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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03화 (103/357)

103화

꾸르릉!

두 날개를 땅에 붙인 신드라가 날개를 펄럭였다.

땅을 쓰는 동작에 일어난 파도는 부채꼴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용주와 윤현은 모두 파도의 범위에서 벗어났지만, 특유의 스텝을 밟은 신드라는 곧장 용주를 사정거리 안에 두었다.

파악!

신드라의 날개에 치인 용주는 그대로 날아갔고, 산호초 사이를 나뒹굴었다.

“용주 씨! 위헙합니다!”

방울방울 피어오르기 시작한 물방울.

그게 의미하는 게 뭔지 알고 있는 윤현이 소리쳤다.

피어오른 물방울은 일순간 용주를 휘감았고, 일순간 강렬한 물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에 날아간 용주는 칼끝으로 지면을 긁으며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었다.

콰앙!

곧바로 이어지는 신드라의 도약 공격.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회피한 용주는 반격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큰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기대 이한데….’

전투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패기롭던 말과 달리 용주는 신드라에게 전혀 대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결과는 비디오였다.

‘좀비 헌터.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나?’

좀비 헌터라 불리는 용주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상반됐다.

지배적인 의견은 그가 약골 중의 약골이라는 것.

하지만 상대적으로 최근엔 D급 게이트에서 활약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험 자격을 얻었단 게 신빙성을 주는 부분이었지.

하지만 막상 눈으로 본 용주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서윤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했고, 다른 헌터들에 비해서도 뛰어나단 느낌은 전혀 없었다.

잘 해봐야 최약에서 약이 된 정도.

‘그럼 정작 실력이 있던 건 이주원 그 사람인가?’

1차 시험과 2차 시험.

그 기간 동안 용주와 계속 붙어있던 이는 주원뿐이었다.

말이나 행동.

그에게 붙은 별명.

그런 것들이 워낙 처참했기에 완전 논외로 두었던 인물이었다.

‘아니야. 실력자라기엔 주원은 너무 멍청해. 그럼….’

1차 시험은 실력이 없어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2차 시험은 시험의 난이도와 같이 묶인 멤버 등 운으로 작용할 요소가 여럿 존재했다.

실질적으로 개개인의 전투력을 측정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나는 건 둘 중 하나였다.

둘 다 운이 기가 막히게 좋거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가 보완해 주었었거나.

개인적으론 후자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었다.

운만으론 주원이 그렇게 충성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용주의 역할은 머리를 쓰는 브레인.

행동 대장을 맡았던 이는 주원.

그럼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그렇다는 건, 이건 100% 승산 없는 전투란 소리군….’

눈치를 보는 사이 용주는 완전 신드라에게 놀아나고 있었다.

잔 공격을 몇 번 적중시키기는 했지만, 그런 걸로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서 동반 탈락해 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데이터는 이 정도면 충분.

명분도 충분히 만들었고.

남은 건….

‘살려서 데려갈 것인가. 버릴 것인가.’

용주의 활용 가치를 저울에 올려놓은 윤현은 눈썹을 기울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굳이 머리가 둘이나 있을 필요는 없겠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이 둘인 것도 썩 마음에 내키진 않고.

‘그럼 사고인 척 슬슬 빠져볼까나?’

“용주 씨, 제가 시선을 끌겠습니다!”

충분히 확보하고 있던 안전거리를 깬 윤현이 신드라의 꼬리를 살짝 긁고 도망갔다.

고개를 돌린 신드라는 물대포를 쏟아냈고, 검면으로 물대포를 막아낸 윤현은 저 멀리 날아갔다.

“꾸르릉?”

미끄러지며 쫓아온 신드라는 윤현이 있던 곳을 뭉개며 지나갔다.

지면을 훑은 날개 아래에 윤현은 없었다.

‘큰일 날 뻔했잖아. 십 년 감수했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한 윤현은 벼랑을 향해 달렸다.

물론, 벼랑으로 떨어져 줄 생각은 없었다.

실제로 보고 있는 건 자신이 사용했던 비밀 통로.

미끄럼틀처럼 급경사 진 저곳으로 녀석을 유인할 것이다.

신드라는 분명 특유의 스텝을 밟으며 따라올 것이고, 99.99%의 확률로 통로의 입구와 충돌할 것이다.

입구가 부서지든, 아니든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은 경사면을 타고 저 아래 안전한 곳까지 내려갈 테니 말이다.

‘무운을 빈다고, 좀비 헌터. 혹시라도 살아남으면 그땐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흘려줄 테니까.’

벼랑 끝을 달리던 윤현이 용주를 힐끔 바라보았다.

자신과 정확히 직각을 그린 용주는 어딘가를 향해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신드라는 여기 있는데, 저 녀석 어딜 가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이 해결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저 녀석 설마…!’

용주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자신과 같았다.

그리고 그 끝엔.

‘나랑 똑같은 생각을…?!’

자신이 사용했던 바로 그 비밀통로가 있었다.

‘약아빠진 자식…!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한 거지?!’

윤현이 인상을 구겼다.

한 방 맞았다는 충격에 머리가 얼얼했다.

자신이 용주를 버릴 수 있다는 건, 용주 역시도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것.

당연하다면 당연한 그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설마 손절하려는 타이밍이랑 방법까지 똑같을 줄이야. 사고였다는 핑계조차 만들 생각이 없단 거냐?’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부분에선 박수를 보내주고도 싶었다.

탐정과 괴도처럼.

급이 맞아야 서로 같은 걸 생각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먼저 도달한 녀석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녀석이 저 루트를 없애 버리기라도 한다면….

자신이라고 신드라를 따돌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거리상으론 내가 불리해.’

뭔가 수를 써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왼쪽으로 방향을 튼 윤현이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자신이 불리했지만, 이 경로라면 용주와 중간에 맞닥뜨리는 게 가능했다.

그때가 마지막 기회.

녀석도 나름 머리가 잘 굴러가는 타입인 것 같지만….

이번엔 적수를 잘못 만났단 걸 확실하게 보여줘야지.

쏴아아!!

윤현을 쫓아오는 날카로운 물소리.

교묘하게 각도를 조절한 윤현은 공격이 용주에게로 향하게 만들었다.

용주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거리는 더 좁혀졌고, 마침내 윤현은 용주의 뒤에 바짝 붙을 수 있었다.

짧은 걸음으로 미끄러지며 따라붙은 신드라는 자신들을 겨누고 있었다.

‘이 장면, 그때랑 조금 닮았는걸.’

데자뷔 같은 게 느껴졌다.

같은 장소.

같은 몬스터.

같은 숫자.

그런 요소들 때문인 모양이다.

바뀐 건 사람과 순서.

그리고 상황.

‘이용주, 아무래도 날 만만하게 본 모양인데. 연예계에서도 살아남은 나야.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것 같아?’

이대로 함께 탈출하는 선택지도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괘씸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줘야겠어. 감히 이 나를 가지고 놀려고 해?’

이를 악문 윤현이 용주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경직된 윤현의 표정은 그가 지금껏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끝이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윤현은 용주를 잡아끌었다.

신드라의 물대포는 이미 장전을 마친 상태였다.

그 순간.

“이봐.”

끌려가던 용주의 무게 중심이 좌측으로 크게 쏠렸다.

왼발을 한 발 뒤로 뺀 용주는 그대로 허리를 틀었다.

검을 쥐고 있는 용주의 주먹은.

“미안하다. 손이 미끄러졌다.”

윤현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커헉!”

안면을 가격당한 윤현이 순간 비틀거렸다.

그리고.

쏴아아!

상승 곡선을 그린 한 줄기의 물줄기가 윤현의 어깨를 꿰뚫었다.

“……!”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윤현은….

절벽 아래로 날아가 버렸다.

고개를 돌린 신드라는 곧장 용주를 노렸다.

예리한 가로 선을 그리는 신드라의 물줄기.

땅에 바짝 달라붙어 공격을 피한 용주는 본격적으로 전투에 돌입하고 있었다.

* * *

“커흑…! 이런 젠장…!”

절벽 아래로 추락한 윤현이 몸을 웅크렸다.

코뼈가 뒤틀린 것처럼 아팠고, 어깨의 통증도 상당했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건 그게 아니었다.

“윽…. 으윽!!”

불행하게도 윤현이 떨어진 곳은 서윤과 달랐다.

날카로운 산호에 꿰뚫린 윤현의 옆구리에선 피가 줄줄 흘렀다.

“몰골이 말이 아니네.”

귓가를 스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윤현은 고개를 들었다.

“말도 안 돼…. 너는…!”

그의 앞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서윤이었다.

“귀신이라도 본 표정이네. 왜 내가 여기 있냐고 묻고 싶겠지? 그거야 당연히 아직 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안타깝게도 넌… 조만간 탈락 처리될 것 같네.”

서윤이 윤현의 옆구리를 가리켰다.

“이렇게까지 되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재수가 없었네. 안 그래? 너도 그리고 나도 거의 비슷한 조건에서 떨어진 것 같은데. 맞고, 꿰뚫리고.”

“맞았다고…? 떨어지면서 머리가 어떻게 됐나 보지?”

가쁜 숨을 몰아쉰 윤현이 말했다.

“아니, 난 분명 맞았어. 죽고 싶을 만큼 아팠고, 죽고 싶을 만큼 미웠다고.”

서윤이 심장에 올려놓은 손을 움켜쥐었다.

“신드라 놈이 여기 나타난 건… 설마 네가 한 짓이냐?”

“맞아. 처음부터 놈을 유인했던 건 나였으니까. 한 번 더 한다고 문제 될 건 없었지.”

“왜 그런 짓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필 그 타이밍에 하필 그 자리로….

“그거야 그러기로 돼 있었으니까. 비즈니스 파트너랑.”

“비즈니스 파트너…? 설마…!”

지금 이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그래. 바로 그 설마야. 이용주. 녀석이 내 비즈니스 파트너지.”

“…….”

윤현은 말이 없었다.

완전히 놀아났다는 충격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분열이 일어났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나. 거기서부터 다 계획된 거였다고?”

이제야 모든 일들이 납득이 갔다.

놈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거다.

자신이 한 일도.

자신이 할 일도.

“복수 때문에….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날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거냐?!”

윤현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그 꼴이 되고도 여전히 말은 잘하네. 재능이라면 재능이야. 그것도.”

“헌터가 고의적으로 헌터를 공격하다니, 길드에서 그냥 있지 않을 거다. 내가 너희 둘은 무조건 탈락시키고 말 거라고!”

“내로남불이네. 추하다 추해.”

“뭐라고?!”

“그런 거라면 네가 가장 먼저 실격되지 않겠어? 너 날 방패막이로 썼잖아.”

서윤이 상처 난 어깨를 짚었다.

“…….”

“미안하지만, 난 몬스터한테 쫓겼을 뿐이야. 이용주 녀석은 네가 뒤에서 잡아당겨서 손을 허우적거렸을 뿐이고. 네가 다친 건 순전히 우연. 하필 그때 신드라가 널 노렸고, 하필 그 자리에 떨어졌어. 그게 전부야.”

“어디서 그런 개 같은 논리를…!”

몸을 일으키려던 윤현이 고통에 주저앉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건 이용주 그 녀석도 했던 말이다. 나와 녀석은 다르지 않아. 녀석은 모두를 떨어뜨려서라도 자신만은 살아남으려 할 거다. 넌 또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이를 악문 윤현이 이야기를 토해 냈다.

“그래. 나도 이용당하고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는 인정 못 하겠어. 녀석은 너랑은 달라.”

서윤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지?”

“근거는 없어. 그냥 감이야. 여자의 감.”

“하! 순 억지잖아. 객관성도 논리도 없는.”

“그래, 맞아. 객관성도 논리도 없어. 그래도 난 그렇게 말할 거야. 적어도 녀석은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을 치진 않을 거라고. 자신을 위해 남을 고통 주진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으니까.”

“분명 후회할 거다. 머지않아서. 내가 장담하지.”

“그래? 그럼 나도 하나 장담할게. 난 절대 후회 안 해. 왜냐면….”

홍조를 띤 서윤이 고개를 돌렸다.

“난… 녀석의 파트너니까.”

서윤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서윤의 손에는 아까 용주에게 받았던 사탕 봉지가 들어 있었다.

“작별 선물이야. 널 많이 닮았더라.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점점 희미해져 가는 윤현의 모습.

오묘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그를 지켜보던 서윤이 봉지를 던졌다.

윤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안녕. 잠깐이지만… 좋아했었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서윤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절벽 위를 지난 물줄기는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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