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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77화 (77/357)

77화

* * *

‘젠장. 뭐 뾰족한 수가 없는 건가?’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용주는 미간을 좁혔다.

헌터 시험과 퀘스트 게이트.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에야 병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 썼던 동력 인형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시도라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기장의 땅에서 썼던 동력 인형.

그게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시간을 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손을 떠난 물건이었다.

‘그래. 어쩌면….’

메뉴를 불러온 용주는 그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랜덤 박스.

여기선 이미 사용한 적 있는 ‘질풍의 보석’ 아이템이 다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 인형도….

‘몇 개만 뽑아볼까?’

혹시나 싶은 마음에 용주는 5개의 랜덤 박스를 돌렸다.

▷ 땅콩 별사탕

- 구수한 맛이 일품인 전통 별사탕.

▷ 소형 토네이도 유지 장치.

- 인위적인 바람을 일으키며, 일으킨 바람을 일정 시간 동안 붙잡아 둘 수 있다.

▷ 폭발 화살 x20

- 폭발 마법이 담긴 마법의 화살.

▷ 오딘의 눈

- 오딘의 눈을 소환한다.

- 오딘의 눈의 시야 정보를 지속시간 동안 공유받을 수 있다.

▷ 문 스톤

- 달의 힘을 빌어 일시적으로 밤을 만들 수 있다.

‘아니야…….’

몇 개의 결과물을 확인한 용주는 고개를 저었다.

설령 있다고 한들 남아 있는 돈으로 그걸 뽑을 확률은 너무 희박했다.

나온 결과물 중에 독특한 효과를 지닌 아이템들이 제법 있었지만, 적어도 이번 일에 한해선 유용하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지이잉!

핸드폰의 진동이 울린 건 그때였다.

용주는 액정을 확인했다.

전화를 건 인물은 다름 아닌 안수지였다.

“전화 받았다.”

“잠깐 이야기 좀 했으면 하는데.”

“이야기?”

“응. 참고로 관심 없다고 끊어 버리면, 동생한테 찾아갈 예정.”

“뭐…?”

용주의 표정이 한결 더 어두워졌다.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지?”

“일종의 인질. 네가 도망가지 못하게 할.”

“웃기지도 않는군.”

“지난번 병문안 갔을 때 어느 학교 다니는지 알아 버렸거든. 그 교복 눈에 익는 거였으니까.”

잠깐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가족은… 동생은 건들지 마라. 어떤 종류로든 이쪽 세계에 관여하게 하고 싶지 않다.”

“꼭 내가 나쁜 짓이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하네.”

“그럼 이 상황에 내가 긍정적인 해석이라도 할 줄 알았나 보지?”

“…….”

긴 침묵에 용주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나온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좋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 상대 정도는 돼주지. 단, 조건이 있다.”

“조건?”

“그래. 다음번에도 동생을 이용하겠다고 한다면, 가만있진 않을 거다. 제아무리 네가 A급의 의료 헌터라고 하더라도.”

“그래. 알았어. 약속할게.”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용주는 핸드폰을 반대편으로 넘겼다.

“그래서 이야기란 게 뭐지?”

“전화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야. 직접 만나서 하고 싶어.”

“직접?”

“응. 동생을 만나려고 한 것도 그 때문. 옆에 있으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성가시게 구는군. 지난번에 만났던 거기 정도면 괜찮겠지?”

“가능하면 좀 더 귀가 없는 곳이면 좋겠는데.”

“귀가 없는 곳…. 카페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부족해. 거기선 분명 이야기 못 할 거야.”

‘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용주가 고개를 기울였다.

“뭐, 다른 생각해둔 장소는?”

“너희 집.”

“…뭐?”

용주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집. 거기라면 누가 들을 걱정 없어, 최적의 장소.”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응.”

“…….”

이를 앙다문 용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건 100% 진심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 * *

“실례할게.”

뒤따라 돌아온 수지가 이야기했다.

역전으로 불러낸 수지를 직접 에스코트해 온 용주였다.

신발을 정리한 수지는 현관을 둘러보았다.

수수하게 꾸며진 현관은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녹차? 커피? 인스턴트 밖에 없는데 상관없겠지?”

“응. 그럼 녹차로 부탁할게.”

용주의 안내를 받은 수지는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를 내러 가는 용주를 바라보던 수지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실 벽면에는 제법 큰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가족사진.’

사진에 있는 건 행복해 보이는 부모와 두 아이.

색 바래지 않은 행복한 가족의 한때였다.

수지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건 역시 어린 남자아이.

지금의 용주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아이를 보던 수지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단 걸 깨달았다.

‘눈… 감고 있네….’

웃고 있는 아이의 눈은 감겨 있었다.

웃어서 감긴 거랑은 느낌이 달랐다.

뭐랄까.

웃는 법을 모르는 눈 같다고나 할까?

‘동생 쪽은 지금이랑 똑 닮았네.’

다음으로 동생의 어릴 적 모습을 본 수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 마주했던 용주의 동생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공부 쪽이 아니라 연예계를 희망했어도 딱히 이상할 게 없는 정도였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아름다움인 모양이다.

‘…….’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확인한 수지는 순간 찌릿 하는 두통이 오는 걸 느꼈다.

두 사람 중 어머니의 얼굴을 봤을 때 특히 두통은 더 심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두 사람 모두 기억 속에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은 거냐?”

차를 내온 용주가 물었다.

“아. 응. 괜찮아. 이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적에 찍어줬던 거지.”

“…미안.”

잠시 말을 아끼던 수지가 고개를 숙였다.

“사과하지 마라.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용주가 차 한 잔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란 게 뭐지? 평범한 이야기였으면 네가 그렇게까지 나오지는 않았을 거고. 뭔가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 거냐?”

물음을 던진 용주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질문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형만이나 다른 상위 헌터에게 부탁했겠지, 자신을 찾아올 리가 없지 않았겠는가.

“너에 대해… 알고 싶었어.”

“!”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용주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걸 뿜을 뻔했다.

“뭐?”

“너에 대해 알고 싶었다고. 왜? 내가 뭐 이상한 소리라도 한 건가?”

수지고 고개를 갸웃했다.

용주의 반응.

뭔가 즉각적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나에 대해 알고 싶다니,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의 의미. 네 몸에 생긴 변화. 그거에 대해 알고 싶었어.”

“내 몸에 생긴 변화?”

“응. 상처를 회복하던 세포의 활성도. 비정상적이었어. 가장 처음 널 만났을 땐 그런 건 없었어. 아쿠아리움에 갔던 날엔 뭔가 다른 치료를 받았다고만 생각했었고. 확신이 생긴 건 오늘.”

“…묻고 싶은 건 그게 전부냐?”

“응.”

“참고로 그걸 묻는 이유는?”

“단순한 내 호기심. 길드는 아무 관련 없어.”

“그러냐.”

잔을 내려놓은 용주는 잠시 허공을 주시했다.

스킬에 관해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것에 관한 건.

어둠 속에 혼자 남겨졌을 때 경험했던 일에 대해서 말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였다.

“몇몇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세포가 활성화되어 있던 것도 그 때문이겠지.”

“흐음, 그렇구나. 언제부터?”

“비밀의 방. 거기서 탈출한 이후부터.”

“뭔가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특별한 일이라고 한다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날 너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래. 그 일이라면 지금도 생생하지. 하지만 변화를 경험한 건 너뿐이야. 네 변화는 통용되는 진 각성과도 일치하지 않아.”

“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지. 난 더 할 이야기 없다.”

용주가 남은 잔을 깨끗하게 비웠다.

“혹시 거기 혼자 있던 동안 무슨 일이….”

수지가 뭔가를 물으려던 그때.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늦을 수도 있다더니 집에 있나….”

현관을 지나 거실로 온 예은이 순간 굳어졌다.

들려 있던 검은 비닐봉지는 힘없이 툭 떨어지고 있었다.

“보네?”

집에 오빠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여자가.

“안녕. 만나는 건 오늘로 두 번째네.”

자리에서 일어난 수지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당황한 기색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오빠 병문안 오셨었던….”

수지의 얼굴을 떠올린 예은이 인사를 받았다.

오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던 언니가 바로 이 언니였으니, 더욱 기억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깜짝 놀라 버려서. 오빠가 집에 누구 데려오는 건 처음이거든요.”

“늦은 시간에 실례했네. 헌터 시험이 예정보다 조금 늦게 끝났거든.”

“언니도 시험 보신 거예요?”

“아니, 내 쪽은 의무대. 시험을 본 건 저쪽 혼자.”

“의무대? 오빠 혹시 어디 다쳤어?”

놀란 예은이 물었다.

“보이는 대로 멀쩡해. 저 녀석이 여기 있는 건 다른 이야기 때문.”

“음… 그렇구나. 아, 맞다! 오빠, 시험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예은이 물었다.

“2차 시험 합격.”

“2차 시험? 그럼 합격한 거야?”

“3차 시험이 있을 거래. 이틀 뒤에.”

“음, 3차까지 있는 거야? 엄청 까다롭게 선별하네.”

3차 시험이라니.

생각보다 엄청 본격적이지 않은가.

“할 이야기 끝났으면, 이만 돌아가지 그래? 역까진 바래다줄 테니.”

두 개의 잔을 챙긴 용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내가 방해한 거야?”

“천만에. 마침 이야기 끝난 참이었어.”

“그렇지만 오빠 다 마시지도 않은 차를 치우고….”

“오늘은 별로 안 마시고 싶다더라고.”

용주가 빠르게 대답했다.

“응. 그럼 이만 가봐야겠다.”

인사를 건넨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던 수지가 걸음을 옮겼다.

묻고 싶은 게 더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더 이야기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저기….”

상황을 지켜보던 예은이 수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음?”

“괜찮으시면, 같이 저녁 먹고 가시는 건 어때요?”

“뭐? 예은아 너 지금 무슨 소릴….”

갑작스러운 전개에 용주가 놀라 물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면, 둘 다 저녁 안 먹었을 거 아니야. 오빠, 차만 대접하고 뭐 다른 건 안 내왔고.”

예은이 떨어뜨렸던 비닐봉지를 집어 들었다.

“3인분에 만 원짜리. 시장에서 파는 건데, 가격 대비해서 꽤 푸짐하거든요. 같이 먹고 가요.”

“…….”

예은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수지가 용주를 힐끔 보았다.

작은 한숨을 내쉰 용주는 좋을 대로 하라는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응. 알았어. 그럼 먹고 갈게.”

“히히~ 그럼 준비할게요. 아! 혹시 햄 알레르기 같은 거 있으시거나 한 건 아니시죠?”

“응. 없어.”

예은의 미소에 수지가 가볍게 호응했다.

“그 전에.”

용주가 비닐봉지를 대신 들었다.

“가서 옷부터 갈아입고 와. 조리는 내가 할 테니까. 교복에 국물 튀면 빨기 힘들다.”

“네, 그럼 부탁합니다.”

전권을 위임한 예은은 방으로 들어갔다.

“자상하네.”

용주와 나란히 선 수지가 이야기했다.

손을 깨끗하게 씻은 용주는 소분되어 있는 재료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햄과 야채, 그 밖의 재료들로 보아하니, 저녁 메뉴는 부대찌개인 모양이다.

“뭐가.”

“솔선수범해서 나선 거. 조금이라도 쉬라고 일부러 그런 거잖아.”

“좋을 대로 생각하든지.”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전골냄비를 꺼낸 용주는 싱크대로 다가갔다.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어.”

“예은이가 그러겠다고 하니까. 뭐, 의도치 않게 신세 진 것도 있고.”

용주가 손가락 끝으로 옷소매를 톡톡 두드렸다.

“예은이…. 동생. 이름으로 부르네.”

“왜? 뭐 잘못된 부분이라도?”

“아니, 그냥. 요즘 남매끼리 야야 거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거 같아서. 조금 의외.”

“그건 그쪽이 잘못된 거고.”

부지런하게 손을 움직인 용주는 가스 불을 올렸다.

야채를 제외한 모든 재료들은 어느새 냄비 안에 예쁘게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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