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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69화 (69/357)

69화

한쪽 눈알을 잃은 6번 개체는 용주를 내쳤다.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강한 힘 앞에서 저항할 수단은 없었다.

내동댕이치듯 튕겨 나온 용주는 앞발로 땅을 디디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쪽에만 신경 써주면 완전 땡큐지.’

빠르게 달린 주원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용주에게 완전 정신이 팔린 6번 개체는 등을 보이고 있었다.

빈 골대나 다름없었다.

휘익!

그렇게 생각하던 주원의 귀에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상하체가 분리됐을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아뿔싸.’

주원의 머릿속에 잊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얼굴이 이쪽을 안 본다고 해서 시야의 사각인 게 아니었다.

녀석의 눈은 등 뒤에도 달려 있었다.

무게 중심을 간신히 바로 잡은 주원은 칼날을 바짝 당겼다.

팡!!

이윽고 강렬한 충격이 주원을 덮쳤다.

날카로운 손톱이 철을 긁는 소리가 진동했고, 날아가 버린 주원은 철제 기둥에 처박혔다.

‘힘이 아주 장사잖아? 아니, 저 덩치에 약하면 이상한 건가?’

지면을 디딘 주원이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등과 허리를 통해 전해지는 고통이 적진 않았지만, 징징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러게 조금만 기다려주지 그랬어, 이 오빠야.’

생각했던 자리에 도착한 예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여기라면 적이 무슨 행동을 하든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아래에서.

혹은 가까이에선 볼 수 없는 특이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 장소에 대해 인지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한 곳.

사전에 합의된 건 충분한 거리를 두고 녀석을 관찰할 수 있는 곳 정도였다.

‘아까 그렇게 실컷 말해줬더니만!’

천장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올라간 예나의 검이 수직으로 낙하했다.

푸욱!

검은 곧장 놈의 등을 파고들었고, 무참하게 찢긴 눈알에선 폭포수가 흘러내렸다.

“오케이! 나이스!”

시야의 사각을 놓치지 않은 주원은 교묘하게 놈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안구액을 뚫고 지나간 주원은 그대로 놈의 발목을 베어 냈다.

그대로 이어지는 주원의 무차별 참격.

순식간에 7번의 참격을 날린 주원은 마지막으로 놈의 동공을 동그랗게 베어 냈다.

원을 기준으로 7방향으로 찢긴 눈은 폭발하듯 터져 버렸다.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손톱을 눈으로 확인한 용주는 살짝 몸을 띄웠다.

저항이 사라진 몸은 충격에 고스란히 날아갔고, 덕분에 위에서 내려찍는 강력한 추가타의 범위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다.

‘재생하지 않는 건가?’

성공적으로 착지한 용주는 다시 한번 놈의 상태를 확인했다.

첫 공격으로 파괴한 눈의 개수는 총 3개였다.

그리고 그 눈들은 아직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각 공격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다.

5번 개체를 공격했을 때를 생각하면, 첫 번째 파괴되었던 눈은 재생을 시작했을 시간이었다.

놈이 더 진화한 개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체 어떤 식으로 진화한 거지?’

정답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남은 눈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그 뒤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콰앙!

전투를 이어간 세 사람은 추가적으로 세 개의 눈을 더 파괴했다.

남은 건 하나.

가슴에 있는 것뿐이었다.

“주원 오빠! 위! 위!!”

예나의 다급한 외침에 주원이 몸을 던졌다.

하마터면 빈대떡이 될 뻔한 순간이었다.

“땡큐. 덕분에 살았어!”

“엄지손가락 올릴 시간 있으면 움직이라고! 이 오빠야!”

잔소리를 퍼부어준 예나는 놈의 가슴을 노렸다.

사각이 많아지면 공격에 유리할 줄 알았는데, 방어할 곳이 줄어든 녀석은 오히려 더욱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예나의 시선이 반대편 난간으로 향했다.

주원이 시선을 끄는 사이 용주는 저쪽까지 이동해 있었다.

아무래도 뛰어내리며 노릴 모양이었다.

“버티!”

예나가 신호를 보내자 버티가 들고 있던 것을 힘껏 던졌다.

버티가 던진 건 두꺼운 와이어였는데, 추정컨대 크레인의 여분 부품인 것 같았다.

오른쪽 두 번째 팔에 와이어를 거는 데 성공한 버티는 있는 힘껏 와이어를 잡아당겼다.

공격의 효과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기껏 해봤자 놈의 팔을 잠깐 주춤거리게 하는 정도.

힘에 역으로 끌려간 버티는 난간에 바짝 밀착되어 버렸다.

‘판은 만들어줬어, 오빠.’

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이길 수 없을 거란 건 처음부터 예상했던바.

예나가 이 행동을 통해 노린 건 한 가지였다.

시선의 분산.

난간을 뛰어넘은 용주는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를 밟았다.

그리고.

탕탕탕탕!

컨테이너 끝에서 뛰어내린 용주는 그대로 놈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쿠크앙!”

망막이 찢어지자 엄청난 강도의 수압이 용주를 집어삼켰다.

불순물이 잔뜩 섞인 액체와 함께 땅으로 내던져진 용주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마지막 눈을 잃은 6번 개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

양쪽으로 갈라진 놈의 가슴과 머리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지금까지 벤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를 가진.

색 반전 된 안구가.

“저게 뭐야….”

옆에서도 보이는 눈알의 존재에 주원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런 건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정신을 가다듬은 예나는 공격을 재개했다.

놀라는 건 이게 끝나고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칼날이 지나는 곳마다 망막이 찢어졌고, 상처를 따라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 건 다른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무리 찢어 내도, 아무리 베어 내도 형태가 뭉그러지지 않았다.

놈의 몸체를 타고 오른 용주와 주원 역시 새롭게 나타난 눈을 노렸다.

세 자루의 칼이 지나는 자리엔 핏빛 길이 수놓아지고 있었다.

“쿠크앙!”

30초의 시간이 지나자 또 한 번 변화가 나타났다.

움직임을 재개한 6번 개체는 격하게 발버둥을 쳤고, 주원이 먼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결과는 용주도 마찬가지.

끝까지 저항하던 용주는 검을 뽑아냄과 동시에 뛰어내렸다.

갈라졌던 가슴과 머리가 빠르게 봉합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용주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팔과 다리, 가슴, 등, 머리에서 각양각색 자상을 남긴 채 찢어졌던 녀석의 눈동자는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오빠들, 괜찮아?!”

2층 난간에 붙은 예나가 외쳤다.

용주의 착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지만, 주원은 거의 뒤통수로 낙법을 치다시피 떨어졌다.

기절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머리를 긁적인 주원은 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괜찮아! 아무 문제 없다고!”

예나에게 따봉을 날려준 주원은 용주에게 다가갔다.

“완전히 회복돼 버렸는데요? 상처 하나 없이 말짱해요.”

가슴과 얼굴뿐 아니라 팔다리에 붙어 있던 눈들 역시 원래 모습을 찾아간 뒤였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 정말 그럴까?’

용주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일곱 개의 눈을 모두 제거했을 때 나타났던 여덟 번째 눈.

그게 나타나기 전까진 눈의 재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눈들이 재생된 건 그게 나타나고 약 30초 뒤.

다른 눈들은 회복되었지만, 여덟 번째 눈의 상태는 확인되지 않았다.

놈을 쓰러뜨릴 열쇠는 거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 눈을 파괴하는 게 한 사이클.

같은 사이클을 반복해 여덟 번째 눈을 불러오고, 만약 그 눈의 상처가 그대로라면 이게 정답이란 소리였다.

쿵! 쿵! 쿵!

자리에서 일어난 6번 개체가 활동을 재개했다.

“저놈 지금 뭐 하는 거죠?!”

놀란 주원이 물었다.

놈이 노리는 건 자신들이 아니었다.

연구실 중앙으로 걸어간 녀석은 중앙 코어를 네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설마….’

“뛰어!”

불길한 예감이 든 용주가 다급하게 외쳤다.

“뛰라니. 그러니까 공격을 재개하잔 말씀이시죠?”

“설명할 시간 없으니 일단 뛰어! 녀석한테서 최대한 멀리!”

용주는 주원을 잡아당겼다.

영문도 모른 채 뜀박질을 시작한 주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지직! 지지지직!

중앙 코어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초 단위로 주원의 동공이 커졌다.

거대한 코어의 한 면이 통째로 뜯겨 나가고 있었다.

콰앙!

괴력을 뿜어낸 6번 개체는 있는 힘껏 코어를 내리쳤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부품들이 흩날렸고, 바닥이 갈라지며 벽면에 균열이 생겼다.

“…….”

충격에 뒤로 넘어졌던 예나는 서둘러 버티의 품을 벗어났다.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말을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으라면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단 거였다.

화재가 있었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최악을 향해 달려갔을 테니 말이다.

‘오빠들 어디….’

예나의 시선이 방황했다.

설마 저 아래 깔렸다고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빠르게 움직이던 예나의 시야에 작은 움직임이 포착된 건 그로부터 몇 초 뒤.

코어 잔해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지점의 부품을 밀쳐낸 두 사람은 다행히 무사했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요.”

간발의 차로 재앙에서 벗어난 주원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늦게 반응했다면 지금쯤 분명 저 아래 깔려 있을 게 분명했다.

뚝…!

“응?”

안도의 한숨을 내쉰 주원의 뺨에 무언가 떨어졌다.

주원은 뺨을 닦아냈다.

손엔 피가 묻어 있었다.

“피?”

주원이 고개를 들었다.

피가 나는 곳은 다름 아닌 용주의 머리.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피는 턱선을 타고 떨어지고 있었다.

“용주 형, 머리에서 피가….”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마.”

용주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직접적인 타격은 분명 피했었다.

다만, 충격에 튄 파편이 머리를 강타하는 걸 피하지 못했다.

예측이 불가능한 일격이었다.

반응할 시간이 있었다면, 사후 강직 스킬을 활용해 대미지를 줄여 보기라도 했을 텐데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타격의 순간을 제외하면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몇 번이고 의식이 날아갈 뻔했다.

간신히라도 의식을 붙잡은 게 기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길드도 장난은 아닌가 보군.’

타격과 동시에 HP에는 분명한 손실이 있었다.

진짜 물리적인 피해가 있다는 증거였다.

“별거 아니긴요! 머리라고요, 머리!”

“한 번 더 놈을 찢는다.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해!”

주원의 걱정을 무시한 용주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주먹을 움켜쥔 주원은 용주와는 다른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둘 다 무사한 모양이네.’

두 사람의 안전을 확인한 예나는 부활한 녀석의 눈들을 노렸다.

녀석을 공략하는 법에 대해 한 가지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아마 저기 뛰어가는 용주도 같은 생각이겠지.

휘익!

시야의 사각.

그러니까 위에서부터 정수리 쪽으로 파고든 예나의 검은 이마를 따라 그대로 얼굴을 노렸다.

조금 전에 예나 본인이 직접 파괴했던 눈동자였다.

‘다시 한번 받아 가겠어. 어서 그 큰 눈알을 다시 내보내라고!’

예나의 검이 다시 한번 내리꽂혔다.

저항은 없었다.

하지만.

팅!!

돌아온 결괏값이 전혀 달랐다.

“……!”

예나의 검은 눈을 꿰뚫지 못했다.

수정체의 강도는 전과 같지 않았다.

‘회복과 동시에 강화된 건가?’

공격의 결괏값을 확인한 용주는 왼쪽으로 크게 돌았다.

맞돌진을 시전한 6번 개체는 용주와 주원을 동시에 할퀴며 지나가고 있었다.

예나의 검이 박히지 않는다는 건 자신이나 주원의 공격 역시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였다.

지금 들고 있는 검으로 벨 수 없다고 해서 용주에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빨과 손톱.

매우 원초적이지만, 강력한 무기가 자신에겐 있었다.

그때.

“크아앙!!”

고막을 찢는 포효를 내지른 6번 개체는 그대로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철골이 휘청거렸고, 예나가 올라갔던 계단이 송두리째 뽑혀 바닥을 나뒹굴었다.

벽을 타는 녀석의 모습은 마치 혀를 놀리던 4번 개체 같았다.

“뭐야 저건 또?”

천장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오른 녀석은 벽을 달리기 시작했다.

중력을 완전히 무시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버티!”

녀석을 마주한 예나가 격추를 노렸다.

하지만 공격은 불발이었다.

버티의 손톱은 녀석에게 닿지 않았다.

녀석이 지나가자 한발 늦게 충격파가 따라왔다.

철제난간 전체가 휘청거렸고, 예나 역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달리면 달릴수록 놈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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