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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74화 (74/357)

74화

* * *

“주원 오빠! 괜찮아?!”

예나가 외쳤다.

또 한 번 날아간 주원은 테이블 위를 구르고 있었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주원이 왼팔을 털었다.

가드를 위해 당연시하게 취한 동작이었는데, 대미지가 적지 않았다.

“버티!”

예나의 부름에 나타난 버티는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버티의 날카로운 손톱에 촉수들이 잘려 나갔고, 버티의 손톱이 사내의 어깨를 할퀴며 지나갔다.

타격은 분명했지만,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다만, 사내의 걸음은 처음으로 반걸음 물러나고 있었다.

‘저 녀석 뭐야? 버티한테 맞고도 상처 하나도 없잖아? 게다가….’

예나가 표정을 찡그렸다.

저 녀석.

공격당하는 와중에도 버티한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녀석의 시선은….

오로지 주원만을 향해 있었다.

꽈악!

버티의 오른팔을 붙잡은 사내는 이윽고 날아오는 왼팔 역시 붙들었다.

둘의 힘은 팽팽한 듯 보였다.

밀지도 밀리지도 못한 대치는 5초 이상 지속되었다.

하지만 대치는 거기까지였다.

버티의 팔을 타고 오른 수십 가닥의 촉수들이 버티의 몸을 구속했고, 이내 땅에 뿌리를 내렸다.

곰 인형 버티의 모습은 순식간에 미라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버티!”

예나의 검이 곧장 촉수들을 베어 냈다.

베는 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촉수를 전부 걷어 내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거란 예감이 들었다.

잘려 나간 촉수들은 서로의 절단면을 껴안으며 어떻게 해서든 이어지려 하고 있었다.

“…….”

버티를 무력화한 사내는 곧장 공격을 재개했다.

타깃은 또다시 주원.

그는 눈앞에 있는 예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거 어째 나만 노리는 거 같은데?!”

출구에 바짝 붙어 있던 주원이 오른쪽으로 몸을 던졌다.

사내의 돌직구 펀치는 그대로 출구를 강타했고, 거친 바람과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출구에 변함은 없었다.

문이 부서지기는커녕 흠집 하나도 나지 않았다.

‘힘으로 맞서는 건 무리. 그렇다면….’

전략을 수정한 주원은 움직임만으로 놈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세 번은 성공적이었다.

정권 찌르기에서 이어진 촉수 공격.

그다음 이어지는 왼손 라이트 훅과 오른손 어퍼컷.

초근접해서 이어지는 공격들에 주원은 성공적으로 대처해냈다.

‘좋아. 이제 내 차례라고.’

공격권이 넘어왔음을 직감한 주원은 왼 어깨를 최대한 안쪽으로 구겨 넣었다.

이대로 허리부터 어깨까지 올려 칠 생각이었다.

치이익!

“!”

하지만 주원은 공격을 포기한 채 뒤로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이었다.

코트를 찢고 나온 23쌍의 갈비뼈.

날카롭게 벌어진 갈비뼈들은 먹이를 낚아채려는 포식자의 입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꼼짝없이 잡혔겠는데, 저건….’

지면을 긁으며 멈춰선 주원이 짙은 날숨을 내쉬었다.

쫙 벌어졌던 갈비뼈들은 코트 안쪽으로 다시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후욱!

사내의 촉수가 다시 한번 뻗어 나가려던 그때.

용주의 검이 사내를 덮쳤다.

팅!

무방비 상태의 적의 뒤를 잡은 공격이었지만 공격은 불발.

사내의 피부는 철만큼이나 단단했다.

창틀을 밟고 뛰어오른 용주는 다음 공격을 이어 갔다.

등 다음으로 노린 곳은 순서대로 머리, 어깨, 가슴.

예리하게 파고든 공격이었음에도 칼날이 든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어딜 노려도 같은 강도인가.’

약점이라 여겨지는 눈을 향한 공격이 불발일 때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확인차.

그렇기에 당황할 건 전혀 없었다.

‘할퀴기.’

땅을 짚은 용주의 왼손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결정화되는 붉은 손톱.

오른쪽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간 용주는 그대로 놈의 옆구리를 베었다.

하지만.

‘베이는 느낌은 전혀 없어.’

더 위력적인 수단을 꺼내 들었음에도 결과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놈의 허리를 붙잡은 용주는 직선이었던 힘을 뒤틀었다.

허리 곡선을 따라 움직인 용주.

들고 있던 검을 녀석의 오른 겨드랑이 사이에 끼운 용주는 그대로 칼날을 잡아당겼다.

칼날 쪽도 손톱 쪽도 결과는 마찬가지.

찢긴 건 코트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인가.’

놈의 등을 발로 걷어찬 용주가 거리를 벌렸다.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건 E급 헌터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었다.

나오는 적들의 강함 역시 그걸 감안해서 설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뭔가 다르단 느낌이 들었다.

공격이 들어간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A-0006.

그렇게 불리던 괴물 녀석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스킬을 중복으로 사용해서 위력을 올리면 대미지를 입힐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식의 방법이 과연 정답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기 모인 인원은 E급 중에도 나름의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건 저 두 사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세 사람이 모였음에도 압도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건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쓰러뜨리라고 설계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저들보다 뭔가 더 특별하다거나 우월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스킬의 중복 사용으로 위력을 올리는 방법은 D급 헌터였던 태영이나 다른 헌터들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E급이 아니라 D급들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위력이라는 뜻일 것이다.

전원을 탈락시킬 의도가 아니라면 그런 걸 시험의 합격점으로 잡진 않았겠지.

‘생각해 보자.’

자리를 옮긴 용주는 부서진 석상의 머리를 살펴보았다.

용주를 겨눴던 촉수들을 거두어들인 사내는 다시 주원을 노리고 있었다.

이곳 지형지물의 배치는 처음에 전부 파악해둔 뒤였다.

전투에 이용할 만한 건 없었다.

크레인이나 중앙코어.

그런 게 있던 곳과는 다르단 이야기였다.

녀석의 등장과 함께 생긴 변화라면 난간과 석상의 파손 정도였다.

그렇기에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쓸 만한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녀석에 대한 단서…. 분명 지금껏 발견했던 것 중에 놈을 쓰러뜨릴 단서가 있었을 거야.’

용주는 기억을 더듬었다.

녀석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한다면 우선 크게 네 가지.

경찰관의 유서.

하수도에서 주웠던 문서.

연구원의 컴퓨터.

마지막으로 플로피디스크 정도일 것이다.

그중 뭔가가 있다고 한다면….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한 거지?’

하수도에서 발견했던 문서의 내용 중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배양 네트워크가 파괴되면 실험 중인 샘플들은 성장을 멈추고 활동을 정지할 것이다.]

녀석의 존재 자체가 제2의 배양 네트워크를 증명해주는 셈이었다.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한 개체들의 약점은 공통된 뿌리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녀석의 뿌리가 거기 있다면 녀석의 약점 또한 이 문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제2의 배양 네트워크가 어디 있느냔 것.

가능성의 영역에서 가장 높은 곳을 꼽으라면….

역시 그곳이겠지.

“요… 용주 오빠?”

갑작스럽게 계단을 오르는 용주를 목격한 예나가 외쳤다.

인형 크기로 돌아가 촉수들을 빠져나온 버티는 다시 커다란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코너를 돈 용주는 사내가 부수고 나온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뭔가 알아냈으면, 뭐라고 말 좀 해주고 가란 말이야, 바보 오빠.’

용주가 아무 생각 없이 전장을 벗어날 리 없었다.

그가 움직였다는 건 공략에 단서를 잡았단 소리.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 건 조금 기분 나빴지만, 지금 할 일은 명확했다.

‘용주 오빠가 일을 끝낼 때까지 놈을 붙잡아두며 버티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2층에 들어선 용주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우측 복도의 방은 총 2개.

복도 끝은 창이 있었다.

좌측은 방이 좀 더 여러 개 있었으며 코너가 있었다.

2층의 구조는 디귿 자 모양.

다른 쪽과 이어져 있는 통로였다.

‘제2의 배양실이 어디인가. 그것에 대한 정보는 없어.’

2층의 구조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설계도 도면에 이곳에 대한 정보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좁힐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었다.

1차 배양실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정도 크기.

혹은 그 이하의 방이라면 여기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야. 단서는 분명… 있었어.’

왼쪽으로 방향을 튼 용주가 속도를 높였다.

특정 상황 이후부터 놈은 줄곧 자신들의 위를 밟았었다.

복도의 문은 대부분 닫혀 있었다.

닫혀 있지 않은 문들은 부서져 있었다.

코너를 돌아도 마찬가지.

문들이 부서진 방향은 모두 바깥에서 안쪽으로.

부서진 문짝은 방 안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녀석의 등장. 그리고 이 풍경. 틀림없어.’

녀석은 배양실 안에서 탄생했다.

놈을 만든 자의 운명은 알 바도 아니고, 알 수도 없었지만, 적어도 문을 여는 법에 대해 녀석에게 교육시키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놈이 문을 여는 방법은 오직 부수는 것.

그게 바로 녀석이 탄생한 장소를 찾는 단서다.

녀석이 탄생한 장소는 유일하게 안쪽에서 문이 부서진 장소.

‘저기가 바로 제2 배양실이야.’

복도를 향해 문이 뜯겨 나간 바로 저곳이었다.

“주원 오빠! 아까 그거 또 할 수 있어?!”

예나가 물었다.

주원은 등만 보이지 않았을 뿐, 거의 도망 다니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까? 그거?”

“그거 말이야! 그거! 가문 대대로 내려온다는…!”

“아, 월영식?”

“그래! 그거!”

“나도 쓰고 싶긴 한데, 이 상태로는 무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날아오는 촉수들을 베어낸 주원이 왼쪽으로 몸을 던졌다.

중앙 석상 오른쪽 종아리는 산산조각 부서지고 있었다.

‘검은 안 들고, 힘으로도 무리. 기술적으로도….’

긴장해서 그런지 호흡도 마음도 진정되지 않았다.

이 상태로 월영식은 무리.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상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건….’

왼손으로 땅을 짚은 주원이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주원의 손에는 아까 가져왔던 소화기가 들려 있었다.

“소화기? 오빠, 지금 무슨 이상한 상상 하는 거야?”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전부 해봐야 하지 않겠어?”

주원이 호스를 겨눴다.

“용주 형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거라고!”

사내를 정면으로 마주한 주원이 소화기를 분사했다.

새하얀 분말이 삽시간에 사내를 뒤덮었고….

발소리가.

멈춰 섰다.

“어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덕분에 좀 더 거리를 벌린 주원은 하얀 분말 속을 관찰했다.

제자리에 멈춰 선 사내는….

이내 무릎을 꿇고는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해치운… 건가?”

당황한 주원이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한 일이지만 믿기지 않았다.

“오빠, 그 대사 위험하지 않겠어?”

예나가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었다.

사내에게서 튕겨 나온 건 사자 조각이 장식된 석판이었다.

“그렇지만 소화기 한 방에 일이 정리되다니! 말도 안 되잖아! 무슨 최종 병기도 아니고!”

주원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 아마 소화기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

“소화기 때문이 아니라니? 지금 이거 누가 봐도 그런 상황인 거 아니야?”

“상황만 봐선 확실히 그렇긴 한데, 그것보다 더 합리적인 거 같은 가능성이 하나 생각나더라고.”

“합리적인 가능성?”

주원의 물음에 예나가 2층을 가리켰다.

“용주 오빠가 뭔가 한 게 아닐까? 오빠가 소화기 뿌린 타이밍이랑 그게 우연히 겹쳤을 뿐이고.”

“아… 확실히….”

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말고 직접 확인하러 가볼까? 시간도 좀 남았는데.”

시간을 확인한 주원이 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지막 열쇠를 집어 든 예나의 표정은 복잡미묘해 보였다.

아마 안도감이나 미안함 같은 게 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자신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걸 못내 신경 쓰고 있는 눈치였으니 말이다.

“가서 용주 형한테도 보여주자.”

“응!”

예나가 버티를 힘껏 끌어안았다.

테스트 통과.

무거웠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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