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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99화 (99/357)

99화

* * *

세 사람을 태운 황금 독수리가 하얀 숲에 착륙했다.

착륙하기도 전에 먼저 뛰어내린 조커는 곧장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걷는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빠른 속도였다.

머지않아 세 사람 앞에 한 구의 사체가 나타났다.

거대한 하얀 거미였다.

숲엔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검기가 만든 크고 깊은 상처와 날카로운 생명체의 손톱자국.

그리고 무언가 꺼내진 것으로 보이는 고치도 현장에 남아 있었다.

앞질러 가는 두 사람과 달리 금화는 사체를 좀 더 유심히 살폈다.

죽은 짐승이 남긴 단서들을 살피는 그의 눈은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조커 형! 용주 형!”

두 사람을 발견한 주원이 소리쳤다.

울상이 된 주원의 표정은 안도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조커는 주원을 스쳐 지나갔다.

누워 있는 예나의 상태를 확인한 조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깨우려고 해봤는데, 도저히 일어나질 않아요.”

“그야 평범하게 잠든 게 아니니 당연하지 않겠소.”

뒤따라온 금화가 이야기했다.

그의 손엔 황색 액체가 담긴 고치가 들려 있었다.

“녀석의 모티브가 된 개체는 아마도 내가 마주친 적 있는 개체일 거요.”

“정말이에요?”

“그렇소. 대응책이라면 알고 있소. 의료 헌터가 없는 지금이라면 이게 가장 효율적인 방책이겠지.”

금화가 고치를 내려놓았다.

“이게 뭔데요?”

“녀석의 피라오. 이걸 입에 흘려 넣으면 금방 깨어날 수 있을 거요.”

금화의 말을 들은 주원은 고치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조커가 한발 더 빨랐다.

“괜찮다면, 간병은 맡겨주지 않겠어, 소년?”

조커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아, 아이스크림!”

포근한 잠꼬대를 중얼거린 예나가 눈을 떴다.

그녀의 앞엔 분장한 피에로가 있었다.

“악!”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한 예나가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집사? 왜 집사가 여기에.”

“곰 아가씨 걱정에 한 걸음이 뛰어와 버렸지 뭐예요. 정확히는 날아왔지만요.”

목소리를 죽인 조커가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날아와? 설마…….”

조커가 고개를 저었다.

“신기한 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일어나시거든 세 분께 인사라도 한마디 해주세요. 모두 걱정도 도움도 많이 주셨으니.”

“그래……. 그랬었구나. 나 근데 어떻게 됐던 거야? 머릿속이 하얀 게 기억이 안 나는데.”

“몬스터의 고치에 당했다고 하더군요.”

“아! 카브닐?! 카브닐은?!”

“이주원 헌터가 마무리 지었습니다. 고금화 헌터가 아가씨를 깨우는 법을 알고 있었고요.”

“고구마? 아! 갑옷 입었던 그…….”

상체를 일으킨 예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세 사람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 나 그럼 또 신세만 진 거네. 내 힘으로 멋지게 처리하고 싶었는데…….”

“이주원 헌터가 그러더군요. 발견부터 추격, 토벌에 이르기까지 예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

자리를 털고 일어난 예나는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예나야! 정말 다행이야.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주원이 가장 먼저 물었다.

“응.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구해줘서.”

“고맙긴.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내가 좀만 더 잘했으면 그런 험한 일 당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주원이 손사래를 쳤다.

“허헛! 그래도 괜찮아 보여서 안심이구려.”

금화가 웃어 보였다.

“고구마……. 아니, 금화 아저씨가 날 깨워줬다면서요? 고마워요. 전 아저씨한테 도움받을 일 같은 거 한 적 없는데…….”

“힘들 때 돕는 게 동료 아니겠소이까. 우린 한솥밥도 먹은 사이인데.”

“…….”

예나의 시선이 용주에게 향했다.

“미안…….”

예나는 용주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끝까지 전하지 못했다.

예나의 머리에 손을 올린 용주는 조커에게 가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단둘이서.”

용주가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소년이 원한다면야.”

두 사람은 조금 더 깊은 숲으로 사라졌다.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충분히 거리를 뒀다고 생각한 용주가 걸음을 멈췄다.

“그래서 무슨 중요한 이야기가 있길래 그럴까나? 그런 무서운 눈으로.”

“아까 녀석이 하는 말을 들었다.”

“말이라니?”

“예나가 널 이렇게 부르더군. ‘집사’라고.”

“…….”

조커의 포커페이스가 조금 굳어졌다.

그 거리에서 그렇게 작은 목소리를…….

“곰 아가씨가 착각한 것 같더라고. 내 이목구비가 집사랑 좀 닮았나 봐. 잠결에 본 얼굴이니 그럴 수도 있지.”

“시치미 떼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데.”

용주가 눈썹을 기울였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용주의 표정에 조커는 허리춤을 짚었다.

“예나는 집사가 자신의 검을 선물해 줬다고 그랬었다. 녀석이 가진 검은 절대 E급 게이트에서 나올 물건이 아니었지.”

“……훗, 설마 귀가 그렇게 밝은 줄은 몰랐는데, 소년? 아니, 이용주 헌터.”

조커의 목소리 톤이 확 바뀌었다.

“솔직히 좀 놀랐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들릴 줄이야.”

“어떻게 시험에 참여한 거냐? 기운은 어떻게 감췄지?”

“후후, 믿어줄진 모르겠지만, 부정한 방법은 단 하나도 없었어. 내가 뭐, 숨겨진 감독관이니 하는 그런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

“간단해. 나 혼자 2명의 헌터가 되면 되는 거야. 한 명은 B급 헌터인 임승우, 다른 한 명은 E급 헌터인 조커. 조커는 물론 가명이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가능해. 내가 그 증거지.”

“…….”

“한 몸에 깃든 두 개의 이름. 티르의 손의 계측도 속이는 진정한 마술사.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승우가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왜 그런 게 필요했던 거지? B급 헌터의 자격이 있다면, E급 게이트를 드나드는 데엔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

“하위 게이트에 나타난 상위 헌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승우가 혼잣말을 던지듯 물었다.

“전부 상위 헌터에게 의지하겠지.”

“잘 알고 있네. 아가씨는 강해지고 싶어 하셨어. 난 그런 아가씨를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었고. 하지만 임승우라는 인물에겐 그보다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됐어. 리더로서의 직무유기는 누군가의 목숨과 직결되니까.”

“상위 헌터라면 하위 게이트를 혼자 할당받는 것도 가능한 걸로 아는데?”

형만의 사례를 떠올린 용주가 이야기했다.

“안 해본 건 아니야. 그런데 아가씨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 화실 안에서 자란 화초 같다고. 무시당하고 안 좋은 소리 듣더라도 진짜 헌터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한 사람을 더 만들기로 했다?”

“E급 헌터는 그런 책임에서 자유롭기도 하고, 아가씨의 활약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좋고. 하다 보니 조커라는 캐릭터도 나름 재미있고 말이야.”

두 장의 카드를 꺼낸 조커가 카드 앞면을 보였다.

카드엔 흑백과 칼라.

두 종류의 조커가 그려져 있었다.

“……묻고 싶은 건 여기까지였다. 돌아가지.”

뒤돌아선 용주가 이야기했다.

“모처럼 둘만인데, 나도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임승우라는 헌터랑 만난 건 지금이 처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훗, 그것도 그렇네. 아무튼 대답해 줄 거지?”

“물어보는 건 그쪽 자유다. 대답하는 건 이쪽 자유고.”

용주가 딱 선을 그었다.

“너는 왜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있는 건지. 그게 묻고 싶더라고.”

“…….”

고개를 돌린 용주의 시선이 승우와 마주쳤다.

승우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

고개를 돌린 용주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흩날리는 꽃가루와 파랗게 물든 산호초.

그 속에서 날카로운 물줄기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자리에 남은 인원은 약 3명.

처음 7명이었던 인원은 벌써 이렇게나 줄어들어 버렸다.

‘신드라……. 설마 이 정도로 까다로운 놈일 줄이야.’

물웅덩이에 발을 담근 윤현이 턱 끝을 닦아냈다.

윤현의 앞에는 푸르고 매끈한 비늘을 가진 용 한 마리가 물대포를 쏟아대고 있었다.

‘이 인원이면 어렵지 않게 잡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 녀석이 난입할 줄이야.’

전투의 첫 흐름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서윤의 선제공격을 윤현이 이어받았고, 다른 헌터들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문제가 생긴 건 그로부터 얼마 후.

한 마리의 몬스터가 전투에 난입하면서부터였다.

놈은 분명 서윤을 구하면서…….

아니, 서윤을 구하는 연기를 하면서 마주쳤던 몬스터였다.

그때 확실히 목숨을 끊어놓았을 텐데…… 어째선지 놈은 더 강해진 모습으로 앞에 나타났다.

‘죽이긴 했는데, 타격이 너무 커. 게다가 이렇게 쓸모없는 쭉정이들이 많을 줄이야.’

서윤을 제외한 인원은 윤현이 그렇게 눈독을 들이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

윤현이 눈여겨봤던 다른 인물들은 조커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그 사람과 좀비 헌터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이용주.

아쉽게도 두 사람은 배치상 너무 먼 곳에 배정되어 버렸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은 물러나야 해. 여기 더 있다간 분명 전멸하고 말 거야. 나까지 그렇게 탈락할 수야 없지.’

입가를 닦은 윤현이 생각을 굳혔다.

“으아아아!!”

혼자서 신드라에게 돌진한 서윤이 놈의 날개를 찢어냈다.

짙은 살기를 뿜어내는 그녀는 놈의 시선을 혼자서 끌고 있었다.

“윤현 씨 이제 어떡하죠?”

옆구리를 짚은 헌터가 물었다.

그의 상처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퇴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대론 전멸할 겁니다.”

“가능할까요? 놈이 곧장 쫓아올 텐데.”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전부 탈출하는 건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불가능합니다. 이런 부상으론 놈을 따돌릴 수 없어요.”

윤현이 안타까운 듯 이야기했다.

‘이 정도 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속마음을 숨긴 윤현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두 분이서 도망가세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 시선을 끌어볼 테니까!”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부족한 바람에…….”

“탈락하는 건 제 실력이 부족해서입니다. 윤현 씨는 잘못 없어요.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정말……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눈물을 보인 윤현이 고개를 숙였다.

“서윤 씨!”

눈물을 닦은 윤현이 서윤의 이름을 불렀다.

지면이 잘릴 정도의 수압을 자랑하는 신드라의 물대포를 피한 서윤은 앞꿈치로 지면을 긁으며 멈춰 서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여기까지입니다! 물러서죠! 이 이상의 희생은 개죽음입니다!”

“물러선다고? 알았어! 그럼 내가 녀석의 시선을 끌 테니까 저기 부상을 입은 녀석부터 어떻게……!”

“아뇨! 여기서 벗어나는 건 당신과 저 둘입니다! 부상을 입은 다리론 멀리 도망갈 수 없어요!”

“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서윤이 당황한 듯 물었다.

자신을 구해줬던 윤현이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 잔인하게 들렸다.

“안타깝지만 이게 최선입니다. 양해도 구했습니다. 어서!”

“……알았어.”

땅을 차며 뒤로 물러난 서윤은 윤현에게 합류했다.

“갑시다!”

윤현은 곧장 거리를 벌렸다.

서윤은 그런 그를 쫓았다.

윤현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자신들이 버리고 온 사내의 처절한 비명이 들리는 와중에도.

꿀렁! 꾸르르릉!

신드라의 추격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특유의 미끄러지는 스텝을 밟은 신드라는 날카로운 물대포를 쏟아냈다.

일자로 잘려 나간 산호들은 마치 꽃잎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쪽으로!”

서윤의 손을 잡아끈 윤현이 다른 곳으로 각도를 틀었다.

“그렇지만 거긴 절벽…….”

“혹시나 있을 사태를 대비해 탈출할 만한 루트를 찾아놨었습니다. 충분히 좁고 단단한 걸 확인했으니 녀석이 쫓아오진 못할 겁니다.”

“뭐? 그런 게 있었으면, 아까 그 사람 데리고 먼저 갔어도 되는 거 아니야?”

“합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편이 합격할 확률이 더 높았습니다. 잘못해서 서윤 씨라도 큰 부상을 입으면 일이 더 크게 꼬였을 겁니다.”

윤현의 이야기에 서윤은 이를 악물었다.

“……그게 정말 합리적인 거야?”

“물론입니다. 이견이 나올 리가 없는 완벽한 선택이죠.”

“…….”

윤현의 판단은 분명 납득 가능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판단은 기계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다.

꾸르르릉!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던 서윤의 시야에 신드라가 보였다.

미끄러지듯 따라붙은 신드라의 머리는 윤현을 겨누고 있었다.

“위험……!”

물대포에 직격당한 서윤의 몸이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아……?”

점점 멀어지는 절벽 위.

서윤의 눈동자는 충격에 색이 바래 있었다.

관통당한 옆구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더 아픈 곳은 몸에 생긴 상처가 아니었다.

‘윤현……?! 너……!’

위험을 직감한 서윤은 몸을 던져 윤현을 구하려 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탈락하는 한이 있어도 지켜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 공격에 적중당한 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몸을 던지기 바로 직전 윤현은 자신을 잡아끌었다.

자신을 방패로 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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