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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75화 (75/357)

75화

* * *

“으… 또 이거야?”

새하얀 빛 쏙으로 빨려 들어온 주원이 눈을 가렸다.

세 개의 석판이 제자리를 찾아가자 잠겨 있던 문이 열렸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후론 줄곧 이 상태.

“오빠, 이제 눈 떠도 돼.”

예나의 목소리에 눈을 뜬 주원의 시야에 보이는 건 처음 조를 추첨했던 그곳이었다.

추첨 당시 이곳에 있던 인원은 150명.

50개 조였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인원은 자신들을 제외한 21명.

조로 치면 대략 7개 조였다.

“8등인가…? 생각보다 적네.”

사람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센 주원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엄청 늦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과제가 그만큼 힘들었단 소리지, 소년.”

“응?”

용주나 예나가 아닌 제삼자의 목소리에 주원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앞엔 조커가 있었다.

“조커 형? 어느 틈에!”

“듣자 하니, 과제 내용들이 완전 달랐던 모양이더라고. 괜찮다면 소년네 과제가 뭐였는지 들려주겠어?”

“아, 그게 말이죠. 저희는….”

주원이 과제에 대해 말하려던 그때.

용주의 손이 그를 가로막았다.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먼저 밝히는 게 순서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래야지. 순수한 호기심이었을 뿐이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소년.”

* * *

“좀비에 변이체란 말이지? 이야, 그거참 무서웠겠는데?”

서로 간의 정보 교환을 끝낸 조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다니까요! 용주 형이나 예나가 없었다면, 저 100% 탈락했었을 거라고요.”

“흐음~ 그 말은 소년이 이 팀에서 제일 쓸모없었다는 소리인데, 괜찮겠어?”

“하핫! 그렇지만 사실인걸요. 특히 예나가 크레인으로 한 방 먹인 건 다시 생각해도 대박이었어요. 그치, 예나야?”

“아… 응! 뭐, 그렇지.”

예나가 겸연쩍게 대답했다.

사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흐음?’

예나의 짧은 한마디에 조커의 눈동자가 반응했다.

두 사람을 대하는 예나의 말투가 시험 전후로 달라져 있었다.

“타임 오버!”

제한 시간이 종료되자 형만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추가로 더 도착한 팀은 6팀.

정확히 42명의 인원만 생존해 있는 상황이었다.

팀을 이루었던 사람들의 태도는 몇 종류로 나뉘는 듯 보였다.

“다친 데는 좀 어때요?”

“끝나면 바로 의료 헌터들한테 데려다줄게. 아파도 조금만 참으라고.”

유대감이 깊어진 팀도 있었고,

“내 쪽 쳐다보지 마. 재수 없게 시리.”

“착각도 유분수지. 쓸모없는 망상쟁이.”

“감히 날 버려! 이 자식들이!”

반대로 사이가 급격하게 악화된 팀들 역시 존재했다.

“지금부터 내가 호명하는 조는 앞으로 나와주길 바란다.”

형만이 4개의 조를 불렀다.

용주의 조는 호명되지 않았다.

“시간 끌지 말고 바로 말씀 좀 해달라고요. 저희들을 왜 호명했는지.”

한 헌터가 불만을 표했다.

“너희 네 조는 탈락이다, 애송이들.”

“아…?”

형만의 한마디에 공기가 차갑게 식어갔다.

“우리가 왜 탈락입니까? 과제는 전부 통과했는데요!”

“맞습니다. 여기 있는 게 그 증거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저희 조는 상위권의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통과했을 텐데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체 어째서 그런 결과가…!”

헌터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그래. 너희는 분명 주어진 과제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건 합격 기준을 달성했을 뿐이다.”

“하아? 합격 기준을 달성하면 합격이지 무슨 개소리… 아니, 궤변입니까?”

“맞아요. 생억지라고요!”

형만의 이야기에 분위기는 한층 격화되었다.

“좋다. 애송이들. 그럼 여기서 하나 묻지. 너흰 이 시험에서 보고자 했던 게 뭐라고 생각하지?”

형만이 네 조의 사람들을 훑으며 물었다.

물음을 들은 예나는 용주를 힐끔 바라보았다.

이 질문.

분명 들어본 적 있는 질문이었다.

“뭐긴요. 실력 아닙니까, 실력. 누가 더 빠르고 강한지, 누가 더 잘 싸우는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판단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투 능력은 그다음이죠.”

“뭐야?”

“당신네들 시험은 어땠는지 몰라도 저희 시험은 힘만으로 통과할 만큼 그리 단순한 과제가 아니었거든요.”

“그래. 너희가 말한 것들 역시 오답이라곤 할 수 없지.”

두 사람의 으르렁거림을 중지시킨 형만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여기엔 측정하고자 했던 게 하나 더 있었다. 너희들에겐 결정적으로 그게 결여되어 있지.”

“결여됐다고?”

고개를 끄덕인 형만은 가장 좌측의 세 사람을 가리켰다.

한 팀으로 묶였던 자들이었다.

“너흰 시험이 시작된 직후 줄곧 개인으로만 활동을 했지.”

“물론 그랬습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너희가 받은 과제는 50개의 시험 중에서도 가장 쉬운 임무였다. 그런데도 너흰 종료 시각이 임박해서야 겨우 과제를 통과할 수 있었지. 그것도 합의나 협동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진 걸 빼앗는 방식으로.”

형만의 손가락이 우측으로 옮겨갔다.

“너흰 과제가 시작됨과 동시에 한 명을 버렸지.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더 쉬운 길을 택하기 위해.”

형만의 지적은 뒤에 다른 두 조에게까지 이어졌다.

다른 두 조의 내용도 앞선 두 조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당신이었지 않았습니까?”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한 헌터가 팔짱을 끼었다.

“그래. 그리고 난 동시에 이 말도 했지. 카오스 게이트라고 생각하고 임하라고.”

“…….”

형만의 한마디에 순간 정적이 일었다.

“너희가 했던 행동을 되짚어 봐라. 그게 만약 카오스 게이트였다면?”

형만이 역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호기롭게 목소리를 높이던 헌터는 기세에 눌려 한 걸음 물러서고 있었다.

“이제 알겠나? 동료를 버리고 이용하는 헌터는 필요 없다. 목숨을 함께하고 등을 맡겨야 하는 전장에 암세포는 필요 없단 말이다!”

형만의 눈에 살기가 일자 일부 헌터들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너희에게 결여된 부분은 헌터에게 너무 치명적인 것이다. 너흰 도려 내져야 할 질병이다.”

“질병이라니…. 말씀이 좀….”

“좋은 말로 할 때 그만 꺼져라. 암세포 같은 놈들.”

벌레 보는 듯한 매도의 눈빛에 헌터들이 부리나케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얗게 물들었던 방은 어느새 처음 강당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도망…. 도망가야 해!”

“진정해. 오빠한테 내뿜는 살기 아니라고.”

예나가 두 팔로 주원을 붙잡았다.

필사적인 움직임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아차차. 그랬었지? 살기가 워낙 살벌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하하!”

“나참, 진짜 바보라니까, 오빠는.”

예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조가 퇴장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리가 풀린 몇몇 헌터들이 퇴장에 애를 먹고 있었지만, 곧바로 들어온 진행 요원들이 그들의 퇴장을 도왔다.

“2차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자네들에게 우선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지.”

마지막 퇴장을 확인한 형만이 이야기했다.

실제 박수는 없었다.

“시험은 이제 끝난 겁니까?”

앞머리를 쓸어 넘긴 윤현이 물었다.

아이돌 출신인 그 역시도 2차 시험 합격자 중 한 사람이었다.

“아니. 다음 시험은 이틀 뒤에 진행될 예정이다.”

“이틀 뒤?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입니까?”

“그런 셈이지. 과제 난이도에 따라 피로도의 누적치가 다를 테니까. 길드 차원에서의 형평성을 위한 장치 정도로 해두면 납득이 가겠나?”

“그렇군요. 충분히 납득 가능한 합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 자세한 세부 일정은 오늘 내로 개별 연락이 있을 거다. 수고 많았다. 필요한 의료 서비스가 있다면 충분히 받고 돌아가길 바란다.”

이야기를 끝마친 형만은 일말의 교류도 없이 퇴장했다.

“어쨌든 2차 시험은 합격인 거네?! 오~! 예스!”

“아싸! 셋이서 소주라도 하나 딱 까버릴까요?”

“축! 2차 시험 통과!”

“다음 시험은 다음 걱정으로 미뤄두고 지금은 좀 즐깁시다!”

형만의 퇴장과 동시에 박수와 환호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밝았다.

힘들었던 것도 다 잊어버렸단 표정들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 했다.

‘잠깐만… 이틀 뒤라고?’

용주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붉은 사막’의 개방 시간.

설마 시험 시간과 그 시간이 겹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대로면….

거의 100% 확률로 겹치게 된다.

‘길드 차원에서 결정 난 사항이라면 내 힘으로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그렇다고 퀘스트 쪽과 협상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 곤란하게 됐군.’

이렇게 되면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0.0001%의 가능성이라도 노려 길드와 협상을 해보는 것.

시험을 포기하는 것.

퀘스트를 포기하는 것….

‘마지막 선택지는 선택지라고도 할 수 없겠지.’

그렇다고 가장 현실적인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게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뭔가 다른 방법을….’

“용주 형, 제 말 듣고 있어요?”

고민에 빠진 용주의 눈앞에 손가락들이 왔다 갔다 거렸다.

“무슨 일이지?”

“심각한 얼굴로 무슨 생각을 그리 열심히 해요. 궁금하게시리. 파이팅 한번 하잔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우리도 한번 하자고요! 파이팅!!”

주원이 세상 떠나가라 외쳤다.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부 삼킬 정도였다.

“나 참, 주원 오빠. 그러다가 또 놀림….”

잔소리하려던 예나가 멈칫했다.

키득거리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주원의 행동은 분명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돌아온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어… 어라?”

“예나도 빨리 이쪽으로 와. 기선 제압이라고! 기선 제압! 아주 중요한 거야.”

“기… 기선 제압? 이제 와서?”

“그렇다니까! 자! 빨리!”

“2차 시험은 끝났다. 이제 우리는 팀이 아니지. 다음번엔 경쟁자로 만나게 될 거다.”

용주가 찬물을 확 끼얹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요.”

주원이 용주의 팔짱을 확 끌어당겼다.

용주는 곧장 풀어냈지만, 거리는 제법 좁혀져 있었다.

“귀찮게 구는구만. 정말로.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정신없어…. 아, 그렇지! 예나야, 미안! 파이팅은 나중에!”

용주의 손을 붙잡은 주원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오… 오빠?!”

예나는 급하게 두 사람을 쫓고 있었다.

“딱 보니 무슨 상황인지 알겠네.”

주원의 손에 이끌려 온 곳은 의료 헌터들이 있는 곳이었다.

“머리에서 피가 그만큼 나고도 용케 기절 안 했네. 에휴, 시험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 정도면 사람 잡겠어.”

의료 헌터가 고개를 저었다.

상당히 끔찍한 악취와 함께 나타난 세 사람 중 가장 부상이 심한 사람이 누군지는 명확했다.

얼굴에 핏자국이 눌어붙어 있는 데다가, 옷이 완전 넝마가 된 사람이 있었으니 말이다.

“저기 누워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볼래? 금방….”

“괜찮아. 그 사람 내가 볼게.”

의료 헌터가 안내를 계속하던 그때.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알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안수지 선생님.”

“두 사람은 밖에서 기다려줘.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수지가 커튼 입구를 닫았다.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딱 맞췄네.”

“그런 예상에 맞춰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지.”

용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상태로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어?”

“겉으로 보이는 거에 비해 그리 큰 부상이 아니라서 말이야.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이틀 정도면 충분히 회복될 정도다.”

“엄청 대단한 소릴 하네. 거의 아스팔트에 갈린 것 같은 옷차림으로.”

용주의 말을 반쯤 무시한 수지는 치료를 시작했다.

‘음?’

그리고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정말로 상처가 깊지 않았다.

손등과 팔등, 가슴과 복부.

엉덩이와 등, 뒷머리까지 이어지는 상처 역시도 그랬다.

“뭐, 물어보면 대답해줄 생각은?”

“있을 리가.”

“그럴 줄 알았어.”

손을 옮긴 수지가 이번엔 관자놀이 부분을 살폈다.

이쪽부터 이마까지 찢어진 상처는 넓고 깊은 게, 다른 상처들과 달리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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