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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87화 (87/357)

87화

‘이 녀석 어느 틈에…!’

용주의 눈동자가 소리에 반응했다.

황금의 갑옷으로 무장한 꼬리가 보였다.

하지만 대처하기에는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촤악!

놈의 검은 이미 용주의 왼손을 잘라내고 있었다.

파악!

왼손이 잘린 충격을 느끼기도 전에 명치에서 심한 통증이 올라왔다.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단단히 고정해두었던 발목이 아니었다면, 분명 튕겨 나갔을 것이다.

놈의 뒷덜미를 낚아챈 용주는 그대로 패대기쳤다.

바닥으로 날아간 리자드맨을 강철 코도가 곧장 짓밟았고, 그런 강철 코도를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모래 벌레가 집어삼켰다.

모래 벌레를 안에서부터 불태운 코도는 자신의 발을 향해 불을 뿜어냈다.

불꽃은 모래 벌레의 표피를 녹였고, 까맣게 그을린 바닥 타일이 보였다.

코도는 서서히 발을 들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미친…!’

자신의 왼손은 여전히 고삐를 움켜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손은 자신의 신체에 붙어 있지 않았다.

욕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고통은 없었지만, 정신이 하얘졌다.

동공은 정처 없이 흔들렸고, 또 한 번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손에 감각이 없었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모래 벌레의 입속에 들어와 있단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젠장.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자신의 손을 지켜보던 용주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젠장! 침착해! 생각하란 말이야!’

지혈을 위한 도구는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 봉합 수술을 받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재생과 시체 뜯어먹기.

스킬의 도움을 받으면 지혈 자체는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혈만 하면 어떻게든 전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머리도 아니고, 손 하나 날아간 정도는….

‘잠깐만….’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스킬….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전투 속행.

그 스킬엔 분명 머리를 제외한 절단된 신체 부위를 빠르게 수복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믿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야.’

왼팔을 움직인 용주는 잘린 손목에 절단면을 포개어 놓았다.

어떻게 해야 붙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발… 붙어!’

마음속으로 외친 용주는 오른손으로 절단면을 감싸 안았다.

손목엔 감각이 있었지만, 손등엔 감각이 없었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붙으라고!’

간절함을 담은 용주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런 용주의 왼손을 타고 하나의 감각이 올라왔다.

오른손과 맞닿은 부근의 따뜻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건…!’

감각이 돌아온 걸 느낀 용주는 손가락을 움직여보았다.

고삐를 놓은 손은 불완전하지만 분명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진짜 붙었어.’

놀라움을 삼킨 용주는 조금 전 상황을 분석했다.

혼란함은 여전했지만, 머리에 씌워진 백지가 이제야 좀 걷히는 느낌이었다.

녀석의 침입은 예상을 벗어난 사건이었다.

갑옷 곳곳에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폭풍을 뚫고 들어왔을 확률은 상당히 높았다.

설마 거길 뚫고 들어올 수 있는 적이 있을 줄이야.

아무래도 상대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모양이다.

‘내가 소리를 놓친 건가?’

용주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적의 움직임을 사전에 간파하지도 못했다.

바람과 비명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기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녀석이 웅크리고 있던 모양과 방향을 생각하면 녀석이 온 곳은 99% 정면이었다.

그랬다면 놓쳤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왼손은 분명 잘라냈을 텐데…. 구원자란 과연 굉장하군. 박수가 절로 나와. 확실히 그 정도라면 재앙을 쓰러뜨렸단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어.”

모래 벌레의 입 밖으로 나온 용주는 검을 뽑아 들었다.

황금 갑옷을 입은 리자드맨은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빚진 건 꼭 갚아주마.”

용주가 왼손을 움켜쥐었다.

손은 분명 붙었지만, 뭔가 상태가 불안하단 느낌이 들었다.

“섭한 소리. 빚이라면 내가 방금 갚았는데. 구원자씩이나 되시는 분이 내 부하를 자처해 주셨단 이야기는 들었다. 영광이라면 영광이겠지.”

리자드맨이 검끝을 지면에 올려놓았다.

그의 한마디는 그가 누군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총사령관 테서락.

용주가 이용해 먹었던 바로 그 이름의 주인이었다.

“설마 모습을 바꾸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지는 몰랐다. 바실리스크와 병력의 일부를 빼둔 건 내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위한 수였겠군. 붉은 괴물이 보이지 않는 한 내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던 거겠지. 영리해. 참으로 영리해. 하나….”

검을 뽑아 든 리자드맨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재앙이든, 기적이든, 구원자든. 내 힘과 내 왕국을 빼앗아 갈 순 없다.”

용주의 눈앞에 나타난 테서락은 용주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힘으로 찍어 눌렀다.

코도 갑피에 그대로 내려 찍힌 용주의 뒤통수에선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코도 안장에서 두 다리를 뺀 용주는 곧장 왼손을 휘둘렀다.

용주의 왼손엔 인벤토리에서 꺼낸 화살 한 발이 들려 있었다.

콰광!

이윽고 일어나는 폭발.

갑작스러운 폭발에 놀란 테서락은 뒤로 물러났다.

‘방금 그건 뭐였지?’

즉흥적으로 떠올린 폭발 화살로 위기를 벗어난 용주는 미간을 좁혔다.

폭발 화살의 데미지는 본인에게도 유효타.

인간인 이상 화상을 피해 갈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용주의 신경을 거스르는 건 따로 있었다.

조금 전 녀석의 움직임을 용주는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녀석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바로 앞에 생겨난 것처럼 보였다.

“100개의 재앙을 부리고, 1,000개의 기적을 부려도, 단 하나의 검엔 이기지 못하는 법. 첫 기습에 네 목을 치지 않은 건 그렇게 끝을 보는 게 내 성미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왼손을 앞으로 뻗은 테서락의 모습이 또다시 용주의 시야에서 지워졌다.

‘온다.’

검을 바짝 당긴 용주는 곧장 수비태세에 돌입했다.

지금까지의 사례로 비춰봤을 때 놈이 공격해 올 곳은 정면.

눈으로 보이진 않더라도 대비는 할 수 있었다.

“두 번은 없다.”

휘익!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등골을 타고 섬뜩한 감각이 흘렀다.

날카로운 검의 소리는 왼쪽 귀 뒤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사후 강직!’

위협을 직감한 용주는 곧장 스킬을 발동했다.

촤악!

그와 동시에 용주의 뒷목을 때리는 충격.

놀란 눈동자의 테서락은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물러났다.

‘대체 무슨 원리지?’

용주는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눈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거라면, 적어도 그 직전 동작은 감지했어야 했다.

발목이 움직인다든가.

무릎이 움직인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런 동작은 없었다.

녀석이 취했던 동작이라고 한다면….

움켜쥔 손을 잡아당긴 것.

그것뿐이었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어.’

용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강철 코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달려 코도의 불길을 피해낸 테서락은 다시 한번 왼손을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

“키이이!”

모래바람을 뚫고 튀어나온 모래 벌레가 테서락의 뒤를 노렸다.

테서락은 그대로 손을 끌어당겼다.

마치 공간 자체를 잡아당기는 듯한 그의 움직임이었다.

그와 동시에 사라진 테서락의 모습.

타깃을 놓친 코도와 모래 벌레는 서로 뒤엉키며 교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코도의 돌진과 동시에 용주 역시도 거리를 좁혔었다.

그리고 코도가 불을 뿜음과 동시에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용주의 손에는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하나 들려 있었다.

초코칩.

예전에 도박에서 나왔던 꽝 아이템 중 하나였다.

뒤로 물러나며 용주는 초코칩들을 바닥에 뿌렸다.

적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거라면 분명 이 중에 하나라도 밟을 거라는 게 용주의 생각이었다.

스윽!

사라졌던 테서락이 나타난 건 그가 사라진 곳과 멀지 않은 자리.

놈의 왼손이 끌어당겼던 바로 그 방향이었다.

‘그런 건가.’

두 번의 상황에서 같은 행동이 목격되었다.

저 사전 동작이 이동을 위한 조건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용주의 시선은 초코칩을 향했다.

놈이 나타난 곳 뒤쪽에는 초코칩 몇 개가 떨어져 있었다.

그 중 밟히거나 부서진 초코칩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속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거나 한 건 아니야. 이건….’

순간이동.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녀석에게 기습을 당했을 때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던 것도.

놈이 등 뒤에서 나타났던 것도 다 설명이 되었다.

‘한 번에 날 덮치지 않았다는 건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저 정도가 한계란 소리일 거야. 연속 사용 역시 불가능. 한 번 사용하면 그 뒤로 딜레이가 있는 것 같아.’

지금 상황을 머릿속에 기억한 용주는 거리를 좁혔다.

맞부딪치는 검과 검.

왼쪽 사선으로 내리찍는 참격을 피한 용주는 그대로 반격을 가했다.

용주의 일격은 정확히 테서락을 가격했지만, 황금 갑옷의 단단함을 뚫을 수는 없었다.

‘갑옷부터 어떻게 해야 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할퀴기나 물어뜯기를 중첩 사용해 위력을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하나 더 떠올랐다.

스윽!

녀석이 손을 움켜쥐는 것을 확인한 용주는 자신의 정면으로 폭발 화살을 터트렸다.

폭발의 여파로 용주의 HP가 깎여 나갔고, 열기가 용주를 괴롭혔다.

동작을 인지했다 해도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올지는 미지수였다.

앞뒤 거리를 선택하는 건 적에게 달려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용주는 지금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다.

50%인 가능성을 100%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

폭발을 확인한 녀석의 공격은.

챙!

뒤로 왔다.

“아니!”

테서락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용주는 정확히 놈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테서락의 자세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할퀴기!’

손톱을 세운 용주는 곧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노리는 곳은 팔꿈치 안쪽의 접히는 부분.

놈이 입고 있는 갑옷의 구조상 갑옷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몇 안 되는 부위였다.

“크으윽!!”

불의의 일격을 당한 테서락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용주는 곧장 따라붙었고,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갔다.

바로 그때.

“끼이익!!”

지면을 부수며 또 한 마리의 모래 벌레가 솟구쳐 올랐다.

충격에 날아간 테서락은 빠르게 왼손을 움켜쥐었다.

위치를 이동한 그는 순식간에 땅으로 돌아와 있었다.

타다닥!

부서진 바닥을 내달린 용주는 그대로 모래 벌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놈의 입은 아직 돌을 물고 있었기에 입속으로 빨려 들어갈 염려는 없었다.

지면에 착지한 용주는 목표했던 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나갔다.

용주가 멈춰선 곳은 강철 코도가 모래 벌레와 전투를 벌이던 곳.

코도의 안장을 붙잡은 용주는 그대로 안장 위로 뛰어올랐다.

용주의 손에는 다섯 발의 폭발 화살이 들려 있었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리를 좁힌 테서락이 왼손을 움켜쥐었다.

그사이 추가로 모습을 드러낸 세 마리의 모래 벌레 역시도 세 방향에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럼 어디 누가 제일 맷집이 좋은지 내기라도 해볼까?”

다섯 발의 폭발 화살을 힘껏 내던진 용주는 반대편으로 뛰어내렸다.

용주의 양손은 안장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용주의 발밑에는 제법 많은 양의 액체가 고여 있었다.

코도비스트의 타액.

휘발성이 강한 특수한 물질이었다.

쾅! 콰과가광!!!

화살촉이 타액에 닿자 강렬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강렬한 화염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폭발에 찢겨 나간 모래 벌레들의 살점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강철 코도의 HP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폭발에 날아간 코도는 땅을 뒹굴었고, 용주 역시도 코도에 깔렸다가 폭발에 노출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

▷ 그을린 피부 (Lv.1)

- 패시브.

- 화염에 의한 데미지가 감소한다.

- 화상에 의한 통증이 줄어든다.

사후강직의 효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열기에 의한 화상 쪽은 예상했던 것 이상의 타격이 있었다.

‘직접적인 노출을 최소화했는데도 이 정도인가….’

성과는 확실히 있었다.

모래 벌레 세 마리를 한 방에 폭사시켰고, 새로운 패시브 스킬도 발현되었다.

고통의 완화 정도는 말로 표현하기 애매하긴 했다.

100만큼 아프던 게 90만큼 아파졌다고 해서 통증이 없어진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애초에 그런 걸 기대하고 저지른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미안하다. 험한 꼴 보게 해서.”

안장을 잡고 있던 손을 놓은 용주는 땅에 떨어진 살덩이 하나를 뜯어먹었다.

불을 이용한 만큼 맛은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시체 뜯어먹기의 제대로 된 효율은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녀석이니 신선도에선 의심할 여지가 없을 텐데….

아무래도 생고기가 아니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상처 회복을 포기한 용주는 테서락의 모습을 쫓았다.

황금으로 무장하고 있던 그는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갑옷은 80% 이상 파괴되어 있었다.

그을음이 온몸을 덮고 있었고, 왼쪽 팔꿈치 아래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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