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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80화 (80/357)

80화

‘사용된 말은 크게 세 종류.’

용주는 테이블을 찬찬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파란색, 붉은색, 초록색.

말들은 각각 다른 걸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장기 말의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궁’만 한 말이 있는가 하면, ‘사’나 ‘졸·병’만 한 사이즈도 있었다.

아마 배치된 병력의 규모를 나타내는 모양이다.

‘말의 개수와 배치를 놓고 보면….’

파란색의 장기 말이 붉은색 장기 말을 싸 먹는 형태가 많았다.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게 보이는 부분이었다.

‘붉은색의 말이 반란군인가.’

붉은 말이 반란군. 푸른 말이 정규군.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한 해석으로 보였다.

하지만 장기 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파란 말과 붉은 말은 나란히 서 있는 경우는 없는 반면.

파란 말과 초록 말.

붉은 말과 초록 말은 아군인 것처럼 함께 배치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초록색의 말.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아직 미지수였다.

전략 테이블을 지난 용주는 그 뒤쪽에 자리한 책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책상 위에는 양피지 한 장이 단검에 꽂혀 있었다.

[감시의 언덕이 반란군에게 점령당했다.

즉각 부대를 이끌고 녀석들을 제압해라.

녀석들은 우리가 사육한 바실리스크들 중 일부를 탈취해 이용 중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되도록 많은 바실리스크를 회수할 수 있도록 해라.

- 총사령관 테서락 -]

검쪽으로 말린 양피지를 펼치자 메시지가 보였다.

문자 해독에 필요했던 지능 요구치는 55.

다행히 추가적인 분배 없이도 커버할 수 있는 수치였다.

‘작전 보고서…. 이런 것도 있었군.’

총사령관에게 이걸 받은 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현명한 부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략 보고서에 작전 지도까지 그대로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용주로서는 그에게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여기 적힌 짧은 명령문은 용주에게 많은 정보를 던져주었으니 말이다.

‘바실리스크라….’

이미지 자체는 있긴 했다.

시각적으로 봤다기보다는 정보로 구축한 이미지였다.

불을 뿜는 거대한 뱀, 혹은 도마뱀 괴물.

용주의 머릿속 바실리스크는 딱 그 정도였다.

정확한 생김새야 봐야 알겠지만, 사육했단 걸 봐선 그 거대한 사육장이 바실리스크를 위한 공간이었을 거란 추측이 가능했다.

그리고.

여기 적힌 대로면 바실리스크란 종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들인 모양이다.

고삐를 잡은 자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말이나 소처럼.

‘그렇다면 초록색의 말이 바실리스크라는 소린가?’

감시의 언덕이라 적힌 곳은 붉은 말과 초록 말이 함께 배치되어 있던 곳이었다.

비율로 치면 바실리스크의 운용률 역시도 정규군의 압도적 우위.

반란군이 가진 말은 불과 몇 개에 불과했다.

걸음을 옮긴 용주는 다시 배치도를 내려다보았다.

‘배치도를 기준으로 봤을 때, 감시의 언덕의 반란군은 반란군 세력 중에서도 상당히 규모가 큰 병력이야.’

전황은 이미 이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그나마 승산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선 저 병력이 전멸하게 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곤 해도,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무작정 달려드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혼자 먼치킨 영웅 놀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될 생각은 없었다.

‘상황을 반전시킬 무언가가 필요해.’

용주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붉은 말이 표시된 다른 지점.

감시의 언덕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와 있는 이 말들의 근처엔 정규군의 무기고가 하나 있었다.

‘저들이 아직 제압되지 않았다면, 저들을 이용할 수도 있을지도…….’

주시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들 병력의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에게 무기고를 열어준다면 저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병력이 될 것이다.

저들을 이용하면 감시의 언덕을 포위한 병력의 후방을 노리는 것도 가능.

반란군이 감시의 언덕 포위망을 뚫고 나오면 무기고를 이용해 더 강력한 군대가 되는 것도 가능한 그림이었다.

‘잠깐만….’

지도를 좀 더 살피던 용주는 이번엔 좀 더 위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초록 말이 대량으로 세워진 자리였다.

처음엔 그냥 남은 말들을 세워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말들의 비율이 조금 이상했다.

초록 말의 비율을 7이라고 하면, 파란 말의 비율은 대략 3.

붉은 말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빈 사육장이 있다는 건 바실리스크들이 어딘가로 옮겨졌다는 소리인데, 혹시 사육을 위한 대규모 밀집 지역을 따로 만든 건가?’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군데에서 관리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사육할 수 있을 테니까.

‘반란군에게 더 많은 바실리스크를 쥐여준다면, 무기보다 더 큰 위협으로 자라날 거야. 이것도 역시 고려해 봐야겠어.’

작전과 동선에 대해 대략적인 설계를 마친 용주는 캠프를 빠져나왔다.

가장 먼저 할 건 감시의 언덕 남쪽에 있는 반란군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그들이 이미 제압되어 모두 사라졌다면,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구상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 전에….’

천막의 입구 부분을 잡은 용주는 천막을 길게 찢어냈다.

찢어낸 천막을 어깨에 두른 용주는 이윽고 머리를 가렸다.

용주가 만든 건 일종의 히잡.

서툴고 투박했지만, 이 열기를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 * *

모래 먼지를 뚫고 한참을 이동한 용주는 아래로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집중했다.

언덕 아래에는 처음 머물렀던 곳보다 훨씬 큰 캠프가 하나 있었다.

비어 있던 캠프와 달리 무언가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저게 이곳에 있는 생명체인가?’

직립 보행을 하는 생명체는 전신을 덮는 비늘을 가지고 있었고, 꼬리 또한 가지고 있었다.

얼굴의 형태는 도마뱀의 것과 상당히 유사했고, 각종 갑옷과 투구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된 무기는 검과 창.

방패를 든 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리자드맨.

보통은 그렇게 알려진 생명체지만, 용주는 저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저들이 자신이 찾던 반란군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용주가 내린 답은 ‘아니오’였다.

장기 말이 위치해 있던 위치와 지금 저곳의 위치는 제법 차이가 있었다.

물론,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동을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니까.

결정적으로 용주가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캠프 중앙에 있는 수많은 철창들 때문.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철창 안에는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내가 찾는 건 아무래도 저기 있는 모양이군.’

상황적 증거들로 봤을 때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찾던 반란 세력은 이미 제압됐고, 숨이 붙어 있는 자들은 철창에 갇혀 어딘가로 호송 중.

지금은 물자나 휴식 등의 이유로 정규군이 잠시 발을 붙인 상태인 거겠지.

‘패잔병임을 감안해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규모가 크긴 한데…. 이미 제압된 후군.’

상황이 좋진 않았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생각했던 가장 최악의 상황은 반란군의 모두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구출하느냐 하는 건데….’

본대가 아니라고는 하나 정규군의 규모는 제법이었다.

용주는 주변의 지형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 일대는 쭉 모래 능선.

특별히 이용할 만한 지형적인 요소는 전혀 없었다.

‘골치 아프게 됐군.’

무모하지만, 정면 돌파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어 보였다.

적의 강함은 미지수였다.

적들의 강함이 전에 싸웠던 ‘브로’들과 비슷하다면, 수중에 있는 아이템들을 이용해 어찌어찌해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강철 코도’, ‘붉은 갈기’, ‘폭발 수정’.

이런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던 녀석들이 보여줬던 힘과 파괴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할 수밖에 없나.’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시선이 급하게 다른 곳을 향했다.

방금….

분명 땅이 흔들렸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뭐지?’

진원지를 찾는 용주의 눈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용주의 눈에 들어온 한 가지.

뒤쪽으로 보이는 모래벌판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저게 뭐야….’

움직임엔 일정한 형태가 있었다.

저걸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뱀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크기가 수십 미터에 달한다는 것 정도.

‘땅속에 뭔가 있어.’

움직임은 곧장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흔들림은 커져 갔고, 불과 몇 초 만에 두 다리를 땅에 디디고 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진동이 완전히 사라졌다.

진동뿐만이 아니었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던 모래의 움직임 역시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사라…졌어?’

돌발 상황에 대비하고 있던 용주가 마른침을 삼켰다.

불길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바로 그 순간.

< 돌발 퀘스트 - ‘모래 먼지의 재앙’ >

투쾅!!

지면이 폭발하며, 엄청난 양의 모래가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용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건.

엄청난 크기의 모래 벌레였다.

* * *

“재앙… 재앙이야….”

“재앙이 나타났다!!”

모래 벌레의 출현에 리자드맨 사이에 커다란 혼란이 일었다.

벌벌 떨며 굳어 버린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는 이들까지 존재했다.

“이… 이쪽을 보고 있어!”

“재앙이 곧 들이닥칠 거야. 도망가지 않으면 우리 전부…!”

태양을 가리는 그림자에 일부 병사들이 대열을 이탈하려 했다.

그러자.

“자리를 지켜라! 대열을 이탈하지 마라!”

간부급 리자드맨들이 급하게 혼란을 진화하며 나섰다.

혼란 속에 열린 천막에선 다른 이들보다 훨씬 화려한 무장을 걸친 리자드맨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라스락 님. 재앙이 나타났습니다.”

“알고 있다. 한데, 이상한 일이구나. 재앙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재앙이 내리는 순간뿐일 텐데…. 녀석은 어째서….”

“우리에게 경고를 하는 게 아닐는지요. 떠나라는 마지막 경고를요.”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지금이 피할 마지막 기회임은 틀림없을 것 같구나.”

장군 리자드맨이 철군 신호를 내렸다.

“붙잡아둔 반란군 녀석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전부 버리고 간다.”

“버린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재앙에 바칠 공물이다. 재앙이 모습을 드러낸 게 영 불길하다. 어쩌면 유희를 즐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유희 말입니까?”

“그래. 공물이 만족스럽길 빌자꾸나. 재앙이 모래바람처럼 우릴 스쳐 지나가길.”

* * *

“젠장! 저 녀석들 도망가 버렸어!”

철창 안에 갇혀 있던 리자드맨 중 하나가 이야기했다.

천막까지 깔끔하게 회수한 이곳엔 철 우리 말고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하나의 철창 안에는 열 마리도 넘는 리자드맨들이 들어 있었는데, 눕지도, 앉지도 못할 만큼 공간은 비좁았다.

“재앙에게 우릴 먹이로 던져줄 생각인가 보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탈출 못 하면 개죽음당할 거라고요!”

“포기해라. 감시가 없어도 탈출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죽음을 받아들인 노병 리자드맨이 눈을 감았다.

재앙이라 불리는 모래 벌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시작된 진동은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싸우다 죽었으면 명예롭기라도 하지.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힘만으로 포승줄을 끊어낸 리자드맨이 철 우리의 입구로 달려갔다.

꼬리를 창살 사이로 집어넣은 그는 꼬리 끝으로 자물쇠를 따보려 했지만, 따질 리가 만무했다.

쿠구구궁!

그사이, 세력을 키운 진동은 공기를 흔들었고, 이제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온다. 재앙이….”

투쾅!

이윽고 모두를 덮치는 강렬한 모래 폭발.

지면을 뚫고 나온 모래 벌레는 태양을 집어삼킬 기세로 솟구쳐 올랐다.

동반된 충격에 날아간 수많은 철 우리들 안에선 리자드맨들의 고통 어린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재앙이 눈앞에….”

“끝이야. 다 끝났다고.”

리자드맨들의 입과 눈에 절망이 드리웠다.

재앙 앞에 희망은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끼지지직….

재앙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솟구쳐 올랐던 머리와 몸통은 이내 모랫바닥으로 떨어졌고, 고통스러운 듯 경련을 일으키며 모랫바닥을 뒹굴었다.

엄청난 기세로 날뛰던 재앙의 움직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둔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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