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꾸르르륵!!”
폭발 소리에 섞인 세 사람의 다급한 발소리.
그 사이에 이질적인 음성이 섞인 건 바로 그때였다.
‘이 소리는….’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소리를 감지한 용주가 뒤쪽을 곁눈질했다.
산산이 부서진 육체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라 있었다.
팔은 아니었다.
다리도 아니었고.
있는 그대로의 첫 느낌을 그대로 말하자면 저건….
거대한 척추 같았다.
후욱!!
무거운 바람 소리를 낸 척추뼈는 세 사람을 향했다.
중력에 의한 자연스러운 무너짐이 아니었다.
저건 힘껏 움켜쥔 둔기를 내려칠 때 나오는 그런 힘과 속도였다.
‘이런 미친!’
자기도 모르게 비속어를 삼킨 용주는 주원을 힘껏 밀쳤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용주는 그대로 뒤로 돌았다.
놀란 예나의 눈동자가 코앞에 있었다.
덥석!
예나를 품에 안은 용주는 다시 한번 몸을 틀었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용주 오빠?’
바닥에 거의 내동댕이쳐진 예나가 놀란 눈을 깜빡였다.
갑작스러운 용주의 행동이 처음 놀랐던 이유였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놀란 이유는 용주의 어깨 뒤로 보이는 거대한 낙하체의 존재였다.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위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뒷머리를 감쌌던 용주의 손.
거길 통해 전해졌던 느낌은 섬뜩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감각이었다.
체온이 급격하게 식어가고, 몸이 굳어가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처음엔 분명 산 사람의 품에 안기는 감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건.
차갑게 식은 시체에 안겨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콰앙!
거대한 충격이 실험실을 둘로 갈라놓았다.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던 예나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두 무릎을 땅에 붙인 용주는 곧게 편 두 팔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모든 신체 부위가 용주의 그림자 아래에 있었다.
자신들을 덮쳤던 물체는 둘로 갈라져 있었다.
머리 위로 떨어진 절단면은 잘린 게 아니라 부러진 거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오… 오빠?”
괜찮냐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용주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놀라고 있을 시간 없다. 움직여!”
사후 강직 효과를 해제한 용주는 예나는 강제로 일으켰다.
충분히 대미지를 경감시켰다곤 하나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통증이 있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조금 있으면 여기가 붕괴될 거란 건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두 사람 다 무사해요?!!”
허겁지겁 달려오는 주원을 흘겨본 용주는 다시 한번 속도를 높였다.
폭발의 여파로 실험실은 빠르게 붕괴하고 있었다.
타닥!
불길에 삼켜졌던 복도를 지나던 주원은 잠시 경로를 이탈했다.
“오빠 어디가?!”
“소화기 챙겨 가려고, 혹시 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소화기?! 지금 이 상황에?!”
예나는 당혹감을 표했지만 주원은 아랑곳없이 소화기를 챙겼다.
“용주 오빠! 그런데 우리 이제 어디로 가?”
“일단 중앙홀로 돌아간다.”
“중앙홀? 그렇지만 우리 아직 세 번째 열쇠에 대한 단서 못 찾지 않았어? 여기 뭐가 더 있으면 어떡해?”
“뒤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보지?”
“뒤?”
예나가 뒤쪽을 곁눈질했다.
실험실에서 시작된 붕괴는 이곳의 복도 역시 집어삼키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마 다른 곳의 균형도 크게 무너졌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어디가 얼마만큼 붕괴될지는 설계한 사람도 모를지도….
* * *
“후우, 탈출 성공!”
하수도를 지나 그림들이 걸려 있는 방으로 돌아온 주원이 이마를 닦아 냈다.
붕괴는 하수도까지 따라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속도를 줄이거나 할 수는 없었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붕괴는 연구소 입구에 천장이 내려앉는 것까지.
연구소엔 아마 다시는 들어갈 순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빠져나오긴 했는데, 안전한 걸까? 아래쪽이 그렇게 난리가 났으면 위쪽도 난리 나는 거 아니야?”
예나가 물었다.
시설의 규모와 천장의 높이 같은 걸 생각했을 때 특정 부분의 지반은 무사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붕괴가 시작되면….
또 연쇄적으로 우르르 무너져 내릴지도 몰랐다.
이번엔 이 건물 전체가 말이다.
“당장 무너진 것만 아니면 어찌 됐든 상관없을 거다. 여기 눌러살 것도 아니니까.”
용주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펀칭 현상이나 싱크홀.
당장 눈에 보이는 붕괴는 관측되지 않았다.
“잠깐만, 오빠.”
다급하게 용주를 따라간 예나는 용주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오빠, 아까 그건 뭐였어? 그것도 스킬이야?”
예나가 물었다.
“아! 맞아요! 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두 사람이 깔렸을 땐 진짜 무슨 일 났다 싶었었다고요!”
주원이 거들었다.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고… 그러지 않았었어?”
용주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예나가 따지듯이 물었다.
질문의 답 따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봤으니 말이다.
“…….”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몸이 먼저 그렇게 움직였다.
“오빠…. 괜찮은 거 맞지?”
옷자락을 타고 내려온 예나의 손이 용주의 새끼손가락을 붙잡았다.
용주의 손은 따뜻했다.
같은 물음이지만 받아들이는 해석은 달랐다.
주원이 받아들인 건 보다 1차원적인 해석으로, 정말 용주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주가 받아들인 해석은 아니었다.
용주의 해석은 보다 더 근원적인 부분,
스킬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괜찮냐는 것이었다.
할퀴기를 사용했을 때 흐른 피.
사후 강직을 사용했을 때 나타났던 죽음의 감각.
그런 걸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예나라면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예나의 손길에서 빠져나온 용주는 중앙홀로 향했다.
용주의 뒷모습에 예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방금 그 대답.
무성의한 단답에 목소리도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어쩐지….
어쩐지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 * *
“…….”
홀로 통하는 출입문에 선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용주의 시선은 두 사람이 아닌 천장을 향해 있었다.
“왜 그래, 오빠?”
“혹시 그 혓바닥 괴물이라도 있어요?!”
주원이 급하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발소리가 따라오지 않는다.”
“발소리?”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 분명 소화기를 가지러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따라왔었는데?”
두 사람은 그제야 변화를 인지했다.
원래라면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었다.
‘뭔가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고 봐야겠지.’
주변을 경계한 용주가 차분히 홀로 걸어 나왔다.
비상 전력이 나갔다고 했지만 홀의 불은 여전히 들어와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래쪽과는 동력원이 다른 모양이었다.
“뭔가 일어나려나요?”
“글쎄. 일어나보면 알겠지.”
드르륵!
가장 좌측 홈에 들어간 석판이 자리를 잡았다.
이걸로 2개.
남은 건 사자 모양이 그려진 석판뿐이었다.
“…….”
석판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용주는 2층 난간을 쭉 훑어보았다.
만약 변화가 있다면, 저곳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3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저희가 뭔가 놓친 거라도 있는 걸까요?”
용주의 시선을 쫓던 주원이 물었다.
찾은 단서는 충분히 다 동원했다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쿵! 쿵!!
변화가 느껴진 건 주원이 입을 열고 3초 뒤였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향했다.
소리가 난 곳은 2층 우측 복도의 중앙 문.
쾅!!!
세 번째 소리와 함께 부서진 문은 홀에 조각되어 있던 조각상의 머리를 떨어뜨렸다.
“뭔가 일어나긴 한 모양인데?”
버티를 끌어안은 예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 주원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건….”
부서진 문 안쪽에선 무언가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사람?!”
좀비와는 걸음걸이부터 달랐다.
잿빛의 피부색이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좀비들의 부패한 피부와는 달라 보였다.
어깨가 딱 벌어진 게 체구가 장대했다.
키는 대략 2m 정도로 자신이나 용주보다도 컸다.
머리카락은 없었지만, 이목구비로 보아 성별은 남자인 듯 보였다.
사내는 2차 세계 대전 때 신었을 법한 구형 모델의 군화를 신고 있었다.
복장 역시 그때 입었던 장교들의 롱코트를 연상케 했다.
“아… 저 안녕하세요. 저는 이주원이라고….”
펑!
난간 앞에 선 사내는 그대로 난간을 걷어찼다.
강한 힘에 뜯겨 나간 나무 난간은 석상의 천칭 위까지 날아가 버렸다.
“하는데….”
무표정한 얼굴의 사내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준비 동작 같은 건 없었다.
낭떠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걷다 쑥 떨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평지를 걷듯 1층으로 내려온 사내는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코트를 찢으며 밖으로 삐져나온 촉수들은 기분 나쁘게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뭔가 굉장히 화가 나신 것 같지 않아? 우리가 뭔가 잘못하기라도 한 걸까?”
목소리를 낮춘 주원이 속삭였다.
“한가하게 그런 소리 할 때야?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잖아?!”
예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만 좀비는 아닌 것 같지 않아? 아까 그 괴물 시리즈들이랑도 다르고.”
“여기 우리 말고 딴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이 오빠야! 게다가 벌써 적대적이라고?!”
예나가 소리를 지르기가 무섭게 공격이 시작되었다.
사방으로 뻗친 촉수가 가장 먼저 노린 이는 주원.
늦지 않게 반응한 주원은 유연하게 공격들을 흘려보냈다.
“으엑…! 이게 뭐야 엄청나게 끈적거리잖아? 냄새도 지독해.”
마지막 촉수를 붙잡았던 주원이 손을 털었다.
촉수는 끈적거리는 무언가에 적셔져 있었다.
“저거 꼭 그거 같지 않아? 아까 그 좀비 혓바닥.”
한 걸음 더 뒤쪽으로 물러난 예나가 이야기했다.
생김새며 뭐며 딱 그렇게 생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 그럼 혹시 저것도 특수 좀비의 일종인 걸까? 최종 보스는 아무리 봐도 그쪽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말이야.”
“일단은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눈은…. 일단 보이는 건 사람이랑 똑같은 곳에만 있는 것 같긴 한데….”
코트로 몸의 대부분을 덮고 있긴 했지만, 일단 보이는 곳의 안구는 두 개뿐이었다.
그마저도 지금까지 봐왔던 크고 거대했던 것들과는 달랐다.
저건 눈꺼풀이 있는 사람의 안구와 다르지 않았다.
콰직!
지면을 깊게 후벼판 사내는 곧장 주원에게 달려들었다.
촉수들을 쳐낸 주원은 검면을 기울였다.
사내의 마지막 공격은 펀치.
이대로 힘을 흘려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
두 다리가 공중에 뜬 주원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원 오빠!”
놀란 예나는 검을 휘둘렀다.
예나가 노리는 건 사내의 두 눈.
저자가 같은 뿌리에서 진화한 종이라면 분명 약점도 거기일 거란 생각에서였다.
팅!
예나의 검은 정확히 적중했다.
아니, 적중하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었다.
어떠한 저항도, 견제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튕겨 나왔어?!’
예나의 공격은 어떠한 대미지도 주지 못했다.
눈꺼풀을 긁은 것도 아니고 정확히 안구에 박혔지만, 검은 그대로 튕겨 나올 뿐이었다.
‘체구는 작아졌지만 힘은 6번 녀석에게 밀리지 않아.’
검을 움켜쥔 용주가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벽에 처박혔던 주원은 목덜미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혀와 닮은 촉수, 거기에 끈적거리는 액체, 세부적인 부분에서 차이는 있지만, 더 진화했다고도 보여.’
잠깐 사이에 녀석이 보여준 특성들은 지금까지 본 개체들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공통된 약점이었던 눈에 대해서는 완벽한 보완이 이뤄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6번 개체의 눈이 재생하며 단단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혹시… 그런 건가?’
녀석에 대한 단서는 지금까지 쭉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게 녀석에 대한 단서라고 매칭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
그렇게 생각하면 가능성이 하나가 있었다.
연구 시설이 파기되고, 배양 네트워크가 파괴된 뒤 빼돌려진 세포.
그런 정보가 주어졌다는 건 거기서 파생된 가능성들이 이곳에서 일어날 거란 이야기였다.
거기서 연결 가능한 사건이라면 역시 누군가가 그걸 배양했을 때의 이야기.
눈앞에 있는 저게 바로 역설계의 결괏값.
인간의 몸을 거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