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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05화 (105/357)

105화

“진짜~ 맛있는데요, 이거.”

갈비 하나를 통째로 뜯은 주원이 이야기했다.

아까 잡았던 사슴에 몇 마리와 새, 물고기.

그리고 몇 가지 과일들이 더해진 저녁상이었다.

“하핫. 많이들 잡수시오. 아직 충분히 있으니.”

불 위에 올려놓았던 산호를 꺼낸 금화가 안에 든 것을 빼냈다.

동그랗게 파인 산호의 안쪽엔 새고기 과일 꼬치가 들어있었다.

식자재의 조달과 조리는 대부분 금화가 맡았다.

누가 시킨 건 아니었고, 그가 희망했던 수고로움이었다.

“오빠 엄청 잘 먹네.”

예나가 무화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이런 진수성찬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원의 얼굴에 행복감이 흘렀다.

굼벵이랑 개미, 매미 같은 거 잡아먹는 거에 비하면 임금님 수라상이지 않은가.

“근데 예나는 뭐 안 먹어? 아까부터 고기엔 손도 안 대던데.”

“아… 응. 오늘은 별로 안 당기네. 괜찮아. 다른 거 많이 먹었으니까.”

고기라면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별로 생각이 없었다.

“음, 그래? 그거 아쉽네. 진짜 맛있는데.”

유감을 표한 주원이 꼬치를 받아들었다.

“근데 금화 형, 헌터 일 하기 전엔 뭐 하셨어요? 완전 프로 생존가 저리 가라던데요?”

주원도 나름 야생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금화에 비하면 자신은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형이라. 나도 그사이에 좀 젊어졌나 보구만.”

형이라는 호칭에 금화가 웃어 보였다.

“그렇게 궁금한가?”

“네! 꼭 듣고 싶어요! 형 말투나 호흡도 되게 신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뭐랄까? 고전 사극에서 튀어나온 장군 같다고나 할까?”

“장군이라. 그거 듣기 괜찮은 평가구만. 헌터가 되기 전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던 탐험가였다네.”

“탐험가? 그럼 제가 제대로 본 거네요?”

“뭐, 그렇지. 더 어렸을 적엔 ‘두석린갑’과 같은 갑옷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었다네. 이 말투도, 기본적인 체력과 생존지식도 다 그때 아버지께 받은 거지.”

“두석린갑?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에요.”

“용린갑이라고 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걸세. 지금 입고 있는 이런 거 말일세.”

금화가 소매를 툭툭 두드려 보였다.

“와~ 그럼 혹시 그거 직접 만드신 거예요? 산 게 아니라?”

“그래도 명색이 후계자인데, 그 정돈 해야 하진 않겠나. 뭐, 역마살이 들었는지 공방엔 거의 돌아가지 않지만 말일세.”

“장인에 탐험가에 헌터…. 뭔가 엄청난 인생을 살아오셨네요. 근데 왜 헌터로 전향하신 거예요? 다른 두 직업도 충분히 엄청나다고 생각하는데.”

“좁은 세상이 싫어 넓은 세상으로 나갔더니, 안 좋은 것들도 덩달아 많이 보이더군. 우리나라처럼 헌터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나라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있었지.”

금화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카오스 게이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네. 그날 그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난 거기서 죽었겠지.”

“그게 무슨…?”

“오지를 탐험하다 맞닥뜨린 언노운.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많은 희생이 따랐다네. 난 빚을 진 거야.”

“그런 일이….”

“뭔가 변화를 느낀 건 그 무렵부터였지. 그게 각성이라 불린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네.”

금화가 투구에 손을 얹었다.

“나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헌터가 되면 다시 밖으로 나갈 거라네. 진 빚을 갚기 위해서.”

“…….”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주원은 들고 있던 꼬치를 내려놓았다.

“그거 멋진데요. 음! 멋져요! 형이라면 분명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주원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금화가 강해지려는 이유는 자신보다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멋졌다.

“웬만하면 직접 좀 갖다 먹지 그러냐.”

꼬치 두 개를 가져온 용주가 하나를 내밀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네가 멋대로 가져다준 것뿐이라고.”

꼬치를 받아든 서윤이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서윤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둔 곳에 혼자 있었다.

“그러냐.”

꼬치를 입에 문 용주는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서윤은 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런 관심.

싫지 않았다.

“상처는 좀 어때?”

“그거 벌써 몇 번째 묻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냐?”

“아! 그… 그랬던가?”

“한시라도 빨리 돌려받고 싶은가 보지?”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걱정….”

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이유 없이 그냥 물어볼 수도 있지!”

이것 말고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달달한 디저트 생각나네. 고기 먹으니까.”

서윤이 급하게 주제를 돌렸다.

“그 정도면 그냥 아무 때나 생각나는 거 아니냐.”

“뭐? 아니거든!”

“자.”

용주가 반으로 잘라 낸 무화과를 던졌다.

무화과를 받은 서윤은 두 눈을 말똥거렸다.

자신이 생각했던 디저트 목록에 이런 건 없었다는 눈빛이었다.

“달달한 디저트.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아… 응. 그것도 그렇네. 근데 이거 어떻게 먹는 거야?”

단번에 얌전해진 서윤이 물었다.

“껍질까지 그냥 먹으면 된다더라.”

“음, 그래?”

서윤이 무화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달달한 과즙이 상당히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잘 익은 무화과는 안에 벌레가 있을 수도 있다곤 하더군.”

“후읍! 버… 벌레?!”

깜짝 놀란 서윤이 무화과를 이리저리 살폈다.

눈으로 보이는 건 없었지만, 갑자기 엄청 불안해졌다.

“배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영양분이라고, 그렇게 말하긴 하던데…. 뭐, 불안하면 좀 더 잘게 잘라 먹든가.”

금화가 해준 말을 전해준 용주는 뒤로 몸을 뉘었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살찐다.”

“남이사, 너랑 상관없잖아.”

“…….”

용주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서윤의 뺨이 부풀었다.

기껏 생각해서 해준 말인데, 이게 뭐냔 말이다.

‘남은 건 이제 이안뿐인가.’

다이어리를 꺼낸 용주는 이안의 데이터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세 마리의 몬스터는 확실하게 제거되어 있었다.

각기 다른 세 마리의 몬스터는 분명 까다로운 상대들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보다 더할 게 분명했다.

그때 보여줬던 이안의 위력은 조건이 걸려 있을 때의 위력.

세 몬스터가 쓰러진 지금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내가 맞춰볼까? 이안을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하고 있지?”

“뭐, 그런가 보지.”

“뭐야 그 이상한 대답은. 그래서? 좋은 수라도 있어?”

“좋은 수가 있으면 이러고 있진 않겠지.”

“…역시 말은 잘하네. 짜증 날 정도로.”

서윤이 남은 무화과를 한입에 집어넣었다.

짜증이 동반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있잖아,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입에 든 건 다 삼킨 서윤이 물었다.

“물어보는 건 네 자유지. 대답하는 건 내 자유고.”

돌아온 건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아까 내 눈이랑 닮은 사람을 알고 있다고 했잖아.”

“…그래. 그랬었지.”

“그 사람은… 어떻게 했어? 시원하게 한 방 먹여줬대?”

서윤의 물음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아니,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까지도 아직 돌려주지 못했다더군.”

“그 사람 일은 해결 못 해줬나 봐?”

“그래. 유감스럽게도.”

용주가 보고 있던 다이어리를 덮었다.

“그 사람 일도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당해보니까 알겠더라고. 얼마나 기분 더러운 일인지.”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용주는 머리 뒤로 팔짱을 끼었다.

“분위기 좋아 보이네?”

두 사람에게 다가온 조커가 자리를 잡았다.

“조… 좋아 보인다니!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지 말아줄래?”

서윤이 곧장 반박했다.

“후훗, 그래. 그렇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방금 그 말은 취소할게.”

“…그래. 마음대로 해. 취소하기 싫으면 안 해도 상관없고.”

서윤이 고개를 홱 돌렸다.

“어째 불편해하는 것 같네?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 그런 거 없거든? 바보 아니야?”

“후후, 그럼 조금 더 거리를 줘도 되는 거 아닐까 싶은데, 벚꽃 아가씨? 아까부터 엄청나게 거리 두고 있잖아.”

조커가 트럼프 카드 한 장을 보였다.

손바닥을 친 트럼프 카드는 장미꽃으로 바뀌었고, 그 뒤론 막대 사탕으로 변해 버렸다.

“아… 그건….”

“그래서 용건은?”

하늘을 보고 있는 용주가 물었다.

“이제 막 조금 재밌어지려던 참이었는데, 끼어드는 타이밍이 영 안 좋네, 소년.”

“…….”

“농담이야. 우리 말고 다른 팀이 얼마나 더 있을까,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헌터가 몇 명이나 될까. 소년 생각을 들어보고 싶더라고.”

“어떤 사고 과정을 거치면 그걸 나한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의문인데.”

“힘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있다면, 모을 수 있는 게 좋지 않겠냐는 뜻이야.”

“살아 있는 녀석들이 있다면, 알아서 움직일 거다. 우린 우리만 신경 쓰면 돼.”

“우리만 잔뜩 고생하고, 합격은 남들이 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은 안 해본 거야, 소년?”

“당연하지. 떨어진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으니까.”

“후후, 그거 믿음직스럽네. 안심이야.”

사탕을 건넨 조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다음번에도 잘 부탁한다고, 소년.”

자리를 뜬 조커는 주원에게 장난을 걸고 있었다.

* * *

밤이 무르익자 새근새근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깊게 잠든 예나는 버티를 꼭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모닥불 근처에 모인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깨어 있는 이는 조커 한 사람뿐.

카드를 가지고 놀던 조커의 시선이 무언가에 반응했다.

모닥불과 가장 먼 곳에서 일어난 서윤은 말없이 검을 챙겼다.

“눈치 없이 입 열면 한 대 패 버릴 거야.”

서윤이 먼저 선수를 쳤다.

“무섭기도 해라. 난 아무것도 안 물었고, 아무것도 안 물을 거라고.”

두 손을 들어 보인 조커가 항복을 표했다.

“…….”

조커를 한 번 노려본 서윤은 용주를 힐끔 바라보았다.

일어나 있을 땐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이 강했는데, 이렇게 자고 있는 모습은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서.

조금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잘 자고 있어. 내가 가서 정보 모아올 테니까.’

모닥불을 등진 서윤이 걸음을 옮겼다.

조커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던 서윤은 갑작스럽게 속도를 높였다.

‘비즈니스 파트너…. 그런 관계로라도 남으려면 뭐라도 있어야 해.’

용주와 처음 함께한 건 비즈니스를 위해서였다.

이제 그 비즈니스는 사라졌고, 자신이 쥐고 있는 유용한 카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당하게 옆에 있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뭔가가 필요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다고.’

낮은 경사면을 미끄러진 서윤이 폴짝 뛰어올랐다.

섬 중앙의 나무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소년, 슬슬 교대 시간이라고.”

조커가 용주를 깨웠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상체를 일으킨 용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눈만 감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완전 필름이 날아가 버렸다.

정신을 차린 용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총인원은 5명.

한 명이 비었다.

“서윤…. 녀석은 어디 갔지?”

“한참 전에 숲속으로 갔는데, 아직 안 돌아왔지 뭐야. 물어보면 한 대 패 버릴 거라고 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지.”

“그게 정확히 언제였냐.”

“글쎄…. 한 2시간은 된 거 같은데.”

“…….”

정신이 번쩍 든 용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쪽으로 갔냐?”

“저쪽이었지 분명.”

조커가 한 곳을 가리켰다.

섬의 중심 방향이었다.

“확인 정도는 해볼 수 있었던 거 아니었나?”

“말했잖아. 아가씨가 원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돌의자에 앉아 있던 조커가 다리를 꼬았다.

“내가 지켜야 할 1순위는 여기 있거든. 소년이라면 더 말 안 해도 알잖아.”

“…….”

걸음을 옮긴 용주는 독수리의 날개를 짚었다.

“조금 더 일어나 있어도 상관없겠지?”

“그건 부탁이 아니라 협박 같은데? 후후, 내 착각인가?”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용주는 그대로 독수리에 올라탔다.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녀석이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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