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 * *
“감시의 언덕 쪽 일은 끝났을지 궁금하네요.”
무기고의 초소를 지키던 리자드맨이 크게 하품을 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반쯤 감겨 있었다.
밤이 깊었음에도 달빛은 없었다.
“아직 아니겠지. 하지만 곧 끝날 거다.”
초소에 누워 천장을 감상하고 있던 리자드맨이 대답했다.
두 사람에게 긴장감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근처에 있던 반란군 무리도 싹 다 잡았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빨리 들어가서 늘어지게 잠이나 자고 싶다.”
“백날 봐도 똑같은 풍경. 정말 지겹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던 리자드맨이 크게 하품을 했다.
선임으로 보이는 리자드맨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수로의 차단문은 어떻게 할까요?”
“아까부터 자꾸 물고기 시체니 나무니 계속 떠내려오잖아. 그냥 놔둬. 밤새 쌓이면 치우기 귀찮아진다고. 너 혼자 다 치울 거면 내리든가.”
“아. 그건 좀…. 그렇지만 왜 그런 게 갑자기 그렇게 많이 떠내려올까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알 게 뭐야. 상류 쪽에 뭐 재앙이라도 지나갔나 보지.”
“오, 뭔가 그럴듯한 추리인데요?”
“말했잖아. 난 안 봐도 다 안다고. 그런 의미에서 난 잠 좀 잘 테니, 잘 보고 있어. 풀어 준다고 너무 풀어지지 말고.”
“알겠습니다.”
대답을 끝낸 리자드맨은 또 한 번 하품을 했다.
평소와 똑같은 하루에 이상은 없었다.
* * *
“적이다! 반란군의 기습…. 으억!!”
무기고 내 모두가 평화를 만끽하고 있던 그때.
적침을 알리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정규군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안쪽에서 갑자기 나타난 적들에 정규군은 말 그대로 패닉 상태.
제대로 대처조차 하지 못한 그들은 철창에 찔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선봉에 서 있는 이는 노병 테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인물은 따로 있었다.
“너… 넌 뭐냐?! 어디서 나온 괴물이지?”
“알 거 없다.”
리자드맨의 검을 쳐낸 용주는 그대로 녀석을 베어 냈다.
리자드맨은 일격으로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몇 차례의 공방 끝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 ‘리자드맨 워리어’를 쓰러뜨렸습니다.
▷ 경험치가 상승했습니다.
▷ 3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강을 타고 침투하는 건 보통이라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만큼 규모가 있는 병력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몇 가지 요소들로 인해 침투의 성공률은 크게 높아졌다.
하나는 기강이 빠진 해이한 보초들의 상태.
둘째는 수중 호흡이 가능한 리자드맨들의 침투 능력.
셋째는, 어둠을 밝힐 수단, 특히 수면 아래를 비출 광원의 부재.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었다.
그런 요소들이 아니었다면, 이번 작전은 애초에 실행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달려드는 리자드맨의 뒤를 잡은 용주는 곧바로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검이 아닌 무언가에 치명상을 입은 리자드맨은 급하게 벗어나려 했지만, 의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공률을 올리는 요소가 있다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요소일 뿐이었다.
그것만으론 작전이라고 할 수 없었다.
침투루트를 설계한 용주는 그다음 다리를 설계했다.
첫째로 한 건 강 상부의 나무를 벌목하는 일이었다.
나무는 예리한 절단면이 없게 뿌리 뽑거나, 부러뜨렸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강물에 실어 보냈다.
그다음으로 용주가 한 건 강에 독을 푸는 일이었다.
용주는 독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맹독.’
사용한 적 없던 그 스킬을 활용해 볼 계획이었다.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선 피를 흘려야 했다.
상처는 당연히 스스로 만들었다.
상처에서 나온 피는 그렇게 엄청난 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났다.
커다란 메기처럼 생긴 물고기들은 배를 뒤집은 채 수면 위로 떠 올랐고, 그대로 강물을 따라 떠내려갔다.
무기고의 리자드맨들은 처음엔 수로 문을 일일이 조작했다.
하지만 같은 게 몇 번 반복되고 나선 수로 문을 닫지 않았다.
루트를 확보한 용주는 인원을 몇 개의 부대로 나눴다.
그리고 본격적인 침투에 돌입했다.
아무리 헌터라고 하지만, 용주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수로를 통한 침투엔 이런저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용주는 어둠이 깔린 흙탕물 속에서 시야를 확보할 수는 없었다.
눈을 떠도 보이는 건 없었고, 통증이 심해 오래 뜨고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호흡.
인간인 이상 물속에서 호흡을 참아 봤자 몇 분을 버티는 게 한계였다.
속도나 방향은 리자드맨의 흐름에 맡긴다고 하더라도, 호흡을 위해선 반드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야 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용주에겐 그걸 극복할 수단이 하나 있었다.
‘무호흡.’
새롭게 얻은 그 스킬은 불가능하던 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침투는 성공적이었다.
수로로 침투한 용주가 가장 먼저 점령을 명한 곳은 강의 하부와 그곳에 있는 거대한 창고였다.
창고를 지키던 리자드맨들은 필사의 저항을 펼쳤다.
하지만 기습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반란군들은 그들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조금 전 쓰러뜨린 리자드맨의 허리를 짚은 용주는 열쇠 꾸러미를 손에 넣었다.
굳게 닫혀 있던 창고 안쪽엔 엄청난 양의 무기와 갑옷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수로를 막아라! 한 놈도 나가지 못하게 해라!”
테논의 명령이 떨어지자 강물 위로 쇠창살이 떨어졌다.
강폭이 제법 넓었지만, 이미 준비된 쇠창살에 문제 될 건 아니었다.
적들을 차단할 쇠창살은 이제 아무도 도망칠 수 없는 감옥이 되어 있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수로를 통해 침입할 줄이야. 멍청한 너희 반란군 놈들 중에서도 그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 있었나 보군.”
복부가 심하게 찢긴 리자드맨 하나가 이야기했다.
물길을 지키던 병력은 궤멸적 타격을 입은 뒤였다.
“이 근처에 있는 반란 분자들은 모조리 제압했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냐?”
“남기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냐?”
그의 무기를 손에 쥔 테논이 이야기했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감시의 언덕은 곧 끝난다. 너희에게 승산은 없어.”
“‘곧’이란 말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가정에 불과하다.”
“말은 잘하는군. 하지만 그건 허상에 불과하다. 내가 보낸 전령들이 지금쯤 요새를 탈출했을 거다. 지원 병력이 오면 너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길 수 없어.”
자신의 복부를 짚은 리자드맨이 힘겹게 미소 지었다.
“크크클…. 웃기지 않나? 너흰 너희 무덤으로 기어들어 온 거다. 아무도 살아 나갈 수 없어.”
“과연 그럴까?”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날린 테논은 그의 목을 쳤다.
수로를 차단한 테논은 멀리 보이는 초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초소에선 약속했었던 신호가 올라오고 있었다.
* * *
“대승리군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대승입니다.”
완벽하게 무기고를 제압한 테논이 이야기했다.
부상병을 포함한 300의 인원으로 이뤄낸 성과라고는 믿기지 않은 결과물이었다.
1부터 10까지.
모든 전략을 구상한 이는 용주였다.
자신이 한 일이라곤 각 작전을 수행할 인원을 선별하고 분배하는 정도.
과감한 결단력을 기반으로, 병력은 적재적소에 투입되어 적의 급소를 강타했다.
수많은 전장에 서 왔지만, 이렇게 퍼즐이 딱딱 들어맞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용주에겐 유독 많은 공격이 집중됐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걸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었다.
병력을 급파하긴 했지만, 자신이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많은 공격이 집중된 뒤였다.
“문제 될 정돈 아니다. 상처라면 대부분 치유됐으니까.”
용주가 대답했다.
용주의 입가엔 엄청난 양의 혈흔이 묻어 있었다.
시체 뜯어먹기는 리자드맨들의 시선이 닿지 않을 곳에서 은밀하게 사용했다.
리자드맨을 뜯어먹는 자신의 모습이 그들에겐 분명 충격적일 테니 말이다.
리자드맨의 가죽은 제법 질겼다.
살은 거의 없었고, 잔뼈가 많았다.
그나마 살이 있는 곳은 꼬리 정도.
이런 말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꼬리 정도는 그나마 좀 먹을만했던 것 같다.
아직도 순간순간 올라오는 그 역함과 인지 부조화를 빼면 그나마 말이다.
“회복력이 엄청나군요. 바실리스크 이상입니다. 역시 구원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용주는 다가오는 이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세 명의 리자드맨은 각 별동대의 지휘관들로 테논이 임명했던 실력 있는 자들이었다.
“초소에 있던 모든 병력, 확인 사살까지 완료했어.”
“말씀하신 거점 모두 점령 완료했습니다.”
“탈출하려던 전령들을 전원 사살했습니다. 이곳의 소식을 외부에선 알지 못할 겁니다.”
이들의 임무는 주요 거점 확보와 모든 출입로의 봉쇄.
기습과 동시에 서로 다른 세 방향으로 찢어진 세 부대는 모두 각자의 임무를 훌륭하게 해냈다.
* * *
“무기고에 있던 장비들로 모두 재무장을 완료했습니다. 이제 감시의 언덕으로 향하면 되는 겁니까?”
병력들을 정렬시킨 테논이 물었다.
조악한 철창으로 전투를 승리했던 이들은 이제 검과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래.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해야 할 일?”
“감시의 언덕을 포위한 병력은 크게 3개 사단이다. 어느 하나도 지금 이 병력으로 상대할 규모가 아니지.”
이번 승리로 반란군 소속의 리자드맨들을 무장시켰지만, 이건 개개인의 전력을 적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 올린 것에 불과했다.
이것만 가지곤 여전히 적진을 돌파할 수 없었다.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저희 병력은 이게 전부입니다. 다른 병력들과 합류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그렇겠지. 증원을 기다릴 생각은 없다. 그랬다간 감시의 언덕의 본대가 궤멸할 게 뻔하니까.”
“그럼….”
“간단하다. 지금 이 부대의 힘을 더 끌어 올리면 된다. 큰 한 방이 있다면, 길을 열 수 있을 거다.”
“큰 한방이라니…. 그게 대체 뭡니까?”
“바실리스크.”
용주의 한 마디에 테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이름이 나올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단 표정이었다.
“바실리스크라니…. 그 바실리스크 말입니까?”
“그래. 여기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바실리스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바실리스크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 병력으로도 길을 열 여지가 생기겠지.”
용주는 이곳의 바실리스크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이 위협적인 생명체고 큰 전력이란 것.
그리고 고삐를 쥔 이들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바실리스크는 분명 막강한 전력이지만, 그만큼 관리가 삼엄할 겁니다. 쉽지 않은 작전이 될 텐데 생각해 두신 방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우린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갈 거다. 그리고 적들은 우리에게 스스로 고삐를 넘길 테지.”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번처럼 특별한 작전을 세우는 게 아니라 정면 돌파를 하시겠단 겁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테논의 눈빛.
걸음을 옮긴 용주는 근처에 떨어진 칼 한 자루를 그에게 던졌다.
“너희들이 챙겨 입은 갑옷은 폭풍 수호대의 장비다. 누가 봐도 너흰 정규군 소속의 병사들이지.”
용주의 한마디에 테논은 재무장한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저들의 모습은 정규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령을 받고 왔다고 하면, 그들은 스스로 바실리스크를 넘길 거다. 우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유유히 거길 빠져나오게 되겠지.”
무기고의 탈취.
작전 순위에서 그걸 먼저 고려한 건 이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바실리스크를 먼저 탈취할 수 있었다면, 무기고를 탈취하는 데 이런 방법까지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실리스크가 있는 곳의 적군의 수는 최소 이곳의 3배였다.
성공적인 기습으로 바실리스크 몇 마리를 탈취했다고 해도, 동등 이상의 전력이 수로 찍어누르면 이쪽으로서 승산은 없었다.
겨우 이만한 병력으로 그들을 궤멸시키는 건 불가능.
그 넓은 땅에서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운 좋게 도주에 성공한다고 해도 전군에 비상령이 떨어질 것이다.
무기고를 점령한다는 계획도 실현 불가능해졌겠지.
“무모하지만, 대담한 작전이군요. 하지만 저들이 과연 속겠습니까?”
“물론, 의심하겠지.”
“그럼….”
“하지만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을 땐 상황이 종료된 이후일 거다. 대범하게 움직이면, 성공할 수 있다.”
시선을 용주는 모드락을 바라보았다.
세 개 분대 중 하나를 맡고 있던 그였다.
“함께하겠나?”
“정신 나간 미친 작전이구나, 구원자. 죽으러 가잔 이야기를 그렇게 돌려 말하다니.”
모드락이 피식 웃어 보였다.
“마음에 들었다. 함께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