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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68화 (68/357)

68화

“꼭 무슨 게임처럼 이야기하네, 오빠.”

예나가 이야기했다.

“아, 그런가? 그렇지만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 말했잖아. 가상 현실 같다고.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 게 아닐까?”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 이 오빠야.”

“하핫! 그런가? 어쨌든 용주 형한테 말해서 안에 든 거 확인해 보자. 중앙에 있던 컴퓨터는 작동하니까 그걸 이용하면 될 거야.”

플로피디스크를 빙그르르 돌려 보인 주원이 용주에게 다가갔다.

용주는 연구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유리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출입문 쪽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배양관이 없는 구역이었다.

“용주 형,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요?”

용주와 나란히 선 주원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

주원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

성난 불길에 타오르고 있는 붉은 복도였다.

스프링클러는 따로 없는 모양이었지만, 환기 시설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듯 보였다.

타오르는 불길에 비해 검은 유독가스는 차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혹시 저길 지나가야 하나요?”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A-0006 개체가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실험실로 가기 위해서는 저 길을 거쳐야만 했다.

“곤란하게 됐네요. 불길을 잡기 전엔 지나가기 힘들 거 같은데요.”

“불길 잡을 방법이라면 오빠가 찾았었잖아.”

두 사람에게 다가온 예나가 폴짝폴짝 뛰며 이야기했다.

“응? 나?”

주원이 자신을 가리켰다.

“벌써 까먹은 거야? 오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면서 소화기 챙겼었잖아. 기억 안 나?”

“아!”

주원은 그제야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거 지금 어디 있어?”

“그거? 음… 아마 중앙 홀에….”

“중앙 홀?!”

“아마 그럴걸. 머리 큰 인형 근처에 놔뒀던 거 같은데.”

“그럼 거기까지 돌아가야 한단 소리네? 그 냄새나고 더러운 하수도 다시 지나서?!”

“아… 괜찮아. 예나는 여기 있어. 나 혼자 갔다 올 테니까.”

주원이 플로피디스크를 내밀었다.

오가는 길에 좀비들은 다 처리해두었으니, 그렇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오빠가 그런 말 해봤자 하나도 신뢰 안 가거든.”

플로피디스크를 건네받은 예나가 용주에게 디스크를 내밀었다.

“나랑 같이 가. 나 어차피 이거 만지는 법도 모르고, 옆에 있어도 딱히 도움 안 될 거니까.”

용주에게 디스크를 건넨 예나가 앞장섰다.

“근데 소화기 하나로 저걸 다 끌 수 있을까?”

주원이 물었다.

“갑자기 현실적이네. 게임에선 어땠는데?”

“음… 게임마다 다르지, 그거야.”

“그럼 일단 뿌려보면 알겠네. 그치?”

싱긋 웃어 보인 예나가 먼저 방을 빠져나갔다.

“그럼 갔다 올게요. 그거 예나가 찾은 건데 잘 좀 부탁드려요.”

주원은 곧장 예나를 쫓았다.

* * *

카운터로 돌아온 용주는 플로피디스크를 꽂았다.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딱딱거리는 소리가 본체에서 흘러나왔다.

디스크엔 딱 하나의 폴더가 들어 있었다.

[불멸 프로토콜]

그렇게 이름 붙은 폴더였다.

폴더를 연 용주는 내용을 쭉 읽어 나갔다.

몇몇 용어들은 정확히 해석할 수 없었지만, 요약하자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한 제단에서 운영하는 실험실에서 어떤 한 바이러스가 만들어졌는데, 사람을 산 채로 죽게 하는 바이러스라고 한다.

제단은 이 바이러스의 변이를 연구했고, 이를 통해 죽지 않는 존재를 만들고자 했다.

연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사람을 이용한 인체실험.

다른 하나는 세포를 배양한 세포실험.

바이러스가 주입된 세포들은 배양관 안에서 성장을 거듭했다고 한다.

경과가 지남에 따라 세포는 어떤 형태를 갖추어갔다.

가장 먼저 등장한 건 원시 뇌의 형태였다.

세포 덩어리가 스스로 장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기록은 거기까지였다.

딱 이 지점까지 표본이 모인 시점에서 프로젝트 파기가 결정된 모양이었다.

‘A-0006개체는 인체 실험의 결과로 탄생한 괴물일 거야. 여기 적혀 있는 건 그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실험에 대한 것. 세포를 이용한 실험의 데이터가 남아 있다는 건 거기서 파생되는 무언가도 나타난다는 소리겠지.’

실험은 원시 형태의 뇌가 생겨나는 곳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험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세포를 빼돌렸다는 건, 배양을 통해 실험을 이어간다는 소리였다.

이 이후에 어딘가에서 실험이 더 진행됐다고 하면,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으, 냄새….”

용주가 파일 내용을 다 확인한 그때, 두 사람이 돌아왔다.

주원의 손에는 빨간 소화기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래도 지하로 내려오니까 발소리는 안 들리네. 오우, 혼자 갔으면 간 좀 떨렸었겠어.”

주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적 속을 따라오는 발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나한테 감사하지?”

“그럼, 그럼. 감사하고말고.”

주원의 시선이 용주에게 향했다.

“어땠어요? 안에 뭐 도움이 될 만한 것들 좀 있었어요?”

“세포를 이용한 실험에 대한 기록이 날짜와 시간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난 더 엄청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네? 그거라면 아까 비슷한 내용들 있었잖아.”

예나가 끼어들었다.

“반복적으로 사건을 알린다는 건 이와 관련된 무언가가 준비되어 있다는 뜻일 거다.”

“예를 들면 마지막 조각이 그 세포 안에 있다든가?”

“그럴 가능성도 있지.”

용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잉!

카드키에 반응한 자동문이 열리자 뜨거운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빠져나갔지만 열기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기서부터 뜨거운데…. 어디 방화복 같은 거라도 있지 않을까?”

예나가 걱정스럽게 이야기했다.

맨몸으로 진화에 나서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예나는 여기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주원이 소화기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무리이지 않을까?”

“나도 할 때는 하는 남자라고.”

자신감을 표한 주원이 용주를 바라보았다.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암묵적인 합의의 침묵이었다.

히죽 웃어 보인 주원은 안으로 들어갔다.

“말려야 하지 않을까?”

용주를 본 예나가 물었다.

“괜찮을 거다. 불규칙한 바람도 없고, 천장으로 옮겨붙은 불길도 없으니까.”

시각, 촉각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만 멀리서 보면 충분히 통제된 환경임을 알 수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이곳을 보며 느꼈던 바였다.

건물 바깥에서 타오르던 불길과 이곳에 있는 불길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어디 시원하게 한번 뿌려 보자고!”

안전핀을 뽑은 주원이 소화기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불길은 빠르게 제압되었다.

보통의 소화기가 불길을 제압하는 속도 이상이었다.

‘근데 이거, 떨어지는 느낌이 없는데?’

커다란 불길 하나를 제압한 주원은 다음으로 향했다.

소화기의 분말을 제법 많이 사용했음에도 무게감에선 전혀 차이가 없었다.

분말의 세기도 일정한 게, 마치 끝없이 솟아나는 샘 같았다.

치이익!

하얀 분말 속에 길을 막고 있던 마지막 불길이 제압되었다.

“오빠! 괜찮아?”

복도를 뛰어온 예나가 물었다.

주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하핫! 괜찮고말고. 내가 말했잖아? 나도 할 때는 한다고.”

잠시 벽에 몸을 기댄 주원이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힘들긴 했지만, 해냈다는 기쁨에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다시 봤어, 오빠. 멋있었다고.”

예나가 나긋나긋 웃어 보였다.

“응? 방금 뭐라고 했어? 미안 잘 못 들었네.”

주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딴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소화기 신기하다고 했어. 그 조그만 게 여기 있는 거 다 끄고도 남았잖아. 완전 오병이어의 기적 아니야?”

“오병이어?”

“왜 있잖아 물고기 두 마리랑 보리떡 다섯 개로 많은 사람들을 먹였다는 이야기.”

“하하! 예나는 어려운 말도 잘 쓰네. 확실히 신기하긴 했어. 뿌리면서도 깜짝깜짝 놀랐다니까.”

주원이 소화기를 쓰다듬었다.

설마설마했던 게 실제로 일어나니 뭔가 기분 좋으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바로 그때.

“쿠과아아앙!!”

주원의 목소리가 거대한 괴성에 집어삼켜졌다.

메아리쳐 울리는 소리는 통로를 지나 하수도까지 퍼져 나가고 있었다.

“방금 그 소리 들었어?”

“못 들었으면 귀에 큰 이상 있는 거라고, 이 오빠야.”

예나가 핀잔을 놓았다.

“A-0006, 아까 그림으로 봤던 녀석의 목소리일 거다. 다행히 아직 거기 있나 보군.”

통로를 따라온 용주가 손을 내밀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지친 건 아니겠지?”

“물론이에요.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용주의 손을 잡은 주원은 다시 한번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근데 그 6번 녀석은 어떻게 처리해야 해? 뭐, 단서 같은 거라도 있었어?”

예나가 물었다.

동시에 두 개의 눈을 파괴해야 하는 5번 개체의 약점.

같은 단서를 보고도 그걸 발견한 사람은 용주뿐이었다.

용주라면 어쩌면 더 많은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단서는 없었다.”

통제에서 벗어났다.

그것 외에 다른 코멘트는 없었다.

당연히 그것만으로 뭔가를 도출해 내기엔 무리였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완전 맨땅에 헤딩?”

“4, 5번 개체의 공통적인 약점은 어디까지나 몸에 달린 눈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진화한 개체라면 약점도 이와 연관이 있겠지. 얼마나 보완됐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야.”

보통의 방법으로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워지긴 했지만, 일지를 보면 5번 개체까지는 녀석들의 통제 안에 있었다.

사살하는 것 역시 가능했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조차 6번 개체를 사살하지 못했다.

아마 그냥 눈을 터트리는 정도로는 죽일 수 없을 거다.

“일단은 눈을 노려보고 반응을 보자, 그거네.”

“그래. 그래도 우린 녀석의 생김새를 알고 있다. 눈의 위치 역시 그림으로 봐서 알고 있지. 카오스 게이트에서 게이트 보스를 상대할 때에 비하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네. 응. 확실히 그래.”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비유해주니 확 와닿는 느낌이었다.

“저….”

두 사람을 번갈아 본 주원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정말 정말 죄송한데, 눈 있던 위치 다시 한번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 완전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주원이 멋쩍게 웃어 보였다.

“다시 봤다는 말 취소야, 이 오빠야.”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린 예나는 그림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 주고 있었다.

* * *

부서진 개폐문을 들어서자 거대한 실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쪽에서 부딪친 충격에 문 주변 벽은 구부러져 있었다.

안에든 철골이 전부 휜 모양이었다.

그 상태로도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한 그런 모습이었다.

실험실은 총 2층으로, 2층은 철제난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험실의 중앙엔 거대한 코어가 하나 돌아가고 있었으며, 두 개의 크레인에 컨테이너가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키리리릭! 꾸륵!”

녀석이 있었다.

A-0006이라 명명된 개체.

4m가 넘는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괴물이.

“생각한 것보다 큰데요? 엄청나게요.”

6번 개체는 아직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듯 보였다.

“작전은?”

“처음은 말했던 대로 간다. 카오스 게이트라고 생각하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여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다.”

검을 움켜쥔 용주가 가장 먼저 뛰쳐나갔다.

놈의 눈은 총 일곱 개로, 네 개의 팔 중 2개에 하나씩.

왼쪽 발과 오른쪽 무릎에 각각 하나.

등과 가슴에 하나.

그리고 머리에 하나 이렇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림에서 보인 모습과 실물은 99% 일치했다.

눈의 개수와 위치에서도 역시 차이는 찾을 수 없었다.

“우리도 가자!”

검을 뽑아 든 주원이 그 뒤를 따랐다.

“가자, 버티!”

검과 버티.

두 가지 무기를 동시에 뽑아 든 예나는 철제 계단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쿠과아아앙!!”

침입자의 존재를 감지한 6번 개체는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땅이 흔들리고, 공기가 진동했다.

휘익!

처음 공격을 개시한 이는 용주였다.

지면을 할퀴는 두 개의 왼팔을 미끄러지듯 흘려보낸 용주는 놈의 팔을 타고 올랐다.

손가락 위를 달리는 용주의 검은 놈의 살점에 박혀 있었다.

칼이 들어가는 감각은 예상외로 부드러웠다.

껍질이나 피부가 없는 날고기를 베는 정도의 감도였다.

오물로 몸을 보호하고 있던 5번 개체보다도 방어 능력은 떨어진다 평가됐다.

‘이 정도라면 베는 데 문제는 없겠어.’

빠르게 손등까지 내달린 용주는 놈의 눈알을 베어 냈다.

눈알 역시 특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칼날의 방향대로 찢어진 상처에선 피와 안구액에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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