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나이스! 어때?! 한 방 먹었지?”
예나가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자신이 한 일이지만, 스스로가 정말 대견했다.
집사가 옆에 있었다면, 분명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러게 왜 날 무시하냐고? 어?!”
크레인 레버를 놓은 예나는 난간에 바짝 붙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자기 성과를 보고 싶었다.
‘어라?’
그리고 그런 예나의 눈에 이상한 풍경이 비쳤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세로 쓰러진 녀석의 가슴이 갈라지고 있었다.
가슴뿐만이 아니었다.
균열은 목을 따라 머리까지 이어졌다.
가슴과 얼굴에 자리 잡고 있던 눈알은 균열에 찢겨 양쪽으로 갈라져 버렸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건.
아까 봤었던 그 거대한 안구였다.
“용주 형! 저건…!!”
예나의 일격에 감탄하던 주원이 놀라 외쳤다.
‘눈을 다 제거하는 것 외에 다른 기믹도 있었던 건가?’
같은 것을 확인한 용주가 눈썹을 기울였다.
지금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모습을 드러낸 검은 안구는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저길 노리는 게 핵심이란 확신이 들었다.
다만, 30초란 시간 안에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느냐가 의문이었다.
보통의 방법이라면 이전에 주었던 피해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상처만 입히고 격퇴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도 좋겠지.
같은 과정이 반복되고 같은 결과가 반복된다고 가정하면, 공략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게 분명했다.
녀석을 구성하는 일곱 개의 안구는 점점 더 단단해질 테니 말이다.
‘뭔가 더 큰 한 방을 날릴 방법이….’
HP를 왕창 투자하면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긴 했다.
D급 게이트 보스도 썰어 버렸던 전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물어뜯기를 중첩해서 사용하는 것 또한 방법이었다.
사후 강직을 사용해 MP의 일부를 사용하긴 했지만, 일격을 날리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이번 30초에 최대한 끝장을 보는 거야.’
물어뜯기 쪽으로 마음을 정한 용주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용주의 시야 끝에 한 가지가 어렴풋이 걸렸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나머지 크레인 하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같은 패턴을 한 번 더 반복해 그로기 상태를 한 번 더 만들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걸 녀석의 약점에 적중시킬 수 있다면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녀석이 날아간 위치와 크레인의 각도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원심력을 이용해 정확히 목표물을 맞춰야 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크레인과 컨테이너의 위력은 이미 확인한 바였다.
어쩌면 현실에서의 위력과는 다르게 설정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아까 그 소화기의 사례에서 물리 법칙의 조작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이미 확인했으니 말이다.
적중시키기만 한다면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건 지금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서예나!”
용주가 예나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예나의 시선은 곧장 용주를 쫓았다.
예나의 시선을 확인한 용주는 반대편 크레인을 짧게 가리켰다.
‘크레인?’
예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용주가 말하려는 게 뭔지 애매했다.
‘녀석이 움직이는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곧바로 다음 공격을 먹이라는 건가?’
당장 생각나는 해석은 이것이었다.
녀석이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 방금처럼 자신을 방치해 두지 않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시간은 30초. 저기까지 뛰어가면 분명 늦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예나는 버티를 바라보았다.
“버티, 나 저기까지 던져줘.”
크레인에서 크레인까지 날아가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코너를 돌지 않고 근처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 거리를 단축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농담 아니야! 진짜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니까, 빨리!”
꾸물거리는 버티에게 예나가 한 번 더 소리쳤다.
그제야 버티는 손을 내밀었다.
버티의 손에 올라탄 예나는 최대한 무릎을 굽혔다.
“던져!”
예나의 신호가 떨어지자 버티는 있는 힘껏 예나를 집어 던졌다.
철제 난간 위를 날아간 예나의 시야에 반대편 난간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속도감이나 아찔함은 어느 놀이기구 부럽지 않았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 어라?’
비행시간은 고작해야 몇 초였다.
하지만 마지막 착지에 가까워질수록 예나의 머릿속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아가는 것만 생각했지, 착지하는 것에 대해선 조금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당탕!!
예나가 반대편에 도착하자 요란한 소리가 뒤따랐다.
착지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게 넘어진 예나는 허리를 쓸어내렸다.
“아야야얏…! 아파!”
무릎과 팔꿈치도 아팠지만, 제일 저릿한 건 허리였다.
“아프다고! 바보야!”
큰 소리로 외친 예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티나 다른 누군가에게가 아닌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두 번째 크레인에 다가간 예나는 자신의 검을 불러들였다.
조작법은 이전 것과 같았다.
전원을 유지하려면 꾹 누르고 있어야 하는 그 구조 말이다.
버티가 열심히 뛰어오긴 했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이쪽이었다.
그사이 녀석에게 도착한 용주는 놈의 몸통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물어뜯기!’
사용한 횟수는 두 번.
그을리듯 날아간 피부 사이론 치아의 일부가 비쳤다.
예나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말로 전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생각이 통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크레인의 가동까진 아직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퇴각의 시간까지 계산하면 직접적으로 놈을 타격할 수 있는 건 15초 내외라고 봐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허투루 보낼 생각은 없었다.
두 번째 크레인까지 동원한 이상 여기서 끝을 봐야 했다.
조금의 차이로 같은 걸 한 번 더 반복할 가능성이 있는 이상 최선을 다해 적을 찢어놓을 것이다.
놈의 가슴을 타고 오른 용주는 그대로 안구를 향해 뛰어들었다.
마치 까만 바다 위로 뛰어내리는 기분이었다.
용주의 발이 수면 위를 밟자 출렁거림이 퍼져 나갔다.
용주의 검이 안구를 파고들자 상처를 타고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칼끝으로 몸을 고정한 용주는 녀석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게걸스럽게 놈을 뜯기 시작한 용주의 눈동자엔 살기가 어려 있었다.
“!”
용주를 따라 눈동자에 올라선 주원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요… 용주형?”
오른손으로 검 손잡이를 움켜쥔 용주는 바닥에.
아니, 눈동자에 찰싹 밀착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거기가 아니었다.
칼도 손톱도 사용하지 않은 용주는 녀석을 물어뜯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보인다는 말로도 어떻게 포장을 할 수 없었다.
저건 그냥 물어뜯고 있는 것이었다.
고개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안구액에 솟구쳤다.
검으로 베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출혈량이었다.
입에 든 얇은 막을 뱉어낸 용주는 곧장 다음 공격을 이어 갔다.
주원이 멈춰 있던 시간은 불과 3초.
주원에게 그 시간은 영겁과도 같았다.
‘좀비?’
용주의 모습은 아까 봤던 좀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부가 부패하거나 떨어져 나간 건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감염이라도 된 거야?’
그런 사건이나 상처, 혹은 징후는 전혀 감지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말곤 답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행동이 이해가 안 되지 않는가?
공격을 포기한 채 움직인 주원이 용주를 덮쳤다.
일단 제압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 묶어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괴물을 처리하는 건 그다음 일.
분명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방해하지 마라!”
살기 어린 눈동자를 번뜩인 용주는 주원을 걷어찼다.
변화가 생긴 용주의 입 주변을 가까운 곳에서 확인한 주원은 곧바로 다시 용주를 덮쳤다.
‘인지 능력은 남아 있어. 역시 아직 되돌릴 방법이 있는 거야.’
“형, 지금 이상해요. 알아요?”
“방해라고 했을 텐데?!”
왼손으로 주원의 어깨를 붙잡은 용주는 그대로 메쳐 버렸다.
1초가 아까운 시점에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하는 수 없지.’
검을 뽑아낸 용주는 주원을 따라붙었다.
튕기는 반동을 이용해 몸을 바로 세웠던 주원은 곧장 이어지는 습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용주의 이빨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노리는 건 마치 주원의 목덜미인 것처럼 보였다.
‘힘으로라면 저도 밀리지 않는다고요!’
두 다리로 용주의 가슴을 걷어찬 주원은 허리 반동으로 벌떡 일어났다.
짧은 거리를 날아간 용주는 발디딤과 동시에 곧장 속도를 높였다.
칼날을 거꾸로 뒤집은 주원은 마찬가지로 거꾸로 뒤집은 칼집 안으로 검을 집어넣었다.
‘역날검?’
두 다리를 멈춘 주원은 눈을 감고 있었다.
불규칙하던 호흡이 빠르게 안정되어 가는 게 보였다.
‘뭘 하려는 거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자세였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분명 뭔가 큰 게 올 게 분명했다.
‘설마… 스킬인가?’
확신은 없었다.
스킬을 쓸 수 있었다면, 자신이나 예나의 스킬에 보였던 반응의 진실성에 의문이 생겼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이 100% 진실된 모습이었단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여태껏 숨겨왔던 걸 굳이 지금 이 타이밍에, 그것도 자신을 상대로 꺼내 들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조금 아플 거예요! 참아주세요!”
왼발을 살짝 뒤로 뺀 주원이 상체를 최대한 낮췄다.
주원의 마지막 호흡은 어금니 사이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월영식 - 적(赤).”
팅!
왼손 검지로 도반을 빗겨 올린 주원은 단번에 검을 휘둘렀다.
검신의 궤적을 따라 바람이 뒤틀렸고, 붉은 선이 그어졌다.
초승달을 그린 붉은 궤적은 결을 따라 빠르게 퍼져 나갔다.
검기의 속도는 상상 이상.
검을 휘두름과 거의 동시에 검기는 용주를 사정권 안에 두고 있었다.
“…….”
위협을 마주한 뒤에도 용주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검기와의 거리는 불과 2m 남짓.
오른발을 앞으로 미끄러뜨린 용주는 몸을 아예 뒤로 뉘어 버렸다.
허벅지와 엉덩이.
거기에 허리와 목덜미까지.
안구에 거의 눕다시피 한 용주는 속도와 물기를 이용해 그대로 미끄러졌고, 붉은 검기는 용주의 이마 바로 위를 스치듯이 지나갔다.
“!”
“내가 할 소리.”
놀란 주원을 덮친 용주는 그대로 주원을 밀고 나갔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벼랑 끝에 도달했고, 이내 함께 추락했다.
주원의 방해로 생각했던 타격을 주는 데 실패한 용주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의 결과를 도출해 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깃을 잃고 퍼져 나간 붉은 검기.
검기의 끝은 안구를 도려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도려냈다는 표현이 조금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충격면을 따라 생긴 상처는 마치 운석이 바다에 충돌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것보단 부서졌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릴지도.
“웁…! 푸아악!!”
엄청난 속도로 지면으로 추락했던 주원이 입안에 고인 것들을 뿜어냈다.
낙하와 동시에 질척한 액체 속으로 잠수한 주원이었다.
“시간 없어! 움직여!”
용주의 외침에 주원이 그를 바라보았다.
용주의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어서!”
다급한 목소리는 한 번 더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주원은 서둘러 다리를 움직였다.
자신이 있는 곳은 왼발에 있던 안구 위.
용주의 손톱에 찢긴 안구의 잔해 안이었다.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안구를 빠져나온 주원이 미끄러져 내려오며 물었다.
“두 번째 크레인이 녀석과 충돌할 거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휩쓸리고 말 거다.”
“아니! 제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닌데요? 용주 형, 방금 좀비처럼 그랬었다고요! 막 물어뜯었다니깐요?!”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설명하는 게 우선일 거다. 묻고 싶은 게 너만 있는 건 아니니까.”
“…….”
고개를 끄덕인 주원은 땅을 디뎠다.
궁금한 건 미뤄두고, 지금은 일단 여길 빠져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