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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02화 (102/357)

102화

“무대라…. 그거 재밌겠네. 근데 소년, 이런 생각은 안 해봤어?”

입꼬리를 올린 조커가 서윤을 바라보았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역전됐을 가능성.”

“뭐라고?!”

서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그렇게 흥분하지 말라고, 벚꽃 아가씨. 난 가능성을 말해본 것뿐이니까.”

“윤현 그 자식이 그사이에 무슨 말을 했는진 몰라도, 난 거짓말 같은 거 안 했어! 하늘에 맹세코 한마디도!”

윤현이 그사이 작업을 해뒀을 거라곤 생각했었다.

자기한테 불리한 부분만 쏙 뺐을 테지.

“용주 오빠는 이 언니 말 믿는 거지?”

두 사람을 번갈아 본 예나가 물었다.

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나도 언니 말 믿을게. 아직 뭐가 거짓말인진 하나도 못 들었지만….”

“뭐?”

서윤이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뭘 놀라고 그래요. 왜요? 싫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좀 의외라. 이 녀석이 그 정도로 신뢰받고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했거든.”

“언니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용주 오빠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 걸 아니까요.”

“…….”

“그리고 실은 저, 윤현이란 그 오빠 조금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그래?”

서윤이 조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 거야?”

“후후, 꼭 내가 소년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이야기하네. 유감스럽게도 난 처음부터 소년 편이었다고.”

조커가 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근데 소년, 한 가지 궁금증이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을까?”

“생각은 해보지.”

“이번 일, 정말 비즈니스가 전부인 거야? 혹시 감춰진 무언가가 소년 마음에… 들지 않았다든가?”

“…….”

“그래. 답변 고마워. 소년.”

용주의 침묵에 조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지금부터 대략적인 개요와 내 생각을 말해보도록 하겠다. 이의, 혹은 보완 수정할 사항이 보이면 부담 없이 말해주길 바란다.”

상황이 정리되자 용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간간이 한마디씩을 하던 서윤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용주도 윤현도 자기 생각이 또렷하고,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설계한다는 느낌은 비슷했다.

다만 뭐랄까…. 분위기가 다르다고 할까?

용주의 말투나 표정, 목소리 등은 분명 윤현에 비해 안정감을 주기 힘들었다.

거칠고, 딱딱하고, 날카로웠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리더로서 걸맞은 이미지는 윤현이 압도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러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편안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 * *

“저기 돌아오네요.”

하늘을 보고 있던 윤현이 이야기했다.

벼랑을 타고 내려온 독수리는 안정적인 착지를 보여주었다.

“어땠어요? 별일은 없었고요?”

세 사람에게 다가간 주원이 물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세 사람의 분위기가 아까와는 어딘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뭘 하든 오빠 마음대로 해! 난 빠질 거니까. 가자, 버티.”

토라진 눈매의 예나가 가장 먼저 뛰어내렸다.

용주에게서 아예 등을 돌려 버린 예나는 무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에? 에엑?!! 예나야 잠깐만 무슨 일인데?! 갑자기 왜 그래?!”

급하게 예나를 붙잡은 주원이 물었다.

너무 당황해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놔! 용주 오빠랑 더 같이 못 있겠으니까! 이제부턴 혼자 움직일 거야.”

“예나야, 좀만 침착….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심호흡부터 우선 한 번 하고….”

“그렇게 뻔뻔한 얼굴로 힘들고 위험한 일은 남한테 다 시키고! 오빠가 무슨 대장이라도 돼?! 누구 허락 받고?!”

예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빠가 스스로를 얼마나 똑똑하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진 몰라도, 오빤 아니야.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단단히 잘못 봤다고. 흥!”

주원의 손길을 뿌리친 예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주원은 용주와 예나를 번갈아 보았다.

용주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제… 제가 따라가 볼게요! 분명 뭔가 오해가 있는 걸 거예요!”

말까지 더듬은 주원이 서둘러 예나를 쫓아갔다.

가장 크게 반응한 이는 주원이었지만, 다른 두 사람이라고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윤현도 금화도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곰 아가씨도 비슷한 마음인가 보네, 소년.”

차분하게 독수리에서 내린 조커가 이야기했다.

그의 입술에 묻어 있던 마지막 미소는 아침이슬처럼 사라져 버렸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앞과 뒤가 다른 사람…. 누가 했던 그 말이 소년한테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

트럼프 카드를 꺼낸 조커가 카드를 떨어뜨렸다.

“지금의 소년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야. 지금의 네 그릇은 그 정도밖에 안 되니까. 하지만 네가 좀 더 어른이 되면 내가 했던 말을 꼭 곱씹어 보면 좋겠어, 소년.”

마지막 한 장 남은 조커 카드.

팔짱 낀 그의 손에서 나온 건 웃고 있는 하얀 가면이었다.

“가면은 중요한 거야. 인간과 인간 관계에선 항상 여러 종류의 가면이 따라다니지. 하지만 말이야 소년, 그 가면은 써선 안 되는 거였어. 적어도 스스로를 헌터라고 부를 거라면….”

얼굴을 가린 조커 역시도 용주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예나가 간 방향과는 또 다른 방향이었다.

“잠시만 기다려보시오.”

금화가 앞을 가로막았다.

“조심하는 게 좋으실 겁니다. 갑옷도 막아주지 못할 비수가 근처에 숨어 있을지 모르니.”

의미심장한 말을 속삭인 조커가 금화를 지나쳤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금화의 입술이 실룩였다.

상당한 고뇌를 머금은 움직임이었다.

“제가 쫓아가 보겠습니다.”

“아니, 내가 가겠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말일세.”

윤현을 가로막은 금화가 이야기했다.

걸음을 뗀 금화는 조커의 뒤를 밟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전… 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용주와 마주 선 윤현이 물었다.

세 사람의 분위기는 분명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늘만이 아니라 조사했던 데이터에서도 분명 그러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쯧!”

혀를 찬 용주는 또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윤현이 용주를 따라잡았을 때는 이미 몇 번의 풍경이 바뀐 뒤였다.

“당신답지 않군요.”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럼 말씀해주시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놈을 쓰러뜨리기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지를 생각했을 뿐이다.”

“그 선택지란 거, 괜찮다면 제게도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제 귀로 듣고 직접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왜 두 사람이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

두 번의 물음에도 용주는 초지일관 침묵을 지켰다.

“혹시 제게 말 못 할 무언가가 있는 겁니까?”

용주의 표정에서 뭔가 싸함을 느낀 윤현이 물었다.

두 사람의 태도가 바뀐 건 용주와 함께 나선 이후.

그 전과 후의 차이라면 자신의 존재뿐이었다.

어쩌면.

용주가 생각한 선택지란 건 자신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굉장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두 사람의 말이나 반응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꾸르릉! 꾸릉!!

바로 그때.

작은 진동과 함께 무언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윤현이 알고 있는 소리였다.

‘이 소리는…. 설마.’

고개를 든 윤현은 넝쿨이 가득한 절벽 위를 바라보았다.

쏴아!

경계선을 넘어선 파도가 공중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특유의 미끄러지는 움직임으로 드리프트를 하고 있는 신드라가 있었다.

“신드라?! 녀석이 왜 여기에?!”

녀석은 먼저 접근하는 이가 없으면 거의 움직이지 않았었다.

그런 녀석이 여기 있다니.

이건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와는 명백히 모순되는 사건이었다.

콰앙!!

절벽 끝에서 미끄러진 신드라는 그대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한 바퀴를 굴러 일어난 녀석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얼굴에 튄 흙먼지를 털어낸 윤현이 물었다.

일단은 용주를 따라 검을 뽑은 윤현이었다.

“어떻게 하긴. 쓰러뜨려야지.”

“무모합니다. 그보단….”

“다른 녀석들을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고? 아까 못 봤나 보지?”

“…아뇨. 그래도 돌아오실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말리러 간 분들도 있으니까요.”

“녀석들이 간 곳은 여기와 전혀 다른 방향이다. 게다가 여긴 헤어진 자리랑 한참 떨어진 곳이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녀석들이 여기보다 고지대에 있을 가능성, 고지대에서 이 광경을 목격했을 가능성. 넌 그 확률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지?”

“…높진 않겠죠. 분명히.”

신드라가 절벽 끝에 나타나기 직전까지도 자신들은 녀석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런 주제에 훨씬 먼 곳에 있을 사람들이 이걸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건 현명한 판단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설령 녀석들이 돌아온다 해도,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헌터는 원래 혼자니까.”

지면을 찬 용주가 뒤로 크게 물러났다.

신드라의 입에서 사출된 날카로운 물줄기는 지면에 상처를 남겼다.

“게다가 여긴 주변에 물 하나 없는 평야. 놈이 나와 준다면 이쪽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지. ‘신드라는 주변의 물을 흡수해 힘을 보충한다.’ 네가 했던 말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땅을 찬 용주는 전력으로 뛰쳐나갔다.

‘씨…. 이거 난감하게 됐는데, 어떻게 하지?’

표정을 숨긴 윤현이 손톱을 깨물었다.

용주의 목소리와 표정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지금 그 말은 100% 진심이었다.

게다가 용주의 논리에 반박할 만한 마땅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이 전한 정보까지 활용한 그의 말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었다.

‘설마 이런 전개가 될 거라곤 전혀 예상 못 했는데…. 한 번 재수가 없으려니까 아주 지랄이 풍년이구만.’

그 전투부터 지금까지.

갑자기.

갑자기.

또 갑자기의 연속이었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는 게 나한테 유리할까….’

또 한 번 선택해야 했다.

생각나는 선택지는 두 가지.

하나는 용주를 도와 전투를 이어가는 것.

신뢰를 확실히 쌓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부상의 위험이 적지 않은 선택지였다.

다른 하나는 용주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

부상의 위험은 적겠지만, 용주와의 관계는 그걸로 완전히 끝이었다.

‘아니지. 둘 다 교묘하게 걸치면 되잖아. 되면 좋고, 아님 말고.’

후자를 먼저 선택하면 전자는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자를 먼저 선택하면 후자 역시도 선택할 수 있었다.

약간의 리스크는 감수해야겠지만, 최고로 현명한 선택지였다.

용주가 승리하면 그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잘만 다독이면 두 집단을 다시 하나로 묶는 것도 가능할 거다.

자신의 역량이라면 쉬운 일이지.

물론, 그때는 리더가 자신이 되어 있을 거고.

반대의 경우도 용주를 구하기 위해 싸웠단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

용주의 전투 스타일, 순간순간의 판단.

그런 사실적인 데이터가 없으면 거짓말의 깊이가 얕아진다.

거짓말조차 완벽하게.

나중에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때.

용주라는 밧줄을 이용하려면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었다.

“엄호하겠습니다!”

결정을 내린 윤현이 외곽으로 크게 돌았다.

노리는 곳은 신드라의 오른쪽 날개.

서윤이 만들어놨던 상처들은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비스듬한 경사면을 내달린 윤현은 상처 부위를 또 한 번 후벼 팠다.

먼저 앞장섰던 용주는 놈이 만들어낸 파도에 휩쓸려 저만치 밀려나고 있었다.

‘칫! 뭐야? 그거 하나 못 피한 거냐?’

실망스럽긴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첫 교전 때 자신도 저기 휩쓸린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여기, 거기잖아?’

신드라의 등짝을 차며 물러난 윤현은 넝쿨에 매달렸다.

비슷비슷한 지형이 워낙 많기도 하고, 딱히 신경 쓰지도 않아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긴 마지막으로 신드라와 전투를 펼쳤던 바로 그 평원이었다.

몬스터의 유해는 어딘가로 가버렸지만, 잘린 산호와 불에 그을린 흔적들은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우연치곤 너무 이상한데….’

신드라를 여기까지 유인하기 위해 들였던 노력이 있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내가 감지 범위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냄새든 뭐든 그때 놓쳤던 날 기억하고 있었던 건가?’

그렇게 하면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그건.

자신에게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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