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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90화 (90/357)

90화

* * *

“자, 그럼 어디…….”

생수 한 병으로 갈증을 달랜 용주는 한 가지 물건을 꺼냈다.

이형 워프 장치.

퀘스트 게이트나 랜덤 박스에서 나온 게 아닌, 현실의 물건이었다.

‘원하는 곳을 생각하고 던지기만 하면 끝이랬지. 분명.’

수지의 설명대로라면 분명 그러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시험장 내부였다.

하지만 용주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굳이 눈에 띌 짓을 할 필요는 없지.’

시간상으론 대략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굳이 헌터 길드 안으로 떨어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거기 정도가 적당한가. 사람도 없을 테고.’

목적지를 정한 용주는 이형 워프 장치를 던졌다.

작은 보석은 이내 공간을 뒤틀었고, 작은 차원의 균열을 만들었다.

보통의 E급 헌터라면, 여기서부터 입이 떡 벌어졌을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용주에겐 이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균열을 확인한 용주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용도를 다한 균열은 이내 사라졌다.

* * *

“…….”

반대편 포탈로 빠져나온 용주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뭐지?’

그곳은 절대로 용주가 생각했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주가 생각했던 곳은 역 화장실의 청소 도구 칸이었다.

거기라면 헌터들은 물론이고, 사람들에 눈에 띌 일도 없을 테고, 시간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긴 절대 청소 도구 칸이 아니었다.

이렇게 넓고, 인테리어가 잘된 청소 도구 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뭐가 어디서 잘못된 거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용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침착해지자. 일단은 여기가 어딘지부터……!’

용주는 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당황한다고 해결될 건 하나도 없었다.

“음. 설마 여길 출구로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

GPS를 확인하려던 용주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용주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엉큼한 구석이 있었네. 아니, 순진한 호기심에 더 가까우려나?”

수지가 있었다.

그것도 블라우스 단추를 미처 다 채우지 못한.

“!”

다른 의미로 또 한 번 놀란 용주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 잠깐만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

“흐흠~?”

“내가 생각했던 곳은 역 화장실에 청소 도구 칸이었다. 나는 네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어디 한번 계속해 보라는 듯한 수지의 콧소리에 용주가 급하게 해명했다.

“꽤나 독특한 곳을 출구로 생각했었네.”

“뭐, 누구랑 달리 난 길드에서 정식으로 물건을 받은 게 아니었으니까. 구태여 눈에 띌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사람이 없을 곳을 생각했다?”

“뭐, 그런 셈이지.”

“그런 거라면 성공은 성공이네. 지금 여기 있는 건 너랑 나 둘뿐이니까.”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흰 블라우스에 용주가 또 한 번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단추 다 채웠으니까.”

수지의 이야기가 있고 나서야 용주는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홍조를 띤 용주와 달리 수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꽤나 침착해 보였다.

“그보다 여긴 어디냐?”

한숨을 쉰 용주가 물었다.

당혹스럽긴 했지만, 수지가 있단 건 일단 긍정적인 의미였다.

“보이는 대로 탈의실이지. 헌터 길드 안에 있는.”

“…왜 출구가 이쪽으로 설정된 거냐. 난 네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고,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음… 글쎄…. 혹시 내심 바라고 있던 건 아닐까?”

“…….”

수지의 무표정한 물음에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농담이야. 그럼 혹시 거기 집어넣은 내 마나 때문일까?”

“마나?”

“응. 보통은 마나를 불어넣은 헌터 본인이 사용하니까. 그거 때문에 뭔가 이상이 생겼던 게 아닐까 싶어.”

“한마디로 너도 잘 모른다. 그 말이네.”

“응. 처음이었으니까.”

용주가 뒷목을 긁적였다.

“뭐… 고의는 아니었지만, 미안하게 됐다. 놀라게 해서.”

“응. 괜찮아. 사고였는데, 뭘.”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최종 시험은 어떠려나? 부상자가 또 많이 나오려나?”

“난 개인적으론 윤현 헌터님이 왔으면 좋겠어. 완전 내 스타일이던데. 남자는 아플 때 마음이 약해진다고 그러잖아~.”

몇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이런…!”

소리에 즉각 반응한 용주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창문이 없었다.

커튼은 물론이고 창문 자체가 아예 없었다.

여기서 발각되면 어떤 식으로든 구설에 오를 게 분명했다.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수지에게도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

“왜? 숨으려고?”

“그렇게 태연하게 당연한 걸 물어보지 말라고!”

목소리를 낮춘 용주가 외쳤다.

‘젠장. 근데 어디 숨어야 하는 거야.’

밖으로 통하는 문은 하나였다.

그쪽으로 나가면 100%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몸을 숨길 만한 장소나, 사물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눈에 띄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여긴 어때?”

바쁘게 움직이던 용주의 시선이 목소리를 쫓았다.

시선이 멈춘 곳은 한 라커 앞.

수지는 열린 라커 문을 잡고 있었다.

* * *

“아하하~ 그렇게 생각하니 그건 또 별로네.”

“그렇다니까.”

“응?”

탈의실로 들어온 세 헌터가 수지와 마주쳤다.

“안수지 헌터님?”

“수지 씨,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라커에 기댄 수지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일정 확인.”

“아, 그러시구나. 근데 왜 여기서 하고 계신 거예요? 카페 같은 데 가면 더 분위기 있고 조용할 텐데.”

“여기도 충분히 조용해. 카페보다 더.”

“음… 그렇긴 한데….”

“아이, 얘도 참 눈치 없기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헌터가 끼어들었다.

“수지 씨 같은 미인이 카페에 혼자 앉아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분명 날파리들이 잔뜩 꼬일 거라고. 윙윙 윙윙.”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나야 뭐, 그런 경험이 있어 봤어야지. 아하하핫!

“웃프네. 웃퍼. 나도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꿈 깨셔. 다이어트한다고 호박이 수박 되나?”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내가 군살 빼고 비키니 입으면…!”

“남자들이 코피 질질 흘리면서 헌팅하러 올 거라고? 그럼 제발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이어트하는 시늉이라도 좀 해봐라, 야. 덕 좀 보자.”

한바탕 떠들썩하던 탈의실이 조용해진 건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아하핫, 죄송해요. 신나서 막 떠들어 버렸네요.”

“실례했습니다.”

“그럼 저희 먼저 가 있을게요!”

세 헌터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기까지 기다린 수지는 라커 문을 열어주었다.

거의 구겨지다시피 있던 용주는 그제야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안쪽은 좀 어땠어?”

“좋았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도 좁아터졌는데, 네 가방까지 있어서 혼났다고.”

용주가 어깨를 풀었다.

빈 라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래도 덕분에 살았다. 거기라도 아니었으면, 오해받았을 거야.”

“오해라면 어떤?”

“뭐… 있잖아. 치한이라느니….”

“우리 둘이 뭐 좋은 일이라도 하고 있었다느니?”

“…….”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용주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가정도 물론 했었지만, 무표정한 얼굴에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근데 웬 가방이냐?”

급하게 주제를 돌린 용주가 안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갈아입을 옷들이랑 화장품, 세면도구, 그리고 핸드폰 충전기랑 기타 여러 가지.”

“그게 다 여기 들어 있다고?”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주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가출한 것도 아니고 뭐 이렇게 바리바리 들고 나왔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런 개인적인 부분까지 파고들고 싶진 않았다.

“일은 잘 끝냈어?”

가방을 다시 라커에 넣은 수지가 물었다.

“그래. 덕분에.”

“음, 잘됐네. 나는 좀 더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법 여유롭게 도착했네.”

“뭐,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거든. 그래 봤자 네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 도착하는 건 꿈도 못 꿨겠지.”

실제로 붉은 사막에 있던 기간은 며칠이나 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시간은 그렇지 않았다.

수지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래? 다행이네. 컨디션은? 어디 다친 데는?”

“이렇게 멀쩡하게 생겼는데도 어디 하나 다친 걸로 보이나 보지?”

“음… 전과가 있으니까. 태연하게 거짓말도 참 잘하고.”

“…….”

“그래서 거짓말을 뺀 상태는?”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정말?”

“그래.”

용주의 말끝이 조금 흐트러졌다.

용주의 눈은 자신의 왼손을 보고 있었다.

전투 속행으로 붙이고, 물어뜯기와 시체 뜯어먹기로 회복하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도 궁금하긴 했다.

완벽하게 회복된 건지 장담할 수도 없었고.

“왼손, 내밀어 봐.”

수지가 먼저 오른손을 내밀었다.

“뭐? 왜?”

“잔말 말고.”

수지가 반강제로 용주의 왼팔을 잡아끌었다.

수지의 손에 머무는 옅은 형광빛은 용주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응. 큰 부상은 없네. 안심이야.”

빛을 거둔 수지가 이야기했다.

“그러게 문제 될 거 없다고 했잖아. 멀쩡하다고.”

내심 긴장하고 있던 용주가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다행히 후속 조치까지 잘된 모양이다.

“큰 부상이 없다고만 했지. 멀쩡하단 이야기는 안 했어.”

“뭐?”

“후훗, 뭐 그렇게 놀라고 그래. 왜?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

용주는 또 한 번 입을 다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번 건 장난의 고의성이 명확했다.

“농담이야. 그냥 근육 쪽에 자잘한 손상이 많길래 해본 소리였어. 염증도 좀 있고. 상처는 다 고쳐놨어. 이제 정말 멀쩡할 거야.”

“…또 신세를 졌군.”

“천만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인걸.”

용주의 손을 놓아준 수지는 먼저 앞장섰다.

“내가 신호하면 밖으로 나와. 또 누구랑 마주치면 곤란하잖아.”

“아… 그래.”

* * *

“용주 형~!!”

용주가 시험장 내부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주원이 달려왔다.

2차 시험에서 살아남은 인원은 총 30명이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이미 시험장에 도착해 있었다.

“언제 오나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주원이 해맑게 웃어 보였다.

지난번에 먼저 사라졌던 이야기는 아무래도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사이에 잊어버린 게 아니라면 말이다.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에이~ 또 그러신다. 그보다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용주 형 것까지 미리 받아놨어요!”

“받아놓다니 뭘….”

팔을 낚아챈 주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용주를 끌고 갔다.

먼저 도착한 이들 중 몇몇은 길드 쪽에서 준비해 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 같은 뷔페식은 아니었지만, 제법 호화로운 도시락이었다.

“우리 팀에선 용주 오빠가 꼴등이네. 그치 버티?”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나가 이야기했다.

자리엔 예나 말고도 네다섯 명의 헌터가 더 있었다.

‘조커’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의문의 헌터.

‘아이돌 헌터’라고도 불리던 윤현.

용주가 기억하는 건 그 둘 정도였다.

나머지 인원 중 눈에 띄는 사람을 꼽자면, 단연 갑옷으로 온몸을 무장한 사내.

사내의 갑옷은 중세 유럽풍의 갑옷이 아닌 사극에 나올 만한 조선풍의 갑옷이었다.

“당신이 소문의 그 좀비 헌터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윤현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윤현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

“이용주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옆에 계신 주원 씨께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죠.”

“…….”

용주가 주원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자기 없는 사이에 또 쓸데없는 일을 하고 다닌 모양이다.

“앞으로 경쟁을 하게 될지, 협력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식사 정도는 함께여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앉으시죠.”

“아~!! 그거 내가 하려던 말이었는데!!”

선수를 빼앗긴 주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 정말 밥 먹는데 아까부터 계속 쫑알쫑알, 쫑알쫑알. 전세 냈어? 사람이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테이블을 내려친 한 소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갑옷 입은 사내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헌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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