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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96화 (96/357)

96화

휘익!!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그 후로 한참 계속되었다.

용주는 녀석을 따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녀석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끈질겼다.

‘이렇게 되면…….’

용주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공간 균열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반지의 효과라는 당해봐서 이미 알고 있었다.

녀석이 접근하는 타이밍을 노리면 건너 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공중전이라도 백병전이 가능하다면, 이쪽도 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자, 어서 다가와 보라고.’

용주는 녀석과의 거리를 계산했다.

점멸의 거리에만 들어오면 바로 실행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뭐야?!’

바람을 앞으로 분사한 녀석이 갑자기 추격을 포기해 버렸다.

‘뭐지? 저 녀석 왜 저러는 거야?’

용주의 시선이 멀어지는 뒷모습에 고정되었다.

마지막 순간 녀석이 보인 다급함은 뭔가 부자연스럽고, 불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삐이이익!”

섬광이 터지는 굉음과 함께 용주와 독수리가 균형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귀가 터질 것 같아……!’

용주는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추락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젠장…….’

바람을 등진 용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콰아아앙!!”

용주의 눈동자에 보이는 건.

어느새 가까워진 중앙 나무와.

저 멀리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 개의 뿔을 가진 검은 용이었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지면.

하늘을 향해 있던 용주의 시선이 대지로 향했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검은 용은 유유히 멀어지고 있었다.

시야에 보이는 건 모래가 가득한 황야였다.

그리고 자신의 추락지점에는 탑처럼 우뚝 솟아오른 바위들이 즐비해 있었다.

콰앙!!

한발 먼저 떨어진 황금 독수리가 산산이 조각났다.

‘최소한의 충격으로 끝내려면…….’

추락 직전 왼손을 움켜쥔 용주는 점멸을 사용했다.

비스듬하게 꺾인 추락 각도.

이어서 바로 사후 강직을 사용한 용주는 오른쪽 팔다리가 긁히는 정도의 상처만으로 바위 지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뒤로 용주를 기다리고 있는 건 모래로 이루어진 내리막길.

퍼억!

착지의 첫 반동으로 통 튀어 올랐던 용주는 물수제비를 뜨며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용주가 충돌한 지점에는 움푹 팬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퉤!”

몸을 일으킨 용주가 침을 뱉었다.

잘근잘근 씹히는 모래 입자가 상당히 불쾌하게 다가왔다.

‘아까 그 녀석은…….’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나타났던 검은 용.

녀석이 돌아간 곳은 분명 중앙 나무였다.

‘이안’이라는 몬스터가 살고 있을 거라고 추측되는 곳에서 나타난 몬스터.

그리고 녀석을 보고 공포에 질려 달아나 버린 몬스터.

가지고 있던 수첩을 펼친 용주는 빠르게 페이지를 살펴보았다.

‘역시 그런 건가.’

그곳에는 새로운 몬스터가 한 종 등록되어 있었다.

이안.

조금 전에 봤던 그 몬스터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 ‘이안’을 상대하기 위해선 세 마리의 몬스터를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1. 숲의 ‘카브닐’

2. 황야의 ‘칸’

3. 산호 지대의 ‘신드라’

이안의 설명란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녀석을 상대하라면 각 지역에서 특정 몬스터를 먼저 잡아야 한다는 거네.’

전화위복이라고.

예상치 못한 유용한 정보였다.

이걸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녀석을 상대하려고 했다면 피를 보게 됐을 게 분명했다.

경사면을 거꾸로 올라간 용주는 점멸을 사용했다.

바위에 처박혔던 독수리는 한 줌 모래로 변해 있었다.

독수리의 상태를 확인한 용주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엔 한 줌 모래만 남아 있었다.

‘이거 곤란하게 됐는데.’

이 중에는 모래 사면을 구르며 자연스럽게 들어온 모래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주머니엔 분명 처음 연성했던 나비가 들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비는 여기 없었다.

아마 아까 바위에 쓸리면서 부서진 모양이다.

골드가 또 소모되긴 하겠지만, 이동 수단이라면 다시 연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비 쪽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녀석의 목적은 길잡이.

처음 만들어진 그곳의 위치로 안내해주는 목적을 담고 만들어졌던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하려던 건 어디까지나 정찰이었다.

전투는 피하고 되도록 빨리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돼버리면 생각했던 시간 내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경우에 따라선 자신이 뭔가 큰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숲으로라도 돌아가는 게 낫겠지.’

대략적인 방향 자체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숲으로 돌아간 이후 두 사람을 찾는 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라는 것 정도.

만약 두 사람이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찾는 건 더더욱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음?’

용주의 시선이 무언가에 반응했다.

심하게 다리를 저는 몬스터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녀석의 온몸은 석유같이 검고 끈적한 액체에 덮여 있었고, 녀석이 머물렀던 곳에도 마찬가지의 잔해가 남았다.

‘큰 부상을 입고 도망가는 중인 건가.’

녀석에게 상처를 입힌 게 누구인가.

용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 해결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치렁거리는 붉은 비늘의 장수.

금화의 손에 녀석은 쓰러져 버렸으니 말이다.

“오, 어쩐지 눈에 익다 했더니만, 자네였구만.”

대검에 들에 멘 금화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금화를 먼저 발견한 이는 용주였지만, 먼저 상대방을 부른 이는 금화였다.

“‘고금화’였던가?”

“허헛, 그렇네. 그쪽은 이용주였지. 분명.”

“혼자 쓰러뜨린 거냐?”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네. 부끄럽게도 마무리에서 조금 미숙함이 드러났지만 말이네.”

‘역시 괜히 여기까지 살아남은 건 아니란 소리인가.’

멀리서 봤던 금화의 움직임은 그렇게 무거운 걸 걸치고 있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기민했다.

“그런데 자넨 거기서 혼자 뭐 하고 있던 겐가?”

“뭐,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지형과 지리에 대한 것, 몬스터에 대한 것, 사람에 대한 것, 다 포함해서 말이야.”

“나랑 비슷하구만. 어떤가? 소득은 좀 있었나?”

“제법.”

“허헛!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만. 어떤가? 이것도 인연인데 함께 움직이는 게.”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금화의 제안에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건 용주의 대답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조커가 있었다.

“검은 용이 날아가고 황금 새가 뚝 떨어지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달려와 봤더니, 이거,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었네. 마술사를 놀라게 하다니, 제법이야. 소년?”

조커가 싱긋 웃어 보였다.

“황금 새? 검은 용은 목격했네만 그런 게 있었소이까?”

금화가 물었다.

전혀 보지 못했단 금화의 표정이었다.

“그건 소년이 답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소년?”

“…….”

용주가 조커를 노려보았다.

조커의 저 미소 띤 포커페이스.

어딘지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래. 그건 분명 실존했다. 이젠 아니지만.”

“이젠 아니라는 건…….”

“바위에 부딪히며 끝이 났다는 소리지.”

“음…… 그런가. 어디서 그런 걸 찾았는지는 몰라도 안타깝게 됐구만. 근데 자넨 괜찮은 건가? 겉으로 보기엔 큰 상처는 없어 보이는데, 어디 부러진 것 같지도 않고.”

“운 좋게 바위를 피해서 떨어졌거든.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무사하진 못했겠지.”

“그런가. 그거 다행이구만 그래.”

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아까 물음에 대한 대답은, 소년?”

주제를 다시 돌려놓은 조커가 물었다.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 있다. 녀석들 지금쯤 걱정하고 있을 거다.”

“사람들이란 건 역시 8팀의 두 사람?”

“너, 그걸 어떻게…….”

“그냥 감. 원래 마술사는 촉이 좋은 법이거든.”

싱긋 웃어 보인 조커가 핸드폰을 꺼냈다.

조커는 자연스럽게 어딘가로 통화를 걸었다.

용주와 금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용주가 미간을 좁혔다.

시험 중간에 갑자기 핸드폰이라니.

어디로 거는 건지는 몰라도 여기서 그런 게 터질 리가…….

“곰 아가씨? 아~ 다행히 일찍 일어났나 보네요.”

조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목소리며, 가벼운 손 제스처 하며.

누가 봐도 전화가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하! 많이 놀란 모양이죠? 괜찮으시면 혹시 통화 괜찮은가요? 잠깐이면 되는데.”

조커의 통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용주는 그걸 연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 소년, 받아봐.”

용주의 그 생각은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여보세요. 용주 오빠?”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분명 예나의 목소리였다.

“이게 어떻게…….”

용주의 마음속 목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오빠,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집……. 아니, 조커랑 같이 있어? 거기 어디야?”

“뭐? 용주 형이라고?!”

“아아~ 뺏지 마! 내 거란 말이야!”

“그러지 말고! 한마디만! 나도 목소리라도 들어보자!”

“스피커폰 켜줄 테니까 그렇게 막 달라붙지 마! 달라붙을 거면 옷이라도 입으라구~!!”

리얼한 두 사람의 대화.

“여긴 카오스 게이트가 아니라고, 소년. 핸드폰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한 적 없어.”

미소를 짓고 있는 조커가 이야기했다.

“일명 편견의 함정이란 거지.”

용주의 표정이 상당히 마음에 든 듯한 조커였다.

꽈악!

마른침을 삼킨 용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편견의 함정에 빠졌다는 녀석의 말에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11시 방향으로 한참 떨어진 황야다.”

호흡을 가다듬은 용주가 대답했다.

“뭐?! 황야?”

“그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쩌다 보니’라니 그게 뭐야?! 아무튼 금방 돌아올 수 있는 거지? 안 그래도 주원 오빠가 엄청 난리 치던 참이었다고! 용주 오빠가 볼일 보다가 큰 사고 당한 것 같다고.”

예나의 물음에 용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아니,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둘이 움직여주면 고마울 것 같다.”

“둘이?! 어째서?!”

예나의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이 실렸다.

왠지 싫다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목소리였다.

“이쪽에서 중요한 정보를 하나 얻었다. 이안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세 마리의 몬스터를 무조건 먼저 사냥해야 해.”

“뭐? 그게 정말이야?”

“그래.”

“음……. 근데 그거랑 오빠가 돌아오지 않는 거랑은 무슨 상관인 거야?”

“세 마리의 몬스터는 세 지형에 각각 분포해있다. 네가 있는 숲에도, 내가 있는 황야에도.”

“음~ 그러니까 이왕 간 김에 처리하고 돌아오겠다는 그런 소리?”

“그래. 뭐, 그런 셈이지.”

액정 너머에서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알았어. 그럼 이쪽에서 처리해야 할 몬스터에 대해서 알려줘. 우리도 뭐라도 하고 있을 테니까.”

“너희가 있는 숲에서 처리해야 하는 건 ‘카브닐’이라고 하는 몬스터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몰라. 다만 다른 개체들보다 훨씬 강하고 위협적일 거란 생각이 든다. 발견하게 되더라도 무리하게 교전하지는 마.”

“카브닐이란 말이지? 그래 알았어. 오빠도 다치지 말고.”

예나가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용주는 조커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금화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난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용주가 분한 듯 이야기했다.

“내가 곰 아가씨의 번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

“그럼 뭐가 말이지, 소년?”

“카오스 게이트에선 쓰지도 못하는 통화 기능이 왜 살아 있는 건지. 여기가 대체 어딘데 전파가 잡히는 건지.”

“그건 나중에 다 합격하고 따져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소년? 나한테 따져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나는 이번 마술의 마술사가 아니니까.”

조커가 어깨를 들썩였다.

“원래 쇼란 건 기획한 마술사 마음대로야, 소년. 무대에 뭘 넣고, 뭘 허용하든 마술사 마음대로지. 관객이 할 수 있는 건 관찰하고 생각하고 의심하고…… 그리고 속는 것뿐.”

“…….”

잠시 눈을 감았던 용주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한 방 먹은 충격이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소년의 생각도 정리된 것 같으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이안을 쓰러뜨리기 위한 조건……. 우리 쪽에서 쓰러뜨려야 하는 건, 소년?”

조커가 세 장의 트럼프 카드를 펼쳐 보였다.

“……‘칸’.”

짧고 간결한 대답을 마친 용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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