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칸…….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 중엔 그런 몬스터는 없구려.”
다이어리를 다 넘긴 금화가 고개를 저었다.
“내 쪽도 마찬가지야. 아무래도 아직까지 마주친 적 없는 몬스터인 모양인걸.”
정보가 없는 건 조커 쪽도 마찬가지.
두 사람이 가진 정보는 겹치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기에 혹시나 했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풀려주지 않았다.
“어떻게? 지금부터라도 흩어져서 찾아보는 게 좋으려나, 소년?”
조커가 손가락 위에 올린 스마트폰을 빙그르르 돌려 보였다.
“몬스터를 찾는 것도 방법이지만, 사람을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하오.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 시간 대비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오.”
금화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괜찮다면 두 사람의 다이어리를 잠시 빌리고 싶은데.”
용주가 이야기했다.
“물론이라오. 여기.”
“기꺼이.”
두 사람의 다이어리를 펼친 용주는 정보들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은 몬스터의 설명란.
단서가 될 만한 게 있다면 분명 여기 있을 것이다.
몬스터의 설명은 그 개체의 특징적인 부분이 적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생태계 같은 게 적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물가에서 진흙을 뒤집어쓰길 좋아한다든가, 선인장을 주식으로 삼는다든가 하는 등 말이다.
‘음…….’
그것 외에도 여러 정보가 흩뿌려져 있었다.
어디서부터 단서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는 퍼즐들.
페이지를 넘기던 용주의 손이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만약에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머릿속에 떠오른 전개가 하나 있었다.
물론, 파편적인 정보에 의한 계획이었기에 변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한 계획이었다.
“왜?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어, 소년?”
“좋은 생각이랄 건 없고, 시험해 보고 싶은 거라면 하나 있는데.”
“흐흠?”
“여기 이 녀석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용주가 몬스터의 시신을 가리켰다.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구려.”
“우선 이 녀석을 봐줬으면 한다.”
용주가 금화의 다이어리를 보였다.
“무리를 지어 행동한다는 특징을 지닌 이 녀석은 시체를 찾아다닌다는 또 하나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맞소. 내가 녀석들을 목격했던 건 놈들이 시체를 파먹을 때였소.”
“그다음은 이 녀석.”
용주가 이번엔 조커의 다이어리를 보였다.
“이 녀석의 특징은 시체 청소부인 이 녀석을 주 먹이로 삼는다는 것, 시체 청소부가 나타나면 녀석도 높은 확률로 여기 나타날 거다.”
“그래서?”
“우린 그 녀석을 상대하는 거다. 정확히 죽기 직전까지만.”
“죽기 직전까지?”
“하지만 녀석은 칸이라는 몬스터가 아니지 않소?”
금화가 이야기했다.
“녀석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가 되면, 둥지로 도주할 거다. 우린 그걸 따라가기만 하면 돼.”
용주는 다시 금화의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그럼 피 냄새를 맡고, 이 녀석이 찾아올 거다. 폭군이라 불리는 이 녀석은 놈을 제거하겠지. 호적수를 제거한 폭군은 더 강한 적을 찾아 움직일 거다.”
“폭군이 칸에게 안내해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거야, 소년?”
“……그렇게 가능성 높은 작전이 아니라곤 나도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시험이라고 말한 거고. 귀담아듣지 마.”
다이어리를 덮은 용주는 각자에게 다이어리를 돌려주었다.
칸이라는 몬스터는 높은 확률로 황야 지대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일 것이다.
‘도전자’라는 포지션을 가진 폭군이 녀석에게 언젠간 도달할지 모르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전에 녀석이 죽어 버릴 가능성 역시 존재했고 말이다.
딱히 제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니, 금화가 말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더 일리 있는 판단이겠지.
짝짝짝!
다이어리를 집어넣은 금화가 박수를 쳤다.
“그 잠깐 사이에 연결고리를 그 정도로 엮다니, 놀랐소이다.”
두 사람이 발견한 몬스터의 종류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용주는 그중에 연관성 있는 정보들을 나열해 냈다.
결과를 놓고 보면,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오. 지금 당장 실행해볼 수 있는 카드니 말이오.”
“나도 동의해, 소년. 자신감을 가지라고.”
조커 역시도 긍정을 표했다.
“……그래. 그럼 일단은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는 걸로 하지. 시체 청소부는 주변에 위험이 있으면 다가오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까맣게 물들 대지를 뚫고 한 무리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저기 보시오. 나타났다오.”
세 사람은 한참 떨어진 바위 그림자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치켜세운 꼬리로 녀석들은 주변의 위험을 탐지했다.
별다른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녀석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시작이 아주 좋은데, 소년?”
만찬이 시작되자 한 무리의 몬스터들이 더 합류했다.
몸을 덮고 있던 액체가 사라지자 피부가 보였고, 피부가 사라지자 살과 뼈가 보였다.
그리고.
놈들이 머리를 거의 다 먹어 치웠을 그때.
으드득! 으득!
용주가 기다리던 녀석이 나타났다.
카멜레온의 외모를 닮은 녀석은 보호색으로 위장한 채 시체로 접근했고, 순식간에 예닐곱 마리의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공격의 순간이 되고서야 위협을 감지한 몬스터들은 혼비백산 흩어지기 바빴다.
도주로를 차단한 카멜레온은 보라색 혀로 녀석들을 핥았고, 놈의 혀에 닿은 몬스터들은 얼마 못 가 쓰러져 버렸다.
“아무래도 혀에 독이 있는가 보구려. 주의하는 게 좋겠소.”
“어디 해보자고, 소년.”
“명심해라. 죽이면 안 된다.”
무기를 움켜쥔 두 사람과 눈빛을 교환한 용주는 가장 먼저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까용? 까르릉?”
용주 일행을 발견한 몬스터는 즉각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앞으로 내지른 오른발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간 용주는 그대로 놈의 뒷다리에 상처를 냈다.
육질은 충분히 벨 수 있는 정도.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보라색인 건 여러모로 불길한 메시지였다.
고개를 돌린 카멜레온은 긴 혀를 뻗었다.
용주는 혀를 잘라 내려 했다.
하지만 칼날에 닿은 혀는 잘리지 않고 오히려 검이 착 달라붙었다.
‘칫!’
몸쪽으로 칼을 바짝 잡아당긴 용주는 놈의 머리 아래로 파고들었다.
혀를 뿌리치는 과정에서 손목에 놈의 혀가 잠깐 닿았었는데,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괜찮아. 독이라면 이쪽도 대응할 방법이 있으니까.’
상처를 무시한 용주는 놈의 왼쪽 앞다리에도 선명한 절상을 남겨주었다.
살점을 도려내는 과정에서 용주의 얼굴로 약간의 핏방울이 튀었다.
놈의 뒤를 잡은 금화는 대검을 휘둘렀다.
“우우웅!!”
크기에 어울리는 힘을 뿜어낸 대검은 단번에 카멜레온의 꼬리를 절단해 버렸다.
절단면을 타곤 놈의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금화의 갑옷에는 효과를 주지 못했다.
그대로 등을 타고 오르는 금화.
육중한 대검을 놈의 몸에 욱여넣은 금화는 척추를 따라 긴 상처를 만들어 냈다.
“두 사람 다 제법인걸.”
금화의 뒤를 쫓은 조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리고 속도를 높여 순식간에 금화를 따라잡았다.
“잠시 실례.”
가볍게 금화의 어깨를 밟은 조커가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미소 띤 조커의 눈동자는 카멜레온의 머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 대신 지팡이를 손에 쥔 조커가 그대로 머리를 내려찍었다.
고개가 완전히 지면에 처박혔던 카멜레온은 반동으로 크게 휘청였다.
그러는 사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동시에 찢어진 용주와 금화는 동시에 놈의 옆구리를 크게 베어 냈다.
절단면을 붙잡고 멈춰선 용주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첨예검을 놈의 옆구리에 깊이 찔러 넣고 있었다.
“까르릉?”
깊은 상처를 입은 카멜레온이 지면을 차며 크게 물러났다.
발을 구르며 흙먼지를 일으키는 카멜레온.
먼지를 뒤집어쓴 녀석의 모습은 주변 색과 동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아뿔싸! 놈이 나타났을 때처럼 사라지면 추격하는 게 엄청 까다로워질 거요!”
금화가 외쳤다.
놈의 보호색은 완벽하다고 봐도 좋을 수준이었다.
이곳이야 발자국이 남는 지형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단단한 지반이 나온다.
거기까지 도망가 버리면 발자국으로 놈을 추격하는 건 불가능했다.
“피를 흘리니 그걸 따라가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놈의 모습이 투명해질수록 놈의 피 역시도 투명해져 갔다.
이래서는 피를 보고 따라간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거라면 딱히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말이죠.”
눈 밑을 톡톡 두드린 조커가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검이 한 자루 있었다.
공중에 꽂힌 검이.
“저건…….”
“마지막 일격 때 소년이 박아 넣은 이정표. 우리를 안내해 줄 팅커벨이죠.”
“그때 거기까지 생각했던 거요? 이거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구려.”
금화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소년, 상태는 좀 어때? 매스껍거나, 어지럽거나, 감각이 무뎌지거나 하는 건?”
조커가 물었다.
용주의 얼굴엔 아직도 녀석의 핏방울이 묻어 있었고, 착색된 부분도 존재했다.
“특별한 증상은 없다. 위험하다고 판단됐으면, 바깥에 있는 녀석들이 탈락시켰겠지.”
용주가 얼굴을 스윽 닦아냈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만에 하나가 있으니, 이걸 잘근잘근 씹으시오. 쓰다 못해 단맛이 날 때까지. 삼키면 안 되오.”
금화가 약초 하나를 건넸다.
“이건?”
“이곳에서 발견한 약초라오. 현실에 있는 것과 같은 물건이라면, 분명 효용이 있을 거요.”
“……쫓아가지.”
약초를 입에 문 용주가 앞장섰다.
그사이 주변 풍경과 완전히 동화된 카멜레온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 * *
모래 지대와 암석 지대를 차례로 지난 세 사람은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동굴 속으로 들어왔다.
투명한 크리스털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어 거울 미로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숨을 죽인 세 사람은 동굴 초입에 몸을 숨겼다.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녀석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고,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으로 똬리를 틀었다.
머지않아 놈의 숨소리가 들렸다.
아주 깊이 잠든 듯 느리고 균일한 호흡이었다.
“음…….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구려.”
금화가 이야기했다.
못해도 1시간은 넘게 기다린 것 같은데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혹시 폭군이라는 몬스터가 다른 헌터들의 손에 이미 사냥당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구려. 그런 거라면 아무리 기다려도 절대 오지 않을 테니.”
3차 시험에 참여한 인원은 총 30명이었다.
그중 세 지대에 각각 10명씩 있다고만 가정해도 황야 지대에 있는 건 두 사람을 빼면 8명.
어떤 몬스터가 쓰러졌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건 없다, 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는.
“씨이이이!”
금화의 생각이 깨진 건 거대한 생명체의 머리가 동굴 안쪽으로 쑤욱 들어오면서.
세 줄로 세워진 날카로운 이빨들 사이로 날름거리는 혓바닥.
소리도, 기척도 죽인 채 나타난 녀석은 침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잠든 카멜레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둘은 뒤엉켜 서로를 물어뜯었고, 피범벅이 된 크리스털 너머로 둘의 모습이 보였다.
“씨익!”
승패는 금방 결정되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카멜레온은 폭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목이 물린 채 몇 번이고 패대기쳐진 놈의 숨통은 끊어졌고, 놈의 고기도 내장도 취하지 않은 폭군은 유해를 입에 문 채 유유히 동굴을 빠져나갔다.
폭군의 뒤를 밟은 세 사람은 황야를 한참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마주한 새로운 지형.
균일한 속도로 달리던 폭군은 속도를 줄였고,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세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씨이익!”
소용돌이치는 모양을 가진 모래벌판에 도착한 폭군은 물고 온 카멜레온의 유해를 집어 던졌다.
싸한 정적이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투콰앙!
잦은 진동이 이는가 싶더니 모래 기둥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한 마리의 지룡.
“끼에에엑!!”
철퇴 같은 꼬리와 가시 갑옷으로 무장한 지룡은 하늘을 향해 위협적인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