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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66화 (66/357)

66화

첨벙!

구정물을 튕기며 착지한 용주는 자신의 어깨를 베어 냈다.

물론, 진짜 자기 살을 찢은 건 아니었다.

용주의 검이 베어 낸 건 어깨에 붙어 있던 오물.

그렇게 움직였는데도 오물은 다 떨어지지 않았다.

“이걸로 2개! 용주 형! 나이스 샷!”

주원이 파이팅 넘치게 외쳤다.

“방금 그거 봤어? 굉장하지? 응? 굉장하지?!”

“왜 오빠가 더 호들갑인 건데.”

예나가 보기에도 용주의 움직임은 훌륭했다.

E급 헌터의 움직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주원의 반응을 보니 괜히 딴지를 걸고 싶었다.

“하핫! 예나 삐졌구나? 예나도 나이스 샷!”

주원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예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삐지긴 누가 삐졌다고.

완전 애 취급이나 하고 말이지….

“하핫, 그래도 하이파이브 정도는 괜찮잖아?”

주원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할 거면 용주 오빠랑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구경만 하던 사람 말고. 그치, 버티?”

숨겨두고 있던 비수를 찔러 넣은 예나가 손뼉을 부딪쳐주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주원은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주원이라고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다.

다만 타이밍을 완전 놓쳐 버렸다.

끼어들려고 하면 물론 끼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지금 끼어들면 방해만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빨리 저쪽으로 가자. 용주 형 기다리겠다.”

상황을 정리한 주원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으~ 가까이서 보니까 더 징그러운데.”

주원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덩치는 길의 80% 정도를 막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아악!”

움직임이 멎었던 괴물이 단번에 주원을 사로잡았다.

주원은 발버둥 쳤지만, 몸에 딱 달라붙은 빨판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주원 오빠!”

놀란 예나가 소리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불의의 일격이었다.

‘분명 눈은 두 개 다 제거했는데.’

두 개의 눈을 모두 제거하면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두 눈을 잃은 놈의 움직임은 멎었었다.

하지만 놈은 다시금 움직임을 재개했다.

‘설마 죽은 척하고 있던 거야?! 우릴 방심시키려고?!’

예나의 시선이 놈의 어깨로 향했다.

“!”

그리고 마주할 수 있었다.

놈의 왼쪽 어깨에 있는 녀석의 시선을.

“분명 터트렸었는데, 어떻게?!”

눈은 복구되어 있었다.

찢긴 자국도 말끔하게 봉합되었고, 쏟아졌던 안구액도 다시 가득 차 있었다.

‘뭔가 더 있는 건가? 우리가 놓친 뭔가가.’

용주의 시선이 놈의 어깨를 향했다.

먼저 복구된 왼쪽 안구와 마찬가지로 오른쪽의 안구 또한 빠르게 수복되고 있었다.

‘단서가 될 만한 건 아까 봤던 연구 일지뿐이야.’

용주가 기억을 더듬었다.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이 A-0005라면 분명 뭔가 적혀 있었을 거다.

‘생각해, 생각….’

일지의 내용 중엔 약점을 보완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A-0004개체의 약점이라 함은 눈.

이미 상대하며 확인한 바였다.

그 약점은 진화를 거듭하며 어느 정도 극복됐지만, 완전히 극복된 것은 아니랬다.

그렇다는 건 그다음에 오는 내용이 완전하지 않은 이유.

즉, 녀석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수단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양쪽….’

읽을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었다.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단 건 약점이 이전과 어느 정도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전의 약점과 녀석이 보인 행동.

당장 떠오르는 두 개의 연결고리는 하나뿐이었다.

“오빠, 조금만 참아! 금방 구해줄게!

예나의 검이 사선으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그 대미지는 미미했다.

절단상을 입히기는커녕 상처를 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이런!”

예나는 검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오물 속에 파묻혀 버린 검은 쉽사리 빠져나오지 않았다.

“이거 놔!”

발버둥 치던 주원은 놈의 손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건 액체 상태의 오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웩!”

주원이 오늘 하루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이런 상황임에도 역류하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꾸르륵~!

기괴한 소리를 낸 괴물이 오른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팔만 좀 움직일 수 있으면….!”

주원의 시야는 빠르게 놈의 얼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쩌억!

변화가 생긴 건 그때였다.

홍해가 갈라지듯 놈의 머리가 가로로 쩍 갈라졌다.

“입이 있었던 거냐고?!”

입이라는 느낌은 아니긴 했다.

그냥 머리가 둘로 갈라진 거지.

하지만 직감적으로 자신을 먹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란 소리였다.

타닥!

불규칙하기 튀어나온 벽을 밟고 뛰어오른 용주는 놈의 등에 매달렸다.

분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처럼 오물이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할퀴기!’

검과 손톱을 훅처럼 사용하여 몸을 타고 오른 용주는 놈의 정수리를 밟았다.

그리고.

주먹 쥔 녀석의 손으로 건너뛰었다.

“용주형!”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등을 보인 용주는 놈의 손목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오물 사이에 처박혀 있던 무언가를 허공으로 집어 던졌다.

허공으로 내던져진 건 다름 아닌 예나의 검이었다.

“신호하면 녀석의 왼쪽 눈을 노려라!”

용주가 소리쳤다.

‘그렇지만 그건 벌써 해봤잖아.’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예나는 말하지 않았다.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분명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손톱을 녀석의 팔등에 박아 넣은 용주는 그대로 강하했다.

녀석의 몸을 뒤덮은 오물은 거의 액체의 형태였지만, 불순물이 상당해 늪이나 펄의 상태에 더 가까웠다.

놈의 어깨로 내려온 용주는 손톱을 부러뜨렸다.

박힌 걸 빼낼 시간이 없었다.

용주는 복구된 녀석의 오른눈에 올라탔다.

놈의 주먹은 벌어진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난 괜찮으니까 계속하세요!”

주원의 목소리는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주원의 마지막 모습에 예나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흥분해서 제멋대로 날뛸 수는 없었다.

‘주원 오빠를 위해 해야 하는 건 그게 아니야.’

예나는 용주의 신호에 집중했다.

예나와 눈을 마주친 용주는 딱 한 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 정도는 좀 더 확실하게 보내줘도 되잖아! 이 오빠야!’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예나가 검을 움직였다.

검은 평소와는 다른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전신을 뒤덮다시피 한 저 오물이 원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생길 정도라고 해도 생기게 할 순 없었다.

이 정도에 일을 그르치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촤악!

두 개의 검이 대칭되는 구도를 그리자, 양어깨를 타고 물과 피가 쏟아졌다.

“꾸룩! 꾸루룩!”

특유의 소리를 낸 특수 좀비는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 발버둥은 오래 가지 않았다.

좀비의 균형은 이내 무너졌고,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채 꼬꾸라졌다.

“주원 오빠!”

놈의 머리로 달려온 예나가 오물을 헤집었다.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주원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빨리 나와, 오빠! 빨리!”

예나의 검은 멈춰 있었다.

주원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시점에서 함부로 칼을 찔러 넣을 순 없었다.

착지에 성공한 용주는 곧장 놈의 머리로 뛰어들었다.

“용주 오빠!”

예나가 뭐라 해보지도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용주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건 그로부터 몇 초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날카로운 손톱에 찢긴 오물들 사이론 색을 잃어버린 주원이 머리가 보였다.

“버티! 도와줘! 빨리!”

예나가 허겁지겁 용주를 잡아당겼다.

예나의 부름을 받은 버티는 크기를 불려 나갔다.

예나의 도움을 받은 용주는 주원을 먼저 바깥쪽으로 끄집어냈다.

본인이 나온 건 가장 나중이었다.

“콜록!”

참았던 숨과 함께 용주가 오물을 뱉어 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건만, 찐득하게 달라붙는 오물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다급하게 달려온 예나는 주원의 코에 손을 가져갔다.

호흡이 있었다.

‘호흡도 맥박도 정상이야. 다행이다.’

예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원은 버티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

“오빠! 위험하잖아!”

고개를 돌린 예나가 용주를 쏘아보았다.

몇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용주의 판단이 아니었다면, 주원을 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위험한 방법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오빠까지 못 나왔으면 어쩌려고! 너무 무모한 방법이었단 말이야!”

예나가 용주를 나무랐다.

고마운 감정보다 다른 감정이 먼저 들었다.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었나 보지?”

“그… 그건….”

예나가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자신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용주라고 해서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 당시에 생각나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선택을 해야 했다.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저건 뭐지?”

이번에는 용주가 역으로 물었다.

주원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곰 인형의 존재는 용주에게도 낯선 것이었다.

“아…!”

예나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상황이 너무 긴박했던지라 정신이 없었다.

“버티야. 나랑 같이 다니던.”

예나가 사실대로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게 돼서야 더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지 않겠는가.

“저것도 물건의 효과인가?”

“으응. 아니, 버티는 평범한 곰 인형.”

“그럼?”

“스킬…이야. 이형 결정체로 손에 넣은 능력.”

‘인형을 움직이는 능력인가…?’

용주의 머릿속에 비슷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퀘스트 게이트에서 만났던 뱀파이어 테레사.

인형을 다룬다는 부분에선 그녀와 유사점이 있어 보였다.

“히히, 놀랐어?”

예나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 혹시 내가 미리 말 안 해서 화났으려나? 중요한 순간까지도 이기적이게 혼자 수를 숨겨두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다 말해도 괜찮아.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나라도 그랬을 거고.”

예나가 히죽 웃어 보였다.

예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킬을 사용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비밀을 만들며 희열을 느끼는 기벽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스킬을 쓰는 순간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이 싫었다.

어린아이라고 무시하다가 스킬 하나에 돌변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통쾌하다기보다는 역겨웠다.

“…….”

말을 아낀 예나는 용주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거기에 돌아온 대답은.

“내가 왜 화를 내야 하지?”

예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화… 나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왜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하지?”

“오빠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 동안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았잖아. 용주 오빠가 스스로 상처를 내가면서 스킬을 쓰는 동안에도. 주원 오빠가 괴물한테 먹히는 와중에도.”

예나의 대답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헌터는 혼자다. 스킬 역시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거다. 그걸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본인 마음이지.”

“…….”

예나가 용주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방금 한 그 이야기.

위로하기 위한 형식적인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

“왜 그렇게 생각하지?”

“헌터가 혼자라면 오빤 왜 다른 사람을 위해 몸을 던지는 건데? 그렇게 아무 망설임도 없이…. 모순되잖아?!”

손을 움켜쥔 예나가 물었다.

주원을 구하기 위한 용주의 움직임에 망설임은 없었다.

자신을 구해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람의 말이라기엔 용주의 말은 너무 차가웠다.

“…착각하는 게 있나 본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난 항상 날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한숨을 삼킨 용주가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완전한 거짓도.

완전한 진실도 아닌. 거짓과 진실 사이, 어딘가의 교집합의 이야기였다.

“오빠를 위해서? 거짓말! 그럼 우릴 왜 구해준 건데?”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용주가 대답했다.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예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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