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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98화 (98/357)

98화

지룡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용주는 재빨리 수첩을 확인했다.

놈의 이름은 ‘칸’.

이안을 쓰러뜨리기 위해 제거해야 할 세 마리의 몬스터 중 하나였다.

모래벌판에서 마주친 두 몬스터는 서로를 경계하며 원을 그렸다.

선공에 들어선 건 폭군이었다.

칸은 그런 녀석을 머리로 들이박고는 뒤쪽으로 던져 버렸다.

공중에서 중심을 바로잡은 폭군은 그대로 칸을 깔아뭉갰다.

쿵!

힘은 곧장 지면을 통해 드러났지만, 칸은 쓰러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가시가 폭군의 살점을 찢었고, 육중한 칸의 꼬리가 폭군의 얼굴을 가격했다.

커다란 날개를 펼친 칸은 짧은 도약으로 폭군을 덮쳤다.

공격은 아쉽게 불발.

우측으로 몸을 구른 폭군은 지면을 차며 크게 물러나고 있었다.

“둘의 싸움을 지켜볼 수 있다니, 이건 오히려 기회인걸? 안 그래?”

조커가 이야기했다.

둘 중 누가 이기든 세 사람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폭군이 이기면, 자연스레 조건이 하나 해금되는 거고, 폭군이 지더라도 적의 전력을 보여주고, 힘을 소모시켜 주면 그걸로 족했다.

“내 생각도 같다오. 놈에게 투영된 언노운의 특징을 살펴내면, 분명 유리한 전투를 펼칠 수 있을 거라오.”

“…….”

용주는 말없이 전투를 분석했다.

칸의 특징적인 공격은 짧은 도약을 통한 내려찍기와 들이받기.

그리고 잠행에서 이어지는 폭발적인 일격이었다.

게다가 놈이 두르고 있는 갑피나 꼬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갑피는 칼날만큼이나 날카로워 스치기만 해도 피가 쏟아졌고, 꼬리는 한 번 맞는 것만으로 폭군의 치아가 네 다섯 개씩 부러져 나왔다.

“씨이이.”

전투의 승패를 가른 건 묵직하게 들어간 잠행 한 방이었다.

폭군은 놈의 뿔을 하나 부러뜨리는 등의 성과는 냈지만, 칸을 쓰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잇몸을 포함한 전신이 찢긴 폭군은 도주를 시도했고, 칸은 그런 녀석을 추격하지 않았다.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는 양 포효를 내지를 뿐이었다.

“생각해둔 전략은, 소년?”

때가 왔음을 느낀 조커가 물었다.

“놈의 갑피는 얼핏 보면 전신을 덮고 있는 것 같지만, 가슴 쪽엔 가시가 없다. 그리고 놈의 공격 범위로 보건대, 가슴은 놈의 사각지대다. 인지하고 전투에 임하면 분명 도움이 될 거다.”

“그거 유용한 정보네.”

“하나 더. 놈의 한쪽 뿔이 부러지면서 강습할 때 몸이 남아 있는 뿔 쪽으로 약간 쏠리는 현상이 있었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뿔이 부러진 쪽으로 피하는 게 피할 확률을 올릴 수 있을 거다.”

“예리한 관찰력이구려.”

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 선공은 내가 날려보도록 할까? 녀석이 땅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전에 말이야.”

지팡이를 빙그르르 돌린 조커가 가장 먼저 뛰쳐나갔다.

모래 소용돌이를 빠르게 질주한 조커는 카멜레온의 목덜미를 지팡이로 훑었다.

그리고.

승리를 만끽하고 있는 놈의 상처 부위에 기습적으로 지팡이를 찔러 넣었다.

“츠아앙!!”

고통의 포효를 내지른 칸은 날개를 펼치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이군.’

조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은 용주는 칸의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아까도 느꼈지만, 조커의 폭발적인 순간 속도는 용주가 경험해 본 헌터들 중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빨랐다.

녀석이 정말 E급 헌터가 맞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용주를 발견한 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지면을 깊게 후벼 팠다.

아까 폭군과 상대하면서도 보였던 동작이었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지.’

놈은 머리를 흔들 때 무조건 왼쪽부터 흔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에 예측할 수 있다면 정면에서 파고들 틈이 딱 한순간 있었다.

속도를 높인 용주는 놈의 그림자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놈의 가슴팍에 그대로 검을 꽂아 넣었다.

‘이 정도 강도면…… 첨예검으론 못 베었겠어.’

상처를 조금 더 길게 찢은 용주는 놈의 배 쪽으로 이동했다.

교차하는 하강 곡선을 그린 칸은 모래 속으로 잠행하고 있었다.

“조심하시오! 그쪽이라오!”

잠행을 시작한 칸은 반원을 그리며 크게 돌았다.

녀석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지면이 출렁이고 있기에 방향을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러진 건 오른쪽 뿔…….’

멈추지 않고 달린 용주는 진행 방향의 오른쪽으로 파고들었다.

투콰앙!

솟구쳐 오르는 모래 기둥.

일자를 그리지 못한 칸의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크게 쏠렸다.

틈을 놓치지 않은 용주는 놈의 날개 아래로 파고들었다.

용주의 시야 끝에 금화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 같은 순간을 노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지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빗발치는 붉은 핏방울.

“…….”

눈동자를 적신 붉은 기운과 끔찍한 통증.

그 속에서 용주는 이를 악물었다.

이 피는 놈의 피가 아니었다.

이건 자신의 살점이 찢기며 흘러나온 피.

놈의 갑피에서 사출된 가시들은 몸 전체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전부를 보여준 게 아니었단 건가.’

사출된 가시는 빠르게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기회를 놓치면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물러난 금화와 달리 더욱 안쪽으로 파고든 용주는 아까 만들었던 상처에 매달렸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끝을 봐야 해.’

수직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한 줄을 새겨 넣은 용주는 교차 면의 갑피를 뜯어냈다.

마침내 드러난 녀석의 맨살.

‘할퀴기! 물어뜯기!’

검과 손톱으로 몸을 고정한 용주는 그대로 놈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츠아앙!!”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 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상체가 흔들리는 반동을 이용해 용주를 떼어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용주 역시도 쉽게 떨어져 줄 생각은 없었다.

놈이 발악하면 할수록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고, 피로 온몸을 적셨다.

모랫바닥을 뒹군 칸은 두 날개를 파닥거렸다.

놈이 잠행을 시전하기 전에 꼭 취하는 동작이었다.

“딱 좋은 타이밍인걸. 마침 무대가 완성된 참이었는데.”

놈의 부러진 뿔을 밟고 오른 조커가 미간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행을 시도하는 칸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펑!!

놈의 날개가 지면에 닿음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하늘에는 방금 막 발사된 폭죽들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

“핏값은 달게 받겠소!”

그러는 사이 놈의 꼬리로 달려든 금화는 대검을 내려찍었다.

금화가 노린 곳은 꼬리의 가장 얇은 부분.

꼬리 끝 철퇴 부분과 연결된 지점이었다.

키이익!

칼날이 겉돌며 강한 마찰음을 만들어냈다.

“으아압!!”

우렁찬 기합을 내뱉은 금화는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을 검에 실었다.

까드드득!

균열이 나기 시작한 갑피.

임계점을 넘어선 갑피의 안쪽으론 칼날이 쑥 들었다.

일순간 댕강 잘려 나간 꼬리는 거대한 모래 구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끄르릉!”

신음을 낸 칸의 움직임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짧은 도약으로 거리를 벌렸지만, 착지해 실패하며 중심을 잃었고, 그 뒤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꿀렁이는 살점 속에 파묻혀 있던 용주는 그제야 빛 속으로 나왔다.

들려오던 놈의 고동은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이거…… 꽤나 충격적인 몰골인걸, 소년?”

허리춤을 짚은 조커가 미소를 머금었다.

용주의 몸에선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좀비 헌터란 이명이 아깝지 않네. 여름에 따로 공포영화 찾아볼 필요는 없겠는걸?”

“그쪽이야말로 상당히 특이하게 싸운다고 생각하는데.”

용주가 반박했다.

“응?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을까?”

“그 정도 속도를 낼 수 있고, 그 정도 위력을 낼 수 있으면서 왜 진심으로 전투에 임하지 않은 거냐. 진심으로 놈을 쓰러뜨리려고 했으면 단숨에 끝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조커는 이번 전투에서 검조차 뽑지 않았다.

설렁설렁 적당히.

용주가 느낀 그의 모습은 딱 그 정도였다.

“아무래도 소년은 날 과대평가하고 있는 모양이네.”

“과대평가라고?”

“그래. 내가 보인 건 내 전력이었어. 단거리 주자의 한계란 거지.”

“그런 것치고는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군.”

“마술사는 호흡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거든. 숨 쉬는 것 하나, 심장박동 하나로도 트릭이 들킬 수 있으니까.”

“……검을 뽑지 않은 건?”

“가끔은 타격 무기가 더 잘 듣는 법이거든. 그래서 그런 거지.”

“…….”

조커의 목소리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호흡, 말투, 표정 그 모든 부분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괜찮소이까?!”

한발 늦게 다가온 금화가 외쳤다.

금화의 얼굴에도 찢긴 상처들이 있었지만, 용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 치명상은 없었다. 보이는 것만큼 큰 부상은 아니야.”

용주가 입술을 닦아냈다.

“큰 부상이 아니라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소리오?!”

“말했다시피 판단을 내리는 건 바깥에 있는 녀석들이 할 일이다. 탈락하지 않았다는 게 괜찮다는 증거지.”

“그렇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조커가 끼어들었다.

“좀비 헌터. 괜히 그렇게 불리는 게 아니니 말이죠. 그렇지, 소년?”

“……그래.”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 헌터라……. 그래도 응급처치 정도는 해야 내 마음에 편하겠소. 따라오시오.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을 내 알고 있으니.”

대검을 어깨에 걸친 금화가 앞장섰다.

다이어리를 꺼낸 용주는 이안의 페이지를 확인했다.

1. 숲의 ‘카브닐’(X)

2. 황야의 ‘칸’(X)

3. 산호 지대의 ‘신드라’

세 마리 중 두 마리.

무려 두 마리의 이름에 엑스 자가 처져 있었다.

* * *

“음……. 이것 참……. 눈으로 보고도 경이롭구려.”

용주의 상처를 살피던 금화가 이야기했다.

겉으로 봤을 때 용주의 상처는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당장 찢어진 곳을 꿰매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의 상처도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관찰한 용주의 상처는 금화의 생각과는 달랐다.

지혈은 이미 끝나 있었고, 상처의 안쪽은 이미 세포 재생이 상당히 이루어져 있었다.

방금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상태였다.

의료 헌터에 의한 치료도 아니고, 자연 회복이 이토록 빠른 건 생전 처음 보는 금화였다.

“잠시 전화를 빌리고 싶은데?”

조커를 바라본 용주가 물었다.

“곰 아가씨한테 볼 일이 생긴 건가?”

“그래.”

“그런 거라면 소년이 직접 걸어도 되는 거 아닌가?

“…….”

“번호가 없다는 표정이네, 소년. 아니, 궁금해한 적도 없다는 표정인가?”

“알면 시간 끌지 말고 내놓기나 해.”

“후후훗, 내놓으라니, 부탁하는 사람의 말 상당히 센데? 박력 있어.”

용주에게 다가온 조커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용주는 손을 뻗었다.

용주의 손이 닿기 직전 조커는 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에 다시 펼쳐졌을 때 거기 있는 건 익숙한 케이스의 핸드폰이었다.

“도벽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글쎄, 어떨까나?”

핸드폰을 집어 든 용주는 앞면을 확인했다.

액정에는 전화번호가 적힌 한 장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

번호를 입력한 용주는 통화음을 기다렸다.

한참 동안 연결되지 않던 통화음은 용주가 종료 버튼을 누르기 바로 직전 연결되었다.

“아! 여보세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주원의 것이었다.

“받았으면 받은 거고, 안 받았으면 안 받은 거지, 뭐 하는 거냐.”

용주가 말을 가로챘다.

“아! 용주 형? 진짜 형이에요?”

“그래.”

“음……. 그거 수상한데요. 전 용주 형이랑 번호를 교환한 적이 없다고요. 누군진 몰라도 장난 전화 하지 마세요. 시험 보는 중이니까.”

“…….”

용주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예나 번호를 받았으면 이런 전개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됐으니까 예나나 바꿔 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아! 혹시 진짜 용주 형이에요?!”

“그래. 그러니까 예나 바꿔봐.”

“아……. 그게 말이죠. 실은 용주 형…….”

주원의 목소리가 심하게 요동쳤다.

울먹이는 그의 목소리에 용주의 머릿속엔 불길함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뭐야?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예나가 잠들어 버렸는데 깨어나질 않아요.”

“뭐?! 예나가 깨어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용주의 외침에 조커의 미소가 굳어졌다.

“카브닐이 마지막에 예나를 이상한 고치 같은 것에 가뒀었는데, 그 뒤로 깨어나질 않아요. 호흡도 맥박도 분명 정상이고, 혈색도 좋은데…….”

“그곳의 위치는? 주위가 어떻지?”

“하얀 숲이에요. 숲 전체에 실 같은 게 감겨 있어요.”

“하얀 숲?”

용주는 하늘 위에서 봤던 숲의 전경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확실히 있었다.

병든 나무가 밀집해 있다고만 생각했던 유독 흐릿했던 구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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