림 속을 가로질렀다.

뒤따라오는 이안은 숲을 갈아엎고 있었다.

‘이 소리는….’

타이밍을 재고 있던 용주는 한 가지 소리에 집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려오고 있었다.

‘폭포인가?’

그렇다는 건 아래쪽에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진 호수가 있다는 소리였다.

눈이 아닌 소리에 의존한 정보.

자신에겐 오히려 더 익숙한 감각을 믿어보기로 한 용주는 속도를 최고로 높였다.

“뛰어!”

짧고 간결하게 외친 용주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용주를 꼭 붙잡고 있던 서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독수리에서 떨어졌다.

용주는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려 했다.

웬만하면 다리부터 떨어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칫!’

하지만 뒤에 매달린 서윤이 문제였다.

오히려 더 꽉 붙들고 있는 그녀 때문에 어떻게 움직여 볼 수가 없었다.

“숨 참아라.”

마지막 호흡을 끝으로 강렬한 충격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폭포를 통과한 이안은 계속해서 독수리를 추격하고 있었다.

“푸악!”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서윤이 참았던 호흡을 뱉어냈다.

어둠 속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물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제 그만 놓지 그러냐.”

용주가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서윤은 아직까지 용주를 붙잡고 있었다.

“아?! 뭐라고?! 폭포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려!”

“놓으라고, 이 손.”

용주가 서윤의 손등을 가리켰다.

“아…! 아아아! 미안! 나도 모르게….”

놀란 서윤이 헐레벌떡 손을 놓았다.

뭔가 본능적으로 더 꼭 끌어안아 버렸다.

“이안 녀석은?”

뭍으로 나온 서윤이 물었다.

“일단은 따돌린 모양이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용주가 갈린 숲을 바라보았다.

“저기….”

“묻고 싶은 건 나중에. 일단은 녀석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아… 응. 그래.”

고개를 끄덕인 서윤은 용주의 뒤를 밟았다.

* * *

얽히고설킨 지형들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산호초 지대로 돌아왔다.

이안의 추격은 없었다.

“하아, 하아.”

쉼 없이 달리던 서윤은 그제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체력 소모가 극심하게 느껴졌다.

“괜찮냐?”

“하아, 물론이지.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용주가 하얀 나무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마른 장작들을 모은 용주는 곧장 불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움직여야지. 방향을 몰라서 그러는 거면 내가 앞장설게. 대강 정도는 아니까.”

“아니,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낼 거다.”

“뭐?! 왜?!”

갑작스러운 용주의 대답에 서윤이 놀라 물었다.

“이안을 상대하려면 어차피 되돌아와야 하는 길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체력을 낭비하기보다는 힘을 비축해 두는 게 훗날을 도모하는 걸 테지.”

“그건 그렇지만….”

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까 그 독수리 같은 거 어떻게 다시 못 해? 날아가면 금방일 거 아니야. 그거 여기 사는 몬스터 아니잖아. 그렇지?”

“유감스럽게도 그런 건 당분간 못 만든다. 한도 초과야.”

“뭐? 한도 초과?”

“그래.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든다고.”

나무에 기댄 용주가 막대를 정비했다.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며 모아둔 골드의 대부분을 사용해 버렸다.

그만한 크기의 생명체를 연성하는 건 당분간 불가능했다.

“그럼… 진짜 여기서 자자고?! 둘이서?!”

서윤의 심장박동이 순간적으로 빨라졌다.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머리는 알고 있는데, 가슴은 그것과는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대충 아무 나무에나 기대앉으면 될 거다. 불은 이쪽에서 어떻게 할 테니까.”

“…….”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서윤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한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서윤은 오른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같은 나무에 기댄 용주는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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