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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84화 (84/357)

84화

* * *

“히-햐-! 이런 미친 작전이 먹혀들어 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끝내주는구만. 안 그래?”

바실리스크의 고삐를 잡은 모드락이 키득거렸다.

적들의 손으로 직접 건네받은 바실리스크는 대략 200마리.

한 마리를 탈취하는데 들어갔던 희생을 생각하면 기적이라 할 만한 대사건이었다.

들어갈 때도 나름대로 대접을 받으며 들어갔지만, 나올 때는 거의 개선문을 통과하는 것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나왔다.

자신들이 반란군이란 걸 알면, 거품을 물고 기절할 테지.

“잡담이라면 나중에 해라.”

여전히 붉은 갈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용주가 이야기했다.

바실리스크들은 전속력으로 모래사막을 질주하고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니까.”

저 멀리 지평선에 밝은 빛이 보였다.

일출이 만든 빛은 아니었다.

저건 수많은 횃불들이 만들어내는 빛.

감시의 언덕 남서쪽 정규군 캠프가 만들어내는 빛이었다.

“알고 있다고. 그런데 이제 그 모습 그만둬도 되는 거 아니야? 조금 무서운데.”

“이번 전투에 이쪽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아, 그러셔? 그럼 이야기했던 대로 가면 되는 거지?”

“그래.”

용주의 사인이 떨어지자 부대가 총 3개로 갈라졌다.

부대의 선봉은 각각 테논, 용주, 모드락.

200여 마리의 바실리스크가 만드는 물결은 아무것도 모르는 적의 후방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 * *

타닥타닥!

수많은 횃불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캠프.

“저게 뭐지?”

후방 보초를 서고 있던 인원들 중 몇 명이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어둠 속에 묻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작은 진동이 느껴졌고, 모래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깐 이것 좀 들고 있어 봐.”

옆 근무자에게 장창을 건넨 리자드맨이 단안경을 눈에 가져갔다.

도구의 힘을 빌려 보는 세상엔 수십 마리의 바실리스크들이 보였다.

“바실리스크?”

단안경의 렌즈를 조절한 리자드맨은 바실리스크를 몰고 있는 이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과 같은 무장을 하고 있었고, 정규군의 깃발이 바실리스크 안장에 꽂혀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관찰할 수 있었다.

“증원인가?”

“뭐? 증원? 그런 이야기 교대하면서 못 들었는데?”

“그렇지만 우리 갑옷에 우리 깃발까지 가지고 있어. 게다가 저렇게 많은 바실리스크인걸. 반란군일 리가 없다고.”

“그것도 그러네. 젠장, 근무할 거면 똑바로 좀 하라고. 이런 전시 상황에.”

횃불 신호가 오가자 막혀 있던 바리케이드들이 길을 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동은 점점 선명해졌다.

바실리스크들은 이제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잠깐만, 근데 저 녀석들 왜 속도를 안 줄이는 거야?”

“그러게 저쯤에선 서서히 줄이기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이쪽에 들이박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장난이라도 그런 농담은 하지 마라. 야. 저 숫자의 바실리스크가 캠프로 돌진하기라도 했다간….”

“클클클!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래. 농담이라고, 농담.”

무기를 돌려받은 리자드맨이 히죽거리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농담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막을 질주해온 바실리스크들은….

그대로 초소를 짓밟으며 캠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기습이다! 적의 기습이다!”

한발 늦게 울린 경보에 숙면을 취하던 리자드맨들이 허겁지겁 천막 밖으로 뛰쳐나왔다.

캠프는 이미 불바다였다.

사망자가 속출했고, 부상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무기를 잡은 리자드맨들은 적들에 맞섰다.

수적으로 봤을 때 적들의 수는 적었다.

하지만 전원이 바실리스크 기수들로 이루어져 있는 적을 쉽게 제압해낼 수는 없었다.

‘기습 초기에 사기를 꺾어야 해.’

세 개 루트 중 적의 중심부를 일직선으로 파고든 건 용주의 부대였다.

세 부대의 목표는 각각 달랐는데,

용주가 이끄는 제1 부대의 목적은 지휘관급 인사의 말살.

테논이 이끄는 제2 부대의 목적은 감시자의 언덕에 있는 반란군과의 접선.

모드락이 이끄는 제3 부대의 목적은 배치되어 있는 정규군 소속 바실리스크들의 무력화였다.

배치도를 보긴 했지만, 당연히 내부 구조까진 알아낼 수 없었다.

유용한 정보를 모을 수단이었던 ‘오딘의 눈’은 무기고를 공략하는 데 써 버렸고 말이다.

그렇기에 치밀하고 세밀한 정밀타격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목표 타격지를 전혀 추론해 낼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이런 전장의 한복판에서 지휘관급 캠프가 있을 곳은 이곳에서 가장 안전한 곳.

혹자는 그게 부대의 후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어느 전선과도 고개를 맞대지 않은 부대의 중앙이었다.

‘빙고.’

무언가를 발견한 용주는 곧장 기수를 돌렸다.

다른 천막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크고, 화려한 무늬를 가진 천막들이었다.

용주의 바실리스크는 그대로 천막을 덮쳤고, 무너져 내린 천막 아래론 피가 흥건하게 흘렀다.

지휘관급 인사의 말살.

작전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

동물적 감각으로 무언가를 느낀 용주는 고삐를 버렸다.

아래에서부터 꿰뚫린 안장이 공중으로 던져졌고, 바실리스크의 피와 살 그리고 갑피가 용주의 얼굴로 흩뿌려졌다.

네 발로 착지한 용주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타고 있던 바실리스크는 죽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있던 곳엔 리자드맨 하나가 서 있었다.

바실리스크의 갑피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는 거구의 리자드맨이.

“감히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추악한 가면을 쓴 하룻강아지들아.”

단 일격에 바실리스크를 살해한 장군 리자드맨이 힘껏 뛰어내렸다.

장군의 캠프로 달려온 수많은 리자드맨들은 용주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내가 처리하겠다. 가서 다른 녀석들을 제압해라!”

“네! 알겠습니다!”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용주를 따르던 리자드맨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리자드맨들은 맹렬한 기세로 바실리스크에게 덤벼들었다.

개개인의 전력 차는 압도적이었지만, 리자드맨들은 제 한 몸 희생해 바실리스크의 발목을 붙잡았고, 기동력이 묶인 바실리스크들을 포위 공격했다.

“우리 군의 모습과 우리 군의 무기로 기습을 해오다니, 영리하구나. 하지만 이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 너의 머리를 베어 창끝에 걸어주지.”

짙은 투기를 뿜어낸 장군은 검을 휘둘렀다.

장군이 그린 궤도는 빠르고 정확했다.

공격은 정확히 적의 머리에 직격했고, 머리를 덮던 투구와 마스크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에 장군은 실망감을 느꼈다.

이렇게 대범하게 적진으로 침투한 이치고는 시시하도록 허망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조금 더 적수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너의 그 용기만은 높이 사주마.”

왼손을 최대한 당긴 장군은 그대로 용주의 얼굴을 강타했다.

여기저기 생겼던 균열은 파편이 되어 흩뿌려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거기 걸려줄 마음은 전혀 없는데 말이지.”

승리를 확신한 장군의 귀에 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자신의 머릿속을 긁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적의 공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낸 용주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빠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 뒤로 강렬한 충격이 일었고, 투구의 일부가 부서져 나갔다.

붉은 갈기의 효과로 지능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바실리스크의 갑피로 만든 방어구조차도 용주의 공격을 완벽하게 방어해주지 못했다.

“크헉!”

목이 부러지는 듯한 충격에 장군의 몸이 힘의 방향대로 튕겨 나갔다.

발굽으로 지면을 찬 용주는 그대로 적의 위로 떨어졌다.

왼쪽으로 몸을 구른 장군은 간신히 공격을 피해 냈지만,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래의 잔해들은 방금 그 공격의 위력을 고스란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방금 그 힘은 대체….”

서둘러 몸을 일으킨 장군은 시선을 집중했다.

모래 먼지 사이로 보이는 것은 두 개의 뿔을 가진 괴물이었다.

“네… 네놈은 정체가 뭐냐?”

“붉은 갈기. 지금은 그렇게 불리고 있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용주가 다시 한번 손톱을 휘둘렀다.

방패를 들어 가드에 성공한 장군은 곧장 반격에 나섰지만, 땅을 짚은 용주의 발길질이 한발 앞섰다.

빠악!

아래턱을 정통으로 가격당한 장군은 간신히 정신을 붙들었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었다.

모랫바닥을 긁으며 중심을 잡은 장군은 방패를 집어 던졌다.

모래를 연막 삼아 회전한 방패는 우측으로 크기 휘는 변화구가 되어 있었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느낀 용주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머리 위를 지난 방패는 모래 먼지 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거기 있나 보군.’

용주는 곧장 방패의 뒤를 밟았다.

방패의 속도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걸 피하다니…. 하지만 이번엔 어림없다!”

방패를 회수한 장군은 다시 한번 방패를 투척했다.

돌아오는 속도를 유지해 더욱 위력을 더한 일격이었다.

‘물어뜯기!’

용주가 스킬을 사용하자 붉은 갈기의 입가가 부패하기 시작했다.

붉은 갈기의 페널티로 무기와 소모품은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킬에 대한 제약은 달려 있지 않았다.

붉은 갈기의 자체 강화 효과 외에도 더 강력한 일격을 만들 수 있다는 소리였다.

회피 대신 정면 승부를 택한 용주는 그대로 방패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마주 오는 방패를 그대로 입에 넣었다.

끼이이익!!

용주의 이빨이 방패를 씹자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패의 회전력은 이빨 사이에서도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내 방패는 바실리스크의 갑피를 특수 제련한 물건이다! 고작 그런 걸로 부술 수 있을 리가….”

장군이 승리를 확신한 그때.

그의 앞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까드득!!

처음 시작은 방패에서 불안한 소리가 나는 것부터였다.

장군은 그게 적의 이빨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날카로운 이빨도.

아무리 강한 치악력도 자신의 방패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단 걸 알게 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부서진 방패의 파편이 흩날리고 있었다.

입에서 피를 쏟고 있는 괴수가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할퀴기!’

손톱을 세운 용주가 장군의 갑옷을 부쉈다.

“크아악!”

손톱의 결대로 갈라진 갑옷은 곧바로 이어지는 다음 충격에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푸왁!

틈을 놓치지 않은 용주는 그대로 장군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붉은 갈기의 모습을 빌린 용주의 물어뜯기는 그 위력도 인간일 때와는 달랐다.

목을 비튼 용주는 한 번 더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리자드맨의 몸이 축 늘어지는 게 느껴졌다.

▷ 장군 오조락을 쓰러뜨렸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최후 돌격 명령 나팔’을 획득했습니다.

- 아군 리자드맨의 사기를 최고로 끌어 올립니다.

- 아군 리자드맨의 전투력이 상승합니다.

“자… 장군!!”

“전쟁 영웅이…! 장군께서 당했어! 당하셨다고!!”

“그럼 지휘부가 전멸한 거야?!”

장군이 패배했다는 소식은 곧장 병사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사기는 급격하게 떨어졌고, 커다란 혼란이 일었다.

하지만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 녀석 뭐야…!”

“머… 먹고 있어! 장군님을 먹고 있다고!!”

“괴물…! 아니야. 저건 재앙이야! 새로운 재앙이라고!”

장군의 목덜미를 비틀었던 용주는 그대로 장군의 살과 가죽을 씹었다.

방패가 조각조각 나며, 용주의 입안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할 수 있을 때 회복을 해놓는 게 다음 상황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게다가 덤으로 적의 사기까지 나락으로 끌어 내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반쯤 먹어치운 장군의 유해를 내던진 용주는 또 다른 리자드맨들을 도륙해 나갔다.

“으… 으아악!!”

“나… 난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용주의 난입에 결국 도망가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덕분에 발이 묶였던 바실리스크들에게도 조금씩 여유가 돌아오고 있었다.

“다음으로 넘어간다! 따라와!”

다시금 바실리스크 부대를 이끈 용주는 속도를 높였다.

바실리스크를 잃은 건 예상외였지만, 이동에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붉은 갈기 상태인 지금이라면 속도 면에서도, 지구력이나 방어력, 기타 등등의 여러 가지 면에서도 전혀 꿀릴 게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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