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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89화 (89/357)

89화

“저주와 열쇠의 주인이 바뀌었나. 흥미롭군.”

“넌 누구냐?”

용주가 물었다.

“‘고대의 재앙’ 녀석들의 기록엔 그렇게 남아 있다고 하더군.”

“고대의 재앙?”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존재, 녀석들은 오래전부터 그런 것들을 ‘재앙’이라 불러왔지. 난 그 재앙의 근원이 되는 존재. 첫 번째 재앙이 바로 나다.”

“그런 것치고는 예측 가능한 곳에 통제할 수 있게 있는 것 같군.”

용주가 비꼬듯이 이야기했다.

녀석이 머물고 있는 이곳은 재앙과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었다.

“크르르르. 동의한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제단 내부가 크게 흔들렸다.

빛이 한 점으로 모여들며 호수를 만들었고, 넘실거리며 흘러넘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백의 입을 가진 포식자.

석판에 그려져 있던 바로 그 생명체였다.

“오래전 녀석들의 선조는 재앙에 맞서 하나로 뭉쳤다. 수천, 수만의 피가 모래를 적셨고, 강을 물들였다.”

“그리고 거기서 보기 좋게 패배했다?”

“뭉쳤던 이들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걸 패배라고 부른다면, 그렇게 이해해도 상관없다.”

“그래? 여기 갇혀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 패배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냐.”

“이 땅은 척박하다. 살육이 끝나곤 조금 남아 있던 생명마저도 더 희미해졌지. 필요 이상의 도축이었다. 재앙이라 불리지만 나 역시도 허기를 느낀다. 유희에 대한 허기. 가지고 놀 게 없는 세상은 따분할 뿐이었지…. 그래서 난 오랜 시간 잠을 청했다.”

“…….”

“오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난 생명이 가득 차 있단 걸 느낄 수 있었다. 만족스러웠지. 그러던 중 유희를 즐기던 내 앞에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리자드맨이 아니라면, 바실리스크인가?”

“아니, 놈은 나처럼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유일무이한 존재라…. 그럼 네 빈자리를 차지한 후대 재앙이라도 만난 거냐?”

“크르르르, 아니, 내 앞에 나타난 건 훨씬 작고 강력한 존재였다. 기억이 조각조각 찢겨 희미하긴 하지만…. 그래. 지금의 네 모습과 여러모로 비슷했던 것 같군.”

“……!”

재앙의 목소리에 용주의 눈동자가 반응했다.

“조금 더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 그 존재에 대해서.”

“내 기억은 온전하지 않다. 하나 내 몸이 그자에게 찢겼던 걸 기억하고 있다. 난 그자에게 패배했다. 의식이란 게 다시 돌아왔을 땐 이곳에 버려져 있었지. 갈기갈기 찢긴 채로. 난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그자, 혹시 눈에 커다란 흉터를 가지고 있진 않았나?”

“크르르. 글쎄, 네가 나와 거래한다면,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지.”

“거래라고?”

갑작스러운 전개에 용주가 물었다.

“크르르. 그래. 보다시피 난 이곳에 귀속되어 있다. 몸을 수복한 이후 여러 번 탈출을 시도해 봤지만….”

재앙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재앙은 사라졌던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보다시피 이 모양이지.”

재앙의 모습을 보고 용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총사령관 테서락의 모습이었다.

“하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오랜 시간을 지켜보며, 리자드맨의 피가 이 감옥을 약화시킨단 사실을 알아냈다. 리자드맨의 피로 날 구속한 감옥을 적셔라. 감옥이 부서질 때까지. 그렇게 하면 너에게 끝없는 힘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하마.”

< 사이드 퀘스트 - 재앙의 도래 >

▷ 모든 리자드맨을 절멸하라.

▷ 수락하시겠습니까?

- 퀘스트를 수락하면 이 퀘스트 외에 모든 퀘스트는 일시 중단 상태가 됩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면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고대 재앙의 가호를 받습니다.

- ‘고대 재앙의 가호’

: 모든 능력치가 200 상승합니다.

: 받는 피해가 99% 감소합니다.

: 리자드맨에게서 획득하는 경험치가 500% 증가합니다.

: 모든 공격이 공간을 베며 퍼져 나갑니다.

: 모든 스킬의 소모값이 0이 됩니다.

: ‘균열의 저주’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이 퀘스트는 도중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 한번 거부한 이 퀘스트는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이드 퀘스트?’

재앙의 제안과 함께 용주의 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수락 대가로 붙어 있는 ‘고대 재앙의 가호’는 하나하나를 따로 보아도 말도 안 되는 효과들이었다.

능력치 상승 폭은 용주가 보유한 능력치에 3배가 넘었고, 피해 감소 99%는 용주가 보유한 ‘사후 강직’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었다.

‘뭔가 미심쩍은데….’

생각에 잠긴 용주가 눈썹을 기울였다.

리자드맨을 절멸시키라는 이 퀘스트에는 이상할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이 달려 있었다.

단일 효과로만 봐도 ‘뱀파이어 군주의 보주’나 ‘붉은 갈기’의 효과가 애들 장난으로 보일 수준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상했다.

‘잠깐만…. 그런 건가?’

“아니, 그 제안은 거절하겠다.”

생각 끝에 뭔가에 도달한 용주가 대답했다.

“그거 유감이군.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재앙이 유감을 표했다.

“그자와 닮은 너라면 리자드맨들이 어찌 되든 딱히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켜야 할 뭐라도 있었던 거냐?”

“네 말대로 리자드맨들이 어찌 되든지는 나와 크게 상관없다.”

“그런데도 제안을 거절하다니. 모순이군.”

“리자드맨이 어찌 되든지는 상관없지만, 절멸해 버리면 내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져서 말이야.”

용주가 팔짱을 끼었다.

이 서브 퀘스트는 분명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건 독이든 성배나 다름없었다.

서브 퀘스트의 수락은 두 가지 효력을 발생시킨다.

하나는 ‘고대 재앙의 가호’.

다른 하나는 이 퀘스트 외에 모든 퀘스트의 일시 중단이었다.

이 두 번째 조항이 바로 용주가 발견한 독소 조항이었다.

이 조건이 아니라면, 용주로선 퀘스트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영구 지속 되는 이런 효과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계승자로서는 물론이거니와 헌터로서도 지금까지완 격이 다른 강함을 보일 수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이걸 수락하면 메인 퀘스트에….

아니, 목숨에 큰 차질이 생길 게 분명했다.

이번 게이트의 메인 퀘스트는 두 세력 중 한 곳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 퀘스트를 수락하면 퀘스트는 일시 중단.

반란군이 승리해도 출구는 열리지 않는다.

퀘스트를 포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즉, 한번 수락하면,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리자드맨이 절멸되고 서브 퀘스트가 클리어되면….

메인 퀘스트는 영영 완수할 수 없게 된다.

메인 퀘스트에 실패하면 그자는 분명 자신을 죽일 것이다.

스탯이 200이 올라가고, 경험치를 500% 받았어도.

받는 피해가 99% 감소하고, 스킬을 무한정으로 사용할 수 있어도.

100% 확실하게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메인 퀘스트를 우선 완료하고 서브 퀘스트를 받는다는 선택지 역시 사전에 막혀 있었다.

한마디로 이 퀘스트는 받으면 죽는 ‘함정 퀘스트’ 같은 것이었다.

“그것 역시도 모순이구나. 상관은 없지만, 곤란하다라….”

“나도 내 나름의 사정과 입장이 있어서 말이지.”

“크르르르. 내 제안을 거절할 정도의 무언가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척 즐거운 유희군.”

특유의 웃음소리를 낸 재앙은 두 개의 촉수를 내려놓았다.

“유감스럽게도 그 존재의 얼굴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특정 부위의 정보 같은 파편적인 정보는 더더욱 조각나 있지. 단 하나. 내가 기억하는 건 그 존재가 나보다 상위 포식자라는 사실뿐이다.”

“의외군. 왜 그걸 내게 말해주는 거지? 거래가 불발된 시점에서 대답할 의무는 없었을 텐데?”

“오래간만의 유희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두지. 또 하나의 거래를 위한 밑 작업이라도 해도 좋고.”

“거래?”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용주의 시선이 반응했다.

땅속에서 솟아오른 십여 개의 촉수가 출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냐?”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용주가 검 위에 손을 올렸다.

“큰 뜻이 있는 건 아니다. 딱히 너와 싸우고 싶은 것도 아니고. 단지….”

문을 가로막았던 열 개의 촉수 중 한 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졌던 촉수는 재앙 앞에 나타났다.

솟아오른 촉수에는 용주가 들어올 때 사용했던 제단 열쇠가 들려 있었다.

“네가 이 열쇠의 소유권을 포기하기를 바랄 뿐.”

“어째서지?”

“네가 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 내 따분함이 더 길어질 거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지. 이 열쇠는 힘을 원하고 피를 바칠 이에게 어울리는 물건이다.”

지면을 뚫고 나온 촉수 하나가 용주 앞에서 벌어졌다.

촉수의 안쪽에는 식물의 씨앗 같은 게 들어 있었다.

▷ 재앙의 씨앗

- 고대의 재앙의 힘이 깃들어 있는 씨앗.

- 사용자의 몸에 기생해 피와 양분을 먹으며 자라나며, 재앙의 힘을 숙주에게 제공한다.

“시간은 피를 부르고, 세월은 전쟁을 부른다. 힘을 갈구하는 자는 또 나를 찾게 되겠지. 감옥이 부서지는 건 자연의 이치. 난 시간을, 넌 힘을 손에 넣는 거다. 서로에게 손해 볼 것 없는 거래라 생각하는데?”

재앙의 제안에 용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씨앗을 집어 들었다.

“거래 성사. 현명하구나.”

거대한 웅덩이가 되었던 빛무리가 방울방울 흩어지기 시작했다.

흡족함을 보인 재앙은 웅덩이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고, 입구를 막고 있던 촉수들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재앙의 씨앗을 한 번 더 바라본 용주는 뒤돌아섰다.

‘녀석 봤다던 인간형의 존재…. 그건 정말 녀석이었을까?’

고대의 재앙이 봤다던 그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자라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딱히 다른 누군가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만약 그게 녀석이었다면… 녀석도 이 퀘스트 게이트에 왔던 적이 있단 건가?’

해답 없는 물음을 던진 용주는 제단을 빠져나왔다.

제단의 석판은 스스로 닫혔다.

열쇠는 제자리에 꽂혀 있었다.

* * *

< ‘붉은 돌격대’가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

▶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대항력이 3 상승했습니다.

▶ 출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3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 ‘모래 벌레의 타액’을 획득했습니다.

- 강한 산성을 띄는 모래 벌레의 타액을 모아놓은 병.

▷ ‘태양의 기둥’을 획득했습니다.

- 빛의 기둥을 생성한다.

- 기둥의 빛은 밝기는 가지지만, 열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 ‘모래 부유석’을 획득했습니다.

- 붉은 사막의 모래가 특별한 환경에 노출되어 생겨난 특수한 돌.

- 한번 붙은 곳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으며, 공중에 뜨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 ‘바실리스크의 꼬리’을 획득했습니다.

- 딱딱한 갑주를 두른 바실리스크의 꼬리.

- 조리해 먹으면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 ‘리자드맨의 비늘’을 획득했습니다.

- 지속시간 동안 수중에서의 기능이 대폭 향상된다.

▷ ‘혹한의 산지’ 지도를 획득했습니다.

- 개방 시간 : 매일 밤 10시~ 12시.

- 달이 12번 차고 지는 동안 입장하지 않으면 퀘스트는 실패로 간주됩니다.

마지막 항복 소식이 전해지자 용주의 앞에 대량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드디어 끝난 건가.’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은 또 하루가 지나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 새로운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 ‘혹한의 산지’에서 12번의 시련을 이겨내십시오.

종전의 환호성이 들려왔고, 멀리서는 계속해서 구원자를 연호했다.

용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주가 머물고 있는 곳은 검은 태양의 제단의 가장 아래층.

제단을 나온 용주는 위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람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또 이슬처럼 그렇게 사라지려는 거냐, 구원자?”

포탈을 바라보고 있던 용주의 시선이 위쪽을 향했다.

“왜? 동상이라도 하나 세워주고 싶었나 보지?”

“설마. 킥! 그래. 뭐, 그렇게 사라지는 게 더 전설 같긴 하겠네.”

계단을 내려오던 모드락이 계단에 걸터앉았다.

“잘 가라. 다신 돌아오지 말라고.”

“왜? 내가 적이 되기라도 할까 봐 무서운가?”

“크크큭! 그럼 무섭지 안 무섭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게다가….”

다리를 꼰 모드락이 턱을 괴었다.

“네가 나타난다는 건 또 한바탕 난리가 나 있다는 소리잖아. 제물도, 전쟁도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피는 이제 그만 보고 싶어.”

“…그래. 걱정하지 마라.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을 테니까. 내가 예언하지.”

“킥! 그거 끝내주게 믿음직스러운 예언이네.”

소리 없이 웃어 보인 용주는 포탈을 빠져나갔다.

사막의 찌는 듯한 열기는 어느새 선선한 바닷바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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