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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100화 (100/357)

100화

* * *

“히야~ 하늘을 날다니 뭔가 짜릿한데요? 용주 형 덕분에 좋은 경험 했어요.”

독수리에서 내린 주원이 이야기했다.

설마 이런 식으로 하늘을 날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난 오빠 때문에 진짜 짜릿짜릿했었다고. 떨어질 뻔한 게 몇 번인 줄 알아?”

예나의 눈썹이 부자연스럽게 떨렸다.

황금 독수리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3명이 탔을 때와 5명이 탔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게다가 주원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게 비행기를 처음 타 본 어린애 같았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덕분에 떨어질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핫! 미안, 미안. 그런데 여긴 진짜 완전 다른 세상이네. 따뜻하고 조용한 게 엄청 평화로워 보여.”

주원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록달록한 산호들이 있는 이곳엔 사슴들이 뛰놀았고, 보들보들한 꽃씨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캠핑오기 딱 좋은 공간인걸. 이 정도면 지중해 부럽지 않겠어.”

자세를 낮춘 조커가 손을 내밀자 하얀 족제비 한 마리가 그의 팔을 타고 올랐다.

어깨까지 오른 족제비는 이내 등 뒤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래도 막상 평화롭지만은 않을 거라오. 여기도 시험장이니.”

금화가 어깨를 풀었다.

용주를 제외한 네 사람을 내려준 독수리는 날개를 쫙 뻗었다.

다시 한번 날아오를 기세였다.

“용주 오빠?”

“저공비행으로 일대를 둘러볼 거다. 숲과 달리 개방감이 있으니까 몬스터든 헌터든 발견할 수 있겠지.”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저도! 저도 같이 갈래요!”

주원이 폴짝 뛰었다.

“아니, 나 혼자 갔다 올 거다. 넌 여기 남아 있어.”

“왜요?”

“혹시나 모를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연락망 정도는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아!!”

주원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이 주변을 탐색하고 있겠소. 하늘에서 보기 쉽게 표시를 해둘 테니,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을 거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용주는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사람 그림자는 하나도 안 보이잖아.’

몬스터의 유해를 살피던 용주가 다시 독수리에 올라탔다.

몬스터에 남아 있는 상처들은 분명 검에 의한 것이었다.

칼날이 남긴 흔적들로 봐서 놈을 상대한 헌터는 최소 3명 이상.

아무래도 이쪽에 있던 헌터들도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다.

‘나라면 여기서 어디로 갔을까…….’

중앙 나무를 올려다본 용주는 비탈길을 따라 올라갔다.

저 멀리 하얀 나무가 한 그루 보였다.

목화를 닮은 분홍 이파리를 가진 나무는 말랑말랑한 식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깎아지는 절벽. 저 위로 갈 거라면, 저쪽으로 돌아가는 게 그나마 가능성 있을 거야.’

절벽 위로 날아오른 용주의 눈앞에 넓은 평야가 나타났다.

딱히 이상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평범한 지형으로 보였다.

“…….”

하지만 그건 첫 느낌뿐이었다.

여기선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었다.

평야의 중심부엔 몬스터 하나가 죽어 있었다.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고여 있었고, 화염이 만든 그을음이 바닥과 벽면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산호가 반듯하게 잘려 있어.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하게.’

산호들에 남은 상처는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한 번 잘린 산호가 있는 반면, 세 번 이상 잘린 산호도 있었다.

‘저 녀석이 한 짓인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은 자는 많은 것을 말한다.

그 말을 떠올린 용주는 몬스터의 사체에 다가갔다.

용주는 차근차근 상황을 분석했다.

놈의 몸에 남은 무수히 많은 절상.

베이고, 찢기고, 쥐어뜯긴 상처들.

그 속에는 이질적인 상처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직선으로 둥글게 파인 관통상.

보통의 검이 남긴 상처라기엔 이 상처는 너무 이상했다.

‘헌터들과 이 녀석 외에 다른 몬스터가 하나 더 있었던 건가?’

가설을 하나 세운 용주는 놈의 머리로 다가갔다.

날카로운 이빨들 사이로 풍기는 옅은 탄내.

아무래도 불에 그을린 흔적은 이 녀석의 작품인 모양이었다.

‘불을 사용한 건 이 녀석, 그럼 물을 사용한 게 나머지 한 녀석이란 게 되는군.’

비가 와서 웅덩이가 생겼다면, 분명 이곳까지 오면서도 물의 흔적을 발견했어야 했다.

그럴 만한 지형은 얼마든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은 이곳에만 고여 있었다.

반듯하게 잘려 나간 산호초.

몬스터의 몸이 뚫린 관통상.

그건 아마 이 자리에 없는 한 녀석의 작품일 것이다.

‘여기서 전투를 벌이던 녀석들은 놈을 추격하러 간 건가?’

이어지는 그림을 그리던 용주의 눈에 한 가지 물건이 들어왔다.

‘저건……?’

걸음을 옮긴 용주는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한 권의 다이어리.

목격한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는 바로 그 물건이었다.

‘전투 중에 떨어뜨린 건가? 그게 아니면…….’

표지의 앞면엔 눌어붙은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표지를 넘긴 용주는 페이지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종이는 확인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림이 번지거나 흐려진 건 아니었지만, 건드리면 분명 찢어질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일단은 챙겨두는 게 좋겠지.’

반대편 절벽으로 향하는 용주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더 떠올랐다.

그건 바로 여기 있던 헌터들이 전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 가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증거는 저쪽에 떨어져 있는 또 한 권의 다이어리였다.

‘만약 이 아래로 누군가 떨어졌다면?’

위협적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없었지만 절벽의 높이는 제법 있었다.

다리로 떨어진다 해도, 아마 부상을 피할 순 없을 높이었다.

하지만 절벽 아래쪽은 아까 봤던 푹신한 식물들이 깔려 있었다.

밟았을 때의 느낌은 폭신한 스펀지와 트램펄린의 탄력을 합쳐놓은 느낌이었다.

만약 저 위로 떨어졌다면, 생각만큼의 부상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내려가 볼까.’

휘파람으로 독수리를 부른 용주는 수직으로 절벽을 내려갔다.

주변을 살피던 용주의 눈은 머지않아 한 곳에 고정되었다.

식물 사이엔 선명한 혈흔이 남아 있었다.

* * *

“흐흐흥~ 몬스터는 딱히 안 보이고. 사람도 딱히 안 보이고, 어디 이세계의 무인도에라도 떨어진, 약간 그런 기분이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주원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저씨처럼 혼잣말을 멜로디에 담은 주원이었다.

“아니, 아니지. 지금 시험 중이라고. 방심하면 안 돼. 긴장! 집중!”

스스로를 다그친 주원이 자리에 멈춰 섰다.

“그나저나 여긴 아까 왔던 길인 것 같은데……. 아닌가? 그냥 비슷하게 생긴 다른 곳인 건가?”

주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숲보다 훨씬 시야가 넓어서 찾아가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너무 막 와버렸다.

“그래도 위쪽으로 많이 올라온 느낌이 있었으니까, 아까 금화 형이 만든 표시가 보일 거야. 어디….”

“콧노래가 들리길래 따라와 봤더니, 아는 얼굴이네요.”

“응?”

주원이 고개를 돌렸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숨을 고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윤현이었다.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가운걸요, 주원 씨?”

윤현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용주 오빠,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주원 오빠도 어디까지 갔는지 모르겠고.”

산호와 자갈을 섞어 만든 표식을 바라보던 예나가 이야기했다.

“걱정되나 보죠, 곰 아가씨?”

“조금. 아니, 주원 오빠 쪽은 좀 많이 걱정되네. 차라리 내가 같이 움직일 걸 그랬어.

예나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가능성이 못해도 70%는 될 것 같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기 오는구려.”

사슴 한 마리를 둘러메고 온 금화가 이야기했다.

“응? 근데 한 명이 아닌 것 같은데?”

예나가 초점을 다시 잡았다.

주원 옆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용주는 아니었다.

그건…….

‘윽…….’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윤현이란 헌터였다.

“휴, 여러분을 만나 얼마나 다행인 줄 모릅니다.”

윤현이 네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제 가정대로라면 시작 위치가 전혀 달랐을 텐데, 이렇게 네 분이 모여 계실 줄이야.”

“한 명 더 있어요. 지금은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주원이 대답했다.

“한 명 더?”

“네. 용주 형도 지금 여기 있어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온댔어요.”

“그렇군요. 용주 씨도 여기에…….”

윤현이 미소를 삼켰다.

조커에 용주까지.

아무래도 행운의 여신이 아직 자신에게 등을 돌리진 않은 모양이다.

서윤이란 카드를 그렇게 소모해 버린 건 조금 아쉽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탈락한 사람은 자신이 됐을 텐데.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몰골이 말이 아닌데.”

금화가 물었다.

“전투가 있었습니다. 함께 힘을 모았던 분들과 함께하고 있었죠.”

“다른 헌터들?”

“네. 여러분들이 품으실 의문을 압니다. 안타깝게도 제 자질이 부족했습니다.”

주원이 비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말은…….”

“토벌에 실패하고 뿔뿔이 흩어졌거나, 전멸했다는 소리겠지. 안 그래, 소년?”

조커가 말을 이어받았다.

“여기서 거짓말을 해봤자 소용없겠죠. 네. 안타깝게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생존자는 저 한 명뿐입니다.”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린 윤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고통에 찬 그의 표정은 손등 너머로도 보일 정도였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 적이었던 게요?”

“전투 자체는 분명 할 만했습니다. 저희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죠. 제가 예상하지 못한 건 딱 두 가지였습니다.”

“두 가지?”

“그렇습니다. 하나는 다른 몬스터의 난입. 죽였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어째선지 살아서 나타났습니다. 전보다 더 강해져 있더군요. 놈의 난입으로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부상자도 속출했죠.”

“음……. 확실히 그건 예상하기 힘든 변수였겠구려.”

금화가 팔짱을 끼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제 지시에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날뛰던 헌터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서윤. 아까 함께 도시락을 먹을 때 있었으니 여러분들도 기억하시겠죠.”

“그 까칠했던 소녀였지, 아마.”

“네. 이미 한 번 틀어졌던 게 한 번 더 틀어지면서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전 어떻게든 잘못된 걸 바로잡아보려고 했지만, 그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죠. 설마 그렇게 막 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90의 진실 속에 10의 거짓을 섞은 윤현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리드해 나갔다.

거짓말이 들킬 가능성은 0%.

증거도 증인도 없는 이곳에선 자신의 말이 곧 진실이었다.

* * *

불규칙하게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온 용주는 산호초를 쌓아 만든 바리케이드를 헤집었다.

바리케이드 뒤쪽으론 바위와 바위가 서로 기대어 만들어진 공간이 하나 있었다.

키리리링!

용주가 안쪽으로 들어서자 날카로운 쇠붙이가 지면을 할퀴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며 일어난 한 사람.

그는 용주의 기억 속에도 있는 인물이었다.

“너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서윤이 벽에 등을 기댔다.

용주는 그녀를 눈으로 훑었다.

얼굴을 비롯한 곳곳에 상처가 있긴 했지만, 가장 눈에 띄는 상처는 어깨에 있는 관통상이었다.

‘녀석에게 있던 거랑 같은 종류인가.’

상처의 크기는 달랐지만, 모양은 아까 그 몬스터에게 남아 있던 것과 동일했다.

“나한테 다가오지 마! 경고했어!”

검을 앞으로 뻗은 서윤이 살기를 뿜어냈다.

용주는 그녀의 눈을 주시했다.

저 눈…….

그녀가 하고 있는 저 눈은 왠지 자신과 조금 닮은 것 같았다.

믿었고, 좋아했던.

혹은 동경했던 무언가에게 배신당한 그 눈과.

“절벽 위에서 발견했다. 돌려주지.”

용주가 다이어리를 던졌다.

“혼자 살아남은 거냐?”

“상관하지 마! 너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그래.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지.”

걸음을 옮긴 용주는 그녀의 사정거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톱날은 용주와 불과 3c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도 내 물음엔 답해줘야겠다. 넌 내가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난 네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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