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저 녀석이 S급 헌터…….’
이안을 바라보던 용주가 손을 움켜쥐었다.
용주의 눈매는 더 사납게 변해 있었다.
S급 헌터.
한국에서도 손에 꼽는, 소수 정예의 S급 헌터라면 분명 알고 있을 거다.
아버지에 대해서도.
어머니에 대해서도.
서울에 출현했던 S급 카오스 게이트에 대해서도.
‘저 녀석이…… 어머니가 가족이라고 말했던…….’
속에서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멱살을 움켜쥐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묻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을 수 있는지…….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 그럼 이쯤에서 즉석 인터뷰. 3차 시험과제는 뭐일 것 같나요?”
마이크를 쥔 것처럼 한 이안이 몇몇 헌터들에게 손을 들이밀었다.
“아, 아니 갑자기 그런 말씀 하셔도…….”
“글쎄요……. 딱히 생각 안 해봤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요.”
대답들은 대개 비슷했다.
소득 없이 돌던 마이크는 다음 헌터를 향했다.
까칠한 눈매의 분홍색 롱단발 머리.
아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던 서윤이었다.
“뭐든 상관없어. 내가 떨어지는 일 따윈 말도 안 되니까.”
“그래도 어떻게 한 가지만.”
“관심 없대도. 어차피 당신은 다 알고 있잖아. 알고 있으면서 장난치지 말라고.”
S급 헌터에게 쏟아낸 서윤의 막말에 헌터들의 동공이 반응했다.
윤현이 했던 비유에 맞춰보자면, 이건 당장 목이 날아가도 이상할 것 없는 무례였다.
“하하, 미안, 미안.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불쾌했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이안의 반응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는 불쾌함을 표현하기는커녕 미안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자, 그럼…….”
이안의 손 마이크가 몇 사람을 뛰어넘었다.
마이크는 이제 주원에게 넘어와 있었다.
“우리 주원 헌터 생각은 어때?”
“응?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주원이 놀라 물었다.
엄청 영광이긴 한데, 그만큼 당황스러웠다.
“3차 시험 명단 정도는 머릿속에 넣어뒀거든. 얼굴이랑 이름 정도는 대강 안다고.”
“와~ 그거 영광인데요.”
“영광은 무슨. 담임선생님이 학생들 이름 기억한다고 영광이라고 하나? 그건 당연한 거야, 당연한 거.”
‘담임선생님이랑 학생이라기보단, 시험 감독관이랑 수험생의 관계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은데…….’
예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비유가 조금 잘못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면접관이면 몰라도 시험 감독관이 수험생의 정보를 일일이 파악하고 있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주원 오빠도 분명 이상하게 생각…….’
“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런 것도 같네요!”
‘할 리가 없지.’
주원을 바라봤던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였다.
“그럼, 그럼. 전혀 이상할 것 없다고. 그러니까 어서 말해봐. 편안하게.”
“음~ 글쎄요. 아! 그래! 다 같이 커다란 음식 하나를 해치우는 거면 재밌지 않을까요?”
“커다란 음식?”
이안이 흥미롭단 듯 물었다.
“네! 먹으면 행복하잖아요! 다 같이 협동할 수도 있고, 이야기 나누면서 먹으면 분명 다들 친해지고 좋을 거라고요.”
주원이 해맑게 이야기했다.
주원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것도 적당히지……. 배부르면 분명 즐거움도 사라지고, 서로 남 탓하며 싸울 게 당연하잖아, 바보 오빠야.’
예나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헌터나 시험이라는 카테고리는 진작에 벗어났고, 그냥 정말 아무 말이나 한 거지 않은가.
“흐음, 그런 아이디어도 있었네. 재밌겠는데? 그걸로 바꿀까?”
이안이 혼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저기……. 이안 님?”
“농담이시죠?”
당황한 헌터들이 물었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까진 안 한다고.”
‘못 하는 건 아닌가 보네.’
예나가 뺨을 긁적였다.
S급 헌터라기에 엄청 긴장하고 있었는데…….
뭔가 주원과 점점 비슷한 급으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이안 헌터님 괜찮다면, 제가 한 말씀 드려봐도 되겠습니까?”
오른손을 든 윤현이 물었다.
“대단한 자신감인걸.”
“합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번 시험은 최소 3인 이상의 협동이 필요한 과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그건 카오스 게이트와 비슷하게 조성된 환경에서 만들어진 언노운과 게이트 보스를 쓰러뜨리는 식으로 진행되겠죠. 그걸 위한 시험이니까요.”
윤현이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오~.”
“그럴듯해. 진짜 시험 문제 같은데 이건?”
“역시 윤현이야. 머리 돌아가는 게 다르네.”
윤현의 주장에 많은 헌터들이 호응했다.
그의 말대로 합리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응? 잠깐만 저 말은…….”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주원은 곧장 용주를 바라보았다.
협동 과제일 거라는 점은 윤현도 추측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유사 카오스 게이트를 만들어 인공 언노운과 게이트 보스를 쓰러뜨린다는 세부 내용은 용주의 생각이었다.
남의 생각을 마치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인 양 당당하게 말하다니.
자신의 생각과 섞어 교묘하게 말한 점이 오히려 더 악질적으로 느껴졌다.
용주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딱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나설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연예인이 아니라 완전 순 도둑놈이잖아? 저 오빠,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엄청 뻔뻔하네.’
불쾌함을 숨긴 예나 역시도 용주와 윤현을 번갈아 곁눈질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용주의 눈은.
차가운 걸 넘어 오한이 들 정도로 섬뜩했다.
“멋진 아이디어네. 내가 맨 처음 구상했던 아이디어랑 상당히 비슷해.”
“그럼 역시 이번 시험은…….”
“아니, 그 계획은 폐기됐어. 생각해 보니까 너무 뻔하고 재미없을 것 같더라고. 굳이 여기서까지 카오스 게이트에 언노운까지 만날 필욘 없잖아? 어차피 나가면 맨날 볼 텐데.”
이안이 허리춤을 짚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실전과 같은 테스트만큼 분별력 있는 시험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윤현이 즉각 반발했다.
“물론, 그렇긴 하지. 근데 재미없다 이 말이야. 난 그런 재미없는 시험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재미가 없다니……. 합리적이지 않네요.”
“괜찮아. 괜찮아. 막상 경험해 보면 합리적으로 납득할 만큼 재밌는 시험이 될 테니까.”
“그래서 그 시험이란 게 뭐지?”
잠자코 있던 용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엄청 무서운 눈이네. 내가 뭔가 했나?”
“글쎄……. 아마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싶은데.”
용주가 도전적으로 이야기했다.
감정을 최대한 억눌렀지만, 이게 한계였다.
“음. 참여형 콘텐츠는 역시 거부감이 좀 있는 건가? 꼭 답을 맞혀야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이안이 턱 끝을 두드렸다.
“아무튼! 그래, 재밌는 의견도, 그럴듯한 의견도 나왔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자, 그럼 날 중심으로 둥글게 서 줄래? 한 명도 빠짐없이.”
“둥글게라니…….”
“이렇게 말인가요?”
“응응! 딱 좋아. 거기서 이제 다들 두 발씩 뒤로!”
이안의 지시에 원이 훨씬 더 벌어졌다.
“자, 그럼 설명할게. 3차 시험의 최종 목표는 날 쓰러뜨리는 거야.”
“……?!”
그와 함께 강당에 있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건 아무도 합격시킬 마음이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장난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용주가 이야기했다.
모두의 시선이 용주에게로 향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농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길드에서 그런 걸 승인했을 리가 없으니까.”
용주가 차분하게 받아쳤다.
“확실히…….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긴 하죠. 저도 용주 씨 말에 동의합니다.”
굳어 있던 윤현이 그제야 여유를 되찾았다.
“음, 그렇지. 그렇지만 장난은 아니었다고. 3차 시험의 최종 목적은 ‘이안’을 쓰러뜨리는 것! 나랑 똑같은 이름을 붙여준 녀석을 너희가 쓰러뜨리면 된다고.”
“그렇다는 건 3차 시험은 협동 토벌 미션 이라는 말이군요.”
“그렇지. 시험 장소는 ‘이안의 땅’! 물론, 이름은 내가 붙였어. 신비로운 그 섬에는 다양한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고, 여러 생명들이 너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생명이라면 식물이나 곤충, 동물 같은 거 말이죠?”
주원이 물었다.
“그런 것도 있지만 더 특별한 것도 준비해 뒀지. 무려 D급 게이트에서 만날 수 있는 언노운들의 특징이 가미된 몬스터! 내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고!”
“D급 언노운의 특징이 가미된 몬스터?”
“그래, 그래. 녀석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D급 언노운들도 문제없어. 어때? 합리적이지?”
윤현을 본 이안이 히죽 웃어 보였다.
“네. 납득했습니다. 공간 제약 등의 문제가 배제되어 있긴 하지만 말이죠.”
“2차 시험 때 경험해 본 사람도 있어 알겠지만, 숲에서의 대미지는 실제로 반영될 거야. 나나 의료 헌터들이 판단하기에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서 실격. 물론, 본인이 포기하고 싶으면 언제든 포기해도 돼. 이러다 죽겠다 싶으면 언제든지.”
여운을 남긴 이안이 다른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죽겠다 싶다니…….”
“그 정도로 위험한 건가요?”
“아무나 다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진 않았단 것만 알아둬. 즐기라고. 너무 쫄지도, 너무 방심하지도 말고.”
이안의 말이 끝나자 완전한 암전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겨우 몇 걸음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사람들의 인기척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용주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어둠이 물러가고 나타난 풍경은 하늘을 덮는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숲이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멀리서 파도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숲 여기저기로 찢긴 모양이다.
“…….”
혼자가 됐음을 확인한 용주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건가?’
목소리는 분명 나왔다.
사고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말하려고 했다면, 분명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순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젠장……!’
용주가 손을 부여잡았다.
가느다란 떨림이 계속해서 전해졌다.
두려웠다.
놈의 압도적인 강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A급이었던 형만의 기운조차도 녀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놈의 말 하나하나.
놈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여유가 넘쳐흘렀다.
‘만약 그 모든 게 의도적이고 계획된 것이라면?’ 이란 물음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거라면 많은 부분에서 앞뒤가 들어맞았으니까.
그 게이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된 건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지만, 결과만은 뼈에 사무치게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조차 없던 사람이 되어 버렸다.
혹여나 여기서 자신까지 없던 사람이 되어 버리기라도 하면…….
남아 있는 동생은 누가 책임지느냔 말이냐.
그 슬픔을…….
혼자 어떻게 버티게 하느냔 말이냐.
‘힘이……. 더 큰 힘이 필요해.’
용주가 손을 움켜쥐었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돈 때문에 더 강한 힘이 필요했고, 더 많은 돈을 위해 상위 게이트로 가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S급 헌터가 아니라 그 누구를 앞에 두더라도 지지 않을 힘이……. 소중한 걸 두고 절대 사라지지 않을 그런 힘이…….’
이런 상황이 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돈뿐만이 아니었다.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아.”
자리에 한참을 굳어 있던 용주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마음이 이제야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D급 게이트의 특징이 가미된 몬스터들이 나온댔지. 대체……. 응?’
자세를 낮춘 용주는 땅에 떨어져 있던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이건…… 다이어리?’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였다.
‘표지에는 아무것도 없어. 안쪽은…….’
안쪽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온통 백지.
이런 게 여기 떨어져 있다는 건 분명 의도된 설정일 텐데, 그 의도에 대해선 아직 알 수 없었다.
‘일단 챙겨두는 게 좋겠지.’
다이어리를 챙긴 용주는 검을 뽑아 들었다.
일단은 주변부터 수색하기로 한 용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