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그게 무슨 의미야?”
예나가 물었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없어.”
“이번 시험은 시간 안에 여길 나가냐 못 나가냐잖아. 못 나가는 게 탈락 조건이잖아?”
“그래. 표면상으로 보이는 조건은 그렇지.”
용주가 시선을 돌렸다.
“표면상으로 보이는 조건? 그게 뭐야? 알기 쉽게 좀 설명해줘 봐!”
예나가 따지듯 물었다.
용주가 하는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넌 이 시험에서 테스트하고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지?”
“테스트 하고 있는 거? 그야 정보 수집력이랑 분석력, 사고력, 전투력, 임무 수행 능력…. 뭐, 그런 걸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거 아니야?”
예나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그것만 측정한다면 3인 1조로 조를 나눌 필요가 없었을 거다. 같은 걸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럼 오빠가 생각하는 이유는 뭔데? 왜 3인 1조로 팀을 나눴다고 생각하는데?”
“팀을 이뤄야만 측정할 수 있는 것. 가령 협동심이나 팀워크…. 뭐, 그런 걸 보고 싶은 거겠지.”
“협동심과 팀워크?”
“그래. 테스트를 구상한 건 헌터 길드다. 녀석들의 입맛에 맞는 요소들이 평가 기준에 들어가 있겠지. 모범생의 답안지처럼 말이야.”
주어진 과제들은 혼자서는 해결하기 쉽지 않게 구성되어 있었다.
한 명이라도 전투 불능 상태에 놓이면 난이도는 급속도로 상승할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과 불가능한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지금 자신들이 겪은 일들은 쉽지 않은 거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3시간이란 시간이 정해져 있긴 했지만, 그것 외에 탈락 조건은 규명되어 있지 않았다.
쉽게 말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팀에 비협조적인 인원이라고 하더라도.
실력 있는 누군가 문만 열어주면 자동으로 합격한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을 분별력 있는 테스트라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건 팀 운을 시험하는 시험이 아니니 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3인 1조의 팀 게임.
카오스 게이트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형만의 그 말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그게 전부야?”
잠시 뜸을 들이던 예나가 물었다.
용주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는 대략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여준 그 모든 게 연기였다고 말하는 게….
집사가 그랬었다.
마음을 담았다고 생각해도, 연기는 연기일 뿐이라고.
진심을 따라갈 순 없다고,
“오빠. 가슴에 손을 얹고 그게 전부였다고 말할 수 있어?”
예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우와악!!”
용주의 대답 대신 들려온 건 주원의 비명이었다.
“곰 괴물! 곰 괴물이 날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어!!”
벌떡 일어난 주원이 오물 사이를 뒹굴었다.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괴물이라니, 듣는 버티 섭섭하겠어. 오빠 일어날 때까지 무릎베개해 주고 있던 게 누군데.”
용주를 흘겨본 예나가 주원에게 다가갔다.
용주는 예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돌아서기 전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거짓말쟁이.
“버티? 버티라면 그 곰 인형말이야?”
주원의 시선이 예나의 두 팔을 향했다.
항상 품에 안고 있던 곰 인형의 모습은 거기 없었다.
“응. 맞아. 그 버티야.”
“근데 그거 분명 요만했잖아. 나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거야? 혹시 잡아먹히고 나서 기절한 상태인 건가, 나?”
주원이 자신의 손등을 꼬집었다.
몸 전체를 뒤덮은 오물 때문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통증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버티한테 안겨 있는 꿈이라면 그래도 행복한 편이지. 우리 버티한테 더러운 것들 묻어서 난 마음이 아프다고.”
“아… 그럼 이건 현실이란 소리?”
버티에게 다가간 주원이 버티의 발을 꼬집었다.
당연하게도 반응은 없었다.
“뭐 하는 거야? 오빠?”
“아니, 그렇지만 말이 안 되잖아. 인형이 어떻게 이렇게 커져. 무슨 풍선도 아니고.”
“음, 알았어. 그럼 잘 봐.”
예나가 버티에게 다가가자 버티에게 변화가 생겼다.
빠르게 줄어든 버티는 예나의 품에 쏙 들어와 있었다.
“미안해, 버티. 일 끝나면 깨끗하게 씻겨줄게.”
예나가 버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놀랐어? 이거 내 스킬이야.”
예나가 히죽 웃어 보였다.
“스킬? 진짜?! 예나 너도 스킬 쓸 수 있었던 거야?!”
주원이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다.
그렇다는 건 여기 있는 E급 헌터 중에 스킬을 쓸 수 없는 건 자신뿐이란 소리였다.
E급 헌터가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그렇게 흔한 거였나?
“응. 혹시 기분 나빴어? 말 안 해서….”
주원의 표정을 살피던 예나가 물었다.
미움받아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콧등을 긁적이던 주원은 예나에게 다가갔다.
“우와~ 예나 너 진짜 대단하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했잖아?!”
예나의 두 손을 꼭 잡은 주원이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질투심이나 이기심.
앞뒤가 다른 태도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 순수한 주원의 표정이었다.
“아, 근데 몸이 왜 이렇게 무겁지? 마치 우주복 안에 들어와 있는 그런 느낌인데.”
예나의 손을 놓아준 주원이 가볍게 몸을 풀었다.
“오빠… 자기 손보고 그렇게 느끼는 바가 없나 봐?”
예나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이 정도면 둔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았는가.
“잘 봐봐.”
예나가 자신의 검을 세로로 정렬시켰다.
검신을 따라 주원의 모습이 비쳤다.
“오! 이게 뭐야?! 아까 그 녀석 혹시 분열도 하는 거야?!”
주원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자신 외에 누군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상식적으로 거기 있는 게 오빠잖아. 이 바보 오빠야.”
예나가 고개를 저었다.
자기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이게 나라고?!”
“그래.”
예나의 검이 주원을 겨눴다.
“자… 잠깐만! 예나야!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보래도. 더러운 거 떼어내 줄 테니까.”
“아니, 그렇게 말해도…. 그냥 내가 직접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피부랑 이 더러운 거랑 경계선 잘 안 보이잖아.”
주원의 눈썹이 부자연스럽게 떨렸다.
수술대에 누워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에헤잇! 움직이면 다친다. 그냥 면도 맡긴다고 생각해. 편안하게.”
“면도?! 그렇지만 나 살면서 한 번도 누구한테 면도 맡겨본 적 없는데?!”
“그럼 시작할게.”
주원의 의견을 무시한 예나가 검을 휘둘렀다.
“우왁!”
검이 지나는 곳마다 오물들이 뭉텅이로 뚝뚝 떨어졌다.
* * *
“아!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인사를 깜빡했네! 두 사람 다 고마워요. 진짜 큰일 날 뻔했었다고요.”
구불거리는 미로를 지나던 주원이 이야기했다.
정신이 없어서 해야 할 걸 잊어버리고 지나가 버렸다.
“응? 나 뭔가 잘못한 건가? 뭔가 분위기가 냉랭해진 그런 느낌인데.”
두 사람을 번갈아 본 주원이 이야기했다.
정확히 뭐라고 콕 짚긴 그렇지만, 뭔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잘못은 무슨. 그냥 오빠 기분 탓이라고.”
예나가 대답했다.
“음… 그런가? 음! 역시 그렇겠지?”
“아, 잘못한 거라면 하나 생각났다.”
“응? 뭔데?”
“오빠 구해준 거 버티까지 하면 세 사람이라고. 둘이 아니라.”
“하핫! 그러네! 그럼 두 사람이랑 한 마리라고 하면 될까?”
호탕하게 웃어 보인 주원이 코너를 돌았다.
주원의 시선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기분 나쁜 살덩이 미로가 끝난 것이다.
“오~ 저기 보세요!”
주원이 외쳤다.
물에서 나온 용주는 계단을 올라갔다.
난간과 문은 부서져 있었다.
모두 안쪽에서 부서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다르군.’
경찰서 내부에서 봤던 문들은 열쇠를 돌려 여는 아날로그식 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이건 카드로 여는 디지털 도어.
안쪽엔 비상등과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여긴 뭘까요?”
안쪽은 비교적 깔끔했다.
바닥도 가구도 온전한 상태인 게 병원 로비를 보는 것 같았다.
“오빠들, 저기….”
다른 곳을 살피던 예나가 한 지점을 가리켰다.
카운터 뒤쪽에 사람 다리가 보였다.
“사람?”
주원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용주는 카운터를 뛰어넘었다.
다리의 정체는 한 남성의 시신이었다.
감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시신의 상태는 상당히 좋지 못했다.
이미 백골이 부분부분 드러날 만큼 부패한 게, 죽은 지 시간이 제법 흐른 모양이었다.
용주는 시신의 옷가지를 뒤졌다.
가운에는 한 장의 디지털 카드가 들어 있었다.
“안에서 쓸 수 있는 키카드야?”
“아마 그렇겠지.”
용주가 키카드를 챙겼다.
“여기 보세요! 컴퓨터 전원이 켜져 있어요!”
주원이 마우스를 흔들자 모니터에 불이 들어왔다.
카운터에 놓인 사무용 컴퓨터였다.
[배양실이 파기되기 전 배양 중이던 세포 하나를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죽음을 직면한 지금 순간에도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난 죽어도, 내 업적은 영원할 것이다.]
“또 유서네.”
예나가 혼잣말을 했다.
“가짜란 걸 알아도 마음이 영 찝찝하네요.”
주원이 창을 내리자 바탕화면의 모습이 보였다.
바탕화면에는 이 시설의 내부 구조도가 그려져 있었다.
“배양실이란 곳은 저쪽 안쪽이네.”
예나가 닫힌 문을 가리켰다.
용주는 지도를 좀 더 유심히 관찰했다.
통제에서 벗어났다던 A-0006 개체.
그건 분명 이 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탈출에 필요한 석판을 가지고 있겠지.
‘몸집이 더 커졌을 가능성이 높아.’
A-0005개체는 A-0004 개체에 비해 몸집이 상당히 불어난 형태였다.
마찬가지로 진화를 거듭하며 크기가 커졌다면 A-0006개체를 실험했을 곳은 여기서 가장 넓은 곳.
실험실의 가장 깊은 곳이었다.
‘배양 세포란 것도 신경 쓰이긴 해.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어.’
구조도를 머릿속에 넣은 용주가 시체를 뛰어넘었다.
* * *
지잉!
키카드에 반응한 자동문이 열렸다.
배양실엔 수많은 유리관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규모가 엄청난데요.”
유리관들의 크기는 대략 2.5m 정도였는데, 하나같이 모두 깨져 있었다.
“컴퓨터는 먹통이야.”
예나는 배양실 한편에 있는 컴퓨터를 만져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용주는 깨진 배양관을 살펴보았다.
몇몇 배양관에는 저마다 크기가 다른 살덩이들이 들어 있었다.
‘이게 거기서 말한 그 배양 세포란 건가?’
보통의 세포였다면 이미 전부 부패해 있어야 정상이었다.
여기가 파괴된 건 적어도 카운터에 있던 그 과학자가 죽기 전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부패의 정도는 미비했다.
아니, 어쩌면 없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전 살덩이를 손으로 만졌을 때 꿈틀거리는 반응이 있었었다.
도축한 바로 직후에 관찰되는 그 꿀렁거림 말이다.
‘살아 있어.’
성장은 멈췄지만, 이 살덩이들은 분명 살아 있었다.
좀비처럼 엄청난 생명력이었다.
‘잠깐만. 좀비?’
이 배양 세포가 좀비의 세포라고 하면 설명되는 부분이 있었다.
질긴 생명력과 세포 상태 등이 말이다.
“오빠. 이건 뭐 하는 물건일까?”
주원에게 다가간 예나가 물었다.
서랍을 뒤지다가 나온 물건이었는데, 정사각형 플라스틱에 얇은 철판이 장식된 물건이었다.
“음~ 똘똘이 예나도 모르는 게 있나 보네? 어디 봐봐.”
“자! 이거야.”
예나가 찾은 걸 확인한 주원은 박수를 탁 쳤다.
설마 이런 걸 여기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야~ 이거 플로피디스크잖아? 진~짜 오랜만에 본다!”
“플로피디스크?”
“아, 예나는 모르는구나? 이거, 세대 차이가 나는걸.”
주원이 플로피디스크를 빙그르르 돌렸다.
한두 번 돌려본 솜씨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요즘에 나오는 걸로 이해하기 쉽게 하려면 CD라고 하면 되려나? 아 아니다. CD도 옛날 건가? USB! 그래 USB라고 하면 되겠다!”
“USB? 그렇게 커다란 게?”
“하하핫, 이 오빠가 예나만 할 때는 다 여기다 저장하곤 했어. 컴퓨터 시간에 누가 게임 하나 넣어오면 그 게임이 온 PC에 다 깔렸었다고.”
학창 시절을 떠올린 주원이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한 마디로 옛날 유물이란 거네.”
“유물까진 아니다. 그래 봤자 얼마 전이라고.”
“음… 그렇다고 해줄게. 근데 이런 최첨단 시설에 왜 이런 게 있을까? 너무 안 어울리지 않아?”
예나의 물음에 주원이 턱을 짚었다.
“음, 어렵게 생각할 거 없지 않을까?”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니?”
“모니터도 머리가 큰 옛날 거잖아. 과거의 상상력을 현대 기술로 재현해서 생긴 오류라고 생각…. 하핫! 뭐, 용주 형 흉내 좀 내봤어.”
주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기가 한 말이지만,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