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이쪽 상처는 어떻게 못 했나 보네.”
수지는 상처 부위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의 상태는 상당히 심각했다.
하지만.
“아니, 방금 한 말 취소.”
상처는 수지가 생각한 것처럼 깊지 않았다.
자신이 손을 대기 이전 무언가에 의한 치료가 이루어진 흔적들이 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과다출혈성 쇼크로 꽤나 고생 좀 했을지도.
‘세포가 활성화되어 급속도로 회복하고 있어. 자연적인 흐름이지만 그 속도가 정상 범주를 아득히 초월해 있어.’
상처의 진단을 끝낸 수지는 치료를 시작했다.
“축하할 일이네.”
수지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뭐가 말이지?”
“시험 자격을 얻은 거. 그리고 2차 테스트까지 통과한 거.”
“…….”
“시험은 좀 어땠어?”
“1차 시험은 말 그대로 말장난. 2차 시험은 그래도 난이도에 힘을 좀 준 느낌이더군.”
작은 한숨을 내쉰 용주가 대답했다.
“음. 50개 중 어떤 방에 들어갔어?”
“그건 왜 묻지?”
“그냥. 혹시 내가 고안한 테스트일까 싶어서.”
“네가 고안한 테스트?”
용주가 눈을 깜빡였다.
“50개 중 2개 정도는 내가 만든 거거든.”
“그중에 네가 설계한 게 있었다고?”
“응. 나머지 방들의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야. 참고로 형만 아저씨가 구상한 것도 있어.”
“어지간히 할 것도 없나 보군.”
“다들 시간 내서 열심히 만든 거야. 이번 한 번을 위해서.”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좀비들이 나오는 경찰서가 있는 방이었다. 내가 갔던 곳은.”
“좀비 경찰서? 아~ 그럼 그거네. 이안 아저씨가 만든 거.”
“이안?”
용주가 눈썹을 기울였다.
그 이름 분명 어디선가.
“잠깐만! 이안? S급 헌터인 그 이안 말이냐?”
용주가 놀라 물었다.
“응, 맞아. 난이도 조절 실패가 아니냐면서 형평성에 대해 제일 말이 많았던 시험이었어. 이안 아저씨는 끝까지 밀어붙였지.”
“그래서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문제에 들어갔다?”
“뭐, 그렇지. 이 정도는 넘어야 하지 않겠냐는 아저씨의 말도 충분히 일리는 있었으니까.”
‘한 마디로 지뢰를 밟았었단 뜻이구만.’
조커라는 사내의 과제에 대해 듣고 상대적으로 간단하다는 인상을 받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경험해 보지 않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2차 시험 직전에 감독관이 바뀌는 일이 있었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너라면 뭔가 알고 있겠지?”
잠시 눈을 감았던 용주가 물었다.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안다 한들 말할 만한 장소도 아니고.”
“대략적인 이야기 정도라면 그래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데. 여긴 너랑 나 둘뿐이니.”
“음… 좋은 일은 아니었다 정도로 해둘게, 그럼.”
“참 대략적이기도 하군.”
기대 이하의 성과에 용주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봐.”
머리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의 상처들까지 보듬던 수지가 걸음을 옮겼다.
용주는 딱히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상처 부위에서 오던 통증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HP 수치도 100을 가리키고 있었고.
치료라면 분명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수지에게도 뭔가 생각이 있으니 저러는 거 아니겠는가.
“오래 기다렸지?”
수지가 돌아온 건 그로부터 몇 분 뒤.
수지의 손엔 쇼핑백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걸로 갈아입어.”
쇼핑백을 들이민 수지가 다짜고짜 이야기했다.
“갈아입으라고?”
용주는 쇼핑백 안을 살펴보았다.
쇼핑백 안엔 아직 태그도 제거하지 않은 새 옷이 들어 있었다.
“지금 입고 있는 그거 입고 밖에 나가면 분명 신고당할 테니까.”
수지가 용주의 상의를 가리켰다.
용주가 입고 있는 건 딱히 옷이라고 불릴 만한 물건이 못됐다.
“참고로 옷값은 걱정 안 해도 돼. 내라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 이왕 가져다줬으니 감사히 받도록 하지.”
“치료는 다 끝났어. 갈아입으면 가도 좋아.”
멀어지던 수지가 잠시 멈춰 섰다.
“열심히 해. 합격했으면 좋겠네.”
뒤를 돌아봤던 수지가 그대로 커튼을 닫았다.
조명 아랜 이제 용주 혼자뿐이었다.
‘사이즈……. 용케 맞춰왔군.’
옷을 갈아입은 용주가 어깨를 풀었다.
어깨며 허리, 소매의 길이까지 자로 잰 것처럼 딱 맞았다.
커튼을 걷고 나온 용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수지는 다른 헌터들의 회복을 돕고 있었다.
주원은 다른 의료 헌터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전투 중에 그도 나름 이런저런 부상을 입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예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먼저 자리를 뜬 모양이었다.
‘현명하구만.’
주원이 회복실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용주는 자리를 떴다.
주원에겐 조금 미안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생각해야 할 게 있었으니 말이다.
* *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깔끔한 정장 차림의 사내가 리무진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임승우.
예나의 집사를 맡고 있는 사내의 본 모습이었다.
“돌아가면 우리 버티부터 깨끗하게 해줘. 완전 엉망진창이야.”
“물론이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승우의 안내를 받은 예나가 리무진에 올랐다.
“직접 함께해 본 두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래. 뭐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
냉장고를 연 예나가 물 한 모금을 머금었다.
창밖의 풍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두 오빠 다 바보야.”
“조금 의외의 평가네요.”
승우가 흥미롭다는 듯 이야기했다.
“둘 다 바보긴 한데, 다른 의미의 바보야.”
“괜찮으시다면, 조금 더 들려주시겠습니까?”
“주원 오빠는 왜 열혈 바보라고 불렸는지 알 것 같은 사람이었어.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린애 같다고나 할까? 엉뚱한 게 어디로 튈지 예측이 힘들어.”
예나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순수하다고 하면 순수하고, 바보 같다고 하면 바보 같아. 해맑고 활동적인데, 또 정은 많아.”
예나의 머릿속에 주원이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승우는 예나가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주원 오빠가 순진한 바보라면 용주 오빠는 츤데레 같은 바보야. 좀 더 이해하기 힘든 느낌.”
“츤데레라……. 차갑기만 한 건 아니었단 거네요.”
“뭔가 그럴 줄 알았다는 목소리네.”
“하하! 그렇게 들렸나요?”
“나 말 안 할래. 하기 싫어졌어.”
예나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러지 말고 들려주세요, 아가씨. 오해입니다.”
백미러로 예나의 얼굴을 확인한 승우가 이야기했다.
잠시 창밖을 지켜보던 예나는 어쩔 수 없다는 양 우유 두 병을 꺼냈다.
“어려워. 용주 오빠는. 헌터는 혼자라느니, 자기 몸은 자기 스스로 지켜야 한다느니 그런 차가운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고는, 정작 자기는 남을 위해 희생해. 자기 검을 포기하기도 하고, 몸을 던져서 남을 구하기도 하고.”
생각나는 대로 문장을 이어가는 예나가 잠시 숨을 골랐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그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음…. 완전 틀린 표현은 아닌데, 그건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 것 같아. 그건 나쁜 쪽으로 치우쳐진 말이잖아. 내가 하려던 말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고.”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안에 두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두 사람이란 말이죠?”
“응. 한 명은 차갑고 냉정한 용주 오빠. 이쪽이 겉으로 보이는 우위 인격인 것 같아. 말과 표정, 목소리 그런 것들은 대부분 다 이쪽 주관이야.”
예나가 두 개의 우유병 중 하나를 기울였다.
“다른 한 명은 따뜻하고 자상한 용주 오빠, 이쪽은 안 보이는 안쪽 어딘가에 있는 인격이야. 그래서 밖에서 보면 전혀 안 보여. 같이 있어 보지 않는 한 아마 절대 발견 못 할 거야.”
예나가 이번에는 반대편 우유병을 만지작거렸다.
“겉으로 안 보인다고 해서 주도권이 없는 건 아니고, 의사 결정은 오히려 이쪽이 더 권한이 있다는 느낌. 더 위험하고, 더 급박할수록 이쪽의 힘이 더 강해진다고나 할까? 이해관계나 그런 건 제쳐두고 팍 튀어나와. 바보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이번에도 정리된 문장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이네요.”
승우의 이야기에 예나가 팔짱을 끼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음…. 아~! 몰라! 어려워! 만나본 적 없는 타입이란 말이야.”
정리를 포기한 예나가 시트에 얼굴을 묻었다.
이 이상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하. 그러셨군요.”
승우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정면을 주시하던 승우의 시선이 백미러로 향했다.
바르게 앉은 예나는 버티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니, 정정할게. 좋은 사람들이야. 응. 좋은 사람.”
“그거 다행이네요. 두 분을 권해드린 사람으로서 안심이 됩니다.”
“있잖아. 그 두 사람한테 말 놔버렸어. 홧김에 한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것 같아.”
“그러셨었군요.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분명 그런 걸 겁니다.”
“그리고 있잖아, 나 두 사람 앞에서 버티 보여줬었어.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돼 있더라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미움받을 거라고 생각했었어. 미움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미움받지 않으셨군요.”
“응. 두 사람 다 날 추궁하기는커녕 격려해줬어. 방식은 조금 달랐지만…. 처음이었어. 집사 말고 다른 외부인을 의지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건. 난 두 사람을 이용하려고 접근한 거였는데, 그런 두 사람한테 위로받아 버렸어.”
예나의 눈동자에 미안한 감정이 스쳤다.
승우는 그런 예나의 얼굴을 대견하단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 * *
“2차 시험 감독까지 혼자 도맡고, 고생이 많네.”
형만이 기다리고 있던 방으로 들어온 수지가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 위엔 몇 개의 서류가 놓여 있었다.
“갑작스러웠으니, 어쩔 수 없지.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사이에 이야기 나온 것 좀 있대?”
수지의 물음에 형만이 한 서류를 가리켰다.
빠르게 서류를 살핀 수지는 서류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딱히 뭐 없나 보네.”
“당연하겠지.”
형만이 언짢은 듯 이야기했다.
“어떻게 생각해?”
“길드의 결정의 부당함에 대해 마침 항의하러 가려던 참이었다. 근거라고 볼 수도 없는 이런 억지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
“동감이야. 과거의 발언 하나, 증인이 목격한 범인의 특징 하나 가지고 A급 헌터의 자격을 일시 정지시키다니……. 이 결정엔 나도 동의할 수 없어.”
깊은 고뇌에 잠겼던 형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건 지금부터 차차 해결해야 할 일이고, 이용주. 그 애송이의 상태는 어땠지?”
“의외로 치명상은 하나뿐이었어. 뭐….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탈락 처리되고, 후송될 사이즈였지만.”
“머리에 난 상처 말이군.”
“맞아.”
수지의 단답에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특이점이 하나 있었어.”
수지가 이야기했다.
“특이점?”
“세포의 자연 회복력이 한계 이상으로 활성화되어 있었어. 내가 치료를 시작했을 땐, 이미 상당 부분 상처가 아문 직후였어.”
“자연적으로 상처를 치유했다고?”
“그런 걸로 보였어.”
“그렇다는 건…. 그것 역시도 스킬의 일부라 볼 수 있겠군.”
“뭔가 더 많이 알고 있단 눈치네?”
수지가 역으로 물었다.
“감독관으로서 위험도가 높은 임무를 집중적으로 감시했었다. 녀석은 이안이 구상한 시험장에 있었지. 단계가 진행되며 녀석은 몇 가지 능력을 선보였었다. 자신의 피로 손톱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적을 물어뜯기도 했으며, 최소한의 대미지로 공격을 받아내기도 했지.”
“흐음~.”
“전에 한태영, 그 애송이한테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었다. 그 사건 이후 뭔가 큰 변화를 겪은 것 같다는 코멘트를 덧붙였었지. 진 각성은 아니야. 하지만 뭔가 일어난 것만은 부정할 수 없겠지.”
“그게 뭐일 거라고 생각해?”
“물어볼 상대 자체가 잘못됐다.”
“그것도 그렇네.”
모자를 벗은 수지가 좌우로 머리를 털었다.
흘러내린 고운 머릿결은 잔잔하게 물결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