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레버를 조종하고 있던 예나가 신경질을 부렸다.
용주의 행동부터 두 사람의 충돌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투성이였다.
용주의 행동도 물론 신경 쓰였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주원 쪽이었다.
주원이 구사한 검기.
이건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이지만, 주원의 그건 헌터들의 스킬이나 검의 고유한 성능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검술의 극의 같다고나 할까?
자세한 건 직접 들어봐야 알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아니야. 일단은 집중하자. 다른 데 신경 쓸 여유 같은 거 없다고.’
고개를 저은 예나는 다시금 일에 집중했다.
속도가 올라간 크레인은 위협적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30초. 놈이 정신 차리기 전에 한 방 더 먹여주는 거야!’
예나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콰지끈!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그거 무슨 소리지?’
예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소리가 들려온 건 한참 위쪽.
거대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 같았지만, 육안으로 확인되는 무언가는 없었다.
‘아, 몰라! 일단 무시해.’
오른손을 움직인 예나는 투하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높이를 감안하면 아까처럼 직접 후려 패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높이를 내릴 시간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 움직였다가는 컨테이너가 난간이나 중앙 코어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공격 수단은 던져서 맞추는 것.
또 한 번 감에 맡겨야 했지만,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는 예나였다.
‘아직. 아직이야. 조금만 더….’
마른침을 삼킨 예나는 때를 기다렸다.
우지끈!
“아?!”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단 걸 알게 된 건 그때였다.
예나의 눈동자에 무언가 보였다.
직사각형의 무언가는 엄청난 속도로 사선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조금 전까지 저 위에 있던 컨테이너였다.
쿵! 콰과강!!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컨테이너는 불행하게도 코어를 직격했다.
코어에선 커다란 폭발이 일었고, 이내 완전히 정지해 버렸다.
순식간에 사라진 조명은 약 4초 뒤 복구되었다.
비상 전력 모드로 전환된 모양이었다.
‘아니! 도중에 끊어지는 게 어딨어!’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래서야 계획이 완전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지 않은가.
‘어차피 다 조작된 환경이잖아! 왜! 대체 왜 썩은 동아줄을 묶어둔 거냐고?!’
화를 낸다고 해서 들어줄 사람도 없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퍼즐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어이가 없지 않은가.
쾅! 콰과강!
불길한 소리가 다시금 들려온 건 그로부터 3초 뒤.
기우뚱하게 기울었던 코어에선 2차적으로 연쇄 폭발이 일어났고, 계속되는 폭발에 코어의 중심 기둥이 튕겨 나왔다.
절단된 코어의 크기는 전체 코어의 약 80%.
절단된 코어에선 계속해서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났고, 불규칙한 폭발에 코어는 이리저리 회전하고 있었다.
포물선을 그린 코어는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종착지는.
이제 막 닫히기 시작한 6번 개체의 안구였다.
“꾸르륵!”
충격과 동시에 6번 개체의 상체는 심하게 뒤틀리며 찌그러졌다.
중심부는 완전 바닥에 밀착되었고, 폭발해 버린 안구에선 안구액이 터져 나갔다.
솟구치는 안구액은 충돌의 위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직으로 요동친 안구액은 천장을 때렸고, 포물선을 그린 안구액은 2층 난간 전체를 휩쓸었다.
끝이 아니었다.
회전을 멈춘 코어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폭발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폭발에 연구실 전체에 붉은 살점이 빗발쳤다.
6번 개체는….
거기 있었다는 정도의 흔적만 제외하고 갈기갈기 찢겨 흩어져 버렸다.
“버티야. 나 한 번만 꼬집어 줄래?”
뒤늦게 도착한 버티를 본 예나가 이야기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야야…. 아파라.”
고깃덩이들 사이에 파묻혀 있던 주원이 몸을 일으켰다.
살덩이 자체의 질감은 단단한 편이 아니었지만, 그 속도로 맞으면 바람도 아픈 법이었다.
“…….”
주원보다 한발 먼저 움직인 용주는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폭발이 잦아들 무렵 근처에 떨어진 물건이었다.
손안에 꼭 맞게 들어오는 동그란 조각에는 뱀이 그려져 있었다.
‘결과적으론 잘 해결되긴 한 모양이네.’
두 번째 열쇠를 회수한 용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레인의 와이어가 끊어지고, 컨테이너가 코어에 박혔을 땐 다른 방법을 간구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상황을 예상할 수 있던 사람은 이걸 설계하고 계획했던 자들뿐이었을 테니 말이다.
“끝난 건가요?”
용주에게 다가온 주원이 물었다.
재생이 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게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드는 상태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 적어도 여기 상황은 종료됐다고 봐도 되겠지.”
“하아,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아깐 진짜 어떻게 되나 싶었었다고요.”
“오빠들~!”
그사이 2층에서 내려온 예나가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계단을 통해 내려온 건 아니었다.
그 길은 진작에 끊어졌었으니까.
버티를 먼저 내려보낸 예나가 버티의 품으로 뛰어내린 것이었다.
“이야, 예나 너 진짜 굉장하더라.”
예나를 맞이한 주원이 감탄을 표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그걸로 코어를 맞춰 넘어뜨릴 생각을 하다니… 난 상상도 못 했어. 완전 한방에 KO 시켜 버렸잖아.”
주원이 엄지를 척하고 세워 보였다.
‘맞춰 쓰려뜨릴 생각?! 그렇게 보였던 거야?’
“아하하. 운이 좋았지, 뭐.”
예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심 표정 관리를 한다고 한 거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영 부자연스러웠다.
“그나저나 오빠들, 아까 그건 어떻게 된 거야. 설명 좀 해달라고.”
예나가 주제를 돌렸다.
“아까?”
“왜 있잖아. 오빠들끼리 서로 싸웠던 거. 그 이전까지 포함해서.”
“아, 그게 이야기가 긴데,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실은 나도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단시간 안에 검보다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에 그걸 사용한 거였다. 일이 그렇게 흘러간 건… 일종의 오해라고 해도 되겠지.”
용주가 대신 대답했다.
“오해? 아, 그럼 이렇게 되는 건가? 아까 용주 오빠가 그렇게 한 건 또 다른 스킬 때문이었고, 주원 오빠는 그런 용주 오빠가 감염되었다고 생각해서 막으려고 했다?”
“오, 정확해! 분명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방법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었다고.”
주원이 맞장구를 쳤다.
“용주 오빠 설명은 끝났네. 그럼 이제 주원 오빠 차례.”
“응? 나?”
“뭘 응? 나? 이라고 있어! 오빠 아까 그거 뭐였어! 용주 오빠 공격했던 그거 말이야!”
주원의 성대모사를 해 보인 예나가 물었다.
“‘월영식 - 적’ 분명 그런 이름이었었지?”
용주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아~ 그거 말이죠. 하하! 두 사람처럼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 말은 풀이하면 스킬은 아니란 소리지? 그럼 뭐야? 칼에 붙은 기능?”
예나가 다시 한번 물었다.
칼에 붙은 기능도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가능성은 그것뿐이었으니 말이다.
“으응, 아니, 스킬이랑은 다른 거야. 꼭 헌터여야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원이 고개를 저었다.
“헌터가 아니어도 쓸 수 있는 거라고? 아까 그게?”
예나가 다시 한번 물었다.
헌터가 아닌 사람이 그런 걸 구사할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월영식은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검술이야. 정확히 언제부터 계승되기 시작한 건진 모르지만,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사용하셨었어.”
“그러니까 그게 그냥 검술이었다고? 검기가 날아갔는데?!”
“응. 틀림없는 사실이야.”
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의 표정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주원의 표정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돼? 대체 무슨 훈련을 하면 사람이 그런 게 가능해지는 건데?!”
예나가 따지듯 물었다.
이건 도저히 납득이 안 되지 않는가.
“아, 훈련 말이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우선 10km….”
“아니! 누가 그런 이야기 듣고 싶대?! 이 바보 오빠야!”
“아? 그렇지만 방금 무슨 훈련 하면 그런 게 가능해지냐고….”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예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순간,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하하, 궁금해하는 건 이해하는데 자세한 건 말 못 해줘. 이거 가문 대대로 딱 한 사람에게만 전승되는 검술이거든. 가업 비밀이라고나 할까?”
주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단순 검술이라면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용주가 물었다.
그 정도 범위와 위력을 가진 무기가 있다면 사용해 봄 직한 순간이 몇몇 있었다.
특히, 예나가 처음 정신을 잃었을 때.
주원의 성격을 고려하면 사용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은 제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요. 명경지수. 어떤 상황이 와도 차분하고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전 아직 그렇지 못하거든요. 힘이나 테크닉 쪽도 물론 한참 부족하고요. 계승자긴 한데, 아직 미숙한 계승자라고나 할까….”
주원이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명경지수….’
용주는 아까 상황을 떠올렸다.
빠르게 고요해져 가던 주원의 호흡.
흔들림 없던 눈동자.
그건 확실히 그 단어에 잘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참고로 역날검을 만든 건?”
“아! 나름대로 위력을 컨트롤해 보려고 한 거였어요. 역날이라면 절단보단 타격에 힘이 실리니까요. 용주 형을 그대로 베어 버릴 순 없잖아요.”
“보기 좋게 공략당해 버렸지만 말이야.”
예나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하핫! 맞아! 설마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깜짝 놀랐었다니까!”
주원이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근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거 맞았으면 무사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위력이 보통이 아니던데.”
“뭐, 애초에 기절시킬 목적으로 쓴 거였으니까. 위력이 떨어지면 직무유기지. 어… 아주 조금… 아주 조금 힘을 더 준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하핫!”
주원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예나는 검을 집어넣었다.
뭔가 이야기는 다 듣긴 했는데, 다 이해됐냐고 물으면 여전히 물음표가 남았다.
물론, 그렇다고 시간을 더 끌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더 붙잡고 있어 봐야 나올 것도 없을 것 같고 말이다.
“용주 오빠 머리는? 상처는 좀 어때?”
용주의 얼굴을 바라본 예나가 물었다.
처음에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물음이었지만, 순서가 밀려 버렸다.
“치명상은 피해 갔다. 신경 쓸 거 없어.”
상처는 거의 다 아물어 있었다.
피도 멎었고, 통증도 거의 사라졌으니 거의 완치 됐다고 봐도 좋았다.
“음, 그래? 다행이다. 근데 그건?”
용주의 손을 바라본 예나가 물었다.
손엔 동그란 돌조각이 들려 있었다.
“탈출에 필요한 두 번째 조각.”
용주가 문양을 보였다.
“오! 그럼 완전 정답이었던 거네. 이제 하나만 더 찾으면 합격이야!”
“다 예나 덕분이라고. 예나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처리하진 못했을 거야.”
눈높이를 맞춘 주원 손바닥을 보였다.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이 오빠야.”
히죽 웃어 보인 예나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내심 기분이 좋은 예나였다.
그가 가면을 쓰지 않는 남자란 걸 알기에 더더욱.
에엥~!
두 사람이 손뼉을 부딪친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실험실을 가득 채웠다.
“이게 무슨 소리야?”
주원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경고! 비상 전력망이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시설의 모든 설비가 곧 정지합니다. 모든 직원은 신속하게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돌아온 건 녹음된 디지털 음성이었다.
“비상 전력망 손상? 갑자기?”
콰앙!!
예나가 의문을 표함과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진원지는 부서진 코어의 상부와 하부.
강렬한 화염이 천장을 타고 올랐고, 이내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왜 얌전하다가 갑자기 터지는 건데?!”
“무… 무너지는 것 같은데요?!”
“말할 시간 있으면 뛰어!”
당황한 두 사람을 이끈 용주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폭발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점점 커져 갔고, 무너지는 속도 또한 탄력이 붙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