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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86화 (86/357)

86화

‘슬슬 좋을 때인가?’

태양의 요새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용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사령관에게 올라오는 보고는 그대로 용주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태양의 요새는 다섯 개의 외성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였다.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안쪽에 오아시스와 농경지까지 보유한 요새라고 한다.

용주는 요새를 포위하라고 지시했다.

원거리 사격이 닿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며 낯에는 요새를 돌았고, 밤에는 휴식을 취했다.

보급과 지원군이 오갈 수 있는 몇몇 루트들은 일부러 열어두었다.

그편이 더 많은 병력이 집중되기 좋으니 말이다.

일부 병사들은 요새를 돌며 ‘구원자님께서 우리와 함께한다!’, ‘요새는 곧 무너질 것이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정규군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같은 구호를 이삼일 듣다 보니 정규군 사이에서도 흉흉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바실리스크 50마리를 비롯한 일부 병력은 일부러 보여주지 않았다.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적들이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붉은 갈기의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여기 붉은 갈기는 없었다.

사라진 야수와 병력.

눈에 보이지 않는 전력이 있는 한 적들이 함부로 공격해 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용주에겐 있었다.

적이 아무리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전 부대에 알려라. 자리를 지키라고.”

“정말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최소한의 호위라도 붙여 드리는 게….”

“방해다.”

총사령관에게 명령한 용주는 먼저 천막을 빠져나왔다.

용주가 있던 곳은 태양의 요새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장소였다.

갑판을 거닌 용주는 곧장 땅으로 내려왔다.

총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깃발이 올라갔고, 신호를 실은 두 척의 배가 양쪽으로 찢어졌다.

요새 주변에 일던 움직임은 완전히 멎어 있었다.

홀로 앞으로 걸어 나간 용주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태양의 요새로 진입하기 위해선 총 2개의 성벽을 넘어야만 했다.

생각한 게 얼마만큼 맞아떨어질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그걸 위해 할애한 시간이었다.

이번 한 번만 제대로 들어가면 적에게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그럼 어디 한번 시작해 보자고.’

가장 먼저 ‘문스톤’을 꺼낸 용주는 아이템을 사용했다.

태양이 서서히 그림자에 잠겨 갔고, 이내 어둠이 내리깔렸다.

“뭐… 뭐야?!”

“저기 봐! 태양이 지고 있어!!”

“오, 세상에! 이런 재앙이…….”

“마치 태양이 우릴 저버린 것만 같아.”

갑작스럽게 찾아온 밤에 정규군 사이에 큰 혼란이 일었다.

뿌우우!!!

그리고 그런 이들을 관통하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와아아!”

“우와아아!!”

반란군들의 함성이 지축을 흔들었다.

“뭐야? 저 녀석들 왜 저래?!”

“이거 어째 느낌이 불길한데….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야?”

정규군의 혼란은 빠른 속도로 불길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최후 돌격 명령 나팔’을 분 용주는 충분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강철 코도 소환서’를 사용했다.

비슷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바실리스크란 존재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강한 존재가 필요했다.

강철 코도에 다리를 단단히 고정한 용주는 ‘소형 토네이도 유지 장치’를 꺼냈다.

장치를 킴과 동시에 불기 시작한 바람은 용주를 감쌌고, 잔잔했던 바람은 순식간에 성난 폭풍이 되었다.

쉬이익!!

귓가를 맴도는 바람 소리는 상당히 날카로웠다.

하지만 용주가 있는 곳은 달랐다.

폭풍의 눈.

그곳에는 바람 한 점 일지 않았다.

‘그럼 가보자고!’

고삐를 당긴 용주는 그대로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

어둠과 모래바람에 시야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지만, 성벽을 타고 피어오른 불길들로 대략적인 거리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다.

“저길 보십시오!”

“태풍이! 거대한 모래폭풍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저런 건 없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점점 다가오는 폭풍에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람과 모래에 횃불이 꺼졌고, 눈을 뜨는 것도 점점 더 힘들어졌다.

“자리를 지켜라!”

“자리를 이탈하는 자는 군법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지휘관들은 같은 소리를 반복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실물이 있는 적이 아니기에 공격 명령을 내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퇴각 명령을 내릴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재앙이야…. 녀석들이 말한 게 전부 사실이었던 거라고!”

활을 들고 있던 리자드맨 하나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를 부둥켜안은 리자드맨은 공포에 벌벌 떨고 있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당장 일어나지 못해?! 그러다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반란군에 진짜 구원자가 있는 거야. 분명해!”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믿어?!”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이 밤은? 저 바람은?!”

“그건….”

“요새가 무너질 거야. 태양이 사라진 것처럼 태양의 요새도 오늘 사라질 거라고!”

병사가 내뱉은 불안감은 삽시간에 병사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성벽보다 높게 치솟은 모래폭풍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타닥!

드르르륵!

강철 코도를 몰던 용주의 귓가에 소리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바람에 날린 모래가 무언가를 때리고 있었다.

‘거의 다 왔나 보군.’

모래바람이 가까워지며 횃불들은 거의 다 꺼진 상태였다.

위치를 짐작하려면 이런 소리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 내가 상대해보지 못했던 네 힘을 보여달라고!”

속도를 끌어올린 용주는 그대로 돌진했다.

“으아악!!”

“날아간다! 날아간다고!”

“뭐든 좋으니까 꽉 붙잡아!”

“붙잡긴 개뿔! 도망가!!”

바람 소리에 섞여 수많은 이들의 비명이 난무했다.

소용돌이에 휩쓸린 일부 리자드맨들이 성벽에 부딪히며 나는 소리 또한 들려왔다.

쿵!!

바로 그때.

온몸을 타고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강철 코도가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히며 발생한 충격이었다.

코도를 뒤로 무른 용주는 다시 한번 코도를 전진시켰다.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앞에 있는 건 분명 성문이었다.

철을 빚어 만든 철문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자신을 향한 공격은 전무했다.

게다가 성문 뒤편에서 공성추를 버텨줄 병력 또한 없었다.

쿵! 쿵! 쿵!

강철 코도는 계속해서 성문을 두들겼다.

“성문을 지켜라! 뭔가 있다!”

“성문을 지키라니….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지키라는 겁니까?”

“지키라면 지켜! 명령이다!”

“그냥 바람에 흔들리는 건 아닐까요?”

“바람에 저렇게 두꺼운 철문이 찌그러진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 멍청이가!”

병사들은 성문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지만, 형체 없는 적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쿵! 쿵! 쾅!!

성문이 나가떨어진 건 그로부터 3분 뒤.

뜯겨 나간 철문을 짓밟은 코도는 외성 안으로 진입했다.

성문 아래로 꼬리와 팔 등 리자드맨의 신체 일부들이 보였고, 그들이 흘린 피가 바람에 섞였다.

“으와아악!!”

가까워진 폭풍에 더 많은 리자드맨들이 돌풍에 휩쓸렸다.

“투석기의 방향을 돌려라! 폭풍의 중심부를 향해 조준!!”

“진심이십니까?! 그랬다간….”

“명령이다! 당장 조준해!”

적이 아닌 바람과 싸우던 병사들이 투석기를 180도 돌렸다.

“발사!!”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묵직한 바위들이 바람을 갈랐다.

쿵!! 쿠구궁!

성안에 있던 각종 건물과 구조물들이 부서져 나갔고, 깨진 건물과 바닥 등의 잔해가 바람에 뒤섞였다.

눈먼 사격이었음에도 몇몇 투사체들은 제법 위협적인 위치에 떨어졌다.

그리고.

캉!!

그중 하나가 강철 코도의 오른쪽 옆구리를 강타했다.

왼쪽으로 살짝 기울었던 코도는 곧장 균형을 잡고 일어났다.

코도의 HP엔 타격이 있었지만, 그거 한 방에 쓰러질 데미지는 아니었다.

고삐를 당긴 용주는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앞에 뭐가 있든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코도의 대략적인 보폭은 파악을 완료했다.

요새의 외곽을 돌며 내부의 대략적인 면적 역시도 계산을 마쳐둔 상태였다.

지금 해야 할 건 성의 내벽을 돌파하는 일.

태양의 요새 내부로 진입하기만 하면 요새 전체를 재앙의 사정권 안에 둘 수 있었다.

쿠왕!

수많은 건물들을 부수고 나온 용주는 마침내 요새의 내벽을 파괴했다.

“테서락 님을 위하여!”

“폭풍 수호대를 위하여!”

정예 중의 정예인 이들이 폭풍 속으로 달려들었지만, 누구 하나 용주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바람에는 모래와 건물의 잔해. 심지어는 칼과 창까지 뒤섞여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태양의 요새 내부로 진입한 용주는 놋쇠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어디 한 번 마음껏 날뛰어 보라고.’

용주가 놋쇠 지팡이를 사용하자 수직으로 선 지팡이가 지면에 고정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장식되어 있던 두 마리의 모래 벌레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땅속으로 사라졌다.

두 마리의 모래 벌레가 사라지자 지면이 꿀렁거리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악!!”

“땅이! 땅이 흔들려!”

바닥 타일이 엉망으로 부서졌고, 성벽 위를 지키고 있던 병력들이 추락했다.

그리고.

“으아악!! 저게 뭐야!!”

“재앙이다! 재앙이 나타났다!!”

태양의 요새 곳곳에서 모래 벌레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태양의 요새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다섯 개의 요새에서도 모래 벌레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황하지 마라! 무기를 들어…!”

“으아악!!”

모래 벌레들은 닥치는 대로 주위에 있는 것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리자드맨.

바실리스크.

심지어는 투석기와 건물의 잔해까지도 집어삼켰다.

모래 벌레의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났다.

두세 마리 보이던 것이 어느새 열 마리.

열 마리 보이던 것이 순식간에 그 2배로 늘어나기도 했다.

“재… 재앙이 점점 더 늘어나잖아?! 재앙은 하나뿐인 거 아니었어?!”

“형태를 변화시킨 게 분명해! 우릴 끝장내기 위해서 분열한 거라고!”

“도… 도망가!”

“군법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고 보자고!”

점점 늘어나는 모래 벌레의 압도적인 숫자에 정규군의 지휘 체계는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허가 없이는 누구도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 당장 돌아가!”

“웃기지 말라고!”

병사들은 지휘관들의 명령을 무시했으며, 군법으로 즉결 처형 시키던 지휘관을 역으로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근데 어디로 도망가! 바깥에는 반란군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알 게 뭐야! 여기만 아니면 되지!”

“다들 저길 좀 보세요!”

혼란한 와중 한 리자드맨에 요새 바깥쪽을 가리켰다.

“반란군들이 있는 곳엔 재앙이 들이닥치고 있지 않아요!”

“뭐?”

“진짜잖아. 진짜 없어.”

“저기로 가면 우리도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정말 그럴까? 가는 즉시 살해당하는 건….”

“알 게 뭐야! 난 일단 뛰어내릴 거야! 여기 있어 봐야 어차피 죽는다고!!”

한 리자드맨이 목숨을 걸고 그대로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성문으로 돌아 나가는 방법은 선택할 수 없었다.

그곳은 이미 모래 벌레가 차지해 버렸으니 말이다.

운 좋게 모래 사면에 미끄러진 리자드맨은 칼집과 갑옷을 집어 던졌다.

그의 투항은 받아들여졌고, 다른 정규군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도! 나도 갈 거야!”

“가자!”

“가자!!”

죽기를 각오한 리자드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성벽의 한 블록에서 시작된 현상은 요새 전체로 퍼져 나갔고, 다른 요새에까지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투쾅!!

모래의 재앙은 용주라고 피해 가지 않았다.

지면에서 솟구쳐 오른 모래 벌레는 강철 코도를 덮쳤다.

모래 벌레의 이빨이 코도의 갑피를 씹었고, 이빨이 부러진 자리를 다른 이빨들이 빠르게 채워 나갔다.

깊은숨을 들이마신 코도는 푸른 불꽃을 뿜어냈다.

불길은 모래 벌레를 역으로 집어삼켰고, 고통에 발버둥 치던 모래 벌레는 모래바람 바깥으로 사라졌다.

재앙의 근원에 가장 가까운 건 다름 아닌 용주였다.

가장 많은 모래 벌레에 노출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방금 그것까지 해서 공격받은 횟수는 총 다섯 번.

강철 코도의 HP도 제법 타격이 있었다.

‘이제 이 난리통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돼.’

아이템을 활용한 계획을 세운 건 여기까지였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가지고는 완벽한 탈출까지의 작전을 세우지 못했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강철 코도와 감뿐.

재앙의 효과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이제 순전히 자신에게 달린 일이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건 비효율적이야. 우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게….’

그렇게 생각한 용주는 기수를 돌렸다.

그리고.

“재앙을 몰고 다니는 자. 겉모습은 보고받은 것과 다르지만, 틀림없이 네가 저들이 말하는 구원자겠군.”

용주의 귀에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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