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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65화 (65/357)

65화

* * *

참방!

세 사람이 하수도를 따라가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크에엑!!”

물길 아래에서 잠들어 있던 좀비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도 있었네.”

“어쩐지 보통 하수구 냄새가 아니다 싶더라니만.”

예나와 주원이 곧장 전투를 준비했다.

용주는 곧장 물길로 뛰어들었다.

좀비들의 신장은 인간과 다름없었다.

물 높이는 대략 종아리 정도.

놈들이 천천히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으엑! 오빠 저기 들어가 버렸어!”

예나는 거부감을 표했다.

피할 수 있다면 무조건 피하고 싶었다.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말이다.

“예나는 안 따라와도 돼. 공격에 지장 없잖아.”

주원이 예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혼자 있다고 무서워하지 말고. 내가 5초에 한 번씩 볼 테니까.”

검을 움켜쥔 주원은 곧장 뛰쳐나갔다.

‘누가 5초에 한 번씩 봐달래? 전투에나 집중하라고, 바보 오빠. 나도 같은 거에 두 번은 안 당하니까.’

당돌한 말을 속으로 삼킨 예나가 검을 뽑아냈다.

까탈스러운 말투와 달리 예나의 얼굴엔 안도감이 묻어 있었다.

* * *

좀비 무리를 처리한 세 사람은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좀비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길이 끊겼네요.”

주원이 멈춰 섰다.

수로는 있었지만, 육로는 더 이상 이어져 있지 않았다.

자세를 낮춘 용주는 칼날을 물속으로 찔러 넣었다.

물 높이는 대략 무릎 높이 정도.

조금 더 깊어지긴 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건…?’

물높이를 가늠하고 있던 용주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육로 끝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걸음을 옮긴 용주는 물건을 주웠다.

상당히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서류철이었다.

용주는 서류철을 펼쳐보았다.

안에는 몇 장의 종이가 정리되어 있었다.

“발견한 것까진 좋은데 이 상태라면 읽기는 힘들어 보이네, 오빠.”

잉크는 모조리 번져 있었다.

젖었다 말랐다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종이의 상태도 엉망이었다.

“…….”

용주는 페이지를 넘겼다.

두 번째 페이지도.

세 번째 페이지도.

해석하는 건 불가능했다.

용주는 이어서 네 번째 페이지를 확인했다.

네 번째 페이지엔 읽을 수 있는 단어들이 더러 존재했다.

[…경과.

안면… 새로운… 출현.

사각… 습성… 공격성….

안구… 사망….]

읽을 수 있는 단어는 이 정도였다.

“뭘까 이게?”

예나가 물었다.

평소라면 잘 사용하지 않을 수상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글쎄….”

추측하건대 무언가의 관찰 일지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경과, 출현, 공격성.

이런 단어들은 실험 관찰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였으니 말이다.

용주는 페이지를 한 장 더 넘겼다.

[A-0005.

새로운 변이가 확인되었다.

104번의 실패 후에 관찰된 돌연변이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형태가 대부분 무너졌다.

0004와는 또 다른 특성을 보인다.

약점도 상당 부분 보완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완전하진 않다.

양쪽….]

다섯 번째 페이지는 상당히 온전한 상태로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다.

‘A-0005?’

낯이 익은 배열이었다.

용주는 앞선 페이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몇몇 단어만 알아볼 수 있는 네 번째 페이지.

페이지의 순서가 넘버링의 숫자와 같다고 가정하면 여기 오는 건 A-0004.

하나의 눈을 가진 그 모습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단어들의 배열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렇다면 정말 이게 연구 일지라는 건가?’

악취미란 생각이 들었다.

생체 실험의 경과를 예술 작품인 양 그림으로 남겼다는 이야기가 돼버리니 말이다.

용.

A-0005라는 넘버링의 작품은 공란이었다.

녀석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녀석도 분명 여기 어딘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A-0004와 90% 이상 유사한 녀석을 이미 목격했으니 말이다.

용주는 페이지를 넘겼다.

여섯 번째.

마지막 페이지였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새로운 돌연변이가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실험 파기가 결정되었다.

배양 네트워크의 파기 역시 결정되었다.

배양 네트워크가 파괴되면 실험 중인 샘플들은 성장을 멈추고 활동을 정지할 것이다.

역설계의 결괏값도 확인하고 싶었는데, 유감이다.

글은 여기서 끊어져 있었다.

‘새로운 돌연변이라….’

용주는 일지를 덮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였다.

“오빠 생각은 어때? 아까 우리가 봤던 그림이 여기 적혀 있는 거랑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예나가 물었다.

용주는 일지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봐야겠지.”

“그럼 5랑 6 붙은 넘버링 괴물도 여기 있을까?”

“글쎄…. 하지만 있을 가능성이 제법 높겠지. 여기서 중요한 건 실험의 성공이나 실패가 아니라 그런 실험이 있었다는 걸 테니까.”

아무 의미도 없는 기록이 여기 떨어져 있을 리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단서.

단서가 있다는 건 여기 나온 것들 역시 이곳에서 등장한다는 예고일 것이다.

첨벙!

용주가 가장 먼저 물살을 튕기자, 주원이 그를 따랐다.

“들어오기 힘들면 안아줄까?”

뒤돌아선 주원이 물었다.

육로 끝에 선 예나는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아… 아니야!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말을 더듬은 예나가 심호흡을 했다.

정말 정말 싫었지만, 이제 피할 곳도 없었다.

“으으으….”

한 번에 뛰어내린 두 사람과 달리 예나는 발끝부터 서서히 물속에 집어넣었다.

남들에겐 무릎 높이라 쳐도 예나에겐 그렇지 않은 깊이였다.

“이쪽으로 넘어온 기분이 어때?”

주원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최악. 완전 최악이라고.”

어두워진 낯빛의 예나가 대답했다.

버티한테 오물이 한 방울도 튀지 않게 최대한 신경 쓰고 있는 예나였다.

“이건 뭘까요?”

수로를 따라 이동하던 주원이 벽을 짚었다.

넓고 잔잔하게 이어지던 수로 한복판에 이질적인 장애물이 있었다.

수로의 벽은 아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그랬고, 콘크리트의 딱딱한 질감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보이는 모습만 보면 폐 찌꺼기가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느낌만으로 말하자면….

차가운 생고기를 뭉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뭔가 엄청 기분 나쁘게 생겼는데, 살아 있는 것처럼 막 꿀렁거려.”

그냥 보면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곳을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호흡을 하는 것 같았다.

푸욱!

말 대신 손을 움직인 용주는 검을 찔러넣었다.

고통의 반응은 전혀 없었다.

피가 나지도 않았고, 뼈를 비롯한 다른 장기 기관이 걸리는 감각도 없었다.

용주는 상처를 조금 더 길게 찢어 봤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가보는 수밖에.’

장애물을 끼고 돈 용주의 앞에 통로가 나타났다.

장애물들은 뒤로도 더 있었다.

불규칙한 크기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 게 꼭 미로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엄청 큰 고래한테 잡아먹히면 이런 기분일 거 같은데.”

미로를 해치며 나아가던 주원이 소감을 말했다.

대장이나 소장을 지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오빠는 상상력도 좋네.”

“왜? 그런 느낌 안 들어?”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것 같잖아.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고.”

예나가 양쪽 장애물과 최대한 거리를 뒀다.

보글….

두 사람보다 한 발 앞서 있던 용주는 걸음을 멈추었다.

방금 무슨 소리가 났던 것 같았다.

“응? 오빠, 왜?”

이유를 묻는 예나에게 용주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공간에서 용주는 다시 한번 소리에 집중했다.

보글….

그리고 들을 수 있었다.

볼 수 있었다.

수면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한 무리의 기포들을.

“무슨 일인데요, 용주형? 저도 좀 알자고요.”

목소리를 낮춘 주원이 속삭였다.

용주는 기포가 피어올랐던 부근을 손으로 가리켰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그곳에선 또다시 기포가 떠 오르고 있었다.

“기포?”

“수면 아래에 뭔가 있단 거네.”

예나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역시 좀비일까요?”

“적어도 평범한 좀비는 아닐 거다. 녀석들은 호흡하지 않으니까.”

물속에 잠겨 있는 좀비들이라면 이미 만나본 바였다.

녀석들이 있던 곳에선 저런 현상이 관측되지 않았었다.

“그럼 저기 있는 건…?”

“이제부터 확인해 봐야지.”

용주가 예나를 바라보았다.

매복한 적을 원거리에서 저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을 가지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그녀였다.

“알았어. 나한테 맡기라고!”

용주가 하고 싶은 말을 곧장 이해한 예나는 비스듬하게 검을 기울였다.

사선을 그린 칼날은 물살을 갈랐고.

푸왕!

이윽고 거대한 물보라가 솟구쳐 올랐다.

“뭐야?! 저건?!”

주원의 눈앞에 나타난 건 괴물이었다.

오물을 온몸에 뒤집어쓴 거대한 괴물.

괴물의 몸을 따라선 계속해서 오물이 흘러내렸다.

머리는 있었지만, 목은 없었으며, 팔은 있었지만, 다리는 없었다.

얼굴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달걀귀신 같았다.

얼굴에 있어야 할 눈은 어깨에 달려 있었다.

양쪽 어깨에 하나씩 달려 있는 눈의 크기는 사람의 머리보다 컸다.

괴물의 팔은 한쪽이 기형적으로 발달해 있었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2배 정도 거대했는데, 손바닥엔 빨판 같은 것들이 돋아 있었다.

“오빠 저 녀석도 눈이 있어. 그것도 두 개나. 저게 혹시…?”

예나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용주는 공격을 개시했다.

물 때문에 움직임의 제약이 있었지만, 극복하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었다.

꾸르륵!

좀비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왼쪽 벽에 붙어 이동하는 용주를 향해 팔을 휘둘렀고, 녀석의 팔등에서 떨어져 나온 오물들이 빗발쳤다.

칼날을 비스듬하게 기울인 용주는 받아칠 수 있는 공격들을 받아쳤다.

머리나 가슴 쪽으로 날아오는 공격들은 대부분 쳐내거나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깨를 비롯한 외곽 부위는 사정이 좀 달랐다.

피격당한다고 상처가 생기는 공격은 아니었다.

오물들은 날카롭지도 않았고, 단단하지도 않았다.

다만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직격당한 오물들은….

붙은 채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칫…!’

무게감이 상당했다.

마치 납 주머니가 강제적으로 채워진 것 같았다.

빨판 달린 손바닥을 펼친 특수 좀비는 용주를 붙잡으려 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피할 곳은 많지 않아 보였다.

“다른 곳은 텅텅 비었다고, 괴물 아저씨!”

모든 시선과 정신이 용주에게 쏠린 그때.

예나의 검이 녀석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찢어진 망막에선 물과 피가 쏟아졌고, 수정체가 그 모양 그대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나로는 쓰러지지 않는가 보네.’

하나의 눈알을 잃은 뒤에도 좀비는 쓰러지지 않았다.

꾸르륵!

다만 움직임에 버벅임이 생겼다.

아무래도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첨벙!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킨 용주는 녀석의 손등 위를 타고 올랐다.

좀비는 왼손을 움직였다.

마치 팔에 앉은 모기를 잡으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눈이 파괴되었다고 한들, 손을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는 모양이었다.

질척!

좀비의 손이 팔에 닿자 더러운 오물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용주 형!”

주원이 힘껏 외쳤다.

처음에는 용주가 깔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용주의 몸은 허공에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오른팔의 외곽선을 타고 둥글게 회전하고 있었다.

“날았어?!”

용주의 움직임에 예나가 놀라움을 표했다.

용주가 의지하고 있는 건 칼 한 자루였다.

충격의 순간.

용주는 녀석의 오른팔 바깥쪽에 검을 찔러 넣었다.

조금만 실수하거나 중심을 잃어도 바로 밑으로 떨어졌을 순간이었다.

검을 박아 넣은 용주는 그대로 허공을 향해 도약했다.

어울리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왜, 있지 않은가?

봉을 잡고 하늘에서 빙글 도는 동작.

딱 그런 모습이었다.

타닥!

속도를 이용해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온 용주는 검을 뽑아 냈다.

어깨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한 게 원인인 모양이었다.

물론, 이까짓 통증 때문에 주춤거릴 생각은 없었다.

촤악!

어깨를 타고 오른 용주는 녀석의 두 번째 눈알을 완전히 찢어 놓았다.

녀석을 베어 낸 용주는 굴곡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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